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어비앤비)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취업준비생이다. 철학을 전공해서인지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남기기를 좋아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족함 없이 자랐고 넘치지 않을 만큼의 사랑을 받았다. 가장 큰 무기를 유머라고 자부하지만 가끔 낯을 가린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지만 길바닥에 앉아 커피 마시는 것 역시 사랑한다. 나는 나다운 여행이 하고 싶었다. 모순되지만 균형을 잃지 않으며, 흔들리지만 넘어지지 않는.
그런 여행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개할까, 어떻게 이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엔 한 지역에 대해 경험자로서 생각하는 현실적이고 생생한 느낌과 가볼만한 곳에 대해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을 정도로 에어비앤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미 여행을 사랑하고 초록창과 SNS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찾는 그런 사람일 것이기에 에어비앤비를 통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첫 여행은 뜨겁고 치열했다. 치열하게 바쁜 여행이 열정이고 또, 젊은 혈기 왕성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바쁜 여행에, 또 첫 여행이 자유여행이라는 것에 자부심도 느꼈다. 이탈리아의 화려한 거리를 바쁘게 걸었고, 바쁜 일정을 효율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에어비앤비, 호텔 구분하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열흘의 여행 기간 동안 유명한 곳은 다 가보고 싶었다.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사진 찍을 겨를이나 그 흔한 젤라토를 먹으며 광장에 앉아있을 시간은 없었다. 숙소 앞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강아지들과 인사하는 상상을 하며 떠났지만 숙소 앞 카페 이름도, 숙소의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첫 여행은 그렇게 뜨겁게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누군가에겐 꿈만 같은 여행이었으리라. 질문에 대답하며 그때를 다시 떠올렸지만 그때뿐이었다. 내 기억엔 관광지의 역사적 깊이와 웅장함이 아닌 관광지로 가는 길의 고단함만 남아 있었다.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기억을 욱여넣느라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니었다.
그제야 제대로 된 '자유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라는 에어비앤비의 광고 문구처럼 나도 내 여행을 '살아봄'으로 색칠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과 돈이라는 물감이 부족했고 욕심이라는 붓만 많았다. 도화지에 묻어야 할 아까운 물감이 붓에 덕지덕지 묻어 바닥과 물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음 여행은 동생이 군대에 가기 전 온 가족이 떠난 홍콩 (Hongkong) - 마카오(Macau) 패키지여행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가능성 많고 도전의 기회가 넘치는 20대에 패키지여행은 수동적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홍콩에 살고 있는 가이드 덕분에 현지 로컬 문화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 사물을 바라보는 데 이해가 깊어졌고 건물, 혹은 음식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홍콩 빌딩 숲 속 호텔이 우리나라 유명 가수의 결혼식장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신기해했고, 홍콩 고층아파트가 멋져 보였다가도 그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이야기는 사회적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다음 여행 방향은 이때 정해졌다. 자유를 위한 자유여행이 아니라 이해하는 여행을 하자고. 하지만 가이드가 없는 자유여행에서 그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를 설명해 줄 나만의 가이드가 필요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이때 에어비앤비를 알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와 떠난 첫 일본 여행에서 만난 호스트는 이 임무를 멋지게 소화했다. 호스트는 사소한 식사예절이나, 집 근처 맛집, 구글은 모르는 관광지로 가는 지름길들을 알려줬다. 덕분에 내 여행은 맛집 내비게이터나 스마트폰 연사 촬영 같은 여행에서 벗어났다. 길을 걷다 만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서 벗어났고, 네이버 블로그가 맛있다고 인증해준 식당이 아닌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해외 버전 원조 할머니 국밥 같은 곳을 찾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와 함께 하는 첫 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가까웠으면 했고, 여행경비도 적당했으면 했다. 여러 집들 중 저렴한 가격에 침대, 취사시설, 개인 화장실에 세탁기까지 있는 오사카(Osaka)의 집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돈된 도로 옆에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집을 상상하며 걸었지만 호스트가 표시해 준 곳엔 숙소가 없었다. 역에서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30분을 헤맸다. 잘못된 위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별 수 없이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 건물을 네 바퀴쯤 돌았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일본어를 모르는 나의 팔을 잡고 자신이 운영하는 세탁소로 갔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였다. 길가엔 사람도 없이 고요했다. 세탁기 소리만 나는 그곳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신들 키만 한 지도를 꺼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주소를 보여드리자 그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열띤 토론 후 할아버지는 당당하게 앞장서 나가셨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건물 앞까지 같이 오셔서는 손가락으로 방을 가리키셨다.
