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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Sep 13. 2019

요가하며 세계 여행

회사원이 아닌 길을 찾는 과정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대학생 새내기 시절부터 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치열하게 대학 시절을 보냈고, 운이 좋게 좋아하는 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재미있고 뿌듯했지만, 5년 넘게 같은 일을 했던 탓인지 어느새 나는 요령을 피우고 있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열정과 총명함이 사라진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회사에서 원하던 일을 했음에도 달콤한 현실에 서서히 매몰되고 있었다. 편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마음에 회의감과 권태로움이 자주 찾아왔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훗날 뒤돌아봤을 때 후회가 짙게 자리 잡을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것으로는 권태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2년 가까운 시간을 고민한 끝에 막연한 꿈이었던 세계 여행 카드를 꺼냈다. 회사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나중에 가려고 했던 그 세계 여행을 지금 가야 할 것 같았다. 무모해 보이는 결정이었지만 이렇게 하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평생 다닐 줄 알았던 회사를 그만뒀고, 소품 하나까지 공들여 샀던 신혼 세간살이와 전셋집을 정리한 채, 18킬로그램의 배낭과 요가 매트 하나를 들고 남편과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났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넘을지 모르는 시간 동안은 사회인의 의무와 책임 없이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했다.




요가 매트 들고 떠난 세계 여행


백수가 되어 여행을 하니 좋아하는 것만 해도 하루가 짧다. 보통 느즈막이 일어나 천천히 아침을 먹고, 요가를 한 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여행자가 많이 찾는 유명한 곳을 관광하는 것보다 현지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요가를 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렇게 11개월이 흘렀고, 어느덧 요가로 이 여행을 채워가는 나를 발견했다.


요가를 제대로 시작한 건 2년 전 여름. 거리에서 받은 요가 학원 전단지에서 파격 프로모션을 한다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1년 회원권을 지르면서부터다. 요가는 대학생 때 몇 번 해보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치부했던 운동인데, 자그마치 1년 치를 결제해버린 것이다.


걱정에도 불구하고, 작년 가을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 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내게 요가는 운동 그 이상이 됐다. 퇴근하고 요가원으로 달려가 한 시간 몸을 풀고 나면 만성적인 근육 뭉침과 뻐근함이 사라지는 건 물론, 마음속에 가득했던 화(火)가 거품처럼 사라졌다. 퇴근을 하고 요가원에서 보낸 시간 동안 많은 위로를 받았고, 사바아사나(Shava-asana, 요가 수업이 끝나고 가만히 누워서 5~10분간 몸을 식히는 동작)를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어느덧 마음속 화 거품이 녹아 없어졌다. (물론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거품이 퐁퐁 샘솟았지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질수록 요가에 더 빠져들었다. 요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은 나는 몸을 썩 잘 쓰는 편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동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요가는 어려운 동작을 잘하는 것보다, 동작을 하며 마음 작용을 조절하는 명상이자 운동이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10년 전부터 그토록 찾아 헤맨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은 것 같았다.


요가의 길을 가도 될지 시험해보기 위해 회사를 다니며 5개월 동안 주말 시간을 할애해 지도자 과정을 밟았다. 요가를 깊이 공부할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갔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요가를 가르쳤고, 또 나를 위한 수련도 열심히 했다.                                                

모스크 기도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삼아 요가를 했던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Yogyakarta)




여행지에서 요가하기


1년 이상 떠나는 장기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 배낭에 짐을 욱여넣어야 했음에도 요가 매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요가 매트를 들고 여행한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는 요가의 천국이었다. 요가 수업 비용이 한국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태국이나 발리 이외의 도시에서는 구글 지도에서 ‘yoga’를 검색하고, 가까운 거리의 요가원 웹사이트에서 수업료와 스케줄을 확인한 후 당일 수업을 들었다. 정보를 찾기 힘들었던 미얀마에서는 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적도 있다. 요가를 좋아하는 서양인들이 많은 곳이다 보니 거의 모든 곳에서 영어로 요가 수업을 진행해 큰 불편함이 없었다.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Eat, Pray, Love)> 때문인지 요가의 성지로 떠오른 발리(Bali)에서 3주 동안 요가를 했다.


