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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Sep 02. 2019

과즙미 물씬! 스페인 발렌시아 중앙시장 이야기

서비스 기획자의 매혹적인 일탈



‘시장’만큼 살아 숨 쉬는 장소가 또 어디 있을까. 


▲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발렌시아 중앙시장


나는 서비스 기획자이다. 기획안을 만드는 시간에는 주로 앉아서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시장 동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기획안을 작성한다.  그야말로 정적인 시간의 연속인 셈이다.  여행을 갈 때마다 시장을 꼭 찾아가는 이유는 생동감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눈과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정적인 내 삶에 작은 파동이 일어난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시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 발렌시아 중앙 시장은 무엇이 특별할까?


‘발렌시아’라는 도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선뜻 발걸음이 가지 않는 도시였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바르셀로나, 수도인 마드리드, 수천 년의 도시 세비야만 돌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발렌시아’라는 도시는 그저 언젠가 가보고 싶은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우연히 ‘시장’이 훌륭하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발렌시아 중앙시장(The Central Market of Valencia) 유럽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인 데다가 스페인 3대 시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장이고 시장을 이루는 건축물 역시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발렌시아 중앙시장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잠시 짬을 내어 직접 발렌시아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중앙시장에는 무엇이 특별한 것일까.




어디선가 오렌지 향기가 난다면,
안녕하세요 마리사 아주머니!


▲ 발렌시아 마리사 아주머니댁


중앙시장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발렌시아 기차역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가 묵은 에어비앤비 숙소는 시장에서 걸어서 5~10분 정도 걸리는 한 가정집이었다. 거리도 가까웠지만 무엇보다 4명의 가족이 거주하고 있어 색다른 문화 체험이 될 것만 같았다. 발렌시아 사람들은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러한 내 바람이 호스트인 마리사에게도 전해졌는지 첫인사를 시작으로 여러 정보를 가르쳐 주셨다. 



스페인어는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앙시장’에 가는 방향을 알려달라고 이야기하면 ‘마리사’ 아주머니는 우리를 테라스로 데려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키신다. 발렌시아 주요 여행지가 표시된 지도를 한 장 건네주며 그 위에 동그라미 별표를 치면서 설명을 해주시는 친절한 호의가 그대로 전해진다. 낯선 이방인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궁금해하는 사이 호스트 아주머니의 남편 분이 우리 부부에게 생오렌지 주스를 한 잔씩을 주신다. 중앙시장에서 사 온 오렌지로 갈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기가 막히게 달콤하다. 과연 오렌지의 도시라는 소리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닌가 보다. 


▲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생오렌지주스


호스트 가족의 친절에 고마움을 느끼고 오렌지 주스 한 잔에 감동을 느끼면서 오후 4시 정도 슬렁슬렁 우리의 목적지 발렌시아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발렌시아의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시장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사 먹을지 한참을 고민해서 왔건만 시장의 문은 굳게 닫힌 것이었다. 이른 아침에 문을 열어 오후 1시 정도면 폐점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다음 날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발렌시아 중앙시장에 대한 짤막한 정보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스페인 3대 시장 

쌀 잡곡류부터 과일, 해산물, 정육, 계란, 유제품까지 

각종 식재료 및 조리된 음식을 파는 재래시장!

운영 시간 : 오전 7: 30~ 오후 3:00 (시장에 일찍 서둘러 가시길 추천드려요!)  



나만의 스페인식 아침이 완성된 순간


이른 아침 우리 부부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단어는 바로 ‘시장 탐험’이었다. 우렁찬 알람 소리에도 깨지 않는 우리 부부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중앙시장’의 매력이란! 얼른 옷을 차려입고 밖을 나가려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 가족이 우리를 부른다. 우리를 위해 간단한 스페인식 아침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머리에 물기도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부엌에 가보니 이미 하몽과 과일잼, 올리브 토마토소스, 구운 빵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 부부를 위해 준비해 주신 근사한 아침이었다.


▲ 호밀빵에 올려먹는 토마토와 쨈 그리고 하몽                                                            ▲호스트 가족이 차려준 아침


“간단하게 차렸어. 데사유노(Desayuno)야.”


스페인의 아침 식사를 데사유노라고 하는데 이렇게 간단히 빵 한 조각에 음료를 곁들여 아침을 시작한다. 빵을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구운 빵 위에 토마토 올리브 소스를 듬뿍 올려 나이프로 슥슥 펴 바르면 완성이다. 세계 올리브 최대 생산지답게 올리브 오일이 요리 곳곳에서 쓰이는데 이렇게 아침 식사용 소스를 만드는데 자주 활용한다. 


