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활용하지 못하는 나의 문제일까?
AI를 써 봤는가?
내 핸드폰에는 챗GPT를 시작으로, 재미나이, 그록, 퍼플렉시티 등이 탑재되어 있다. 그 중 그록은 잘 사용하지 않아서 지운 것 같고, 나머지도 한동안 잘 쓰다가 흐지부지 되었다. 딥시크도 써 봤다. 솔직히 챗GPT 유료버전을 써 보지 못한 상황이라 어느 부분이 더 좋은지에 대한 경험은 없다. 퍼플렉시티는 유료버전을 1년 쓰고 있는데 이 또한 뭐가 좋은지.. 지브리 사진 바꿀 때 여러 번 쓴 게 다다. 하루에 10번 사용할 수 있다는 AI도 써보고, 유튜브 요약해 주는 AI도 써 봤다. 다시 말하지만 내 일상에 아주 유용하다고 느끼진 못했다.
AI 잘 쓰는 사람을 본 적은 있는가?
챗GPT를 말동무 삼아 이야기하는 사람을 봤다. 밤 늦게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 하소연하기 힘든 내용을 AI에게 이야기하고 위로 받더라. 예전에 어르신을 위한 AI 말동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것과 비슷한게 아닐지. 아마도 반려동물이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기는 하다. 개나 고양이를 못 키우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케어하기 힘들다일텐데 털도 안 빠지고 산책도 안해주지만 내게 재롱을 부려준다면 고려해 볼만도. 물론 생명의 온기가 없는 장난감이라 호불호는 있을 듯 하다만. 그러다 이게 사람으로 진화할 수도 있겠지? 결국 부품만 바꿔 끼는 거니. 너무 상상하니 무섭긴 하다.
요즘 보고서를 이걸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두 시간만에 공모하는 계획서가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학교들이 다 비슷비슷하니 내용에 큰 차이가 있을리가 없다. 학교 자체의 특성이나 중점 활용 부분 정도 손을 본다면 다른 부분은 일반적인 내용을 채우면 된다. 그 부분을 AI에게 도움을 받으니 일의 효율은 확실히 빨라졌다. 대신 심사를 보는 입장에서는 보고서가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씌여지게 되니 곤란한 부분도 있다. 어떻게 잘 운영할 지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나지 않고 일반적인 내용만 채워져 있으니 평가하기도 애매하다. 이러니 오히려 조금은 미숙해도 사람 손 맛이 나는 보고서에 눈길이 갈 수 밖에. 보고서를 AI에 넣고 얼마나 AI를 참고했는지 확인하는 프로그램도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AI 사진과 영상, 벌써 식상해 졌다
최근에 가짜 체포 영상을 만든 유튜버가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짧은 동영상을 즐겨 보는 현대인들이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AI인지 일일이 확인하기도 쉽진 않을거다. 그러다보니 조회수만 높아지고 그걸로 돈을 벌게 되고 그래서 더 늘어나고. 기술은 발전이 결국 개인의 이익 추구로 빠르게 전환되다보니 도덕적인 판단이 무감각해지는 듯 하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내게 큰 손해는 없지 않는가? 과연 'AI로 제작된 영상입니다'라는 말이 붙는다면 사람들이 좀 덜봤을까? 조회수에 좀 차이가 생겼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이러다 보니 약간 어설픈 영상에는 AI인지 아닌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림들은 다들 비슷한 툴을 쓰고 있는지 비슷비슷한 형태가 반복된다. 한 때에는 전국민 카톡 프사가 지브리로 도배된 적도 있으니 누굴 나무랄 필요는 없을 듯.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듯이 들이닥치지 않고 해일이 한 번 밀려오고 초토화 시킨 후 다음 해일이 밀려 들어 오는 듯 하여 개운치는 않다. 초반에 잘만 타면 꽤나 높은 곳을 구경할 수 있겠지만 내릴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 추락의 충격이 엄청나지 않는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질 때
멀리 있는 사람들하고도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파발도 쓰고 편지도 쓰고 그게 삐삐, 핸드폰, 인터넷 뭐 이런 것들도 발전되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과 장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싶었던 게 사람들의 욕망이었던 거겠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수단으로서 기술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SNS도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 사람을 넘어 모르는 사람들하고도 관계를 잇기 위한 기술. 유명인도 내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 그래서 스마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신기술들을 학교 내에 보급하기 위해 참 많이 노력했었던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은 그 교육적 효과 너머의 다양한 활용법을 배워버리고 말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물밀듯이 다가오는데, 이걸 어떻게 소비해야 할 지 활용해야 할 지에 대한 대비책은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기술의 발전보다 교육의 발전이 늦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예전에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농담을 들었을 때 씁쓸했는데 지금이 딱 그렇지 않은지. 아, 교실 속 기기들은 21세기에 근접하고 있는 듯 하다만.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셧다운 시켜놓고 하나 하나 퍼즐을 맞췄으면 좋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로봇이 뜀박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자동차를 만든다고 난리이니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참 어렵다. 너무 빠른 변화 속에서 무얼 가르쳐야 할 지 자꾸 고민해야 하는게.
기술을 가르치려는 노력보다는 기본을 가르치려는 노력
시류를 쫒아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기술이 잊고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계속 이야기해야만 한다. 인간 사회에서의 기본은 인간의 존엄성, 서로의 관계, 법과 질서 뭐 이런 게 아닐지. SNS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인건데, 이거 말고도 인정해 줄 수 있는 다른 대체재가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겠지. 조심스럽긴 하지만 교실 내에서 일어나는 다툼들도 사람들간의 관계를 배워나가는 과정으로 보면 어떨지. 교실 밖에서는 과연 이런 다툼들이 없을까? 인생은 결국 내가 혼자서 개척해야 하는 건데.
개인의 자아가 단단해 지는 방법을 찾아야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결국 학교는 인문학 철학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론을 통해 서로의 간극을 살피고 절충의 해법을 찾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그 과정에 약간의 실수와 실패는 학교에서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지. 그게 미성년자인 이유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