여행지에서 요가를 하는 것은 여행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줬다. 현지인들과 호흡하며 가까워질 수 있고, 머리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거꾸로 보는 여행지의 매력은 배가 되었다.


문득 자발적으로 수개월간 다니는 도시마다 요가 수업을 찾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심지어 전혀 갈 생각이 없었던 인도까지 ‘요가 종주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행했다. 일주일이면 탈출하고 싶을 줄 알았지만, 한 달 넘게 있었고 또 가고 싶은 걸 보니 요가는 1년, 2년 하다 말 운동은 아니겠구나 싶다. 아마 평생까진 아니어도 꽤 오래 함께 갈 수 있겠구나. 여행을 떠나온 큰 이유 중 하나인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는 목적 중 하나의 길은 찾은 것 같았다.


요가의 발원지 인도 리시케시(Rishikesh)에 머물며 최고의 선생님을 만났다. 요가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갠지스 강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인도를 떠나 유럽으로 넘어와서는 요가를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인도에서는 5천 원도 하지 않는 요가 수업 비용이 유럽에서는 3만 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요가 수업을 한 번 들으면 하루 생활비가 사라져 버리는 금전적인이 이유도 있었지만, 요가를 계속 안 하다 보니 요가를 안 하는 관성이 생겨버려 요가 매트는 짐이 되어가고 있었다.


‘짐도 많은데 매트를 버릴까?’

‘그래. 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펼쳐보기라도 하자.’


그렇게 3개월 만에 매트 위에 앉았다. 늘 요가를 할 때 의례 들어야 할 것 같던 인도풍 노래 대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고 싶은 대로 몸을 움직였다. 5분만 하려고 했는데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파스치모타나아사나(Paschimottanasana, 다리 위로 상체를 폴더처럼 접는 자세)를 하는데 문득 돌고 돌아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울컥했다.


결국 나는 매트를 버리지 않았고, 다시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숙소는 보통 에어비앤비가 아니면 캠핑장 텐트를 이용했다. 매트를 깔 작은 공간만 있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요가 매트만큼의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숙소가 조금만 넓거나 요가를 하기에 쾌적한 환경이면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매트를 깔기에는 공간이 좁은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가 훨씬 좋았다. 에어비앤비는 가정집이라서 요가원 바닥과 비슷하고, 매트를 깔기에도 좋았다. 또한,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벽에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할 수 있었다. 비록 요가원에서 듣는 수업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세계에서 요가를 하는 것은 여행을 더 풍족하게 했다.


(좌) 료칸 다다미 방에서 요가를 하면 평온하지만 더워서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우) 은은한 조명, 매트를 깔 공간과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는 벽까지 있으면 완벽하다.


숙소에서 혼자 요가를 한 지 세 달이 넘어가니 이제 에어비앤비를 고를 때 요가를 하기에 좋은 환경인지를 먼저 보게 되었다. 요가 매트를 깔 공간이 확보되는지, 호흡하기에 좋은 창문이 있는지, 거기에 조명이 은은하면 더할 나위 없다. 특히, 유럽의 에어비앤비에는 식물을 키우는 호스트가 많았다. 덕분에 초록을 보며 매트 위에서 호흡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다.



