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구마를 캔다. 고구마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집이라 이삭을 주워 와서 먹었다. 이삭 줍기 직전에 캔 고구마밭을 노린다. 캐다 보면 생각보다 많다. 해가 짧아지는 때라. 여러 밭에서 이삭을 캐다 보면 어둠이 내리면 무서워서 줄 행량을 쳐야 했다.
옆동네까지 가서 캐다 보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 곳도 있다. 낮에도 무서운데 저녁 무렵이면 얼마나 무섭던지.
내려오는 전설이야기는 이러했다.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하다 올라가지 못하고 사람에게 죽음을 당해서 해가 떨어지면 뱀이 나타나 사람을 해친다고 했다.
진짜 뱀이 나타날까 싶어 겁을 잔뜩 먹고도 이삭 줍느라 까먹다 일어서는 순간 섬 뜸함을 느끼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용을 썼다.
다른 한 가지는 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지고 물에 빠져서
죽어 한이 맺혀서 귀신으로 보인다는 이야기.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금괴를 가져가지 못하고 도망가다 주변 산에 숨겼다는 이야기.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서 진짜 금괴가 있는지 파 보기도 했다고 한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떠도는 소문은 무성했다.
무서움을 이기고 고구마 이삭 줍기에 성공한 고구마는 방 가장 위에 겨우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긴 겨울밤 화롯불에 고구마를 넣고 구우면 화로 주변에 둘러앉아 목 빠지게 기다리던 그때 한쪽에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한쪽에는 팥죽을 데웠다. 팥죽의 고소한 맛과 고구마의 달큼한 맛이 어울려져 침샘을 자극하고 기다리는 동안 눈길을 뚫고 나가 땅에 묻은 동치미를 한 사발 꺼내온다
팥죽 한 수저 고구마 한 입 번갈아 가며 먹다 입천장이 덴 줄도 모르고 서로 먹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고구마 한 입 먹고 동치미 한 입 베어 물고 구운 고구마를 까던 손으로 무를 베어 물으면 입가에 까맣게 그림이 그려진 모습을 보고 서로 숨 넘어가듯이 웃던 그 시절
팥죽은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직접 끓여 광에 한 동이 두신 것이었다. 팥죽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한 겨울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워 마당 모퉁이 볼일을 보고 나면 아침에 지도가 그려져 있으면 얼른 부엌에 들어가 재를 가져와 뿌렸다.
추운 산골인데 우리 집은 언덕 위의 집이라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 창호지 한 장으로 겨울을 나기란 정말 힘들었다. 아침이면 아버지가 소여 물을 끓이면서 데운 물로 오빠부터 동생까지 세수를 하고 다시 컬레를 빨아야했다.목욕은 빨간 다라에서 겨우 겉 때만 벗기는 수준 오돌오돌 떨며 부억에서 했다.그것도 호사로 여기는 때고 물을 많이 쓰면 물을 우물에서 길어와야 하는 번거로움에 아껴야만 했다. 물도 귀하고 넉넉하지 못한 시절 겨울나기는 참 힘든시기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추억을 간직한 겨울이기도 하다.
추억을 간직한 집은 모두 고향을 떠나면서 집도
추억도 땅속에 묻혔다. 고향을 떠난 가족들 가슴속에는 살아 숨 쉬고 있다. 매서운 추위를 이길 수 있었던 시간들은 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모여서 온기로 똘똘 뭉쳐 있어서였다
고구마 한입에 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는 것 , 지금을 살아가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추억이 힘이 된다는 사실 그리워할 수 있는 고향집이 있어서고 화롯가에 둘러앉아 고구마 한입으로 겨울 추위를 녹였다는 사실이다.
고구마 한 입이 주는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추억으로 가슴을 데우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