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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Jan 03. 2020

그의 파리, 나의 파리가 되다

가끔은 현실이 더 영화 같다


항상 스스로를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3가지는 로맨스 영화, 연애 가이드북, 그리고 남자친구 이야기만 하루 종일 하는 친구니까. 그런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 23살에 유럽행을 결심했다. 간호학과 학생들은 휴학을 거의 하지 않기에, 부모님, 교수님, 친구들, 하다못해 오지랖 넓던 옆집 아저씨까지 말리던 휴학이었지만 나는 확고했다. 


‘지금 아니면 평생 에펠탑 그림자도 못 보겠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자마자 휴학계를 낸 후,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 끼워뒀던 아르바이트비를 탈탈 털었다. 살짝 주저한 후, 눈을 질끈 감고 항공권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 혼자서 이곳저곳 잘 돌아다녔다. ‘여행 권태기’가 오기 전까지는


스위스에서 파리로 이동하던 날이었다. 성당을 대여섯 개쯤 보고 나니 유럽풍의 모든 것이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또한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길거리 사람들의 대다수가 나를 쳐다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가끔 만나는, 큰 소리로 니하오를 외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내 소중한 하루를 망치곤 했다. (특히 소도시일수록 이목이 집중되는 슈퍼스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한 감정들이 낙엽처럼 쌓인 채, 나는 파리에 도착했다. 





가난한 학생 여행자의 선택, 파리의 제너레이터 호스텔


대부분의 경우는 호스텔 예약 사이트를 이용해 숙소를 구했으나, 친구가 공유한 에어비앤비 추천 코드를 계기로 에어비앤비 어플을 깔아보게 되었다. 고를 수 있는 옵션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어렵지 않게 내가 원하던 종류의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파리 중심가에서 너무 멀지도 않으면서, 평점도 높은 곳. 몇 번의 터치로 쉽게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금방 원하던 조건의 숙소를 열람할 수 있었다. 바로 에어비앤비의 다인실이었다.


가난한 학생 여행자에게 다인실만큼 반갑고 고마운 곳이 또 있을까. 전 재산을 털어 온 나의 우선순위는 첫째도 가격, 둘째도 가격, 그리고 마지막으로도 무엇보다 싼 가격이었다. 그랬기에 옵션은 항상 같았다. 최대 다인실(주로 10~12인실)에 남녀 혼숙인 방. 2/3 확률로 지진이 날 듯 코를 골아대는 사람이 꼭 있었지만 살인적인 물가+빈곤한 지갑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주변 환경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 위 칸 침대에서 묵었던 오스트리아 여자애는 한밤중에 뛰쳐나가 방을 옮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격만큼 다른 사람들의 후기가 그만큼 많이 있는지 또한 중요했다. 최소 10개 이상의 후기가 있어야 안심하고 예약을 잡는 편이었는데, 외국어 후기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동 번역되는 시스템이 있어 마음 놓고 후기를 열람할 수 있었다. 열심히 하트를 채워나가던 중 한 에어비앤비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다인실은 악평이 종종 있기 마련인데, 이곳의 후기는 한결같이 긍정적이었다. 


‘건물 안의 바에서 파는 햄버거가 정말 맛있습니다.'

‘지하에 있는 클럽에서 무료 칵테일을 나눠줍니다.’

‘리셉션 스텝이 친절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닮았습니다.’ 


길게 고민할 것 없이, 그리고 이곳에서 엄청난 인연의 누군가를 만날 거란 상상도 못 한 채, 파리의 제너레이터 호스텔(GENERATOR PARIS)에 홀린 듯이 예약을 했다. 


▲ 제너레이터 리셉션


각국에서 모인 젊은 여행자들의 쉼터, 제너레이터. 이곳에 일주일만 묵으면 웬만한 국적의 사람들은 한 번씩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열심히 리셉션을 기웃거렸건만, 레오나르도는 볼 수 없었다. 





