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의 탄생
"간단히 사진만 찍을 거야. 너희도 여행 겸해서 올 수 있으면 와."
몇 년 전 미국으로 떠난 시누이의 전화였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결혼식에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어차피 한국을 떠난 마당에 한국에서의 시끌벅적한 결혼식은 필요 없다는 게 시누이의 생각이었다. 미국과 한국의 중간지점인 하와이(Hawaii)에서 결혼식만을 위한 번거로운 길이 아닌, 여행에 결혼식 조미료를 약간 치는 정도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나와 남편, 그리고 33개월 된 아이는 "아싸!"를 외치며 여행 준비에 돌입했다.
사실 시누이는 우리가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다.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잠깐 올 때만 만난 게 전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긴 했으나 여전히 어려운 상대였다. 그런 시누이가 나에겐 몹시도 어색한 미국인을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하니 하와이로의 여행은 너무도 좋았지만, 어색한 만남을 어째야 할까 문득 걱정이 앞섰다. 마구 들떴다가 갑자기 걱정에 휩싸였다가, 마구 설레다가 또 두려워지길 수차례. 그렇게 시간은 꼬박꼬박 흘러 여행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를 낳고 가까운 오키나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9시간 가까운 여행은 처음이었다.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대책도, 답도 없는 걱정을 해댔다. '나도 답답한데 얘는 얼마나 더 답답해할까?' 실제로 겪기도 전에 과도한 감정 이입으로 아이를 애처롭게 바라보곤 했다. '애가 1분도 안 자고 칭얼댔어', '우리 애는 11시간 동안 울었어' 유아 비행기 괴담들을 수집하며, 나날이 두려움에 휩싸여 갔다.
드디어 여행날, 나와 남편은 긴장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에 관한 건 어떤 것도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 봐야 한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아이는 프로 비행러였다. 탑승과 동시에 비행기 좌석의 여러 버튼을 순식간에 섭렵하고, 제 마음대로 보고 싶은 만화를 보고, 승무원들에게 간식을 얻어먹기까지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 도착할 때쯤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깨어나 "잘 잤어~" 하며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어른 체형에는 이코노미 좌석이 매우 불편했지만, 아이에게는 비지니스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다리 쭉 뻗고 앉고, 잘 때는 우리 자리를 마구 침범하며 편안하게 잠을 잤으니 말이다. 간식을 얻으러 비행기 맨뒤 쪽 승무원들이 식사 준비하는 공간에 다녀오더니, 아이가 나에게 귓속말로 대단한 비밀을 알려주었다.
"엄마, 비행기 집에 아줌마들이 살아요!"
여느 휴양지에서의 입국심사가 그러하듯, 간단한 인사말로 맞아줄 줄 알았다.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는 불법으로 눌러 살기 딱 좋은 구성이었는지, "달러는 얼마를 가지고 왔냐? 그게 한화로 하면 얼마냐?" 등 영어로 하는 스무고개를 서툰 영어로 몇 번이고 넘고 나서야 우리의 하와이 상륙이 허락되었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무안을 주던 입국심사원은 결심했다는 듯 도장을 쾅쾅 찍어대더니 갑자기 알 수 없는 그림의 스티커를 집어 들었다. 장갑 낀 손으로 힘들게 스티커를 떼어내, 아이의 옷 위에 살포시 붙여주는 것이 아닌가!? 가볍게 들어갔다가 초긴장으로 절정을 찍은 입국심사는 갑작스러운 스티커의 등장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진땀을 쭉 빼고 밖으로 나오니 약간 낡은 듯, 시간이 한껏 배어있는 공항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훅- 더운 공기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와 그제야 정신이 차려졌다.
“아 맞다! 우리 하와이 온 거지? 우와 하와이구나!”
시차에 긴 비행에 찌든 우리의 눈앞엔 휘청휘청 뻗은 야자수,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새파란 하늘, 누군가 잘 빚어서 얹은듯한 잘생긴 구름까지. 그야말로 하와이 다운 풍경이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다른 걱정은 사라지고 하와이에서의 첫 여행의 두근거림만이 ‘둥둥둥둥’ 어디선가 울려왔다.
5성급 호텔만 고집하던 남편을 설득해 아이와의 첫 여행으로 오키나와의 작은 오두막을 빌려 여행을 했다. 그 여행 이후, 남편과 나의 여행 준비는 매우 심플해졌다. 첫 번째, 여행지를 결정한다. 두 번째, 스케줄과 항공권을 예매한다. 세 번째, 에어비앤비를 주야장천 들여다보고 매일 각자 찾은 숙소와 액티비티, 맛집을 공유한다.
