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여행을 통해 발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다.
결혼을 앞두고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집과 신혼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신혼여행지는 부부로서의 첫 여행지이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여행지 선택에 고민이 많았다.
많은 결혼 선배들이 신혼여행지는 무조건 쉬는 곳으로 택해야 한다면서 리조트를 추천했지만, 우리는 판에 박힌 신혼여행지보다 둘이 계획을 짜서 여행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게다가 우리는 둘 다 여행을 좋아해서 이미 가본 곳도 많았기에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색다른 곳으로 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세계 지도를 들여다보며, 여기 갈까 저기 갈까, 여러 날을 궁리한 끝에 다양한 후보지들 중에서 한 군데를 골랐다. 우리가 최종 선택한 곳은 이탈리아 남쪽 끝의 섬, 시칠리아. 이탈리아 지도에서 장화 앞 굽에 해당하는 칼라브리아(Calabria)와 맞닿아 있는 꽤 큰 섬이다.
우리가 신혼여행지를 시칠리아로 정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워낙 주변에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의 많은 다른 대도시를 이미 가본 내가 아직 방문해보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둘 다 가보지 않은 미지의 도시를 택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광인 우리들에게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단연 영화다.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영화 <대부>와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바로 시칠리아인 것. 우리는 여행 전부터 들떠서 영화 촬영지에 가보자는 계획을 짰고, 영화를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베이스캠프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Palermo)와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카타니아(Catania)로 정했다. 팔레르모에 머물면서는 섬의 내륙과 팔레르모 양쪽에 있는 도시를, 카타니아에서는 카타니아 위쪽의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여러 곳에 옮겨 다니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면 짐을 풀고 싸고를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크게 두 군데로 정했다.
여행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신랑의 고등학교 사진반 이름이 ‘시실리’였다고 한다. 어쩌면 시칠리아를 가게 된 것은 무의식의 작용도 한몫했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시칠리아로 떠났다. 달콤한 허니문이었다.
종종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집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집에 돌아온 순간, 우리 몸이 회사나 학교에서, 또 다른 이와 만나면서 느꼈던 피로와 긴장은 스르륵 녹아내리고,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이다. 비로소 내가 마음 편히 쉴 곳에 왔다는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하물며 매일매일이 모험인 여행에서야!
여행을 할 때 숙소는 매우 중요하다. 숙소가 편하지 않으면 여행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여행 기간이 길수록 그 고민은 더하다. 숙소를 고를 때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집 전체를 사용할 수 있을 것. 평소라면 도미토리도 상관없지만, 신혼여행인지라 우리만의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을 쓰면 아무래도 그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들을 배려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둘만 오붓하게 보내면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둘째, 관광지로 이동하기에 너무 멀지 않을 것. 우리는 차를 렌트했지만, 그건 다른 도시로 갈 때 사용할 계획이었고, 도심 중심에서는 걸어 다니거나 차로 가도 너무 멀지 않은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셋째,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을 것! 너무 비싸고 화려한 숙소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집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곳을 원했다.
에어비앤비 덕분에 우리는 집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머나먼 타국에서도 매일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몸을 씻고, 노곤해진 몸을 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커다란 위안이었고 안식이었다. 그리고 그 안식은 다음 날 여행을 위한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첫 번째 베이스캠프는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였다. 하지만 도시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 지저분했다. 난장판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도시여서 그런지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가득했고, 거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나중에 들으니, 신랑은 ‘아, 내가 신혼 여행지를 잘못 골랐구나. 그냥 취소하고 돌아갈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충격은 주차장에서였다. 팔레르모의 호스트 마뉴엘라(Manuela)에게 들은 공영주차장의 주소지를 찾아갔는데, 주차장이 아니라 자동차 중고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들이 너무 바짝바짝 붙어 있었다. 나로선 도저히 못 할 주차 솜씨였다. 너무 놀라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쉬울 정도다.