(좌) 매트를 깔 공간만 있으면 어느 요가원도 부럽지 않았던 독일의 에어비앤비 (우) 천장의 조명 덕분에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수련할 수 있었던 오스트리아 빈의 에어비앤비




가장 나다운 로마 여행, 전차 경기장에서 요가하기


유럽에서 들었던 두 번의 요가 수업 중 하나는 에어비앤비 트립이었다. 로마는 길거리만 걸어도 유적지를 마주하는 보물창고 같은 도시다. 여자의 ‘그 날’ 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에서는 요가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수업을 찾았다. 하지만 구글에서 찾은 요가 수업들은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에어비앤비 트립 서비스가 뇌리를 스쳤다. 늘 찾던 숙소 대신 ‘yoga’를 검색하니 영어로 진행되는 요가 수업이 꽤 많았다. 심지어 고대 로마 시대에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했던 키르쿠스 막시무스(Maximus Circus)에서 하는 요가 수업도 있었다. 에어비앤비 트립 이용 방법은 숙소를 예약하는 것보다 간단했다. 또 선생님들의 이력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든 여행 스케줄을 조정하고 수업을 신청했다. 바티칸 투어가 끝나기도 전에 헐레벌떡 수업 시간에 맞춰 달려왔다. 요가 수업이 열리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와 콜로세움(Colosseo)을 마주한 팔라티노 언덕(Palatino Palatine Hill)이 보이는 곳이다. 로마에서 할 수 있는 수 백 가지의 여행 중, 이곳에서 하는 요가가 가장 나답게 로마를 여행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콜로세움 근처에 위치한 럭셔리한 아파트 1층에 있는 요가원에서 동양인 외모에 장인 포스가 물씬 풍기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 부부와 호주와 미국에서 온 여자 두 명과 함께 요가 매트를 하나씩 들고 5분 거리에 있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로 갔다. 매트를 펼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공간이었다. 어제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던 팔라티노 언덕이 앞에 보이고, 옆으로는 러닝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신기하게도 계단을 내려오니 지나가는 차 소음도 크게 들리지 않는 요가 수업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로마 전차 경기장에서 요가를 할 수 있다니! 에어비앤비 트립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선생님의 안내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요가 수업 직전에 다녀온 바티칸에서 내리 5시간을 걸으며 누적된 통증은 물론, 3개월 동안 쌓인 여독이 싹 풀어졌다. 신나게 걸으며 여행하고 요가로 풀어주는 것, 감히 마사지보다 시원한 코스라고 자부할 수 있다. 


가장 나답게 로마를 여행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말랑해진 몸을 이끌고 가뿐한 마음으로 로마 여행을 마무리했다. 에어비앤비 트립과 함께라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현지인처럼 내 취미를 즐길 수 있다. 앞으로 요가를 하며 세계를 여행하는 여정이 더 풍요로워지겠다.


한 시간의 요가 수업이 끝나고 사바아사나로 이완하는 시간은 깨고 싶지 않은 꿈만 같았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호스트를 만나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아프리카로 넘어가기 전, 터키의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열흘 이상 쉬어갈 공간이기에 어김없이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다. 유럽 여행의 여독을 풀며 아프리카로 가기 전까지 요가를 원 없이 하기 위해서 요가원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호스트가 여행을 가는 바람에 그의 친구 도움으로 체크인을 하고 집을 둘러보았다. 호스트의 취향이 집안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중 거실 한편에 요가 매트와 요가 휠(요가 도구), 요가하는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차 브랜드인 요기 티(Yogi Tea) 상자가 눈에 띄었다. 특히, 요가 휠은 웬만한 요가원에도 없는 도구로 호스트가 요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좌) 호스트의 요가 매트와 요가 휠을 사용할 수 있어 좋았던 이스탄불의 에어비앤비. (우) 요가 매트를 호시탐탐 노리던 고양이 두 마리 덕분에 더욱 행복했다.


며칠 후 호스트 아슬리(Asli)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큰 키에 늘씬한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등록한 요가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슬리는 여행에서 오자마자 저녁 수업을 두 타임이나 듣고 올 정도로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요가원에서 위치가 가까워 묵게 된 숙소인데 같은 취미를 가진 호스트를 만나게 되어 즐거웠다. 요가를 좋아하는 현지인과 한 집에 머무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의 묘미였다. 같은 요가원을 다니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에게 물었다.


“아슬리, 그 요가원에서 제일 좋은 수업은 어떤 거야?”

“가장 좋은 요가라는 건 없어. 모든 수업이 저마다의 장점이 있지. 나는 모든 수업이 좋아.”