이번 여행 준비도 다르지 않았다. 하와이에서의 단독주택, 숲 속의 작은집, 멋진 뷰의 아파트. 유구한 역사의 휴양지는 에어비앤비에서도 관록을 내뿜고 있었다. 내 집의 정원처럼 바다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오두막부터, 호스트가 매일 아침 선사하는 멋진 하와이안 브런치를 맛볼 수 있는 집, 끝내주는 뷰의 럭셔리한 아파트까지. 마음 같아서는 몇 달을 머물며 하루씩 묵어 보고 싶었다. 예쁘고 멋진 집들 속에서 남편과 나는 매일 밤 행복해했다가 좌절했다가, 벌써 몇 번의 여행을 상상 속에서 끝낸 후 현실을 직시했다. 우리 가족 말고도 시부모님, 시누이 부부, 시누이 시부모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먼 곳에서 오는 아주버님의 친척들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숙소를 구해야 했기에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하와이 번화가 와이키키(Waikiki)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스카이타워(Sky Tower)라는 아파트를 선택했다. 비슷한 구조의 방 하나, 거실, 부엌, 화장실 그리고 공용 수영장이 있는 고층 아파트였다. 스카이타워는 아직은 조금 어색한 우리 모두가 따로 또 함께 할 수 있도록 6개의 집을 넉넉하게 내어줬다. 설렘, 기대, 걱정까지 뒤섞인 끝없던 여행의 준비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호스트 티아레(Tiare)를 무사히 만나고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자연스레 진 얼굴 주름이 멋진 중년의 티아레가 한쪽 귀에 꽃을 꼽고 '알로하!'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 인사를 들으며 우리는 그제야 모든 걱정을 풀어헤치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티아레는 30층짜리 아파트에서 주인이 모두 다른 15채 정도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집마다 찍어낸 듯 똑같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주인의 성향과 취향이 담겨 조금씩 다른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어떤 집은 벽이 민트색, 어떤 집은 벽에 커다란 소라껍데기가 붙어있고 침대 사이즈도 소파도 제각각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는 조금 오래된 느낌이 있어 걱정했는데, 막상 집에 들어가서는 탁 트인 전망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티라노의 발톱 같은 산줄기에 걸쳐있는 구름, 그 사이로 자주 출몰하는 하와이 특산품 무지개까지. 총 20시간에 가까운 여행의 고단함과 찌든 때가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아파트나 내부 인테리어는 세월이 느껴지긴 했지만, 애정을 담아 잘 관리된 느낌이었다. 공들여 배치된 집기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있자니 낯선 집에 들어온 낯선 사람이 아닌, 오래된 우리 집에 다시 돌아온 익숙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멋진 곳에 나만 겉도는 이질감보다는 편안한 공간에 어느새 스며들어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도 같은 감정이었는지, 마치 친척집에 잠시 머물다가 간 것처럼 자신들이 머물며 사서 쓴 물놀이 도구들을(서핑보드, 튜브, 비치체어 등)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고 떠났다. 스카이타워의 어떤 집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남겨진 물놀이 도구들을 가지고 당장 가까운 비치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둔 귀여운 모래놀이, 비치용품들을 보며 그들이 이 집에서 만들었던 여행의 흔적을 살짝 엿보는 재미까지 느껴볼 수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여행 가방에서 짐을 모두 꺼내 이 익숙한 공간에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여행자의 존재감을 뽐내는 캐리어도 벽장 안으로 훅 밀어 넣어 버렸다.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여기에서 시작한 사람들처럼. 이미 거실을 제 방처럼 가로지르며 놀던 아이는 갑자기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응 여기는 하와이 우리 집이야!"
"너무 좋아!"
"엄마, 아빠도 너무 좋아!”
우리가 하와이에 도착한 이튿날, 시누이 부부와 사돈 가족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는 연락을 받고 시아버지와 남편 우리 집 아이는 와이키키 길가의 샵들을 다니며 하와이안 셔츠를 구입해 입었다. 나와 시어머니는 한쪽 귓가에 플루메리아 꽃을 하나씩 꽂고, 하루 먼저 정착한 하와이언의 위엄을 과시하며 사돈 가족과의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아직은 어색한 시누이, 더 어색한 미국인 아주버님, 상상조차 안 되는 그의 가족까지 한 번에 만날 생각에 두근두근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15분 남짓 걸어가는 그 길이 어찌나 길던지, 우리는 모두 약간 취한 듯 흥분상태로 도착했다. 서로의 말속에만 존재하던 새로운 가족의 존재를 드디어 직접 마주했다.
"Nice to meet you!"
“Happy to meet you!”
대만계 미국인인 아주버님과 그의 부모님. 대만, 암스테르담,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G20 정상회담급으로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친척들까지. 세계 각지에서 모였지만, 왠지 익숙한 외모와 푸근한 인상에 여러 번 만났던 사람들을 만난듯한 감정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 역시 우리를 만나고 나서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시부모님은 연습해오신 영어로 열심히, 사돈 가족은 어색한 한국말로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나는 이 낯선 분위기의 상견례 자리에서 나의 결혼 전 상견례 자리를 떠올렸다. 대화는 대부분 부모님이 주도했고, 온갖 과한 칭찬들과 자식 자랑이 뒤엉킨 두 집안의 기싸움에 가까운,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가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구나. 씁쓸했던 기억과 이곳의 분위기가 오버랩됐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자식을 결혼시키는 부모의 마음을 서로 더 잘 느낄 수 있는 듯했다. 형식, 집, 서로의 학벌 이런 표면적인 것들은 모두 벗어던져졌고, 서로에 대한 걱정과 고마움, 기쁨, 설렘의 감정만이 가득했다.