▲ 스페인의 여러 요리에 쓰이는 토마토

토마토 역시 스페인 요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식재료이다. 지중해 기후에서 자란 토마토는 더위를 식히는 원기 회복용 음식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상큼하게 먹기도 한다. 상큼한 토마토를 갈아 고소한 올리브 오일에 흠뻑 담가 만든 소스는 그 자체로 담백한 맛이 난다. 물론 갈아 만든 토마토소스 대신 기호에 따라 과일 잼을 빵에 발라 먹는 사람도 있다. 소스가 있는 빵 위에 하몽을 올린 채 한입 베어 먹으면 비로소 스페인식 아침 식사가 완성되는 셈이다. 여기에 발렌시아산 제철 오렌지 주스를 갈아 마신다면 발렌시아식 한 끼 식사를 맛본 셈이다.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당신을 위한 파라다이스


만족스러운 아침을 먹고 서둘러 발렌시아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어제 늦게 도착해 허탕을 친 게 아쉬워 서둘러 나오니 아침 9시에 도착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골목마다 사람들이 꽤 많다. 중앙시장 정문에 가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시장 정문에는 기념 촬영을 하는 관광객도 여럿 보인다.


▲ 발렌시아 중앙시장 드디어 도착


발렌시아 중앙시장은 과연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웅장하다.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수백 개의 타일이 정문을 중심으로 외관을 에워싸고 있다. 노란색 배경에 손으로 독특한 문양을 만든 타일은 그 자체로 고전적인 멋이 느껴진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라기 보단 오랜 시간의 겹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발렌시아 중앙시장은 18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시장이라고 한다.


▲ 시장을 장식하고 있는 발렌시아 타일


어쩐지 전통시장이라고 하면 냄새나고 소란스러울 것만 같은데 고전적인 타일과 화려한 건축양식에 나도 모르게 손이 사진기로 간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으려고 시장에 들른 것인데 외관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장 건물에 발걸음이 차분해진다. 타일에서 시작해 돔 형태의 천장에 이르는 외관의 아름다움에 반해 식욕도 내려놓게 된다.


▲ 중앙시장 내부 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성당에서 주로 볼 법한 거대한 돔 형태의 천장이 보인다. 햇볕이 동그란 돔을 향해 비추면 그 빛이 그대로 투영하여 시장 실내를 밝게 비추고 있다. 창문은 돔 형태로 문양이 새겨져 있어 그 자체로 환한 빛이 만들어 내고 있다. 대략 30m 높이의 천장을 중심으로 시장 내 수백 개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구역, 빵, 과자를 파는 구역, 과일을 파는 구역 등 식재료가 공간별로 나뉘어 있어 수백 개의 점포가 있지만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다. 교차하는 길을 따라 걷는 사이 이제야 식욕이 왕성해진다. 수백 가지의 탐스러운 식재료를 둘러보며 어떤 것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시장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냥 마시면 섭섭하지, 맥주와 찰떡궁합
하몽(Jamón)


결혼을 해서 좋은 점은 맥주 친구가 있다는 점이다. 기분이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맥주를 마셔줄 누군가가 있다는 점은 참 감사할 일이다. 맥주를 마실 땐 그냥 마시는 게 아니다. 함께 곁들일 안주거리가 중요한데 자칫 안주 거리가 변변치 못하다면 좋은 기분도 밍숭 해지고 슬픈 기분은 더 슬퍼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몽’이 있어 참 다행이다.


▲ 맥주와 찰떡궁합인 하몽


하몽은 스페인식 소시지로 돼지 뒷다리를 바다 소금으로 절인 뒤 2~5년 숙성하여 얇게 저민 음식이다. 가장 품질 좋기로 유명한 하몽은 ‘이베리코’ 산지의 하몽이다. 스페인 북부 살라망카 지역에서 자란 흑돼지의 품종으로 잡종이나 백색 돼지에는 ‘이베리코’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 가격도 이베리코산 하몽이 비싼 편이지만 안주거리로 제격이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들이켜고 바로 하몽 한 조각을 물면 하루의 고단함이 모두 사라진다. 입 안 가득 하몽의 구수한 맛이 착 감기면서 쫄깃한 식감이 느껴지는데 그 어떤 안주거리와 비교가 안 된다. 과연 하몽의 인기는 현지에서도 대단해 시장 한편 가득 하몽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어떤 상점은 영민하게도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맛보라고 작은 사이즈의 컵에 소시지와 치즈를 담아 팔기도 한다. 하몽 가게에서 계속 서성거리니 주인아저씨는 한입 먹어보라고 하몽 한 점을 내어 주신다. 한 점을 입에 넣은 채 오물오물 거리며 엄지를 척 내미니 하몽집 아저씨가 이를 드러낸 채 씩 웃으신다. 언제 가도 시장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발렌시아의 과일은 작은 행복을 만든다