돌아온 대답을 듣고 머쓱해짐과 동시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세계 여행을 하며 모든 건 장점이 있다고 느껴왔으면서 왜 요가 안에서 경중을 따졌을까? 그녀는 아침에 두 개의 수업을 듣고 저녁 수업을 또 갈 정도로 요가 마니아였다. 하루에 한 번 요가 수업을 들어도 녹초가 되어 피자를 먹으며 퍼져있는 나와 달리, 아슬리는 요가원에서 돌아오면 간단한 채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터키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허둥지둥 댈 때면 현지인 아슬리가 있어 마음이 편안했다. 그녀가 이어서 수업 하나를 더 듣고 올 동안 나는 숙소에 있는 요가 휠로 마저 스트레칭을 했다. 요가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나 탄산음료 생각이 간절했지만, 건강식을 먹는 그녀를 보면 차마 마실 수 없었다. 요가 마니아인 현지인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행운이었다. 에어비앤비 단독 공간에서 지냈더라면 이런 기회가 없었을 텐데, 다소 불편하더라도 개인실이 싫지 않은 이유다.


비단 요가원을 가지 않아도, 혼자 요가 수련을 하기에 좋은 숙소를 가지 않아도,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것 또한 멋진 여행임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요기 티가 두 상자나 있던 이스탄불의 에어비앤비




회사원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


매일 글을 쓰고, 달리기를 꾸준히 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이프스타일에 찬사를 보내는 이가 많다. 그를 치켜세우는 사람들에게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소설가로서의 능력과 창조력이 조금씩 높아졌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비록 소설가는 아니지만, 회사를 다니며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새로운 길을 찾고 싶어 패기 있게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났다. 문득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대처하기 위해 요가를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노력한다. 20킬로에 육박하는 배낭을 짊어지기 위한 체력과 신체의 안정을 얻는 건 덤이다.


스리랑카 시기리야락(Sigiriya Rock)의 경치를 만끽했던 시간
발리 우붓(Ubud)의 분위기가 제대로 담긴 요가원. 한국에 한국스러운 요가를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책임져야 할 아이도 없었기에 가볍게 떠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떠나온 여행이다. 5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고, 신혼을 즐겼던 전셋집도 정리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분간 집 없이 부모님 집에 얹혀살 것이다. 친구들의 승진 소식이나 ‘누가 어디에 집을 샀는데 얼마가 올랐다더라’라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 여행의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창 돈을 벌고 모을 시기에 소득 없이 소비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않다. 오히려 금수저였다면 취미로 마음 편히 회사를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안주하던 현실을 박차고 세계 여행을 떠난 이유는 파워포인트 장표를 더 잘 만들고, 상사 눈치를 잘 보는 대신, 진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더 늦기 전에 찾기 위함이다.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할 무게가 늘었지만 의무는 줄었다. 꼭 해야 할 것들 대신 마음 가는 것들로 채우니 요가가 남았다.


여행을 할수록 에어비앤비 숙소와 트립을 이용하며 요가를 새로운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아직 한국에 돌아갈 날은 멀었지만, 돌아간다면 내가 여행하며 느낀 감정을 다른 여행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한국에서 요가를 하며 온전히 느낀 여행의 행복’을 주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고 싶다. 로마 전차 경기장에서 요가를 하며 느꼈던 행복을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터키에서 만난 아슬리처럼 요가를 좋아하는 게스트가 내 공간에 들어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왕이면 한국스러운 공간이면 더 좋겠다. 마당이 있는 한옥에서 함께 요가를 하는 꿈, 상상만해도 행복하다. 오늘도 한국을 떠나오며 찾고 싶었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에어비앤비 작가, 곽새미

회사에서 얻은 스트레스와 근육통을 풀다가 요가에 빠졌다. 강사 자격증은 있지만, 요가를 좋아하는 일반인에 가깝다.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요가 매트 들고 11개월째 세계 여행 중이다.


인스타그램_@mang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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