손자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방황하는 여행객이 불쌍해서였을까. 난 아직도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주려던 말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짧은 호의가 내 여행의 시작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번화가와 떨어져 있는 작은 건물이 내 숙소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며 출발했던 여행 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숙소를 찾아 터덜터덜 걷던 그 골목은 한적한 주택가였다. 동시에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일터였다. 또한 작은 소방서와 운치 있는 카페가 조화로운 동네였다. 10분 거리의 번화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였다. 번화가에서 숙소까지 가는 그 10분 이 내 신분을 지친 여행자에서 휴식을 취하려 집으로 돌아가는 현지인으로 바꾸어 주었다.
도시 한가운데의 호텔은 여행과 쉼, 그 사이를 흑과 백처럼 차갑게 나눈다. 그 나뉨은 둘 사이를 오히려 멀게 한다. 여행에서 일상의 휴식으로 넘어가기에 부담을 준다. 중간단계 없는 러닝머신 같은 기분이랄까. 빠르게 달리던 러닝머신에서 점프하듯 고꾸라져야 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여행과 일상의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온전한 휴식을 맞이할 준비와 여행으로 떠나는 설렘을 동시에 주었다.
나는 계속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 전부터 호스트를 참 귀찮게 했다. 지역에 대해 물어보고 날씨와 사람들, 또 유행에 대해 물어봤다. 지역에 대한 이해가 주는 여행은 보다 깊고 진하게 남았다. 에어비앤비와의 첫 만남 3개월 후에 내 생일을 맞아 여자친구와 상해(Shanghai)로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어려웠다. 길거리에서 현지인이 반쯤 벌거벗은 채 맥주를 마시고, 일하는 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국수를 먹는 그런 곳에 있었다. 대문으로 들어가니 작은 집이 두 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보이는 활짝 열린 문을 지나면 우리 방이 있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집엔 (비가 와서 타지는 못했지만) 호스트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자전거가 우릴 반겨주었다.
이 집은 근사한 유럽풍 건물이 즐비한 외탄(Waitan)과 청나라 때의 건물이 남아있는 예원(Yiyuan) 사이에 있어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았다. 여행하고 관광하기에 최적의 집이었다. 하지만 옆, 앞, 뒷집 모두 현지인들이 살고 있었고 미로 같은 골목이라 처음엔 길을 찾기 힘들고, 밤에는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상해에는 그런 골목이 참 많았다. 지어진 지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주 좁고 작은 집들이 마을처럼 몰려있는. 많고 많은 그 좁고 작은 집들 사이에 상해 임시정부가 있었다. 당시에 상해를 포함해 여러 곳에 임시정부가 있었고 회의를 통해 상해로 임시정부가 정해졌다고 한다. 상해에서도 일본과 직접 관련이 없던 프랑스 조계지 근처에 터를 잡을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정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보았다. 여행 중 밤에 골목에서 느꼈던 사소한 불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불안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이웃과 인사하기도 어려웠을 그 불안감을 안고 그곳에서 우리 헌법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시작되었다. 임시정부가 있던 곳에서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 서도 다시 한번 그들의 역사를 생각할 수 있었다. 오래된 열쇠를 우편함에서 꺼내며 무서웠던 골목의 그 집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여행과 여행 사이에서 에어비앤비가 아닌 다른 종류의 숙소도 이용하곤 한다. 아직 펜션이나 모텔이 저렴하고 많은 국내여행이나, 태국(Thailand)의 저렴하고 호화로운 호텔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에어비앤비를 배신(?) 하기도 했다.