시칠리아에 오기 전, 나는 세계에서 제일 운전을 잘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해보니, 세계 최고의 베스트 드라이버는 단연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팔레르모 시내의 도로에는 차선이 없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들은 구불구불하고 좁다. 또 보행자들은 제대로 신호를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길을 건넌다. 하지만 사고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이들에게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차선을 변경하려고 하거나 끼어들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면 양보를 해준다. 또, 좁아서 결코 주차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도 그들은 귀신같이 주차를 해낸다. 그러면서도 차에 흠집 하나 내지 않는다.
처음엔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던 팔레르모도 며칠 다니다 보니, 무질서하게 보이는 겉모습 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저분하고,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들은 이들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베이스캠프인 카타니아는 상당히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팔레르모를 먼저 보았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카타니아에 들어선 우리가 받은 첫인상은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카타니아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인 디에고(Diego)는 도시가 보여주는 인상만큼이나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다. 우리가 올 것을 대비해, 지도에 레스토랑과 마트의 위치 등을 표시해 놓았고, 레스토랑의 명함들도 준비해두고 있었다. 막 도착한 우리에게 자기가 아는 모든 지식을 전달하려는 듯, 디에고는 근처의 마트와 맛있는 레스토랑, 가볼만한 곳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팔레르모의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마뉴엘라가 자유분방하고 제약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디에고에게는 꼼꼼한 나름의 규칙들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 도시를 닮는다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도시도 그러하다. 팔레르모는 팔레르모의 매력이 있고, 카타니아는 카타니아의 매력이 있다. 팔레르모는 처음에는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지내면서 보니 자유롭고 활기가 넘쳤다. 반면에 카타니아는 깨끗하면서 절도가 있다.
시칠리아는 ‘하느님의 부엌’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먹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시칠리아에 가면 꼭 먹어야 할 먹거리는 대략 25가지가 된다고 하는데, 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먹어본 것들은 모두 굉장히 맛있었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놀리(Cannoli)와 아란치니(Arancini)다. 카놀리는 ‘작은 파이프’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과자의 모양이 둥근 파이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둥근 파이프 안쪽은 다양한 크림으로 채운다. 너무 달아서 카놀리와 깊게 친해질 수는 없었지만 빵과 과자를 좋아하는 신랑은 맛있다고 하면서 장소가 바뀔 때마다 사 먹었다.
아란치니는 밥에 다양한 것들을 섞어 동그랗게 만든 후, 빵가루를 입혀 튀긴 음식이다. 이탈리아 성인인 ‘성 루시아(St. Lucia)’를 기념하는 축제날 먹었던 음식이라고 한다. 카놀리와 달리 달지 않아서 좋았고, 밥으로 만들어져서 식사대용으로도 가능하다. 가게마다 맛이 달라서 종종 사 먹었는데, 노르망디 성 앞에 있는 가게에서 사 먹은 아란치니가 제일 맛있었다.
젤라토도 빼놓을 수 없다. 시칠리아의 젤라토는 우리나라의 아이스크림과 달리 먹고 나서도 입에 남는 단맛이 없고 담백하다. 마트에서 파는 젤라토는 1유로도 안 됐는데, 젤라토의 천국답게 그것도 매우 담백하고 맛이 있었다. 컵이나 콘에 먹는 젤라토 말고 접시에 떠주는 젤라토, 빵 사이에 끼워 먹는 젤라토도 있었는데, 빵 사이에 끼워 먹는 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는 1일 1 젤라토를 외치면서 매일 젤라토를 사 먹었다. 천연재료로 만든 시칠리아의 젤라토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섬인 시칠리아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아무 생각 없이 우연히 들어갔던 한 카페테리아에서 먹은 한치 튀김인 칼라마리(Calamari)의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칼라마리였는데, 금방 튀겨서 그랬는지 매우 고소하고 바삭했다. 무더운 한 낮, 맥주 안주로 딱이었다! 지금도 그때 먹은 칼라마리가 가끔씩 생각난다.
