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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Sep 23. 2019

나 홀로 노르웨이, 크리스마스 파티부터 오로라 헌팅까지

혼행 10년차, 노르웨이에서 현지인들과 함께한 여행



[Prologue] 혼자 여행하면 재미있어요?


혼행자(혼자 여행하는 사람)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지 않아요?”이다. 혼자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한두 시간이고, 혼자서 밥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2주 넘게 혼자서, 그것도 좋은 풍경들이 많은 외국에 있으면 외로울 것 같다고들 말한다. 삶도 그러하지만 여행에는 짜인 각본도 대본도 없다. 나의 여행 이야기에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건들이 많다. 물론 여행에서 얻고 싶은 최소한의 목표와 굵지막한 동선 정도는 머릿속에 그려 두는 편이다. 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코 계획대로 지켜지는 여행은 없다. 설령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하더라도 계획이 지켜진 여행보다는 뜻밖의 선택에서 더 큰 재미를 본다는 게 여행의 진짜 묘미다. 10년 동안 매해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이유는 남들과는 다르고 예측이 불가능한 나만의 스토리가 생기는 게 좋아서였다.


혼자 갔던 많은 여행지들 중에서 뜻밖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의 연속이었던 노르웨이는 4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도 여전히 설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들,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과 함께 한 오로라 헌팅부터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특별한 나만의 여행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당시 이 여행에서 나의 최소한의 목표는 첫째, 오로라를 실컷 본다, 둘째, 노르웨이 연어를 현지에서 먹어 본다, 셋째, 노르웨이 국민작가 크누트 함순의 책을 읽는다,였다. 동선은 수도 오슬로와 최북단 도시 트롬쇠였다.



[Episode #1] 현지인과 함께 하는 첫 크리스마스 파티


밤이 긴 노르웨이의 겨울엔 현지인이 집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스트가 있는 집을 예약했다. 도심부에 있는 숙소였는데, 겨울 옷의 부피 탓에 큰 캐리어를 끌고 트램으로 이동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5층에 위치한 숙소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큰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였고,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다. 문이 열리자 호스트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집안 가득 베어 나오는 돼지고기와 소시지 냄새에 긴장이 풀리고 시장기가 느껴졌다. 주방을 거쳐 빈 방을 안내해 주는데, 양상추를 씻고 있는 호스트의 베스트 프렌드가 인사를 건넸다.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하여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니, 올해 첫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가 한창이라 일러주었다. 특별히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말에 선뜻 수락하자, 소시지를 마저 구워달라며 팬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 그 해 첫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되었다.


▲ 파티가 열렸던 호스트 집 거실

 
굽다 보니 가스레인지 밑에 있는 오븐에서 꾸물꾸물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심상찮았다. 연기를 감지한 호스트와 친구는 파티에서 먹을 돼지고기 메인 요리라며 절대로 망쳐서는 안 된다고, 우왕좌왕했다. 오븐 작동을 멈추고 도어를 열었을 땐 엄청난 연기가 주방을 가득 메웠다. 급하게 주방 창문을 열고 거실 창문까지 열어 두었다. 셋이서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연기가 걷힌 오븐에서 돼지고기를 꺼내었는데, 다행히도 통돼지 삼겹살의 겉살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익어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고기를 한 번 뒤집어 오븐에 조금 더 익히기로 했다. 약불에 올려두었던 소시지는 난리통에 다 구워졌고, 야채샐러드와 먹기 좋게 썰어 놓은 빵, 치즈, 케이크가 테이블에 놓였다.


▲ 소시지를 굽고, 오븐에 연기가 나던 주방

첫 번째 초인종이 울렸다. 와인을 한 손에 들고 등장한 친구는 털모자를 벗고 내게도 악수를 청했다. 두 번째 초인종이 울리고, 그다음에도 울리고, 그렇게 파티 참석한 사람들은 8명 정도 되었다. 알고 보니 나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던 호스트의 베스트 프렌드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호스트가 크로스핏을 가르치는 클래스의 회원들이었다. 회원들은 자신의 남자 친구나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색해하지 않았다.


