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드라이버를 든 골목대장

어린 시절의 나

by 강롸롸

아버지는 LG전자 대리점을 오래 운영했다.

누가 물으면 "기술자다" 하고 당당히 말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맥가이버 같았다.

고장 난 선풍기부터 동네 어르신들 리모컨 설정까지, 아버지 손이 가면 못 고치는 게 없었다.


어릴 적,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던 장면을 아버지는 종종 이야기하신다.

"느그들, 그때 골목에 모이면 별 거를 다 들고 나왔다."

그때 그랬다. 나는 대리점 구석에서 아버지 몰래 길다란 십자드라이버를 챙겨 들고 나갔다.


철물점 딸인 윤경이 언니는 꼬집기 기술이 가능한 연탄집게를,

샤시 전문점 아들인 태훈이는 문을 여닫는 긴 꼬쟁이를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우린 골목의 기사단이 됐다.

각자 손에 든 '무기'를 흔들며 싸움 놀이를 했다.


누가 제일 센지, 누가 기술이 좋은지 으스대며 놀았지만,

돌아보면 그 장난스러운 무기들은 모두 우리 부모님의 삶과 일이 묻어 있는 도구였다.

나는 다소 약한 무기를 가졌지만 민첩해서 높은 확률로 내가 이 구역을 평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골목대장의 시간을 만끽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지막엔 꼭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니가 들던 그 드라이버도, 친구들 도구도, 결국 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고치고 만드는 도구다.

기계든 사람이든, 망가졌다고 버리는 게 아니라 고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니가 어디 가든 쓸모있는 사람 된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때는 장난감 같던 십자드라이버가 지금은 삶을 고치는 자세처럼 느껴진다.

말이 어긋났을 때도, 관계가 삐걱거릴 때도, 쉽게 버리지 않고 고치려는 마음.

아버지의 기술자다운 인생 교훈이 그렇게 내 삶에 남아 있다.


내 별명은 ‘라라’다. 내 이름 마지막 글자를 두 번 써서 부르면 ‘라라’라는 귀여운 애칭이 된다.

내 여동생 별명은 ‘미미’다.

나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금발의 인형이 미미라서 ‘미미’가 더 예쁘게 들릴 때가 있다.


집에서도 라라 하고 매일 불리고, 영어 이름도 ‘라라’로 붙여서 외국에 가서도 늘 들어서 익숙하다.

심지어 김미경 대학에서도 ‘강롸롸’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회사 친구들도 친근하게 ‘라라’하고 불러 주기도 한다.


외국 이름 같은 별명을 지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국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갔었을 때도 ‘내 이름은 라라’하고 말하면,

자기 주변에 ‘로라’, ‘로우라’라는 이름의 친구는 꼭 한 명씩 있다고 한다.

내 이름은 한국에서 흔한 이름은 아니다.

옛날 싸이월드 감성으로 같은 나이의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전국에 3명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흔한 이름인가 싶다.

호기심으로 인터넷에서 ‘전생에 나는 누구였나’를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전생의 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용감무쌍한 여자였다고 나왔다.

알고 보면 나는 외국이랑 더 맞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첫째인 나를 낳을 때, 아빠는 이불을 가지러 집으로 간 사이 내가 세상의 빛을 봤다고 한다.

여동생과 4살 터울이 있고 남동생과 7살 터울이다.


나는 유난히 첫째라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학원 보내기를 통해 파악하셨다.

부모님은 아마 나를 마루타 삼아 내 동생들에게는 학원에 대한 기준을 가지게 된 셈이다.


초등학교 다니며 배운 것들은 피아노, 컴퓨터, 미술, 바이올린, 검도, 테니스 등이다.

그중 피아노, 컴퓨터, 그리고 테니스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미술과 바이올린은 중학생 때까지 했다.

나중엔 동생들이 했던 속독이나 웅변을 나도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두 동생은 나는 못한 전교 회장을 자랑스럽게 했다.

나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도 남의 떡이 커 보였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학교 안에 있는 정글짐, 시소, 늑목, 미끄럼틀, 하늘사다리 등을 타고 잘 놀았다.

화단에 심어 놓은 팬지를 찧어서 봉숭아 물을 들였다. 운동장은 집에서 뛰어서 3분 컷이다.

집과 학교 사이에는 문방구가 있었는데,

나는 쥐포랑 오징어 다리 같은 걸 연탄불에 구워 먹는걸 참 좋아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기 힘든 것처럼 문방구에 들렀다.


하루는 미니 세발자전거를 타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을 씨잉씨잉 달리며 상쾌한 바람도 맞고 너무 기분 좋았다.

그런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남자애 때문에 기분이 매우 상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며 학교 문을 쾅 밀었다.

문이 별안간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악! 아아악! 너무 아파! 엉엉엉.

나는 눈에서 떠나지 않는 별을 보았다. 학교 철문이 내 이마를 콱하고 찍었다.


얼른 이마를 짚어 봤다. 피는 나지 않지만 혹이 점점 부어 오르고 있었다.

너무 당황했고, 세발자전거를 죽을동 살동 밟아서 집으로 정신없이 갔다.

엄마는 옥상에서 이불을 걷고 계셨다.

나는 울며불며 자전거를 패대기치고, 엄마한테 엉엉거리며 달려갔다.


엄마는 나를 보며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이불을 떨어뜨렸고

나를 와락 안고 ‘어디 어디?’하며 눈물을 닦아준다.

이마가 퍼렇게 팅팅 부어 있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가서 달걀로 살살 문질러 줬다.


내 왼쪽 눈썹 뼈는 약간 들어가 있다.

내 얼굴에 훈장처럼 박혀있는 이 에피소드는 엄마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채 이제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