▲ 신선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채소들


과일 구역으로 넘어가니 색깔부터가 다르다. 선명한 색깔을 지닌 과일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한국 청과물 코너에서 글자로만 만난 ‘발렌시아’를 이렇게 직접 와볼 줄이야. 한 알이 엄지손가락만큼 거대한 포도부터 토실토실한 딸기, 탱탱하고 선명한 빛깔의 석류,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오렌지까지 생기로운 과일이 한가득하다. 뚝뚝 흘러내리는 달콤한 과즙이 담긴 납작 복숭아도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 저렴하면서 신선한 과일들

여름에는 햇살이 강렬하고 겨울에는 비가 자주 내리는 지중해 연안의 자연환경 때문인지 과일이 풍성하게 자라 다른 식재료 대비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 즉석에서 갈아주는 생오렌지 주스

일부 과일 가게에서는 1유로만 내면 즉석에서 생과일 음료도 만들어 주었다. 즉석에서 오렌지를 넣어 짜낸 음료 한 잔을 입에 넣으니 피로가 금세 사라진다. 시원하게 과일 주스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으며 아이쇼핑을 하니 미슐랭 3 스타 부럽지 않게 소소한 행복감이 전해진다. 과일 하나, 과일 주스 한 잔에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큰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중동의 맛을 접수하다


▲ 중동의 과자도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시장


과일 주스를 들고 천천히 둘러보니 어딘가 재미있는 구석이 보인다. 분명 이곳은 스페인이고 맛의 고장 ‘발렌시아’에 와 있는데 정작 시장 내에는 중동식 과자점이 꽤 많다는 점이다. 그것도 꽤 큰 규모로, 여러 군데 자리 잡고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중동 과자점이 있는가 하면 중동 과자와 흡사하게 만든 스페인의 과자도 보인다. 형태와 이름이 다를 뿐이지 만드는 법은 유사해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페인에서 들렸던 수많은 시장들에서 모두 중동식 식재료들을 만났던 것 같다. 물론 크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느 곳에서나 쉽게 다른 문화의 음식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어쩌면 이 나라의 역사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향신료부터 빠에야까지 다양한 식재료가 한 곳에


스페인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니 약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무슬림의 통치를 받았다고 한다. 수백 년간 통치를 하면서 음식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재미있게도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빠에야’ 역시 무슬림에게 전해진 요리라고 한다. 빠에야의 본거지답게 중앙시장에서도 종류별로 다양한 빠에야를 만나볼 수 있다. 빠에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바 테이블도 비치되어 있는데 마침 어떤 아가씨가 빠에야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힐끗 먹는 것을 보니 철판에 들러붙은 밥알을 벅벅 긁어 떼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과 철판 볶음밥 집을 갈 때마다 누룽지까지 긁어 야무지게 먹곤 하는데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나 스페인에 살고 있는 발렌시아 아가씨나 먹고사는 방식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이방인이 성장하는 방식


시장의 추억을 떠올릴 무렵 남편의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몇 번을 누르니 그다음 날 새벽, 각종 반찬과 야채가 우리 집 앞에 놓여 있었다. 반찬을 만든 사람의 얼굴도, 택배기사님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내 시간을 많이 아껴주었고 편해 습관처럼 이용하고 있다. 평상시 나의 생활 방식이다.  

여행을 가는 순간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낯선 삶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된다. 자발적으로 감자를 하나하나 만지는 경험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과 발품을 팔아 시장을 탐험하는 것이 마냥 시간 낭비일 줄 알았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꽤 근사했다. 음식들의 향연에 입이 즐거웠고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거웠다.. 무엇보다 시장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존재했다. 눈과 눈을 맞추며 사람들과 호흡하는 사이 덤으로 과일이 하나 더 올라가고 이런 재미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당연하게 추구했던 효율적인 삶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을 경험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발렌시아 중앙시장에서 나는 행복한 이방인이었다. 낯설지만 시장의 상인과 대화하고 그들이 내게 전한 친절한 한마디가 몸속 가득 공명하며 시장의 풍경은 포근하게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할 것 같다. 낯설지만 타인의 문화에 흠뻑 빠져드는 그 시간은 내 일상의 프레임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P.S 사랑스러운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며, 우리의 성장을 기념하며




에어비앤비 작가, 조정희

아름다운 순간들을 수집하는 서비스 기획자이자 여행작가입니다. 

<7일의 스페인>, <소곤소곤 라오스>, <맛있는 스페인에 가자>라는 책을 썼습니다.

아름다움과 여유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인스타그램 @traveler_j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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