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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Dec 04. 2019

코펜하겐의 낯선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6살 아이와 함께 떠난 베를린과 코펜하겐


설레는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2주의 휴가


1인 회사를 운영하며 육아를 병행하는 나에게 남편의 업무량은 매우 중요하다. 남편이 육아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날엔 일을 조금 더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수많은 날들은 아이의 등원과 하원 사이 시간이 나의 업무시간이다. 2018년 12월의 어느 날 이미 피곤한 얼굴을 하고서 퇴근한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내년 3월까지는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할 것 같아.”


워낙 야근이 많은 직업이라 신혼 때부터 ‘야근’은 우리 부부에게 이미 친근한 존재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즈음 남편이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는지 직감하기 시작했다.

▲ 여행 중 함께 나눈 대화와 아이의 웃음소리는 여행이 끝난 뒤에도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았다

‘아~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구나. 채은이는 3개월 동안 아빠 얼굴을 못 보겠구나.’ 주말도 없이 3개월 동안 남편은 회사 업무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쉼 없는 독박육아와 일을 병행하였고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은 가족 모두에게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서로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길다면 긴 3개월의 시간을 기다림이란 단어로 설렐 수 있었던 건 바로 남편 회사의 ‘2주간의 보상 휴가’ 그리고, 아이에겐 처음인 유럽여행 덕분이다. 2019년 4월, 드디어 온 가족이 기다리던 2주간의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

▲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선물한 로모 카메라 그리고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담는 아이



휴양지보다는 역시! 도시가 좋아

▲ 마치 건축박물관에 온 것 같은 베를린 거리! 거리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건축을 전공한 남편과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휴양지보다는 도시 여행을 선호한다. 건축물과 공공시설물, 분주한 거리의 사람들, 상점에 진열된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까지. 도시의 일상을 여행할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들을 좋아한다.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고,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보고,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도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겐 새롭고 신선한 것들이다. 3개월 동안 모두가 지쳐 있었지만 이런 이유들로 이번 여행 역시 휴양지가 아닌 도시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6살이 된 아이도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따라 자주 여행을 했다. 가까운 국내여행부터 제주도, 일본, 방콕, 싱가포르까지 비행시간을 점점 늘려가며 아이도 자연스럽게 장거리 여행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채은이도 많이 컸고, 2주 정도면 거리가 좀 멀어도 괜찮지 않을까”

“미국? 호주? 유럽? 어디로 갈까?”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2주의 시간도 여러 도시들이 떠오를 때마다 어찌나 짧게 느껴지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희망 목록을 지워갔다. 그렇게 결정된 두 도시는 베를린과 코펜하겐이 되었다. 바우하우스(Bauhaus) 100주년을 맞이하여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인 베를린(Berlin)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 가족의 일상과 많은 것이 맞닿아있던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으로 정했다.

▲ 디자인 서적과 어린이 책이 함께 있는 Do you read me?! 서점, 매일 과일을 사고 동네를 산책하는 낯선 도시 여행의 일상



아이와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


여행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늘 설렌다. 아이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다. 여행지는 남편과 나의 결정으로 정해졌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니만큼 아이도 즐거울 수 있도록 함께 할 경험에 대해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 여행 전 아이가 상상하며 그려둔 그림 ‘빌룬으로 떠나는 기차 여행’

(함께 지구본을 보며)


나: “채은아 독일 글씨 찾아봐~ 우리가 여행할 베를린은 독일에서 여기! 위쪽에 있어~”


아이: “코펜하겐은?”


나: “코펜하겐은 여기! 덴마크 글씨 보여?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10시간 정도 가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여기 봐봐~ 빌룬(Billund)! 보이지? 빌룬까지는 코펜하겐에서 기차 타고 4시간 정도 가야 한대. 여기엔 채은이가 좋아하는 레고로 만들어진 마을이 있어~”


아이: “엄마, 그럼 기차랑 비행기에서 그림 그릴 종이랑 색연필도 챙겨야겠다. 간식도! 기차역에서 도넛도 사 먹자. 나 너무 신나~”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궁금한 것, 꼭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런 대화가 모여 함께 여행하는 동안 모두가 즐거워진다. 이렇게 각자의 시간을 배려하고 기다려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 집에서도 외출할 때에도 몇 가지의 레고(Lego) 장난감을 가방에 넣어 두고 늘 함께 한다

덴마크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레고(LEGO)가 탄생된 곳이라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처음 선물한 장난감인 레고는 덴마크어로 레고(Leg godt)! 잘 논다(Play well)는 뜻이다. 아이는 레고만 있으면 집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정말 잘 논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빌룬(Billund)은 레고와 관련된 모든 것이 있는 레고 천국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아이와 함께 넷플릭스(Netflix)에서 레고 하우스(Lego House) 영상을 찾아보았다.

