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장자 (2022) 김범준, 유노북스
'오십에 읽는' 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씌여진 책들이 많다. 그래서 딱히 눈에 들지 않았다. 뭐 오십에 읽나 사십에 읽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 '장자'라는 책은 변하지 않는데 대상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울림이 얼마나 크겠어? 뭐 하나가 인기가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나오는 아류작들 중에 하나가 아닌가?
그게 나의 선입견이었던 것 같다.
작년에 누군가가 권해서 읽기 시작했다. 위로를 준다는 말이 이런 거였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오셨습니다'라는 말이 꽤나 깊은 울림이 있더라. 이 때 내가 정말 힘들었나 보다. 뻔한 말이지만 위로가 될 정도로.
예능에 나오는 이 두 사람이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호불호를 이야기한다. 김제동에 울고 웃었다가 어느 순간 서장훈의 말이 굵직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김제동이 따스하다고 느낄테고 서장훈은 냉정하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누군가는 뼈때리는 조언이고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이 서장훈이고 김제동은 그냥 공감만을 할 뿐 해결책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현실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다소 T스러운 해결책을 내미는 해법이 맞는 사람이 있을테고, 그 보다는 F스러운 감정으로 먼저 마음을 어루만져 준 후에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맞는 사람이 있을터. 결국 개인의 호불호로 다가서겠지만, 나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김제동파다.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일단 일어설 수 있는 위로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날카로운 지적은 그 다음 문제고.
그들이 하는 이런 저런 말, 결국 내가 받아들이기 쉬운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누가 더 나은지는 본인만이 알겠지. 그걸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건 어불성설.
쓸모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 세상의 허튼 말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새롭게 무언가 해 보자' 보다는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관리해'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고 하지. 오십 이상을 살았는데 내 삶의 태도가 획기적으로 변할리는 없다.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잘 알고 있다. 바꿀 시간도 계기도 방법도 몰랐을 뿐이지. 바쁘게 달려왔지만 이제 그 삶을 나를 위해 잘 사용해야 할 때가 된 듯 하다. 그래도 육십보다는 젊지 않을지. 완전히 확 바꿀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바꾸면서 나를 아름답게 가꾸는 걸 시도할 충분한 나이다.
가르치려 하지 말 것, 괜한 의견은 자제할 것, 그저 곁에 있을 것
젊은 사람들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아 좀 더 효율적인 참견을 하고픈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게 나한테는 권유이자 충고지만, 받을 생각이 없는 그들에겐 참견이자 꼰대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도 시행착오를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게 비록 지켜보기에 괴롭고, 하는 일이 답답하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컸고 이렇게 성장하지 않았는가. 다만, 그 옆에 계속 있어줘야 한다. 내비두는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구다.
길은 걸아가는 대로 완성된다.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
이미 나는 이만큼 왔고, 가려는 길이 이 방향을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다.
내가 살아온 길은 남들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평범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옳다 그르다는 다른 시선으로 자꾸 나를 재단하기 보다,
내가 가는 길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 게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
만족할 줄 모르면 부끄러운 일이 생기고,
그칠 줄 모르면 위험한 일이 생긴다.
그만큼 달려왔으면 나에게도 좀 쉼을 줘도 될만한 나이가 되었군.
그게 오십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인가 보다.
나이 먹어서 좀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서 얻는 삶의 여유를 좀 더 즐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