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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Sep 04. 2019

이탈리아에서 찾은 여행의 이유

'나'를 더 알아가는 과정

나랑 이탈리아 갈래?

여행지를 결정할 때 가장 크게 마음을 움직이는 건 뭘까? 겁이 많은 나의 경우에는 아는 누군가 먼저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가족이 가봤거나, 친구가 가봤거나, 아니면 친구의 친구가 가봤거나 그런 내가 주위 누구도 가보지 않은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 것도 나의 의지는 아니었다. 엄마가 평생 염불을 외던 이탈리아 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못 가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착실히 여행 준비를 하던 나는 혼자 여행하게 될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던 친구가 떠올랐고, “나랑 이탈리아 갈래?”라는 나의 말에 긴 고민 없이 “그래 좋아.”를 쿨하게 외친 친구 덕분에 외롭지 않은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됐다.

▲  노을 지는 성 베드로 성당을 마주하자 로마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밝은 나보나 광장의 아파트

'대체 로마 호텔 침구들은 왜 이렇게 화려한 거야?' 며칠째 호텔, 한인민박 예약 사이트와 에어비앤비 홈페이지를 번갈아 가며 로마에서 머물 곳을 검색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숙소가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띄운 에어비앤비 창에서 우연히 이름이 마음에 드는 그 집을 발견했다.

 

<Bright Piazza Navona Apartment>. 직역하자면 <밝은 나보나 광장의 아파트>. ‘밝은’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외국인들이 작성한 5개의 후기가 전부인 그 집을 단번에 선택한 이유는 에어비앤비에서 선정한 슈퍼호스트가 운영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슈퍼호스트인 제이미와 주디타는 여러 개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들의 다른 에어비앤비 후기 평점이 높아 믿음이 갔다.

▲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로마의 <밝은 나보나 광장의 아파트>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내려 제일 처음 우릴 반긴 건 내 이름 'Doo Young Kim'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두리번거리던 토마스였다. 호스트 주디타가 고용한 토마스는 픽업 서비스를 신청한 우리를 에어비앤비까지 안전히 데려다 줄 택시기사였다. 택시가 로마 시내에 들어서자 토마스는 유적마다 이름을 알려주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수없이 사진으로 봤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택시가 에어비앤비에 도착하기까지 토마스가 서울에 가본 적이 있다는 것과 베네치아는 사랑의 도시이니 꼭 가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택시에서 내려 토마스와 인사를 하고 숙소 앞에 마중 나온 호스트 주디타를 만났다. 금발의 주디타는 단추를 여러 개 푼 흰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호리호리한 체형과 얇은 입술에서 왠지 모를 깐깐함이 느껴졌다. 주디타는 열쇠로 대문을 열며 문을 열고 닫는 법을 꼼꼼히 알려주었다. 도어록에 익숙한 나는 열쇠로 문을 열고 닫는 아날로그 한 행위와 열쇠의 딸깍거림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형광등이 없는 거실의 동그란 테이블과 아담한 소파, 새하얀 침대도 완벽했다.

 

주디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문득 창밖 풍경이 보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리듬감 있는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출처는 왼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은 채 머리를 창가 쪽으로 두고 거실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도착한 지 30분도 안 되어 내 집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솔솔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간간히 들리는 음악을 들었던 그 기억은 마치 내가 가진 최초의 휴식 같았다.

▲ 숙소에 들려오던 로마 거리의 라이브 연주

 



머리 위에 뜬 무지개 우산과 낮잠의 발견

▲ 무지개색 우산을 머리에 쓰면 기분이 조크든요.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을 시작으로 판테온(Pantheon),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로마 스페인 계단(Piazza di Spagna)을 둘러본 후 디저트 맛집으로 유명한 카페인 폼피(Pompi)에 가서 티라미수를 샀다. 전부 숙소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라서 버스는 이용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에어비앤비 위치가 좋았다. 


유명 관광지는 관광객으로 득실거려 10분 이상 머물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에게 있어 여행의 설렘이란 사람 없는 골목에서 마주친 강아지, 오래된 간판, 작은 상점의 귀여운 물건과 같은 것들이다. 사람과 더위에 지쳤던 우리는 디자인 스토어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Flying Tiger Copenhagen)에 들어갔고, 관광지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에서 정수리만 가리는 우스꽝스러운 무지개색 우산을 하나 샀다. 예쁘지만 쓸모없는 것을 돈 주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무지개색 우산 하나로 여행의 설렘을 끌어올리기에 넘치고 충분했다.