저녁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예비 아주버님이 노트 한 권을 수줍게 건넸다. 오십 년 후에 이 여행을 기억하며 보려고 한다면서 이 노트에 결혼 축하 메시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우리는 이 노트 한 권에서 그의 아기자기함, 삶의 순간순간 감정을 흠뻑 느끼며 살아가는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시누이가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는 안도의 눈빛을 나누며 노트를 소중히 받아 들었다.
저녁식사 후, 우리는 다 같이 한 건물로 들어섰다가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침대에 누워 아이를 재우며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아파트에 모두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존재도 몰랐을 타국의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이 되어 이곳에 모였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스르륵 잠들었다. 모두가 잠든 에어비앤비는 그렇게 우리들을 따듯하게 품어 주었다.
드디어 결혼식날 아침. 아무 일 아닌 듯, 간단한 일처럼 모두가 얘기해 왔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온 가족이 동동거리며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여행이었다면 절대 챙기지 않았을 무거운 구두, 구겨질까 애지중지 싸온 수트를 조심스레 꺼내 입었다. 시누이는 한국에서부터 주문한 드레스를 새벽부터 낑낑거리며 입고, 나에게 드레스 등 쪽 리본 마무리를 부탁했다. 나는 단전부터 끌어모은 집중력으로 깔끔하고 예쁘게 드레스를 여미고 리본을 묶었다. "역시 미대 나온 유정이에게 맡기길 잘했어!” 시누이는 연신 드레스 매무새를 거울에 비춰보며 고마움을 표했다. 내가 미술을 전공한 것이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긴장을 감추려 억지로 웃고 떠들어대며 결혼식 장소, 매직아일랜드(Magic Island)에 모였다. 매직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누군가 마법 한 큰 술을 빠뜨린 것만 같은 곳이었다. 한없이 파란 바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빛 잔디, 거기에 새하얀 드레스까지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 우리도 여기서 결혼할걸! " 나는 남편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고, 남편은 피식 웃었다.
이미 넘치게 환상적인 이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될까 다들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오래지 않아 저 멀리서 언뜻 봐도 포스가 느껴지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남자가 우쿨렐레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신랑 신부와 몇 마디를 나눈 뒤 곧바로 기다려온 결혼식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포스만큼이나 진행도 거침이 없었다.
"신랑 OO와 신부 OO의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행복한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례는 말을 마친 후 우쿨렐레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부가 아버지와 푸른 잔디를 몇 발짝 걸어 신랑에게 도착해 자리를 바꾸었다. 둘은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주례가 꽃목걸이를 서로에게 걸어주었다. 신부는 흰 꽃과 하얀 조개껍질이 엮인 목걸이, 신랑은 하얀 꽃에 검은 구슬이 엮인 모걸이를 서로에게 걸어주고, 결혼반지를 교환했다. 그리고 하와이 결혼 세리머니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주례는 주머니에서 세 개의 주머니를 꺼내어 신랑, 신부에게 모래가 담긴 두 개의 주머니를 각각 나눠주었다. 두 주머니에 나눠 담긴 모래를 신랑 신부가 빈 주머니에 쏟아 넣게 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모래는 섞이면 분리할 수 없죠, 이 두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래처럼 섞여서 절대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 이 영광스러운 결혼을 마칩니다!"
주례이자, 축가이자, 사회이자 결혼식의 총관리자이자 모든 것이었던, 하와이 웨딩 히어로. 그는 식이 끝나자 미련 없이 뒤돌아 우리에게 왔을 때처럼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
생각보다 짧고, 시누이의 말처럼 '간단한' 세리머니였지만, 그 어떤 결혼식보다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행복한 결혼식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이렇게도 결혼을 할 수 있구나, 참 좋다!"라고 얘기했고 우리는 각자 그 짧은 결혼식에서의 좋았던 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리를 그냥 떠나기엔 큰 여운이 맴돌았기에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신랑 신부와, 사돈 부부끼리, 친척들끼리, 따로 또 같이 사진을 찍어대며 먼 훗날 이날의 공기, 우리의 감정, 서로 나눴던 행복한 눈빛, 모든 것을 기억해 내리라 다짐했다.
홀로 먼 길을 떠났던 시누이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의 가족들까지, 10명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로 왔다. 존재조차 몰랐던, 지구 각지에 흩어져 살던 우리들은 이 잠깐의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하며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르지만, 대만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LA에서, 네바다주에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에서 이날을 추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이렇게 탄생했고,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서로를 기억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광고를 만들다가, 현재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프리랜서 페미니즘 웹툰 작가, 사표 불가 33개월 아이 엄마, 본 투 비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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