나에게 관심을 보인 토마스는 자신을 ‘로터리 맨’이라고 소개했다. 매주 한 번씩 방송에서 복권 번호를 추첨하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토요일마다 로또 번호를 추첨하는 방송을 하는 것이다. 대체 이 친구(나)는 어디에서 만나서 데리고 왔냐며 호스트에게 묻더니, 자기도 이런 멋진 인연을 만날 수 있게 에어비앤비를 해야겠다고 환호를 질렀다. 토마스가 “왜 노르웨이에 관심이 생겼어?”라고 묻자, 시장했던 나는 ‘연어’를 외쳤다. 예상 밖의 답이었는지 내 대답을 듣고는 한참 뒤에 깔깔 거리며, “우리는 연어를 잘 먹지 않아”라고 말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저렴한 인력을 고용해 해상에서 연어를 잡고, 잡은 연어들을 즉각 해로를 따라 세계 각지로 수출되어 정작 노르웨이에서는 수출 뒤에 안 팔리는 상품을 들여오기 때문에 짜게 가공해서 먹거나 질이 좋지 않아 먹지 않게 된다고 했다. 당시 연어에 빠져 일주일에 다섯 날은 연어를 먹던 나는, 연어가 수출되는 본고장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연어를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놀랐었다.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단출한 세 가지 목표 중 하나를 마음속에서 고이 접게 되었다.


▲ 그래도 굳이 연어를 먹었다. 노르웨이에서는 고래고기 스시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레스토랑에서 알게 되었는데, 맛은... 고래의 이색적인 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연어’는 농담이고, 최초로 노르웨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노르웨이의 복지 정책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넌 세금을 그렇게 많이 내는데 국가에 불만이 없어?”라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장난기 많던 토마스의 얼굴에는 갑자기 굳건한 결의 같은 것이 엿보였는데, “나는 국가를 믿어”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자신이 젊고 세금을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에 낼 수 있고, 국가는 그 세금으로 지금 돈을 벌기 힘들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늙거나 다쳐 곤경에 처했을 때 국가는 반드시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강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국가 정책이 유효하다는 것과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건 지표 상으로 충분히 보았지만, 진심으로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한 명의 국민으로부터 듣는다는 건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옆에 있는 사람조차 ‘믿는다’라고 입밖에 낼 수 없는 요즘 세상에, ‘국가를 믿는다’라고 확신에 차 말하는 토마스를 보며 국가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자동차 업계에서 수소자동차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 한국과 일본에 자주 출장을 간다고 했다. “건배?”라고 말하며 와인잔을 부딪쳐 오던 친구는 “원샷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농담을 던졌다. 자신이 볼 때 한국과 일본은 정말 다른데, 일본은 예의가 바르고 칼 같아서 일적으로는 좋지만 속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에 비해 정이 많아 술자리에 초대받곤 하는데, 원샷 문화가 익숙지 않지만 사람들이 솔직한 편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가 일본이랑 비슷하고 노르웨이가 한국이랑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 말 한마디로 내가 마치 노르웨이 이웃사촌이라도 된 것 마냥 동질감이 생겨났다. 


화제가 떨어지거나 할 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음식이 있는 테이블로 가 음식을 접시에 덜었다. 모두가 사교적인 파티에 노련해 보였다.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데에 능숙하기도 했지만, 노르웨이는 이방인에게 매우 개방적인 나라였다. 처음 만난, 생김새도 아예 다른 나에게 환대해 준 것도 그 이유겠지만, 그날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절반이 이민자들이었다. 호스트도 미국 출생인데 작년에 이민하여 크로스핏 강사로 살고 있었고, 러시아에서 5년 전에 이민하여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노르웨이 토박이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민자 혹은 여행자와 자신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주제도, 말속에 묻어나는 생각도, 차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르웨이 여행이 재미있었던 건 혼자였던 내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받아들여주는 노르웨이의 개방적인 마인드가 주요한 요인이었다.



[Episode #2] 오로라, 죽은 자들이 건너는 강


트롬쇠(Tromsø)로 가는 비행기는 국적기인 SAS항공을 이용했다. 대부분이 노르웨이 사람들이 탑승을 했는데, 놀라웠던 건 고 연령층도 모두가 탑승권을 별도로 출력하지 않고 모바일 QR코드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고연령층의 IT교육에 힘쓰고 있지만, 2015년 당시에 내가 공항에서 본 모든 사람들이 QR코드를 자연스럽게 이용한다는 건 꽤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혼자서만 종이 티켓을 들고 비행기를 탑승해, 1시간이 걸려 트롬쇠에 도착했다.


트롬쇠의 주경. (어두우니까 야경이라 해야 하나?) 오후 4시지만 새벽 같은 어둠.