▲ 넷플릭스에서 찾아본 레고 하우스, 출처:Netflix
▲ 레고 하우스 공간을 미리 탐색할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우와~ 레고로 만들어진 집이다~ 진짜 큰 사람도 살아?”


아주 큰 레고 모양으로 만들어진 레고 하우스를 본 딸아이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 했다. 또 레고 하우스 앱을 다운로드 받아 공간을 미리 체험해 보면서 계속해서 레고와 덴마크 코펜하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 도시 설계, 자동차 경주, 매거진 표지 촬영, 영화 만들기, 꽃과 식물 등 레고 하우스에서는 뭐든지 만들어 볼 수 있다
▲ 여행을 준비하며 아이와 남편과 함께 읽은 책들
Tip – 여행 전 베를린, 코펜하겐 미리 경험하기

• 넷플릭스 추천 영상
레고 하우스 꿈의 집으로 오세요,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코펜하겐 편,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

• 아이와 함께 읽은 책
와글와글 지구여행, 세상에 이런 건물이, 안데르센 동화책과 스티커 북, 월리를 찾아라 Travel Collection, 안녕 나는 해외여행을 떠나, 건축가들의 집을 거닐어요, 매거진B LEGO 편

• 남편과 함께 읽은 책
나의 덴마크식 육아,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 미드센추리 모던, 바우하우스 100년의 이야기, 모노클(Monocle) 트래블 가이드 베를린, 코펜하겐 편
 
▲ 장난감 같은 디자인의 놀이기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머무는르는 내내 모두가 흥분을 가라 앉히기 힘들었다

디즈니(Disney)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티볼리(Tivoli) 공원 사진도 미리 함께 찾아보았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티볼리 공원은 1843년 개장한 놀이공원이다. 타보고 싶은 놀이기구 그림, 빌룬으로 떠나는 기차 그림도 그리며 아이 나름대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의 가방에는 미리 그려둔 그림과 자기만의 지도, 새로 산 로모(Lomo) 카메라, 이동할 때 먹을 간식들, 종이와 색연필, 인형까지 알뜰하게 챙겨두었다.

▲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여행 준비물: 각종 색칠 도구와 종이, 엽서, 카드놀이 등



누군가의 집에 머문다는 것: 에어비앤비의 매력


혼자가 아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일수록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의 숙소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아이와 함께 낯선 곳을 여행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집에 머문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집에 살아보며 그 도시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의 아주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머물 집을 알아볼 때 이러한 엄마의 걱정을 덜어준 것이 바로 에어비앤비 플러스다. 에어비앤비에서 이미 한 번 검증하고, 엄선된 숙소를 소개하는 에어비앤비 플러스 코너를 통해 숙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두 번째로 에어비앤비의 필터로 가족여행에 적합한 여행지를 선별할 수 있는 것도 숙소 결정에 큰 도움이 된다. 호스트와의 대화로 주변 환경과 생활에 대해 미리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 여행 준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머무를 집을 결정하던 중 고민 끝에 일주일 동안 두 곳의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두 곳의 집은 호스트의 직업도 인테리어 스타일도, 사용하는 가구 디자인도 매력이 서로 달랐다.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지역마다 분위기와 문화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공간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 코펜하겐 뇌레브로(Nørrebro) 지역의 건축가 집 주방. 덴마크 클래식 디자인 가구와 식물들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 크리스티안하운(Christianshavn) 지역 패션 에디터 집 주방.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가구, 실용적인 생활 소품 덕분에 마치 편안한 내 집에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코펜하겐 뇌레브로(Nørrebro) 지역과 크리스티안하운(Christianshavn) 지역의 두 집에 각각 4일씩 머무르며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덴마크 디자인 가구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기대되었다. 또 코펜하겐을 여행하며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잠들 순간들이 머릿속에 그려져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한참 설레고 행복했다.




