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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Nov 20. 2019

내 맘대로 무작위 여행

여행의 행복은 운으로부터

뭔가 다른 내게, 엄마는 항상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라고 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모른다) 고등학생 때 야자실 대신 홍대 라이브 클럽과 합주실에 들락날락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역시나 모른다) 여성운동에 열을 올리며 엄마에게 또 다른 대들거리를 찾아냈다. 마침내 3년 전 비건 선언을 하고는 엄마와 겸상조차 안 하게 됐다. 나는 평생 엄마가 싫어하는 여성주의자, 비건, 생태주의자일 테니 엄마는 평생 내게 같은 잔소리를 할 테다. 나는 지쳐 독립을 선언했다. 내 방식대로.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 여행이 삶이 된 순간


가족과 살 때도 유독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내 방식대로 살자며 뛰쳐나온 뒤로는 아예 여행하며 살기로 했다. 처음엔 이 자유가 생소하면서도 마치 완전한 자유인 듯했는데, 하다 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그게 아니다. 여행은 여행일 때 가장 자유롭고 즐거웠다. 여행이 삶이 된 순간, 여행은 지루하기도 하고 자체로 우울하기도 했으며, 고난이기도 했다.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일 년간 여행을 했다. 일 년을 여행했다고요? 엄청 부잔가? 아니오… 언젠가의 자유를 위해 모아놓은 약간의 돈과 약간의 빚, 현지에서의 숙식 교환 노동과 온라인 일거리, 히치하이킹과 카우치서핑, 캠핑 등으로 몸빵 했다. 그렇게 '이제 여행은 지겹다'며 어쩐지 여유로운 패잔병처럼 나는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 고생을 하면서 뭐하러 일 년을 버틴 거야? 어디서 뭘 한 거야? 자유가 필요했어.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지.

▲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제주도. 제주 버스에서 두 시간을 보내는 중 ©Jiji Pyun all rights deserve



여행에 목적이 꼭 필요할까?


다들 나름대로 여행의 목적이 있다. 힐링, 살아보기, 경험, 호기심, 사람 만나기 등. 내 여행의 목적은 ‘자유’인데, 사실 온전한 자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여행에 정말 목적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정보도 없이 여행한다. 편견 없이 모든 것을 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사실 매일이 여행이다 보니 귀찮아서 그렇다. 근데 그게 좋더라). 그냥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고, 누가 속닥속닥 알려주는 곳으로 가고, 여행 중 마음 맞는 사람을 따라가고,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내린 곳에서 잔다. 가끔은 구글맵을 켜고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열 번 돌렸다가 화면을 쿡 찔러 결정한다. 꽤 자주 에어비앤비 지도 모드를 켜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허허벌판을 마구 확대한다(그러다 보면 산중이나 시골에 느닷없이 콕 박혀있는 외딴 홈스테이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무작위’ 여행은 주로 외롭고, 간간히 지루하거나 위험하고, 자주 엄청난 행운을 가지고 온다. 사람 운, 숙소 운, 경치 운 기타 등등 통틀어 행복 운.


매일 별생각 없는 ‘자유’ 여행자의 행운, 그래서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고, 이 여행자는 운 좋게 발견한 자연과 운 좋게 만난 다정함으로부터 행복을 얻는다.

▲ 우연히 머물던 호주 정글 속 '물, 에너지 자급자족 집'. 매일 기타 치고 그림 그리고 시 쓰고 야생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했다



후줄근했지만 그래서 좋았던 사람들과, 대만 국립공원 산속 집


작년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대만에 숨어 있었다. 모두가 세계 최고로 친절한 대만인들과(그러나 남이탈리아에 다녀온 후 대만은 공동 1위) 진보적인 사회분위기에 깔끔하면서도 우울한 도시들, 대만은 살기 좋은 곳이지만 어쩐지 여행하기엔 조금 지루했다. 떠나는 비행기를 찾다가 마지막으로 에어비앤비 지도 모드를 뒤적거렸다. 에어비앤비 지도 모드에서 아무것도 없는 여기저기를 마구 확대하다 보면 가끔 길 잃은 듯 혼자 덩그러니 있는 홈스테이가 있다. 90% 확률로 성공이다. 그렇게 컨팅(Kenting) 국립공원 안의 산골에 외떨어진 숙소 하나를 발견해냈다. 가는 길이 하도 힘들어서 욕지거리하며 도착하고 나면 다시 돌아갈 막막함으로 어떻게든 잘 지내게 된다는 원리. 정말 그것도 맞는데, 사실 대부분 비상업적이고 사람 좋아하는 ‘진짜’ 현지 집의 현지 주민이 맞아주기 때문이다. 이건 내 여행의 원칙 중 하나이기도 한데, 여행자로서 현지 경제와 현지인의 삶에 보탬이 되자는 거다. 즉, 해외나 대자본은 피하기. 그렇게 오는 뿌듯함은 덤. 안 찾아갈 이유가 없지 않나요?


