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범생을 가장한 날라리

학창 시절의 나

by 강롸롸

나는 모범생을 가장한 날라리였다.

중학교 때는 수업하기 싫어서 경남 체육대전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았다.

어느 날 체육 선생님께서 운동장 끝에서 공을 하나씩 주면서 반대편을 향해 힘차게 던져보라고 하셨다.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멀리 던졌다.


수업 후에 나에게 투포환 던져보라고 하셨다.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던지기 분야 선수감을 테스트했다.

처음에는 투포환을 연습했다.

그러나 체구가 크지 않던 나는 창과 원반을 던져본 후,

경남 체육대전을 위한 원반던지기 선수가 되었다.

3개월 정도 훈련을 하는 동안, 창을 던지는 남학생, 투포환 던지는 남학생 사이에서 나는 유명한 조각품인 ‘원반 던지는 사람’의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잘되는 날도 있고 잘 안 던져지는 날이 훨씬 많았다.

더운 땡볕 아래 훈련을 하니 체육복이 매일 흠뻑 젖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드디어 체육대전의 날이 왔다.

창원시에서 열리게 되었고 창원 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되었는데, 5명의 선수가 돌아가면서 원반을 날렸다.

그런데 도약 자세가 본인들 스타일에 맞게 제각각 달랐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뒤돌아서 던져도 된다는 것을.

나는 당황했고 심장도 요동치게 긴장도 했지만 애써 태연한척했다.


내가 체격이 가장 왜소했다. 나름 나도 한 피지컬 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난 임시선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의 두 선수는 정말 멀리 날렸다.

우와, 역시 찐 선수들은 남다르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어깨 힘이 세다고 자신했다.

여기 와보니 내 어깨는 가냘픈 정도였다.


내 뒤에 던진 두 명도 다행히 나랑 비슷해 보였다. 저 두 명은 내가 이겨야겠다.

내 목표는 3등이 되었다. 그리고 총 3차 시도 중에 가장 멀리 간 거리를 측정해서 기록한다.

나는 다른 선수들을 유심히 보며, 내 동작에서 좀 더 힘을 올릴 수 있도록 몇 번 고쳐서 연습했다.

결국 난 3등을 했다. 나름 내 작전이 먹혀들어 갔다고 생각한다.


모범적으로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약간은 날라리 기질이 있었기에 3등을 목표로 이뤄내려고 했다.

비록 그 자리에서 시상식을 하진 않았지만, 전교생 앞에서 다음 날,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상을 받았다.

정말 짜릿했다. 괜히 내가 여기서 제일 힘이 센 대장부가 된 늠름한 기분이었다.

아빠의 단단한 어깨 유전자를 내가 받아 타고난 거라고 믿었다.


상장을 받으면 늘 아빠는 맛있는 치킨을 사주곤 하셨다.

나와 동생들은 이것이 최고의 만찬이었다.

상을 타서 치킨을 먹으려고 모든 대회에 참가했다.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글짓기, 그림그리기, 표어, 포스터 등 웬만한 상을 휩쓸곤 했다.

셋이 모두 합치면 약 100개는 넘는 것 같다.


아직도 책장에는 우리가 받은 상을 부모님은 고이 모셔놨다.

우리 어릴 때와 부모님이 젊은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슝 타고 돌아오신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나를 관통해서 지나갔다.

나의 존재 이유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왜 그렇게 걱정이 먼저 되던지. 지금 생각하면 한차례 미열에 불과했지만,

그때는 내 온 우주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사정없이 흔들렸다.


부모님보다 친구들이 소중해진 시기라 서로 의지와 공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몰래몰래 쉬는 시간에 편지를 나누고 교환 일기를 썼다.

지금 다시 열어보기에는 너무 유치해서 오그라들어 버리지만,

그때의 나는 신뢰와 의지 그리고 애정에 목말랐다.

그걸 채워 준 것이 편지, 일기 그리고 ‘문집’이었다.

문집은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이란 뜻이다.

지금 생각하면 에세이나 다름없었다.


모범적인 학생처럼 보이면서도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하기도 하고

뺀질거리고, 대놓고 놀진 않았지만 내 안에는 반항기 있는 날라리가 살고 있었다.


수행평가로 만들었던 문집은

그 이후로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배우, 작가 등을 스크랩하고

가사도 적고 시도 적고 이것저것을 다 끄적거렸다.

나중에는 3권 정도 만들게 되었고 잡동사니 등을 오려 붙여 놓았다.

그중 내 어린 시절 우상이던 H.O.T.와 팬클럽 활동은 아마 내 인생에서 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뭔가 아련하고 한참 넘겨버린 책장 같다.

그 당시에는 뜨거운 용광로와 같아서 하루라도 못 보면 눈에 가시가 돋을 것만 같았다.

동생과 가요톱텐을 녹화해서 테이프로 다시 보기도 하고, 테이프와 CD를 사재기하고, 서점에 파는 잡지와 포스터도 샀다.


고등학생 때,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신 없을 콘서트였다.

친구와 은행에 줄을 서서 겨우 예매했다.

요즘 세대는 은행에서 콘서트 표를 예매한다는 것 자체가 신세계란다.

부모님은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에 잔소리를 한참 하시더니 나중엔 포기하셨다.


종합운동장에서 대형 버스 12대 정도가 출발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매우 피곤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서울은 생경했다.

운동장에는 팬들로 가득 찼다.

좌석은 별로였지만, 이 역사 속에 있는 우리가 너무 대견하고 소름 끼치게 멋졌다.


두둥두둥. 드디어 시작이다.

내 심장도 두근두근 사정없이 뛰었다.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음악과 퍼포먼스가 황홀했다.

내 오감이 반짝반짝하고 머리카락이 바짝 섰다.

그 흰색 물결, 노래로 대동단결 되는 그 아름다운 하모니가 희열로 넘친다.

어쩌면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 모든 조화와 아름다운 경험을 사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이돌을 동경하고 팬이 된다고 하면

공부에 지장을 줄 까봐 눈치도 보이고 주변에서도 공부는 뒷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콘서트 챙겨서 간다고 하면 성적과는 크게 관계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이제는 H.O.T. 팬을 졸업하고 대신 BTS의 팬이 되었다.

어릴 때 만큼 열정적인 팬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아끼고 응원한다는 그 마음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모범생인척 하지만 날라리인거 같다.

왜냐하면 회사에서는 시키는대로 다 잘 하는것 같으면서

가끔 꿈틀하기도 하고 일탈을 꿈꾸기도 하며,

더욱 격렬하게 놀아제끼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갖고 있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날라리인게 의식적으로 덜 에너지소모적이고 가식적이지 않아도 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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