 

무지개색 우산을 쓰고 햇빛이 쏟아지는 시간을 피해 숙소로 갔다. 숙소로 가는 길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들뜨게 했다관광보다 휴식이 더 기다려지는 건 낮잠 때문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낮에는 15분 이상 못 자는 내가, 이곳에서는 소파에서도 30분은 너끈히 낮잠을 잘 수 있었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잠시 숙소의 폭신한 소파에 누워 한두 시간 노곤히 쉬던 그 시간이 무척 소중했고 아직도 그립다. 역시 제때제때 잘 쉬는 것도 건강한 여행 방법이다.

▲ 나의 낮잠을 책임져준 폭신한 소파가 있던 거실                                   ▲ 에어비앤비 앞 레스토랑, 누워 있는 강아지가 귀엽다




우비 한 장으로 느끼는 비의 무게

바티칸 반일 투어의 여파로 넝마가 되어 몇 시간이나 잠들었는지 모를 만큼 낮잠을 잔 뒤에야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같이 정신을 못 차리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 사두었던 딸기 티라미수와 오리지널 티라미수를 먹었다.

 

낮잠에 들기 전 일을 떠올려 보자면, 투어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더니 이윽고 소나기가 내렸다. 우리는 성 베드로 성당(San Pietro Basilica) 앞 기념품 가게에서 노란색과 초록색 우비를 나란히 사 입고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천막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음악과 함께 들었다. 나는 원래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터라 비 내리는 풍경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비가 멈추지 않고 좀 더 내려주었으면 바랐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다시 해가 쨍하게 떴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젤라토를 먹으며 에어비앤비까지 걸어갔다. 에어비앤비까지 가는 길에는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베레 강(Fiume Tevere)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산타젤로 다리(Ponte Sant'Angelo)가 있다. 산타젤로 성(Castel Sant'Angelo)과 도심을 이어주는 이 다리 위에는 천사 조각상이 즐비하다. 산타젤로 다리에 가까워질 때쯤 다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멎었던 비를 아쉬워한 나의 마음을 천사들이 들어준 것 같았다. 난 역시 날씨의 요정인 걸까? 초등학생 이후로 그렇게 많은 비를 온몸으로 맞은 건 처음이었다. 토독토독 내리던 비는 이내 곧 우다다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어깨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물방울의 무게가 어찌나 생경하던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몸에 남았다. 

▲ 무거운 빗방울이 떨어지던 산타젤로 성의 모습                                      ▲ 비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초록색, 노란색 우비




신의 한수였던 이탈리아 남부 투어 취소

▲ 아말피 코스트를 따라 만들어진 도시

로마에서 3박 4일 여정을 끝내고 이탈리아 남부의 지중해 태양 아래에서 휴양을 즐기기로 했었다. 그래서 폼페이(Pompeii)와 포지타노(Positano), 아말피(Amalfi)를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이탈리아 남부 투어를 신청했는데, 갑작스러운 버스 파업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우리는 남부 투어 버스를 타고 두 번째 에어비앤비가 있는 아말피까지 갈 예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딸로(Italo) 기차를 타고 살레르노(Salerno)에 내려 다시 페리를 타고 아말피로 가야 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포지타노이지만, 우리는 아말피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우리의 여행 기간과 포지타노 여행 성수기가 겹쳐 호텔 요금이 오를 대로 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포지타노의 숙소들은 우리가 가진 예산보다 몇 배 비싸거나, 가격이 맞는 숙소들은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포지타노에서 페리로 20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말피에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아말피는 라벨로(Ravello)와 포지타노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라벨로까지는 버스로 20분, 포지타노까지는 페리로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 라벨로는 원래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곳인데, 남부 투어가 취소되는 바람에 여행할 수 있었고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

 



행복이란, 국물 떡볶이와 2유로짜리 해바라기

이딸로 기차를 타고 살레르도 역에서 내려 다시 페리를 갈아타고 약 40분을 더 달려 아말피에 도착했다. 두 번째 에어비앤비인 엔자의 집은 아말피 해변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위치가 좋았지만, 3층짜리 건물로 계단이 많았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는 짐을 숙소까지 가져다주는 포터 서비스가 필수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신청하지 않은 내 탓이 크다. 그러나 깨끗한 숙소를 보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급하게 짐을 풀고 내가 엔자에게 처음 물어본 것은 가스 사용법이었다. 떡볶이에 죽고 못 사는 내가 한국에서 특별히 가져온 국물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였다. 내 마음대로 집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에어비앤비의 장점 아니겠는가. 매운맛의 뜨끈한 국물 떡볶이와 즉석 밥, 김으로 배를 채우고, 엔자의 취향이 담긴 앤티크 가구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듯한 장식품을 배경으로 달짝지근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향수를 달랬다. 