공원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여행지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마트 구경도, 공원으로의 산책도 매일 하고 싶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니 일주일 동안 머물게 될 공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평소에도 우리 가족은 집 근처의 크고 작은 공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찾아가는 공원도 계절에 따라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르다. 또 공간을 탐색할 때마다 매 순간 새로움을 발견한다.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함께 뛰놀며 일상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공원을 찾는 이유인 것 같다. 우리가 머문 낯선 도시에서도 역시 공원으로 작은 여행을 떠났다.

▲ 일주일 동안 우리는 매일 근처 공원으로 작은 여행을 떠났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처음 4일을 머문 집은 코펜하겐 뇌레브로(Nørrebro) 지역의 건축가 부부의 집이다. 건축가 호스트의 디자인 서적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가득했다. 특히 아주 오래된 덴마크 디자인 가구들을 일상에서 직접 사용해볼 수 있어 지내는 동안 작은 디자인 미술관에 머무는 기분이 들었다.

▲ 집에는 덴마크 디자이너의 아주 오래된 클래식 가구가 2개 있었다. 조명과 소품, 의자 등 집안 곳곳에 호스트의 취향이 담긴 서적과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가득하다

먼저 베를린에서 일주일의 여행을 마친 후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을 때 호스트에게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지금 아파트 앞에서 큰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 너희가 아파트로 들어가기까지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메시지를 받고도 우리는 큰 걱정이 없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처음 보는 코펜하겐의 평화로운 풍경에 그저 감탄하고 있을 뿐이었다.

▲ 창 밖으로 처음 마주한 코펜하겐의 풍경은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하늘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어” 갑자기 택시를 멈추던 기사님이 눈 앞의 상황을 보며 이야기한다. 2주 여행의 짐이 담긴 큰 캐리어 2개와 경량 유모차,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선 남편과 나는 상황 파악을 하기에 바빴다. 눈 앞에는 구경하는 사람들과 저 멀리 무장한 경찰들, 시위대가 보였다. 살면서 처음 마주한 상황이 하필 코펜하겐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건, TV 속 뉴스에서 보던 장면인데’


시위 현장을 눈 앞에 처음 마주한 나는 긴장했다. 아니, 무섭고 두려웠다. 남편의 표정도 나와 같았다. 먼저 호스트 대신 집 열쇠를 건네주기로 한 호스트의 여동생과 연락이 닿아야 했다. 나는 남편이 연락을 시도하는 동안 여행 짐을 챙기고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저기 경찰 아저씨들이다”

“나쁜 사람 물리치러 온 거지?”


다행인지 아이는 눈 앞의 상황을 신기해한다. 동양인 가족이 여행 가방을 들고 거리를 서성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너희 여행 왔니?”

“걱정 마~ 너희에게 절대 피해 가지 않을 거야.”

“찾는 집은 어디야?”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었지만 그 상황에선 모든 것이 어렵고 불편했다. 불안했다.

▲ 호스트 여동생 카트린의 제안으로 바로 옆 아파트로 피신해 바깥 상황을 계속 살폈다

눈 앞에 펼쳐진 이 상황이 무서웠고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결국 우리가 머물게 될 아파트 앞의 거리는 완전히 통제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곧 호스트 여동생 카트린(Katrine)을 만났다. 카트린은 우리를 안심시키며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밖은 위험하니 옆에 아파트로 우선 들어가자~”


여러 집을 찾아가 현재 우리 상황을 설명했다. 고맙게도 아파트 2층에 거주하던 남자분이 선뜻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었다. 긴장한 우리에게 과일도 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레고 장난감도 보여주며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편히 머무르라고 얘기해 주었다.


‘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위로를 전했다. 아이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해맑은 표정이었다. 그 순간 아이의 밝음이 고마웠다.

▲ 잠시 피신한 옆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 사이에는 중정으로 통하는 뒷문이 있었다(스케치)

놀랍게도 옆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 사이에는 함께 사용하는 중정(건물 안이나 사이의 뜰)이 있고 집마다 중정으로 나가는 뒷문이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카트린은 어렵게 뒷문 열쇠를 찾아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같이 모두 기뻐했다.