 

오로라를 보는 투어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 곳에 머무르면서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상상태와 지인들의 정보통을 참고하여 오로라가 나타날 만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찾는 것이다. 후자를 ‘오로라 헌팅’이라 하였는데, 트롬쇠 곳곳의 풍경을 보고 싶어 오로라 헌팅을 택했다. 당시에는 에어비앤비의 트립 플랫폼이 출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오로라 투어 예약 사이트를 이용했다.

 

정원은 7~8명이었고, 오후 6시경에 만나 벤을 타고 이동하였다. 혼자서 여행을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조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영국에서 온 커플, 어머니를 모시고 온 중국인 여자, 사진에 관심 있는 친구 두 명이었다. 

 

차로 5분 달리다 보면 한 채, 5분 달리다 보면 또 한 채, 듬성듬성 보이는 집들은 외부 등을 환히 밝히고 있다. 문을 두드리면 벽난로의 화롯불로 훈훈한 집 내부 공기가 먼저 마중 나와 언 코를 녹여줄 것만 같았다. 사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잦아들었고, 더 이상 인위적인 불빛에 우리의 시각이 방해받지 않는 곳에 도착했다. 마지막 불빛인 자동차 헤드라이터를 껐을 때, 우리를 압도한 것은 거대한 밤하늘이었다. 아, 짧은 탄성과 함께 긴 입김이 하얗게 밤하늘을 향해 뻗었다. 암흑과 같아 무서울 법했지만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었고, 숲에서는 얼어붙은 눈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 모닥불을 둘러싸고 기다리다 나타난 오로라. 모닥불로 온몸을 덥힐 순 없다. 추위가 온몸을 지배하지 않게 막아주는 임시방편일 뿐.

이곳저곳 이동한 끝에 한 곳에 잠깐 머무르면서 오로라를 기다리기로 했다. 친구들과 모닥불에 둘러앉아 에너지 수프를 보온병에서 따라 마시며 몸을 덥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급속도로 식어갔으나, 식을 때마다 매운 연기를 뿜어대는 모닥불 근처를 서성이며 기침을 해댔다. 그러는 동안 한쪽에서 소시지가 구워지고 있었다. 다 구워진 소시지를 반으로 잘라낸 긴 빵에 끼워 넣어 우걱우걱 맛있게도 먹었다. 오로라가 나타날 듯한 희미한 초록 불빛이 조금이라도 나타나기 시작하면, 모두가 먹다 말고 저 멀리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젖히고 기웃거렸다. 진하게 나타나지 않고 이내 사라지면, 아쉬워하면서 다음 차례의 오로라를 기다렸다. 모두들 다음 오로라가 나타날 새라 괜히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재정비하곤 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건 오로라였지만,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뜻밖에 찾아온 별똥별이 보이면 그것마저도 기쁨이 되었다. 별똥별은 소원을 빌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지나갔는데, 별똥별이 지나간 자리를 눈짓으로 그리며 드는 생각은 온통 “행복하게 해 주세요”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건데? 무엇을 가지면 행복한 건데? 스스로 되물어 볼 수는 있었지만, 그냥, “행복한 거요”라는 단순한 대답만이 별똥별이 사라진 뒤꽁무니에 간신히 매달려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오로라헌터s의 오로라와 함께하는 단체샷

 

기대했던 오로라는 과연 웅장했다. 다채로운 색채와 몸놀림이 한껏 매력적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처럼 흔들렸고 시간이 흐르자 조금 더 강하고 붉게 빛이 났다. 때때로 그것은 짧게 머무르기도 했고, 오래 머무르기도 했다. 저 멀리 보였던가 하면 어느새 정수리 위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넘실거렸다. 마치 죽은 자들의 영혼이 요단강을 건너는 행렬처럼 보였는데,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옛날 사람들은 오로라를 죽은 사람들이 건너는 강이라고 여겼다고 했다. 


▲ 오로라를 향한 손짓!
▲ 오로라헌터s. 광각렌즈를 휴대폰 카메라에 장착하고, 모닥불의 빛을 이용해 외국인 친구들과 한 컷. 오로라를 기다리는 중.

