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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Nov 15. 2019

네덜란드, 호러 혹은 로맨스

우리의 네덜란드 히트호른이 선물해준 추억

“당큐웰(Dankjewel)!”


다른 단어는 몰라도 고맙다는 말은 완벽하게 네덜란드어로 구사할 때 즈음이었다. 나는 독일 국경과 가까운 네덜란드에 사는 교환학생이었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였던 나는 그 무렵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한 번도 안 넘어지고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무려 독일도 자전거로 국경을 넘나들었다. 처음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할 때는 아무 걱정 없이 '유러피안'으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보다 더 많은 팀 프로젝트와 발표. 어느 나라든 대학생의 팀 프로젝트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 맞다. 그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그 와중에도 우리는 늘 저가항공사의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언제든 싼 가격에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려고 모두 벼르고 있었다. 온 김에 제대로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추웠던 날씨가 좀 풀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작은 강가로 맥주를 들고 모이는 날씨가 되었다. 이런 날씨의 주말엔 어디로 가야지라는 마음을 품고 여자 넷이 모였다. 하지만 하필 결핵 위험군에 속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결핵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메일을 학교로부터 받았다.


“그럼 우리 결핵검사받고 학교로 돌아오지 말자! 거기서 바로 어디든지 가면 되잖아.”


수도인 암스테르담(Amsterdam)에는 이미 다녀온 사람이 있었고, 튤립으로 유명한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를 가기에는 아직 튤립이 만개할 시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누군가 그림으로 그린 것만 같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여기도 네덜란드래.” 그렇게 여자 넷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네덜란드의 베니스, 히트호른(Giethoorn)에 가게 되었다.




"Have a chill time"


히튼호른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곳은 에어비앤비가 유일했다. 마침 우리만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집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다들 유럽여행을 하면서 다져진 에어비앤비 찾기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우리는 무엇보다 마을 전경이 잘 내다보이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각자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조건을 적용해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은 후 단체 메신저 방에 공유했다. 숙소 선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예약을 끝내고 나니 설레기 시작했다. 나의 여행은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여행의 준비물의 절반은 설렘이니까.


내가 다니던 학교는 네덜란드 동쪽에 위치해 있고, 히트호른은 북쪽에 있어 꽤 긴 시간 기차를 타야 했다. 암스테르담을 지나서 히트호른에 도착. 가는 중간 저녁에 먹을 음식들의 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를 들렀다. 네덜란드는 식자재가 저렴하다. 특히 고기류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요리하기 쉽게 이미 손질된 채소나 반조리 식품도 많다. 무엇보다 하이네켄의 나라답게 맥주가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맥주 한 박스에 10유로 정도. 즉 만 오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맥주를 박스째 즐길 수 있다. 히트호른 주변에는 마트가 없다고 들었기 때문에 고기와 와인을 가득 안고 기분 좋게 택시를 탔다. 큰 기차역에 내려서도 택시나 버스를 타지 않으면 가기 힘든 곳이지만, 그 길마저 흥겨웠다.

▲ 우리가 묵었던 히트호른 에어비앤비. 모든 집 앞에 다리가 놓여있어서 더 동화 같았다.

택시에서 내리자 보이는 조그마한 마을 입구는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 같았다. 바로 옆의 회색 도로와는 다르게 초록빛이 가득했고, 스머프 마을이라는 별명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마을은 물과 다리 그리고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세상이었다. 작고 아담한 집들 사이에는 각 집들의 통행수단인 보트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물길보다 작게 나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연신 사진을 찍기 바빴다. 간신히 서너 개의 다리를 지나서야 숙소를 찾기 위해 호스트에게 연락했다. 호스트가 보내준 지도를 따라 다리를 건너니 듬직한 안내견이 먼저 우릴 반겨주었다. 헤이그(Geke)와 안내견이 앞장선 곳엔 우리가 머물 별관이 있었다. 앞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이는 큰 창이 있었고,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쾌적한 집이었다.