▲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작은 중정

드디어 도착 1시간 30분 만에 코펜하겐 첫 집으로 들어왔다. 바깥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 보였다.


“혹시 모르는 상황 때문에, 오늘까진 집에 있는 게 좋겠어”


카트린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도 긴장이 좀 풀려서인지 집에서 쉬고 싶었다.

▲ 카트린은 다음날 아침까지 먹을 수 있는 빵과 우유, 과일 등 간단한 음식을 사다 주며 끝까지 우리를 챙겼다

열쇠 전달 미션을 성공하며 우리 가족을 끝까지 챙겨준 카트린에게 다시 한번 이 글로나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소식을 전해 들은 호스트는 오늘의 사건 상황을 정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며 한번 더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지만 남아있는 긴장 탓인지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 가장 긴장한 듯 보이는 남편, 그런 아빠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고 불안한 엄마의 마음도 위로해주는 아이에게 가장 고마웠다. 잘 먹고 잘 놀고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남편과 나는 마음의 평온을 찾아갔다. 여행 내내 그 뒤로도 아이가 잠들고 나면 ‘오늘 본 딸 아이의 놀라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여행으로 아이는 어떤 것을 보고 느꼈을까?


고작 6살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함께 여행하는 동안 모든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여행의 모든 순간을 즐기며 진지하게 대하는 6살 아이에게 엄마인 나도 많이 배운다.




우리가 상상하던 코펜하겐의 일상

▲ 다음날 다시 되찾은 평온한 동네의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코펜하겐의 일상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다음날, 새벽부터 거리 정비가 시작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코펜하겐의 아침은 평온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유치원 가는 아이들, 집 앞 상점들도 모두 문을 열었다. 어제와 다른 모습에 놀랐지만 한편으론 감사했다. 함께 아침을 먹으며 고마운 사람들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 집안 구석구석 호스트의 소품과 식물들이 우리 가족의 물건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계획된 오늘의 일정을 뒤로한 채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남편과 나는 호스트의 취향이 가득 담긴 책과 식물들, 구석구석 놓인 소품을 구경했다. 이후 집 근처 소르테담 호수(Sortedams Lake)를 함께 거닐며 우리가 상상하던 코펜하겐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맞이했다.

▲ 매일 거닐던 집 근처 소르테담 호수(Sortedams Lake)의 낮과 밤 풍경



호스트와 서로의 취향을 나누는 일


두 번째 머문 집은 코펜하겐 크리스티안하운(Christianshavn) 지역의 패션 에디터의 집이다.

▲ 크리스티안하운(Christianshavn) 지역의 패션 에디터의 집, 수많은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빛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던 호스트 중 가장 적극적이고 유쾌한 호스트 파티(Fatih). 파티는 첫 만남부터 아이와 눈을 맞추며 아이만을 위한 공간 투어를 해주었다.

▲ 아이가 매일 타고 놀던 목마와 파티가 소개해준 창틀의 거북이 가족! 아이는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거북이 가족에게 안부를 물었다

“채은! (목마를 가리키며) 너를 위해 준비했어”

“(창틀의 거북이를 보여주며) 거북이들이 어제부터 너를 기다렸단다.”


호스트 파티가 자신의 공간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해준 점이 무엇보다 고마웠고 인상 깊었다. 넓고 쾌적한 욕실은 여행 후반부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한몫했다.

▲ 2주의 여행 중 가장 넓고 쾌적했던 욕실, 벽면에 꾸며진 식물들이 공간에 생기를 더해준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고를 때 즐거운 점은 누군가의 멋진 집을 사진으로 언제든지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에서 우리의 취향과 어느 지점에서든 맞닿아 있음을 느낄 때 무척이나 반갑고 신기하다.

▲ 코펜하겐 여행 전 베를린에서 우리가 구입한 바우하우스(Bauhaus) 포스터가 이곳에도!