 

믹스커피를 마시고는 본격적으로 아말피를 구경했다. 남부는 레몬으로 유명해서 그런지 어딜 가나 노란색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말피는 포지타노보다 작았지만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작은 광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말피의 골목을 탐방하며 챙이 넓은 모자도 사고, 레몬 슬러시를 바가지 쓰기도 했다. 레몬 슬러시를 비싸게 사 먹어 살짝 언짢았던 나의 기분을 단번에 바꾼 것은 골목 꽃집에서 산 단돈 2유로짜리 해바라기였다. 15유로 레몬 슬러시에 상한 기분을 단돈 2유로짜리 해바라기로 극복할 수 있었다. 행복은 가까이에서, 그리고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다.

▲ 뼛속까지 내가 한국인임을 느끼게 했던 국물 떡볶이와 믹스커피
▲ 인생 사진 건지기에 좋은 2유로짜리 해바라기                                           ▲ 아말피의 피자 가게는 천장도 레몬으로 꾸며져 있다.

 



아말피 해변의 작은 영화관

한낮의 짧은 아말피 구경을 끝낸 뒤, 나는 또 한 번의 낮잠을 자고 일어나 동네 마실 겸 아말피 해변의 자갈밭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자갈밭을 채웠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해변에는 나와 친구 그리고 한 쌍의 커플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금방 해변을 떠나고 친구와 나만 남았다.

 

비행기에서 보려고 안 쓰는 핸드폰에 담아온 영화는 비행기가 아닌 아말피 해변에서 보았다. 삼각대를 휴대폰 거치대 삼아 높이를 맞추고, 납작복숭아를 팝콘 삼아 먹었다. 선선한 바람과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나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이 느껴져 친구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때 친구가 찍어준 사진에서는 아말피 해변의 파도 소리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던 그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역시 친구에게 사진을 많이 남겨달라고 하길 잘했다.

▲ 아말피 해변에서 열린 우리만의 작은 영화관,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바다가 보고 싶으면 훌쩍 돗자리를 들고 바다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아말피 해변에서 처럼 편안하게 누워 바다를 즐겨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정말 오랫동안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을 수 있었다. 나의 걱정거리는 12시간 떨어진 한국땅에 있어서일까? 여행을 오기 전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단순히 여행을 너머 새로운 나를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라벨로의 고양이들

남부 투어 취소의 여파로 남은 시간은 라벨로에서 보냈다. 아말피에서 버스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라벨로는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가 사랑한 도시이자,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고양이가 널브러져 있거나 자고 있고, 누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고양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살면서 까만 고양이 세 마리를 한 장소에서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길고양이에 둘러 싸여 있는 것도 신기한데, 노부부에게 음식을 얻어먹고 있는 까만 고양이 삼형제를 보는 순간 나를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길고양이 대부분은 나를 경계했다. 그런 눈빛은 내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했고, 집 없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고 온 날이면 마음이 울적했다. 

 

하지만 라벨로의 동물들에게서는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라벨로에 사는 동물들을 다 같이 키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사람, 개, 고양이 할 거 없이 모두가 이 마을의 주인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 길에 사는 강아지나 고양이들을 보면 라벨로의 고양이들이 떠오르곤 한다.

▲ 경계심 없이 사람을 따르던 검은 고양이 삼형제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나에게 낮잠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했다. 또한 쓸모없고, 우스꽝스럽고, 귀엽고, 예쁜 것들을 더 사랑하게 했으며, 내가 대자연의 일부라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하고, 때로는 낯선 나를 발견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없는 시간을 쪼개면서도 끊임없이 여행하는 이유가 아닐까.




에어비앤비 작가, 김두영

일주일에 세 번 바다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노을을 보는 것을 꿈꾸는 도시인

인스타그램 @doo.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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