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물 위에서 생각을 흘려 보내기

물위를 걸어보는 특별한 경험, 물윗길 철원

by 투덜쌤

날씨가 모처럼 따뜻해졌다. 그 동안 주말에 눈도 내리고, 춥고 해서 나가지 못했었는데 나갈 좋은 기회를 만났다. 새해부터 주말 내내 침대와 소파에서 뒹굴대던 나른한 내 영혼에 경종을 울려보자. 그래서 아침 일찍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철원.


작년에 몇 번 가 본 코스라 가는 길이 낯설지 않다. 고속도로에서 빠져 국도로 접어드는 길. 한가로운 겨울 농촌 풍경은 보는 사람에 따라 을씨년스럽기도, 여유롭기도 하겠지. 그래도 모처럼 나왔다고 마음이 조금은 감상적이 된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그랬고. 미세먼지때문인지 왜 그리 안개가 자욱한지, 그 조차도 분위기 있네.


철원에는 주상절리길과 고석정 때문에 몇 번 오는 것 같다. 아들의 군 부대가 근처였긴 했는데, 정작 코로나때문에 면회는 못 왔다. 그런 곳을 요즘 자주 오는 것 같아 묘한 느낌도 든다. 아들은 도외시하고 부부끼리 여행다니는 느낌이랄까? 뭐 이 날도 같이 가자고 꼬셔봤지만 새벽까지 잠도 안자고 놀고 있는 녀석들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래서 부부끼리 놀러다니는 게 좀 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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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길을 여름에 왔었고, 이번에는 물윗길을 찾아왔다. 한탄강의 수위가 낮을 기간에 부표를 이용해서 강을 지나갈 수 있는 경험. 확실히 신기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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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km라고 하는데 부표로 가는 길도 있고 육로로 가는 길도 있고. 많이 섞여 있다. 토요일 오픈런으로 가서 아주 한적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날은 제법 쌀쌀해서 볼도 코도 빨개졌지만 강 위의 얼음을 보면서 걷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흥분에 추운줄도 몰랐다.


순담계곡부터 태종대교로 향해 내려가는 코스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 그리고 오픈런도 신의 두 수. 사람이 없는 한적한 부표를 살짝 미끌리며 걷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순담계곡에서는 강 폭이 좁아 기암괴석들을 가까이서 볼 수도 있었고, 물소리도 제법 요란스러워서 산책의 재미가 컸다. 원래 계획이라면 편도로 끝까지 갔어야 했으나, 강폭이 넓어지고 사람이 많아지는 구간으로 들어가니 재미가 덜하여 다시 출발점으로 원점회귀했다.


고석정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순담계곡으로 향하는데, 그 새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랑 부딪힐까봐 아래만 보고 걷게 되더라. 햇빛이 제법 따사롭고 눈부셔서 앞도 잘 못보는 상황까지 더해지니, 아침에 봤던 그 풍경의 신비함이 사라져 버렸다. 이쯤되면 오픈런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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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에는 얼음이 얼지 않는 건가? 깊은 곳이라 안 어는 걸까? 구르는 돌도 마찬가지 겠지.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다녀야 한다. 생각이라도 깊게 해야 한다. 꼰대는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건 아니지. 생각이 고이면 결국 태도도 꽁꽁 굳어 버리는 듯. 언젠가는 나도 넓은 바다에서 편안하게 휴식하겠지만, 벌써부터 굳어져서 따뜻한 태양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탐구하고, 어울리고. 뭐 나이가 대순가?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걸은 시간은 3시간 정도 되는 듯 싶다. 끝까지 못가본게 좀 아쉽지만 중간까지 다녀왔으니 결국 물윗길 8.4km는 다 걸은 셈. 누가 기획했는지 참 좋았다. 부표들 다 세우느라 고생하셨을 듯. 중간 중간에 안내해 주시는 어른들이 참 많아서 의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겠더라. 좁은 길에 사람들이 몰리는 위험할 수 있겠다. 차라리 일방통행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코스 중간마다 진출로가 있으니 그건 또 어려울 수도 있겠네. 그렇다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까지 길을 더 만들기도 애매하고. 고민이 참 많을 것 같다. 이 땅에 공무원 한다는 것도 참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다는 게 어디인가?


image.png 둥글둥글한 저 바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image.png 순담계곡 쪽은 그래도 사람이 덜했다. 승일교에서 축제하느라 그 쪽은 바글바글
image.png 이 곳이 가장 장관이었는데, 승일교 부근인 듯. 그런데 물이 저 위에서 저렇게 많이 떨어진 게 다 얼은 건가? 누군가는 일부러 뿌렸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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