시라쿠사(Siracusa) 옆의 오르티지아(Ortigia) 섬에 갔을 때다. 우리는 해안가 레스토랑에서 칼라마리를 시켰는데, 전에 먹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칼라마리였다. 독특한 불 향이 났고,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다.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칼라마리를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신랑은 운전 때문에 음료수를 마셔야 했지만) 우리 여행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디에고가 알려준 카타니아의 한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서빙을 하는 스태프의 매너였다. 자기 일에 대한 긍지가 있었고, 전문가로서의 매너와 태도로 손님들에게 깍듯하고 예의 있게 대했다. 잠깐 하는 알바가 아니라 서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계속 그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이 분을 보면서, 이 나라에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직업에 대한 편견 없이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여행을 할 때 나는 시장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현지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면, 관광지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날 것’의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관광지에서는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을 보게 되지만, 시장에서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생선을 사러 나온 아주머니, 꽃을 사러 온 남자, 손주의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 자두를 사며 슬쩍 몇 개를 더 집어넣는 아저씨,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시장 노점상에게 내장 버거를 사 먹는 남자들. 이 모든 것들은 시장이 아니면 보기 힘든 시칠리아의 생생한 풍경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한두 번 먹으면 질리기 마련. (애주가들에게 질리지 않는 것은 오로지 술뿐이다) 계속 사 먹는 이탈리아 음식이 지겨워질 때쯤, 신랑은 가져온 고추장 튜브를 풀어서 오징어찌개를 만들어 주었다. 수산시장에서 바로 사온 신선한 오징어였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질 때, 직접 원하는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에어비앤비라서 가능했다.
나와 같은 이유로, 신랑도 시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호텔보다 에어비앤비를 더 선호한다는 말도 했다. 게다가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언제든지 ‘내 맘대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신랑이 만들어준 오징어찌개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시칠리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풍경 중 하나는 결혼식이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결혼식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우리는 성당에 들어가 결혼식을 구경하곤 했다. 그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결혼식은 왜소증인 신부와 비장애인 신랑의 결혼식이었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 그들은 서로를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이 와서 그들을 축하해주었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축하하고, 축복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유럽에서는 신랑 신부가 결혼식이 끝나고 행진을 할 때, 축복의 의미로 쌀을 던진다. 그날, 이 부부에게도 친구들은 쌀을 던져 축복을 해주었다. 꽃비처럼 내리는 쌀의 축복으로 그들의 결혼 생활이 지금처럼 행복하기를, 우리도 함께 바랐다.
나와 신랑은 연애 시절에도 종종 와인을 마시곤 했다. 우리는 특히 드라이하고 바디감이 있는 깊은 맛의 와인을 좋아했다. 그런 면에서 신랑과 나는 맞는 구석이 있다. 와인으로 유명하다는 시칠리아에 왔으니 맛있는 와인을 먹어볼 요량으로 여러 번 와인을 샀다. 하지만 우리가 와인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일까? 대부분 최근에 딴 포도로 만든 와인이어서인지 우리가 원하는 깊은 맛의 와인을 찾지 못했다.
대용으로 맥주를 몇 병 사봤는데, 어라? 맥주 맛이 의외로 괜찮았다. 산 맥주는 전부다 맛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와인은 포기하고 맥주를 사기 시작했다. 맥주를 브랜드별로, 종류별로 사서 맛을 보았다. 그렇게 맛본 맥주의 종류가 10개가 넘는다.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맛이 좋았다. 우리에겐 시칠리아가 와인보다 맥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면서 영화 치료사이기도 한 나는 영화에 관심이 많다. 신랑도 영화를 매우 좋아해서 우리는 여행을 오기 전부터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에 가보기로 했었다. 팔레르모에 머무는 동안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로 알려진 체팔루(Cefalù)에 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영화 속에서 야외 상영을 했던 바닷가만 거기에 있었다. 주된 촬영지는 팔라조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 체팔루에서도 꽤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늦은 오후라 다음 날 가기로 하고, 그날은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우리는 팔라조 아드리아노로 향했다. 주된 촬영지인데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교통이 불편해서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하루 종일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작은 마을은 좀처럼 관광객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영화 속 ‘시네마 천국’ 극장이 있었던 광장에는 몇몇의 촌부들이 더위를 식히며 앉아 있었다. 마을의 주민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시네마 천국>의 광팬이 아니라면 하루를 잡아 이곳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시네마 천국>의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가보려는데, 찾기가 어려웠다. 영어가 안 통해서 몇 번씩이나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물어서 겨우 찾아갔다. 작아서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아서 문도 잠긴 채였다. 박물관을 관리하는 분이 문을 열어줘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박물관에 알프레도와 토토가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박물관에 들어서자 안내해준 분이 시네마 천국의 OST를 틀어주었다. 음악은 참으로 신비하다. 우리가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는 어느새 알프레도와 토토가 있는 <시네마 천국>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고 있었다.