어떻게 여길 찾아서, 어떻게 가긴 가는데, 대중교통이 닿지 않아 느닷없이 배낭을 메고 등산을 했다. '여기 정말 집이 있다는 건가?' 가다 보니 집이 있긴 있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호스트 아저씨에게 아는 중국어 단어를 다 내뱉은 결과 드디어 침대도 하나 차지했다. 이제 밥을 먹어야겠다. 식당은 기대도 하지 않으니 식료품을 살 마트를 찾는 내게 공짜 스쿠터 열쇠가 하나 떨어졌다. 시트에 거대한 구멍이 숭숭 뚫려 스펀지가 다 드러나고 사이드 미러는 양쪽 다 부서져 테이프로 감았지만 10초면 고개를 떨구는 데다, 브레이크는 한쪽이 고장 나서 잘못 잡으면 몸을 날려버릴 듯 덜컹! 멈추는 스쿠터였다. 집 안에는 고양이 7마리가 하루 종일 정신없이 내 몸을 타오르고 내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호스트 아저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껄껄 웃었다.

▲ 사이드 미러를 겨우 세워놓은 스쿠터와 해질녘 집 거실의 풍경

고장 난 스쿠터로 가기엔 마트가 너무 멀어 비상식량인 비건라면으로 연명하려던 내게, 호스트 아저씨는 “너도 먹을래?”라고 물었다. 역시 밥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어디든 2~3일이면 떠나는 나 같은 사람이 일주일이나 머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아저씨는 날 데리고 다니며 내가 밥만은 굶지 않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가끔은 바구니를 들더니 목욕탕이나 야시장에 가자며 같이 사는 모두를 차에 태워 늦은 밤 시골길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런 아저씨의 다정함과 따뜻함(가끔 아저씨의 덩치 큰 오토바이를 강탈해 도망치는 나를 걱정하는 표정과)에 더해 고양이들의 발랄한 친절함, 가끔 짜증 나는 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말이 잘 통해 즐거운 스위스 남자애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로드트립 중 하루씩 머무르고 떠나는 대만인 여행자들과의 시간. 나를 포함한 그 집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가장 후줄근한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모든 게 마음 편한 그곳에서 나는 해가 쨍한 날에는 근처 해변에 자리를 깔았고, 흐린 날에는 염소가 풀 뜯는 넓은 들판과 그 뒤로 수평선이 펼쳐진 낡은 테라스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하루 종일 우롱차를 들이키며 책을 읽었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털털대는 스쿠터로 노래를 부르고 엉덩이를 들썩대며 차 한 대 잘 지나가지 않는 국립공원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했고, 아저씨와 시내에 가서 사 온 야채들로 이틀 치 카레를 오래도록 뭉근하게 끓여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렇게 지냈다. 덥지 않아 수영은 못했지만, 따뜻한 대만의 겨울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과 테라스에서 먹는 아침밥. 평생 마실 우롱차는 다 마셨다

집을 떠날 때는 같이 살던 모두와 진한 포옹을 했다. 아저씨는 나 혼자선 못 타게 하던 큰 오토바이로, 내가 여행 첫날 걸어 올랐던 산길을 배웅했다. 이번 겨울에도 대만을 갈까 생각 중이다. 내가 타던 스쿠터가 아직 살아있는지 궁금해서?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발리 시데멘의 에어비앤비 나무집


시데멘(Sidemen).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의 지명이다. 발리는 두 번째라 왠지 지겨워졌을 때쯤 역시나 무작정 지도를 마구 돌리다 발견한 곳이다. 그냥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드맨인 줄 알았더니 시데멘이었지만.