▲ 와인을 잔뜩 마시고 딱 누워서 자기 좋은 구조, 안쪽에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창밖으로는 작은 강과 그 물살을 타고 지나가는 오리들이 보였다. 거실에는 큰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옆에 있는 주방에는 식기세척기와 모든 조리기구(와인 오프너가 있으면 사실상 모든 조리기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가 준비되어 있었다. 직접 음식을 해 먹고 밤에 술을 곁들이고자 했던 우리에게 딱 알맞은 공간이었다. 헤이그는 바로 옆 본채에 언제든지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으로 유명한 마을답게 수많은 공방이 나무 사이사이마다 오두막집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액세서리와 접시 등을 파는 공방이었다. 엽서를 몇 개 움켜쥐고 다리를 건너다보니 치즈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살짝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부터 과일 맛이 나는 치즈까지 다양하게 시식해보고 우리의 밤을 위한 스모크 치즈를 하나 구매했다. 마을을 둘러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배를 타고 호수를 둘러보는 것은 내일 일정으로 미루고 서둘러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집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학교만 아니면 여기에 더 묵고 싶었다. 마을 자체에 놀거리는 많이 없었지만, 침대에 누워있거나 마당으로 나가 풀들을 바라보며 있는 것이 행복했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저 즐겁게 지나가는 보트 위의 여행객과 인사하거나 풀에 누워있는 호스트의 안내견과 놀았다. 그리고 딱 맞춰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삼겹살과 비빔면을 먹기에. 주방 옆에 높인 큰 테이블 위로 음식이 하나 둘 차려지고 우리는 둘러앉아 건배를 외쳤다.

▲ 어디서든 한식과 그 나라의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집 전체를 빌리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머문 지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가 오래 묵었던 것 같이 편했다. 이곳에 내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우리가 여행자임을 망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 아마 우리가 매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에어비앤비를 가장 먼저 찾아보는 이유일 것이다. 그 밤만큼은 우리의 식탁은 어느 네덜란드 마을의 식탁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주 들었던 노래들을 선곡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노래방이 없는 네덜란드에서 오랜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날 우리가 묵었던 별채는 멋진 한식당, 별이 보이는 침대가 되었다가 어느샌가 노래방이 되어있었다. 창문 틈으로 나뭇잎에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저녁이 무르익었다. 음악과 비와 와인으로 가득 찬 밤이었다.

▲ 침대에 누우면 흔하게 보는 창 밖 풍경



호러와 로맨스의 교차점

아침에 일어났을 때 헤이그가 조식을 가져다주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아침식사였다. 침대 옆 창밖으로 어제 지나간 비의 잔해를 보여주듯 풀들이 수분을 머금고 흔들렸고 하늘은 맑았다. 날씨와 항해의 상관관계는 잘 몰랐지만 배를 타기 딱 좋은 날씨임을 직감했다.

▲ 호스트가 직접 전해주었던 담백한 아침식사. 오렌지 주스의 비타민이 와인의 숙취를 없애주었다.

네덜란드의 베네치아라는 이름에 이끌려 선택한 만큼 꼭 보트를 타고 싶었다. 어디서 어떻게 빌려야 될지 몰랐는데 그 순간 우리가 에어비앤비에 묵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이곳을 잘 아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헤이그의 추천으로 우리가 보트를 빌린 곳은 마을 중앙쯤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 옆으로 여러 대의 보트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당연히 누군가 우리와 같이 보트를 타서 운전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운전을 해야 된다는 것에 모두 당황했다.


간단하게 보트의 조종법을 배웠다. “하이 레이디스. 기어를 오른쪽으로 당기면 앞으로 가는 거고, 왼쪽으로 당기면 뒤로 가는 거야. 굿 럭!” 정말 쿨하게 운전을 알려준 사장님은 좋은 시간 되라며 우리를 보내버렸다. “괜찮아. 우리 어쨌든 2종 보통 면허는 가지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게 우리의 보트는 강 위로 나아갔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보트 방향키를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운전이 능숙하지 않으니 자꾸 옆길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왕 빌린 김에 호수를 돌아서 와 보자 라는 결심으로 지도를 다시 펼쳐 들고 호수로 향했다. 좁은 물길이었지만 나무들과 작고 낮은 집들은 스머프 마을을 떠오르게 했다.  마을의 큰 호수를 지나 아름다운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통해서 물길을 따라가면 다시 레스토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보트 끝에 앉아서 마을과 개울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은 한 페이지의 동화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앞서가는 보트와 마주칠 때마다 열심히 인사를 했다.

▲ 보트 끝의 포토 스팟. 좁은 곳에서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열심히 자리를 바꿨다.