 

숙소로 돌아온 자정 즈음 와이파이를 연결해 인터넷을 보니 온통 “파리 테러(2015년 11월 13일)”로 떠들썩했다. 그날 본 오로라가 그토록 긴 가락으로 한참을 하늘에서 춤을 추었던 건 마치 파리 테러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에게 표하는 조의처럼 느껴졌다. 무고한 죽음에 가슴이 아팠고, 한편으로는 오로라를 만난 것을 포함한 모든 기다림의 순간들 조차 아주 큰 축복으로 다가와 삶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pisode #3] 브런치 카페 바리스타의 특별한 카푸치노


현지인처럼 매일 가는 단골 카페를 만들고 싶어 트롬쇠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브런치를 먹으러 갔던 곳이 있었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첫 해외여행에서 좋아하게 된 디자이너 Tom Dixon의 디자인 제품들로 꾸며놓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창의적인 미적 균형으로 재료의 특수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살린 제품이 많다. 당시 혼행은 처음이라 꽤나 타이트한 스케줄로 관광을 했는데, 딱 하루 동안 계획된 스케줄을 포기하고 여행에서 만난 언니를 따라 런던의 Tom Dixon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게 여태 기억에 남는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남들이 좋다 하는 곳을 방문하는 관광형 여행이 아니라 나만의 여행을 하기 위해선 타이트한 계획은 버리고 나의 콘셉트를 잡는 게 중요하다는 걸. 여행의 초심을 상기시켜주는 이 카페에는 키가 족히 2m는 되어 보이는 턱수염이 덥수룩한 바리스타가 일을 하고 있었고, 브런치를 아주 진중하게 고민하는 내게 먹고 싶은 재료를 말하면 알아서 메뉴를 만들어 주곤 했다.


▲ 트롬쇠의 애정하는 카페에서 즐기는 데일리 브런치와 크누트 함순의 '땅의 혜택'.
▲ 첫 해외여행의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Tom Dixon 제품으로 꾸며진 카페 내부

 

세 번째로 카페를 방문하던 날 조금은 익숙하게 점원들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고, 점원들도 나를 기억하는 듯이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날은 눈이 세차게 와 카페에서 바깥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를 다 먹고 카푸치노 한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눈이 오는 날엔 우유 거품이 눈처럼 쌓인 카푸치노가 먹고 싶다.


한참 책을 읽고 있는데 바리스타가 카푸치노를 테이블에 놓고 갔다. 크누트 함순의 ‘땅의 혜택’의 1부를 다 읽고 있던 중이었다. 주인공 이사크는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자 집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지난 두 해동안 척박한 추운 땅을 열심히 개간한 대가로 마련한 새 농장에 대한 감회를 되짚으며 걷고 있던 차였다. 집에 도착하자 부인인 잉에르가 "커피 줄까요? 라 물어보았다. 타이밍 좋게 커피를 내어온 소설의 문장을 읽고서는 바리스타가 가져다준 커피가 식을 새라 라테를 한 모금하려던 차, 카페 아트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눈이 와 조금은 특별한 것 없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푸치노의 카페 아트 하나로 그 하루는 생에 잊지 못할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 세 번째 방문에 바리스타가 그려준 나. 민둥머리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던 후문.


 민머리에 두드러진 특색이 그려져 있진 않았지만, 분명하게 나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입가에 띤 미소였다. 늘 수줍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나 보다. 환하게 웃으며 바리스타 쪽을 바라보니 나를 그린 거라며 손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예의 바르게도 목례를 하고(목례를 감사의 의미로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대니 바리스타는 은근히 뿌듯했던가보다. 트롬쇠에서 마지막 날도 어김없이 카페를 찾아갔고, 아쉬운 마음에 셀카를 찍고 있으니, 또 그 모습을 그려주었다.

▲ 네 번째 방문에 바리스타가 그려준 셀카를 찍는 나. 네모난 건 휴대폰이라는 사실.

무료할 수 있었던 내 하루를 선물로 만들어 준 바리스타의 호의는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특별한 호의를 베풀 때에 참고가 된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통해 나의 측근들에게, 또는 나를 마주친 누군가에게 계속 나누어지고 있다.



[Episode #4]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노래 미아 Feat. 아이유)


노르웨이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인터넷 보급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로밍을 따로 하거나 해외 USIM을 구비하지 않고 여행을 했다. 숙소에 있는 무료 Wi-Fi는 끊김 없이 훌륭하게 연결되었고, 숙소를 이동하게 될 때에만 가는 길을 유념하면 되었다.