호스트의 치약이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치약과 같거나, 좋아하는 작품이 벽에 걸려있거나, TV를 켰는데 넷플릭스가 두둥! 할 때, 무언가에 끌려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분명 서로에게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 에어비앤비의 매력! 호스트의 일상으로 들어와 누군가의 취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반가운 넷플릭스는 매일 밤 맥주와 함께



코펜하겐의 아침 풍경, 나만의 유일한 시간

▲ 아침 조깅을 준비하며 집에서 본 이른 아침 풍경은 출발 전부터 무척이나 설레게 한다

20대의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다. 결혼 후 회사를 운영하며 오른 출장길도 늘 혼자였다. 그럴 때마다 거리를 거닐며 종종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낯선 동네의 거리는 나에게 친구이자 영감을 주는 고마운 공간이었다. 2014년 아이가 태어나고 1년 후, 고민 끝에 열심히 운영하던 회사의 규모를 줄여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든 시간만을 활용하며 일을 했고, 점점 아이와 함께 엄마의 시간을 보냈다. 6살이 된 지금 아이를 보면 ‘그때의 결정은 정말 잘 한 결정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낯선 동네로 여행을 올 때면 그때의 그 시간이 더욱 선명히 떠올랐다.


“오늘 하루 혼자 여행할래?”

“가보고 싶은 곳 있으면 갔다 와~”


남편은 함께하는 여행 중에도 나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가긴 어딜 가? 같이 여행 왔으면 채은이랑 오빠랑 셋이 놀아야지~”

“말이라도 고마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고 싶은 욕구는 아이가 커갈수록 강해졌다.

▲ 자는 아이와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 본 뒤 코펜하겐의 아침을 만나러 나온다. 이른 아침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와 차가운 공기는 코펜하겐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
▲ 걷고, 뛰고, 쉬어가며 이른 아침 낯선 동네 탐방의 기록 (feat. Nike Run Club)

아이가 5살이던 작년의 여행부터 나는 아침마다 낯선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아이와 남편이 잠들어 있는 시간, 혹시 잠에서 깨더라도 “엄마 운동 갔어” 이 말 한마디면 쿨하게 받아들이는 나이, 5살의 여행부터. 이른 아침 해가 뜨고 나면 나는 엄마만의 유일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낯선 동네 탐방과 함께 건강도 되찾게 되었다.

▲ 아침 산책 후, 집 앞 빵집에서 갓 나온 빵과 커피를 사고 집에 도착한다. 여전히 곤히 잠든 두 사람을 깨우며 오늘 하루도 상쾌하게 시작! “자~ 아침이야~ 일어나 ^^”



삶의 원동력이 된 낯선 일상의 순간들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레고 하우스(Lego House)와 티볼리 공원(Tivoli Park), 루이지애나 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을 다녀온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과 공원, 동네에 머물며 보냈다. 누군가의 일상으로 잠시 들어와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여행자인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도 아름답기만 했다.

▲ 루이지애나미술관의 칠드런 윙. 어린이들이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재료를 쓰며 예술가와 건축가를 탐색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오랜 이동 시간에서 아이와 나눈 대화, 아이가 여행 중 쓴 편지(글보다 그림이 대부분이지만)와 그림들, 카메라로 기록한 여행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3개월 동안 밤낮없이 일한 남편도 매일 밤 함께 맥주를 마시며 “정말 행복하다”, “셋이 함께 있으니 너무 좋다”라고 말하곤 했다. 위험한 순간에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나눈 여행의 시간들은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삶의 원동력이 되어 그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여행을 통해서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고, 그 취향을 나누는 일은 너무나 즐겁다. 무엇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나 자신으로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진중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은 바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베를린 여행 중 횡단보도 기다리며

어떤 장소가 되었든 경험해보지 않은 일상으로의 여행은 늘 설레고 기다려진다. 함께 할 순간에 대해 아이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걸 보면 어떤 곳이든 무엇을 하든 함께라면 즐겁다. 아이와 서로의 취향을 깊이 나누고 조금은 느리게! 때론 낯설게! 이 모든 어색한 경험의 순간들이 우리가 계속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된다.


또다시 다가올 낯선 일상들이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에어비앤비 작가, 이민지

대학에서 공간디자인을 대학원에서 공공환경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재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소개하는 브랜드 컴포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6살 딸아이의 엄마로 일과 육아의 균형 있는 삶을 꿈꾸며 집, 공원, 미술관, 여행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보낸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cft.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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