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적응해야 하겠지만 나를 잃고 싶지는 않다
1.
세상은 어지럽다.
어느새 내가 살아가던 시대가 먼 옛날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예전 전축에서 나오던 뽕짝의 멜로디가 내 유년시절의 한 구석을 채웠던 것처럼,
내 아이는 이문세, 신승훈, 김광석의 노래가 그 경험을 대신하겠지?
아이가 흥얼거리는 그 노랫말이 정겹게 느껴지다니.. 참 세월이 빠르다.
2.
며칠 전에 PPT를 만드는 데 열심히 도형을 옮기고 고민하고 있는 내게
어떤 부장님이 '감마'라는 AI 도구를 이야기해 준다.
내용만 넣으면 유목화도 시켜주고, 알아서 PPT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심지어는 퀄리티도 괜찮다고.
이제 거기서 수정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글쎄.
그걸 일일이 수정하느니 처음부터 컨셉을 잡고 내가 만드는게 낫지.
3.
이런 꼰대적인 마인드 때문에 나는 최신 기술에 적응하기 조금은 버겹나 보다.
누구보다 디지털을 좋아하고 스마트한 것을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따라잡는게 힘들어졌다.
나도 모르는 별별 기술들이 나오고, 그 기술을 터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굳이 따라잡아야 하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젊은 친구보단 덜 쓰고, 또래보다는 쬐끔 더 이해하는 정도의 내가 되었지.
4.
그 땐 그게 '우수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릇에 불과할 뿐이지 결국 그 안에 담길 내용은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PPT를 잘 만들어 주는 AI를 잘 쓰려면 그 내용과 체계가 일단은 잘 나와야 한다.
그거 없이 아무런 줄글을 입력해서 나오는 PPT는 아무리 AI라 할 지라도 아무런 PPT가 될 뿐이다.
이걸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는 게 문제.
AI가 무언가 다 해줄 것 같지만 내용이 없는 건 겉만 번지르르 할 뿐.
5.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변치 않는 가치. AI나 기술이 들어와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
보통은 질문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AI를 활용하는 시작이 결국 질문에서 시작되니 맞는 말이다.
어떤 AI를 어느 방법으로 어느 수준으로 활용할 지는 내가 결정하겠지.
수 많은 분위기나 색상들을 내장하고 있어도 그게 내 마음에 드는 가는 결국 내 결정일 뿐이다.
6.
그런데 이것도 결국 AI를 사용하는 방법일 뿐이지 항구적인 교육적 가치와는 쬐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할까?
결국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아닐지.
생각나는 걸 메모해 보자.
-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가 성공을 담보하진 못해도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성실, 근면, 노력?)
- 누군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비평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보다 더욱 큰 감동을 준다. (배려, 존중, 예절?)
-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빨리 고치려는 태도는 믿음을 준다. (정직, 신뢰?)
- 말과 행동은 일치하는 것이 좋다. 어렵다면 가급적 말은 줄이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약속)
적다보니 결국 인성적인 요소들이 많다. 예전에 문용린 교수가 이야기했던 6가지 인성요소들이 생각난다.
정직, 약속, 용서, 책임, 배려, 소통. 여기에 창의성까지 들어간다면 결국 교육목표는 대부분 망라된게 아닌지.
7.
세상이 새롭게 변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가치들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온라인 상에서 혐오와 비난, 조롱들이 판치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존중, 배려, 용서라는 단어들을 쓰는 사람을 더욱 더 귀중하게 여긴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교실이란 사회는 결국 오프라인이니..
아이들이 지켜야 할, 가꿔야 할 것은 가치는 기존에 강조했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기술이나 트렌드를 가르치는 것보다
서로 소통하는 법, 존중하는 법, 배려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스마트를 지향하는 사회가 왠지 어려운 걸 버리고 쉽게 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