정말 그냥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무작정 찾아간 곳인데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을 마주했다. 사람 한 명 없는 작은 도로를 끼고 양 옆으로 논과 밭, 푸른 정글과 겹겹이 산맥이 펼쳐지고 작은 식당과 텅 빈 숙소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곳이다. 내 에어비앤비 숙소는 산길에 만들어놓은 정원을 한참 걷고 나서야 숲 속 나무에 가려진 채 등장하는 작은 이층 집이었다. 이층 침실은 이렇다 할 창문이 없이 그저 사방이 뻥 뚫려 있어 온통 낡은 나무로 된 집 안은 안이기도, 동시에 밖이기도 했다. 그저 사방이 논밭과 산으로 푸르렀다. 아주 멀리의, 평소엔 구름에 가린 높은 산맥이 보이는 날엔 더. 그래서 창틀(같은 것)에 앉아 있으면 산신령처럼 자연 속에 그저 떠 있는 것 같았다.

▲ 시데멘에서 지내던 에어비앤비 집의 모습과 2층에서의 풍경

에어비앤비에서 2km 정도를 걸어가면 작은 마을이 나왔다. 매일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장바구니를 여러 개 챙겨 아직 약간 어둑한 길을 슬슬 걸어 아침 시장에 갔다. 가는 길엔 항상 옆 식당에 사는 큰 개가 꼬리를 흔들며 나와 함께 걸었는데, “망고 사러 가자~”, “망고 먹자~” 하면서 걷다 보니 그 개에게 망고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됐다. 망고는 내가 걸어가면 걸어오고, 스쿠터를 타면 뛰어왔다. 그렇게 함께 반쯤 가다 돌아가곤 했다.


정신없이 북적이는 아침 시장 사람들은 여행자를 처음 본다는 듯 나를 뚫어져라 구경했다. 내가 뭘 사는지, 얼마에 사는지를 하나하나 관찰하고 인도네시아어를 못하는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며 먼저 다가왔다. 덕분에 절대 바가지 쓸 일은 없었는데, 만원이면 망고 4-5kg과 파파야, 거대한 유기농 바나나, 망고스틴 1kg와 야채까지 좀 샀다. 왠지 미안했다. 불청객일 수도 있는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지. 그래도 누가 도와주지 않을 땐 순진한 척 어느 정도의 바가지는 그대로 썼다. 로컬 시장에 가서 경제에 기여하기, 여행자의 도리다. 아, 비닐봉지를 받지 않으려고 손사래를 치고 발리어로 ‘노 플라스틱’을 서툴고 다급하게 외치고 다닌 결과 거의 모든 걸 포장 없이 살 수 있어 더 좋았다. 역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시장이다.

▲ 제로 웨이스트 장보기 인증샷. 밀가루를 제외하곤 평소 들고다니던 장바구니와 재사용 비닐봉지. 오른쪽은 집에 찾아온 망고

낮엔 옆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현지인들이 나체로 수영하는 계곡에 가서 덩달아 나체로 물놀이를 했다. 그것도 지겨울 땐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아침 시장에서 사 온 야채로 요리를 했다(이때 수제 코코넛 밀크의 맛에 눈을 떴다!). 그러다 해가 지면 집 전체가 흐린 조명 몇 개로 지탱한 어둑함과 풀벌레 소리에 잠긴다. 짝짓기 하는 도마뱀 소리를 희미하게 들으며 잠들고 사방의 새벽 빗소리를 들으며 간간히 깬다. 그런 곳이었다.




정원에 초록 강이 펼쳐진 집, 몬테네그로 국립공원이 내 앞마당


동유럽을 함께 여행하던 친구와 몬테네그로(Montenegro)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어느 날, 무작정 국립공원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으로 어느 쪽이든 국립공원 안에 내려달라고 했다. 친절한 사람들을 여럿 만나 국립공원 어딘가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해야 공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국립공원은 처음이었다.

▲ 몬테네그로에서 히치하이킹 한 작고 노란 차. 호스트 아저씨는 다짜고짜 자기 친구한테 전화해 통역을 시켰다

그렇게 해가 지고 있었다. 텐트를 어디다 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국도의 낡고 으스스한 모텔 사장님으로부터 "뱀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마침 근처에 초록 뱀 한 마리가 지나갔다. 텐트 칠 곳을 알아보겠다며 가방을 내려놓고 무작정 국도를 따라 떠난 친구가 돌아왔다. 강가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펜션 사장님이 오늘 손님이 없다며 흔쾌히 앞마당을 공짜로 내주었다고 한다.