호텔들은 보통 유명 관광지나 도심 가까이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편하고, 공항까지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깔끔한 침실은 물론이고 깨끗하게 정리된 정원을 걸으면 없던 여유도 생긴다. 호텔의 화려한 인피니티풀과 맛있는 조식이 함께하는 여행도 물론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인생 최고의 여행은 에어비앤비가 만들어주었다. 바로 베트남 다낭(Vietnam, Danang)에서!
홍콩 누아르 영화에 나올법한 어항과 집의 구조도 한몫했지만 진짜 이유는 그곳이 진정한 에어비앤비라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 집은 호스트 An이 어린 시절 살던, 작은 앞뜰이 있는 2층 집이었다. An의 부모님이 실제로 쓰던 냄비, 주전자가 주방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냉장고, 유리창처럼 번들번들한 곳이면 어디나 귀여운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지방에 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했다.
그렇다고 마냥 크고 포근한 집 때문에 다낭을 사랑한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박항서 매직이 우승이라는 결실을 보기 직전이었다. 우승까지 단 두 경기를 앞두고 있었고, 우승에 대한 기대가 높았을 때라 나는 베트남을 형제의 나라라 생각하며 여행했다. 호스트나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 역시 축구였다. 마침 그날 베트남은 필리핀을 2대 1로 이겼고 나는 한껏 애국심에 취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승까지 응원하겠다며 축하했다. 그런 나에게 그들은 그들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주려 노력했다. 내 얼굴보다 큰 그릇에 과일을 가득 담아주었고, 한 시장(Han market)에서는 ‘한쿸사람’을 외치며 기념품을 몇 개씩 더 얹어주곤 했다.
스포츠가 맺어준 두 나라의 우정이 내 여행의 정이 되어 돌아왔다. 게다가 첫날밤 An은 작은 벌레가 나왔다고 모기약을 찾는 나를 위해 여행할 땐 잠이 최고라며 한밤중에 모기약 2통을 사다 줬고, 여행이 끝나는 날 아침에 공항을 가는 나와 내 일행을 위해 아침을 사다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최고의 여행을 만들어 준 박항서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멋진 집과, 정을 느끼게 해 준 또 하나의 진짜 조력자는 역시 에어비앤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여행하며 살고 싶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을 주워 좋아하는 옷 사고, 여행 다니며 살기가 꿈이었다. 적어도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새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같이 오래오래 외국에 나갈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문득 외국에서의 그 한 달, 혹은 일 년이 모두 설레는 여행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설레는 여행이 익숙해지면 지금 내 일상과 같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받아들임이 우울하지 않고, 아쉬움에 남은 여행들이 불안하지 않게 내 매일매일을 여행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주 가는 카페의 인테리어를 다시 눈여겨보고 매일 걷는 길의 나무들이 변해가는 것을 보려 노력했다. 내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에어비앤비는 여행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려주었다. 상해에서 신라면을 끓여 런닝맨 다시 보기를 보고, 호이안에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과일을 사러 나가는 나를 전혀 이상하지 않게 해 주었다.
이렇게 서로의 다른 문화를 이해시키고, 그 이해를 배경으로 여행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이끌어가는 에어비앤비가 대단해 보였다. 이 대단한 에어비앤비의 시작이 자신들의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작은 침대와 아침을 주던 세 청년의 작은 아이디어라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호텔을 찾고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던 우리에게 집 한 채를, 그들의 주방을, 정원을, 또 식탁을 통으로 내어줬다. 물론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숙소 모두가 그들의 문화와 삶을 보여주는 창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높고 넓은 리조트의 방이 올라올 때도 있고, 오피스텔이나 원룸 역시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여행을 살아봄으로, 일상으로 만들어 주는 유일한 방법임엔 틀림없다. 그들의 공간에서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관광은 여행이 되고, 그 여행은 일상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해진다. 그 여행의 기억들은 다시 우리 일상을 여행으로 바꿔줄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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