오슬로 공항 근처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고 버스로 이동하던 중 호스트가 안내한 역 이름이 들리는 것 같아 내렸는데, 어림잡아 10 정거장은 먼저 내린 것 같았다. 오후 9시라 아득한 밤과 같았고(11월의 노르웨이는 일몰 시각이 오후 2시 30분이다), 공항 근처는 도심 같지 않아 집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가로등도 서울만큼 많지도, 밝지도 않았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드물었는데, 집 사이 거리가 멀다 보니 인적도 드물었다. 어느 집에 불쑥 문 두드리고 찾아가 부탁해야 할 신세였다. Wi-Fi라도 잡힐까 싶어 우왕좌왕 한참을 배회했다.

어느 집의 마당 차고지였다. 공항 근처 집들은 마당과 차고지가 있는 독채였는데, 집주인의 소유지인 줄도 모르고 주차 공간에 멀뚱히 서 있었던 걸, 마침 주차하러 들어온 집주인과 마주쳤다. 큰 캐리어를 들고 방황하는 여행자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선뜻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지금은 버스 배차 간격이 길고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고, 자신도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웃에게 인사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감옥 같은 철기둥으로 분리된 차의 뒷 공간에는 사냥개가 타고 있었다. 자신의 동반자라 소개하며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사나워 보이는 개가 더 무서울 수도 있었겠으나 오히려 태워다 준다는 사람이 안전하다는 보증인과 같은 기분이 들어 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 접대냥의 아련한 시선 (심쿵). 지켜보고 있다냥. 허튼짓 말라냥.

 10분 정도 지나 도착하게 된 에어비앤비 숙소에 호스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관을 나왔다. 길을 잃은 것 같아 데려다주었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는 그제야 경계를 푸는 표정이 되었다. 호스트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 중 한 마리는 현관에 나와 나를 맞이해 주었고, 접대냥의 환대에 긴장이 풀려 안도가 되었다.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함께 소파에 앉은 나와 호스트는 같이 TV를 보았다. 노르웨이어라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호스트와 함께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가족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집의 조명이 밝지 않아 안정적인 기분이 든다고 했더니, 호스트가 본인도 집에서 가장 마음이 드는 부분이 조명이라고 했다. 호스트는 금융권에서 오랫동안 화이트칼라로 일을 했는데, 불빛이 밝은 사무실에서 장시간 일을 하다 보니 두통이 심하게 오고 불안한 증세가 생겼다고 했다. 승진할 수 있었지만 일찍이 은퇴를 하고 지금은 도시락을 만들어서 소소하게 배달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데,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조명을 항상 밝지 않게 쓴다고 했다. 은은한 조명이 겨울밤 집안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재 직업은 마음에 드냐는 호스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길을 잃었다”라고 답을 했다.


▲ 은은한 조명이 비치던 아늑했던 호스트 집 거실. 호스트와 함께 뭘 하면서 살아갈지 이야기했던 곳.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생각지 못한 업무와 관계적 갈등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돈을 버는 일은 하고 싶은 일과 늘 항상관계에 있지 않다는 걸 절감하던 나날들이었다. 호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 시도해!”라고 했다. 식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호스트는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어울리는 식재료를 탐구했고, 이제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동네에 사는 단 몇 명의 고객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드는데, 꽤 보람차고 행복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으니 대단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그냥 해 보자고 다독여 주던 호스트. 다른 나라에서 친언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다. 꼭, 한국에 돌아가면, 글을 조금이라도 써 봐야지, 라는 설레는 꿈을 안고서.


▲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선택해야 한다. 현상유지를 하든지, 변하든지. 호스트의 집 냉장고에 붙어 있던 포스트.



[Epilogue] 예측 불가능한 여행의 즐거움


혼자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건 10년 전부터다. 인터넷에 떠도는 평범한 해외 관광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여행 스토리를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여행은 안정감 있고 외롭지 않아 좋겠지만, 나 자신의 견해만으로 오롯이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적었다. 게다가 가족, 학교, 회사와 같은 공동체 속에서 기대되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보면 개성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개성을 잃어버린 통제된 사회를 벗어나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스스로를 찾고 싶을 때 혼자서 외국으로 떠난다. 외롭고 싶어서 떠난 여행에서는 오히려 현실의 소중함을 깨닫고 돌아온다. 내가 얼마나 그동안 주변 인물들을 사랑했는지, 그간 잊고 있었지만 소중했던 꿈은 무엇인지.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는 또다시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꿈과 계획을 안고 온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삶에서 계속되고 모든 일련의 순간들이 즐겁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여행을 하다가, 그게 지치면 혼자 여행을 떠나 그 순간들을 즐긴다.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걸 열망하고, 새로운 곳에서 익숙한 걸 그리워하면서 나는 예측 불가능한 삶을 여행한다. 