마당에 텐트를 친 우리에게 호스트 가족은 식탁과 과일도 내주었다. 그리곤 자기들은 이틀 후에 돌아올 테니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며 외부 샤워시설 사용법까지 알려주고 떠났다. 그날 밤 우리는 강가의 마른 갈대를 모아 자갈 위에 불을 피우고, 가방에 굴러다니던 양파와 감자를 모아 고추장찌개를 해 먹었다. 불을 피워 밥을 해 먹는 건 처음이었는데 물 끓이기까지만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리 조상은 밥 먹으려다 굶어 죽었겠다. 금세 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머리 위로 별이 쏟아졌다. 그 외엔 아무 빛이 없어 우리가 피운 불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뒤로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에 탄 사람들에게 불빛으로 인사를 하면 그들도 인사를 했다.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앞마당 텐트 뷰

낮에는 펜션 데크에 누워 책을 읽거나 초록 강에서 수영을 했다. 지칠 때쯤에는 야외에 덜렁 있는 샤워기 밑에 서서 천연비누로 샤워를 했다. 캠핑을 하며 천연비누로 씻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엉키는 머리카락까지 잘라버리고 나니 이렇게 편하고 환경적으로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국도 옆 기찻길을 따라 걸으며 산책하기도 했다. 국립공원이라 그런가 강 수면 위로 생전 처음 보는 새들이 하루 종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가끔 정말 거대한 새가 눈 앞을 지나갈 때면 "저기 봐!" 하고 탄성을 질렀다. 간식으로 야생 무화과와 포도를 잔뜩 따먹고, 저녁엔 또 불을 피웠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디서 등장했는지 텐트 안으로 쳐들어와 친구의 몸 위에서 누워 뻔뻔히 자고 있던 새끼 고양이와 놀기도 했다.


떠나는 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다음엔 앞마당 말고 꼭 이 집을 빌리겠다"며 고맙다는 쪽지와 태국에서 산 작은 자석, 지갑을 털어 나온 동전 몇 개를 마당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왔다. 그리고 근처 간이 기차역의 낙서로 가득한 벽에 글을 남겼다.


Any place you love is the world to you.
- Oscar Wilde




"이 운 좋은 여행자야, 자유는 찾았니?"


라고 묻는다면 베트남행 비행기 안에서 원고를 뒤엎는 여행자 1은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끝없는 여행이 끝날 때는 알게 될까. 올해도 반 이상을 여행하며 보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몰래 시시각각 변하는 오후의 햇빛처럼 여행을 하며 나도 몰래 매일 변했다. 여행하며 살다 보니 매일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살게 된다. 날씨처럼 모든 것이 우연하고, 우연히 행복하며 우연히 자유롭게 살게 된다. 우연을 기쁨과 행복으로 맞이할 긍정적 마음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나의 시각과 나의 마음. 그게 중요하다. 운은 우연히 오기도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다수니까.


올해는 어쩐지 비행기를 5번 중 3번이나 놓칠 뻔했는데 항상 운 좋게 문이 닫히기 전에 탔다. 너무 비싼 티켓이라 놓칠까 봐 울면서 탄 적도 있다. 오늘도 역시나 놓칠 뻔했지만, 공항을 이리저리 뛰며 생각했다. 탈 수 있겠지, 난 운이 좋으니까. 역시나 탔다. 역시, 난 운이 좋아. 괜한 행복이 늘었다.




여행이 삶이라면, 삶은 우연이지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여행이고 자시고, 삶이고 자시고 별 기대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기 전 ‘아 오늘은 뭐하지~’ 하며 기대하고 상상하던 마음이, 방랑이 길면 길어질수록 ‘아… 오늘은 뭐하지’, ‘아……… 오늘은 뭐하지…….’로 고생과 지난함의 꼬리를 달기 시작한다. 그런 때를 위해 우연은 존재한다. 아무 기대도 생각도 없이 우연히 찾아오는 장소, 사람, 순간, 햇빛, 그림자까지. 우연을 기쁨과 행복으로 맞이할 긍정적 마음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나만의 시각만 여전하다면, 여행은 삶 그 자체로 의미 있다,라고 한국을 뜨는 비행기 안에서 원고를 수정하는 여행자가 말했다.





에어비앤비 작가, 유비

착취하지 않는 삶, 상생하는 삶과 여행을 고민하고 실천합니다. 여성이고 동물이며 환경주의자 기타 등인 비대한 자아를 글로 풀어씁니다. 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말을 가장 많이 하고 듣네요.


브런치 @dbqldpswpf

인스타그램 @ub_oh

▲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할 때의 여행. 산길은 농가에서 빌린 달구지와 당시 같이 여행하던 친구의 체력 찬스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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