가끔은 현실이 더 영화 같다


흔치 않게 비가 내리던 날, 냄새나던 파리 지하철에 시궁쥐처럼 찌든 한국인 1은 터덜터덜 에어비앤비 안으로 들어왔다. 돌덩이 같은 캐리어를 끌고 겨우 찾아 들어간 GENERATOR PARIS. 내부는 따뜻했고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입구의 문을 잡아주는 가드의 따뜻한 “Bonjour, madame.” 한마디에 실감했다. 드디어 파리구나. 이곳에서 들리는 스페인어, 저곳에서 들리는 중국어,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그 외 여러 언어들까지.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줄을 섰다. 차례를 기다린 후, 이름을 알려주고 체크인을 했다. 카드 키를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 침대 아래 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침대 위 칸으로 가기 위해 늦은 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나무늘보처럼 조심조심 기어오르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아래 칸 침대를 쓸 수 있을까요? ” 

“잠시만요. 아! 네, 하나 있네요. 다른 호실로 바꿔드릴게요.” 

지금도 가끔씩 생각한다. 만약 그때 호실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가 커다란 나비효과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숙소 내부. 각자 활동하는 시간이 달라서인지 사람이 꽉 차 있던 적은 별로 없었다
▲ 호스텔 내부의 바. 간단한 샌드위치가 먹고 싶을 때 유용하게 이용했다


바로 앞에 넓은 카페 공간도 있어 주로 이곳에 앉아 다음날의 일정을 정하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러 색의 눈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안녕!” 

어마어마한 키의 누군가가 위에서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또래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애가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나도 작은 키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나는 첼시야. 넌?” 

“수영이야. 반가워! 와, 밖에 엄청 춥다.”

그때 다른 굵은 목소리가 물었다.

“밖에 아직도 비와?”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수북한 수염을 긁으며 덧붙였다. 

“난 옴리야.”

첼시는 캐나다에서 온 프리랜서 모델로,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 위크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했다고 했다. 어쩐지 팔다리가 유난히 길더라니. 꽤 넉넉한 길이의 침대를 꽉 채우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갈비뼈가 다 드러나 보이는 그물망 같은 옷을 입은 모습은 잡힌 갈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원한 미소와 천진난만한 성격은 금방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옴리는 이스라엘에서 온 사진작가이다. 10인실에 있는 그 어느 물건보다 비싸 보이는 대포 같은 카메라는 그가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산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무게와 크기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잘 때도 카메라를 꼭 안고 자던 그는 내게 종종 그가 찍은 초, 초, 초, 고화질의 사진들을 보여줬고, 그때마다 나는 물개 박수로 화답했다. 실제로 그의 사진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와도 될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었다.

 

▲ 옴리가 찍은 에펠탑과 첼시의 사진. 매일 저녁 그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내 일과 중 하나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회색 코트를 입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눈동자 색에 시선이 갔다. 파란색도 초록색도 아닌, 밝은 옥색에 가까운 오묘한 눈동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그는 당황한 듯 사람들을 둘러보다 물었다.

“안녕, 여기 남자 방 아니야?” 

“아니, 여긴 혼성 방이야.” 

“정말?” 

당황한 그는 리셉션으로 허겁지겁 달려 내려간 후 몇 분 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다시 들어왔다. 

“남자 방을 예약했었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다. 음. 여기가 내 자리네.”

그는 자신을 루이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사람이고, 학기가 시작됐는데 지낼 곳을 미처 구하지 못해 룸메이트와 자취방을 구할 동안 지내려고 잠시 들어왔다고 했다. 9명의 여행자가 있는 방에서, 혼자 학교 과제를 정리하는 그의 모습은 현지인 그 자체였다. ‘루이라니, 정말 프랑스 적인 이름이네.’ 그게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파리에서 즐기는 작은 피크닉 <제너레이터 피크닉 모임>


리셉션 스태프가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제너레이터 호스텔에선 매주 평일 오전마다 무료로 파리 도보 투어를 진행한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내 이름을 적어냈다. 평생 살면서 해본 투어 비슷한 것이라곤, 고등학생 때 제주도 수학여행을 갔던 것이었고, 거기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흑돼지를 앞에 두고도 멈추지 않던 담임 선생님의 아들 자랑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파리에서의 투어라니. 


투어는 에어비앤비 자체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외부 투어 업체와 연결되어 운영하는 형식으로, 다른 곳에서 투숙하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40~50명 이상의 대인원으로 진행되었다. 가이드는 프랑스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영국인으로, 자신을 제임스라고 소개했다. 제임스는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프랑스인보다 잘 알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각 나라의 이름을 외치며 호응을 유도했지만, 수줍은 사람들만 모였는지 반응은 썩 마땅치 않았다. (제임스는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국인 손들어? 일본인 손들어? 를 외쳤지만, 나는 끝까지 그의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의 투어는 무료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로 좋았다. 시테섬(Île de la Cité/일 데 라 시테),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르 뮤세 두 루브르),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카테드랄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을 돌며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 그와 관련된 뒷이야기까지, 제임스는 비영어권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천천히 설명을 진행했다. 