서로 교대해가며 운전대를 잡았고, 보트 끝에 위치한 포토 스팟에 돌아가며 앉아 사진을 찍으며 호수 중앙으로 향할 때였다. 갑자기 보트가 움직이지 않았다. 수심이 그리 깊은 곳이 아니어서 호수 바닥의 나뭇가지에 보트가 걸려버린 것이었다. 손을 호수 밑으로 넣어서 저어도 보고, 몸의 반동으로 보트를 흔들어도 보았지만 단단한 은색 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삼십 분쯤 지나고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웃고 있던 나도 슬슬 지치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호수 자체가 워낙 넓고 그 한가운데 떠있다는 사실 자체가 겁이 났다. 두려움을 떨쳐보려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옆으로 지나가는 보트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물을 무서워해서 레스토랑에 남아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지금 호수 한가운데에 꼼짝도 못 하고 있어… 구해줘!!”


▲호수에 갇히기 약 5분 전

친구는 곧 우리를 구하러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검은색 보트가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봤던 키가 큰 마을 청년이 보트와 물아일체가 되어 우리를 구하러 왔다. 그 순간 난 그 남자에게 사랑에 빠졌다. 긴 다리로 보트에서 중심을 잡고 한 손으로 모터를 조정하며 물의 반동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신들린 드라이빙이었다. 어떻게 그 모습에 사랑에 안 빠질 수가 있겠는가.

▲ 히트호른 여행 이후로 번헤어를 한 남자만 보면 사랑에 빠졌다.

무심하게 머리를 틀어 올려 묶은 남자는 우리에게 밧줄 한쪽을 줬다. 보트 한쪽에 끈을 묶고 모터보트로 끌어당기니 한 시간의 기다림이 무색하게 금방 우린 탈출했다. 중간에서 남은 구간이라도 즐기라며 밧줄을 풀어서 그는 사라졌다. 지나치는 경관을 뒤로하고 우리는 빨리 육지로 가고 싶은 마음에 빠른 길로 보트를 돌렸다. 오는 내내 우리는 히트호른의 보트 경관보다 우리를 구해준 남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막상 육지에 내리고 나니 보트 위에서 떨었던 시간들에 웃음이 나왔다. 번 헤어를 한 남자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마움의 표현을 하고 레스토랑을 후다닥 벗어났다.


“당큐웰(고마워)!”




에필로그


한 시간 동안 호수 위에 있었던 무용담과 번 헤어를 한 남자와의 로맨스를 늘어놓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마을이 작고 가게가 많지 않아서 깔끔한 곳을 선택했다. 나는 사태(Satay) 요리를 시켰다. 영어로 쓰인 설명에는 땅콩소스를 곁들인 꼬치구이라고 쓰여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주문했지만 한 입 먹자마자 알아챘다. 사태는 이제 나의 유럽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 하지만 사태를 먹어보고 싶다면, 조심해야 한다. 사태에 중독될지도 모르니.

사태는 꼬치구이에 땅콩 소스를 곁들인 음식이다. 유럽 여행 중 메뉴판을 보는데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무섭다면, 사태를 시켜보길 추천한다. 이후에 친구들에게 사태를 추천했고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사태 러버가 되었다.


배를 채우고 짐을 찾으러 숙소로 다시 향했다. 하루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짐을 챙겨서 나오는 길이 아쉽게 느껴졌다. 마지막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해 택시를 잡으러 마을 앞쪽으로 나갔다. 네덜란드인들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영어를 잘하는 나라지만, 그날따라 택시와 잘 소통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네덜란드어로 능숙하게 택시까지 잡아준 호스트와 그의 안내견에게 인사를 했다. 마을 곁으로 길게 뻗은 수로들을 택시 안에서 바라보며 "어쨌든 이번에도 좋은 여행이었어"를 외쳤다. 자유로운 튤립의 나라에서 우리는 또 다른  네덜란드를 품에 안고 다시 일상의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 안녕! 히트호른!




에어비앤비 작가, 주혜린

되고 싶은 건 아직 없는데 하고 싶은 건 많은 대학생입니다. 본인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갑니다. 리듬과 스토리 있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범죄 스릴러를 즐기고, 여행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끈기는 없지만 인내심은 많습니다. 후회 없을 만큼만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기 위해 노력 중인 20대입니다. 

인스타그램: @j_free_w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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