영화 속 알프레도의 집이 있던 골목을 찾아 그 집에 가보았다. 골목 끝에서 토토가 알프레도의 자전거를 타고 까르르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린 토토와 중년이 훌쩍 넘은 알프레도. 둘 사이에는 나이를 뛰어넘는 진정한 우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애틋한 우정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가슴에 새겨져 지금까지 기억된다.
우정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몇 년이나 될까? 알프레도와 토토의 우정은 박물관이 사라진다 해도, 영화 속 음악이 흐를 때마다 관객들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우정은 적어도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한 게 아닐까?
우리 사랑의 유효기간은 몇 년일까?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는 우리 사랑의 유효기간을 상징적인 의미의 ‘만 년’으로 해 두기로 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 우리는 다른 일정 때문에 계속 미뤄두었던, 동네에서 가장 큰 공원인 빌라 벨리니(Villa Bellini)에 밤 산책을 나갔다. 그곳에서는 축제가 있었는데, 그날이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무대에는 초대된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시칠리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와인들과 특산품들을 팔고 있었다. 축제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사람들은 살짝 흥분된 모습으로 들떠 있고, 밤늦도록 그 주변은 술렁거린다.
우리는 공원을 거닐다 원형 무대 위에서 자기들끼리 춤을 추는 연인을 보았다. 춤을 전공한 연인인지 꽤 수준급의 춤을 구현해 보였고, 상대방과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춤을 출 때, 우리는 상대방의 스텝과 몸동작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서로의 손과 어깨를 맞댄다. 음악에 맞춰 발을 움직이면서도, 모든 신경은 상대방의 호흡과 몸의 긴장도를 체크한다. 그래야 춤을 추다가 상대방의 발을 밟거나 스텝이 엉켜 넘어지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결혼도 그러하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온전히 유지하기가 어렵다.
공원에서 그들만의 춤을 추는 연인을 보며, 나는 우리의 결혼도 혼자만의 스텝이 아닌, 상대방의 스텝과 호흡에 맞춰 걷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칠리아로의 허니문으로 우리 결혼생활의 리허설은 끝났다. 이제 막이 오르고 본 공연이라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종종 다리가 아프다고 신랑에게 짜증을 냈었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나의 다리를 배려해 멈춰주었고, 다리를 주물러 주었고, 쉬었다 가주었다.
결혼생활에서도 그러하다. 신랑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나를 배려하고, 나에게 보조를 맞춰 걸어준다. 신랑이 그렇게 해주니, 나도 신랑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게 된다. 우리는 조금씩 조율하면서 서로의 발걸음에 맞춰서 걸으려고 한다. 신혼여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빠르진 않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맞춰가다 보면, 어느새 말하지 않아도 발맞춰 걷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무질서하게 보였지만 질서가 있었고, 겉모습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내실을 기하는 시칠리아 인들처럼, 다양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처럼, 상대방의 호흡과 스텝에 맞춰 춤을 추듯, 우리의 결혼생활도 그렇게 익어가기를 바란다.
6월에 결혼한 새 신부입니다. 방송국에서 라디오와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일하다 지금은 뮤지컬과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합니다. 예술이 가진 치유력을 믿으며,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 활동을 합니다. 영화치료사이면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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