3시간 이상을 걸으며 진행되는 투어다 보니, 혼자 온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 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행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생판 모르는 타인과 이렇게 이야기할 일이 있었을까.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것은, 여행 도중에 이렇게 투어나 클래스 등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꼭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내 시야를 확장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매력이지 않을까. 나는 투어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SNS 주소를 나눈 후 헤어졌다. 


▲ 밖에서 본 유기농 마트. 신선한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어 자주 방문했다


제너레이터 호스텔의 완벽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옆 건물에 유기농 마트 라 비 클레어 파리 콜로넬 파비안(La Vie Claire Paris Colonel Fabien)이 있다는 것이었다. 유제품, 특히 치즈와 요거트 마니아인 나에게 그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첼시, 옴리와 나는 매일 오전 신선한 각종 치즈와 여러 과일 맛이 나는 요거트를 사서 몽마르트 언덕, 에펠탑 앞 잔디 등 파리의 각종 명소에서 작은 피크닉을 즐겼다. 나는 같이 투어를 했던 여러 사람들을 모임에 초대했다. 그들을 포함해 같이 모이게 된 인원은 점차 늘었다. 며칠이 지나자 각국에서 온 7~8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해오는 <제너레이터 피크닉 모임>이 생겨났다. 서로 가까워진 여러 명의 사람들은 매일 내가 모임 시간과 장소를 공지해주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옴리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날이었다. 옴리는 파리에서 찍고 싶었던 사진은 다 찍었다며 이젠 떠나겠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다 같이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에, 모두 동의하며 방을 나설 때였다. 주섬주섬 외출 준비를 하는 와중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 루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의 가장 일찍 방을 나가 자정이 다 돼서야 돌덩이 같은 책가방을 메고 돌아오곤 했다. 덕분에 딱히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빈 공간에 혼자 남을 그가 어쩐지 마음에 걸려,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우리 다 같이 바에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음...... 좋아!” 


그는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선하다는 느낌이 금방 오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의 목표를 말하는 모습이 참 진지해 보였다. 언제까지 파리에 있을 거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모레 스페인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모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체크인, 아웃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내일 하루를 나한테 내줄래?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정말 즐겁게 만들어주고 싶어.”

별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언제 또다시 현지인이 해주는 가이드를 받아보겠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루이와 함께


다음날, 루이는 1초라도 낭비하면 안 된다며 리셉션에서 급하게 파리 관광 지도를 빌려왔다. 

"너 이곳 가봤어? 여기는? 그럼 여기는 가봤어?"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우리 여기 전부 다 갈 거야"라고 말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렇게 적극적인 성격이었다니.


“라 뒤레는 마카롱으로 유명한 곳인데, 파리까지 왔으면 마카롱 한 번 먹어봐야지!"

"이곳은 전 세계 언어로 ‘I Love you’가 써져 있는 곳인데 한 번 들리기 좋아."

"내일 몽마르트 언덕에 가면 재즈 밴드가 올 거야. 요즘 자주 오더라고."

"저녁에 에펠탑 가서 야경도 구경하자. 그게 싫으면 센 강 주변 산책도 좋아."


신난 그의 모습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문득 파리를 떠나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 라 뒤레의 내, 외부 모습. 인테리어 하나하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라 뒤레(LA DUREE)였다. 유서 깊은 마카롱 가게로, 파리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필수 디저트라고 했다. 아직까지 마카롱을 먹어보지 않았다는 내 말에, 루이는 마치 들어선 안 될 볼드모트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충격에 빠진 얼굴을 했다. 라 뒤레 내부는 마치 궁전처럼 화려했다. 직원이 고급지게 따라주는 티를 마시고(이런 곳에선 꼭 ‘쪼르륵’ 소리 나게 따른다), 반짝반짝 빛나는 접시 위에서 나이프로 마카롱을 썰다니. 잠시나마 영화 속 귀부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었다. 마카롱은 가격대는 조금 있지만 상상 이상의 맛이었다. 파삭, 하고 부서지는 식감에 이어 부드러운 크림이 쫀득하게 어우러졌다. 역시 유명한 곳은 이유가 있는 법인가 보다. 파리에 가면 꼭 한 번씩 방문해야 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프를 들고 급하게 썰어 먹는 내 모습을 보며 루이는 조용히 마카롱을 추가 주문했다. 