▲ 비하인드 : 사미텐트 앞에서 한 컷


[Tip] 오로라 여행을 위한 준비사항

 계획이 없다고 하여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전달드리는 오로라 여행 시 준비사항 꿀팁!


0. 시기

 -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시기: 9월 중순 ~ 4월

 - 최대치의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높은 시기: 1월~2월. 2015년 당시에 오로라 기상 정보를 봤을 때 기준입니다. 보통 밤이 가장 길고 가장 추울 때 더 잘 볼 수 있다고는 합니다.

 - 제가 여행 간 시기: 11월 중순. 11월도 추운데 1~2월은 상상을 초월하도록 견디기가 벅찬 날씨라 들어 11월을 택했습니다. 게다가 1~2월은 회사 업무가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1. 준비물

- 껴입을 수 있는 여러 벌의 옷: 새벽 오랜 시간 야외에서 오로라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한기가 몸에 침투하는 걸 막는 게 가장 중요! 나시, 히트텍, 얇은 목폴라, 패딩조끼, 두꺼운 니트 목폴라, 방한 패딩의 순으로 입었음.

- 방한 부츠, 귀도리, 방한모자, 방한 마스크: 피부가 직접적으로 추위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

- 핫팩: 주머니용, 신발용, 초대형, 손바닥용 등 다양하게. 많이 챙겨가도 남지 않아요. 저는 8개는 가져가서 터뜨렸어요. 초대형(군용)이 특히 노르웨이 추위에 대적할만하더라고요.

- 보온병과 핫초코: 투어를 가면 호스트가 보통 챙겨 오지만 추위를 많이 타시는 분이라면 개인용이 필요할지도.

- 여유로운 스케줄: 하루~이틀만 오로라를 보는 일정이면 보지 못 했을 때 다른 일정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트롬쇠만의 여유로운 매력을 느끼면서 조바심 나지 않는 일정은 어떨까요? 저는 트롬쇠에서만 일주일을 머물렀습니다.

- 삼각대와 손전등: 사진을 직접 찍을 분이라면 DSLR을 고정할 삼각대는 필수이며 노출 시간을 길게 가지고 손전등 빛으로 피사체를 비춰줄 것이기 때문에 손전등이 필요합니다. 휴대폰은 너무 추워 전원이 잘 나가기 때문에 손전등 추천합니다.


2. 오로라 기상 정보 

- 제가 갔을 때는 단순한 날씨 확인용 앱/웹만 있었는데, 올해 출시된 ‘My Aurora Forecast & Alerts’ 앱이 괜찮더군요. (애플리케이션 기획자의 직업병) 나의 현재 위치 기준으로 오로라가 나타나는 방향과 위치를 볼 수 있고, 오로라가 나타났을 때 알람을 주는 것 같아요. 위치는 사용자 임의 지정이 가능합니다. 메인화면 최상단에는 현재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을 보여줍니다. ‘Forecasts’ 메뉴에 가시면 5 단위, 다음 시간의 10분 단위로 오로라 강도와 확률을 볼 수 있고, 구름 정보도 시간 단위로 보여줍니다. (오로라를 볼 때 중요한 건 강도뿐만 아니라 구름 유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로라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구름이 있으면 볼 수 없습니다.) 일 단위로도 오로라 강도를 8 레벨로 나누어 예측을 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Tours’라는 메뉴를 통해 오로라를 주로 볼 수 있는 캐나다/노르웨이/아이슬란드 국가별로 투어 예약을 할 수도 있네요.  




에어비앤비 작가, 김혜진

혼행 10년 차. 고전소설을 읽고 여행지 테마를 선별했고, 주로 유럽을 다녔습니다. 

향후 3년 동안은 북유럽 마스터되기, 미식과 와인 테마 기행 하기를 목적으로 유럽을 몇 번 더 갈 예정입니다.

사적인 직업은 ‘글 쓰는 여행가’이지만, 공식적으로는 통신사에서 아이돌 공연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기획합니다.


인스타그램_@eyecon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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