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지식한건가? 건너가는 사람들이 안전불감증인건가?
1.
방학때라도 느긋하게 출근하고 싶어서 요즘에는 걷고 있다.
차로 가면 얼마 안걸리는 거리라 걸어도 크게 부담은 되지 않는다.
다만, 덥고 춥고 미세먼지 많고 비가 오면 우산때문에 불편하고 눈이 오면 미끄럽고..
이런 것들이 언제나 나를 방해한다만,
방학이니까. 조금 늦게 가도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없으니 맘편히 출근한다.
2.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수많은 신호등들.
네거리의 복잡한 신호들과 차량들 사이에서는 규칙을 잘 지키지만
2차선 밖에 안되는 혹은 여러 차선이더라도 차량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서는 갈등이 심각하다.
게다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저 신호등은 예전에 횡단보도만 있었는데 새로 생겼다.
자주 바뀌기는 한다만 기다리지 않고 건너던 것에 비하면 지체하는 시간이 보태어진 셈이다.
다시 고민. 그냥 가? 말아?
3.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던 일들이 그래도 학교 근처라고 최대한 덜 하려고 노력한다.
술에 취해 빨개지는 거, 길 가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거, 아내랑 팔짱끼고 걷는거 (음. 이건 왜일까?)
아무튼 당연히 살아가면서 누구나 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교사이니까 아니 교감이니까 조심스러워 진다.
교사였을 때에는 아는 아이들이 한정적이었는데
교감일때에는 내가 아는 녀석보다 나를 아는 녀석들이 너무 많다.
백화점에서 부모님이랑 함께 인사하는 걸 보면 몸둘바를.. 그렇다고 굳이 그 백화점을 안 갈 건 아니지.
아무튼 그러다보니 저 신호등에서 나는 고민을 한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고민할 필요가 없지.
4.
바로 옆에 있던 할아버지와 손녀.
할아버지는 손을 잡고 그냥 빨간 불에 건너려는데,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손녀는 손을 뿌리친다.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손녀는 그걸 보면서 발을 동동거린다.
할아버지는 찻길 건너편으로 갔고, 아이는 반대편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혹시 할아버지는 속으로 아이를 나무래지 않았을까? 융통성도 없고, 할애비 말도 듣지 않는 아이라고.
손녀는 할아버지가 창피하지 않았을까? 왜 신호등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는지.
이윽고 신호가 바뀌고 나랑 같이 건너는 아이는 뛰어가 할아버지 손을 잡는다.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 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아무래도 둘 다 서로를 탓하고 있지는 않다. 그냥 그런 해프닝이었나 보다.
어른이 아이를 혼내는 머쓱한 상황을 예상했던 내가 멋적었다.
뭐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면 되는거지.
5.
다음 횡단보도에서 나는 또 신호등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그냥 건너가기도 하고
내 옆에 서서 함께 건너기도 하지만
신경쓰지 않으련다.
내가 내 신호를 지키는 건 나를 위함이지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함은 아니니.
급할 때는 무시할 수도 있고, 차가 없을 때에는 요령껏 할 수도 있는거지.
아이들에게는 그런 요령을 미리 가르칠 수 없기에
(아무래도 그건 경험이 쌓여야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 그리고 사회적으로 통용된 방법을 가르치는 거겠지.
6
그러고 보니, 신호등은 원래 기다리라고 있는 것 아닌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