다음에는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으로 향했다. 피크닉 모임 때 왔던 장소였지만 마치 처음 온 것 같이 새로웠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골목골목에 초콜릿이나 마카롱을 파는 가게들도 여럿 있어 골목 전체에서 달콤한 구운 과자 냄새가 풍겼다. 사람들은 잔디에 누워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하얀 성당은 빛을 받아 더 눈부시게 빛났다. 성당 앞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사람 사는 느낌의 파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함께 시내를 내려다보며, 루이는 내게 어느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향기로운 초콜릿 덕분인지, 모던 재즈를 연주하는 밴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늘은 엽서에 나오는 사진처럼 화창했고, 루이는 장소마다 눈여겨보면 좋을 포인트를 잘 짚어서 알려줬다. 개인 가이드를 고용한 것만 같은 든든한 기분이었다. 그의 정성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주지?’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지만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최소 몇 년 이내에는 다시 오지 못할 여행자일 뿐이니까. 


▲ 노을 지는 센 강의 전경


루이는 마지막 저녁에는 무조건 에펠탑 야경을 봐야 한다며 나를 끌고 갔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낮의 에펠탑은 자주 봤지만, 밤의 에펠탑은 처음이었다. 낮과 얼마나 다르겠어, 하는 마음에 시큰둥했지만, 반짝이는 눈을 거절할 수 없어 털레털레 그를 따랐다. 밤에 보는 에펠탑은 처음이라는 나의 말에, 그는 눈을 가려줄 테니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어색했지만 알 수 없는 긴장과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듬거리고 비틀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린 후, 그는 정확하게 이곳 이라며 셋을 셀 테니 눈을 떠도 된다고 말했다. 

“셋, 둘....... 하나.”


두 눈 가득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에펠탑이 들어왔다. 살면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억이 몇몇 있는데, 이 순간이 정말 그랬다.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감격스럽고 마법 같은 순간. 싸구려 팔찌를 흔들며 원 유로를 외치는 잡상인들도, 느닷없이 장미꽃을 들이미는 집시들도 그 순간만큼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 그와 함께 에펠탑을 보고 있으니까. 그의 손등이 내 손등에 살짝 맞닿았다. 손 전체가 심장으로 변한 듯 쿵쿵 뛰는 맥박이 손등을 타고 팔까지 느껴졌다. 

“혹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면 너를 기다려도 될까? 내가 꼭 한국으로 갈게.” 

에펠탑 덕분일까. 평소 같으면 소설에서나 나오는 대사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 순간 세상에서 그것보다 달콤하게 들리는 말은 없었다.

“좋아. 우리 다시 만나자.” 


▲ 나의 첫 에펠탑 야경. 이후에 다시 찾은 파리에서도 여러 번의 에펠탑을 봤지만, 이날의 에펠탑이 내겐 최고였다





에어비앤비, 숙소 그 이상의 공간


캐리어 지퍼를 잠그고 빈 침대를 다시 살폈다. 지난 일주일 간 내 잠자리가 되어준 작은 공간. 막상 그 자리를 떠나려니 몇 년 살던 집을 나온 것처럼 아쉽기만 했다. 제너레이터에서 체크 아웃하면서 에어비앤비 앱을 다시 열었다. 후기를 작성하려고 띄운 창에서, 전엔 눈에 담기지 않았던 후기들이 새롭게 보였다.


세계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어울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게스트하우스란 정말 그런 곳이다.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은 적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대화할 수 있는 곳. 나와 다른 국적, 인종, 언어, 성향, 성격, 직업, 생활 방식 등. 교집합을 전혀 없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또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하는 곳.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어서 재밌는 거라고. 그리고, 정말 그랬다.
  

▲ 제너레이터가 이어준 인연, 루이와 함께


루이는 정말 한국에 옴으로써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현재 2년 넘게 서로와 함께 하고 있다. 아직도 가끔 제너레이터에서의 일을 추억하며 정말 영화 같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수영


배우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은 25살.

지금은 응급실에서 제일 빨리 뛰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행 다니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인스타그램 @puppy2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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