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Dec 13. 2019

당신은 ‘자연 여행자’입니까 ‘도시 여행자’입니까?

어느 도시 여행자의 자연 여행 이야기

한 사람, 한 사람이 꿈꾸는 각자의 여행이 있다. 지구에는 그렇게 수십억 개의 여행이 존재한다. 그 수많은 여행 중, 단 한 가지 질문만으로 여행자의 취향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당신은 ‘자연 여행자’입니까? ‘도시 여행자’입니까?


나는 전형적인 도시 여행자였다. 뉴욕,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호찌민, 홍콩, 쿠알라룸푸르, 방콕 등. 이미 지도에 찍힌 수많은 점들이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어떤 확고한 취향 때문이었다. 낮에는 유명하고 인기 많은 음식점에 줄을 서 한 끼를 해결할 것. 그들의 문화재와 생활 모습에 수많은 셔터를 누를 것. 저녁에는 도시의 빽빽함 만큼이나 촘촘히 빛나는 야경을 보며 술 한잔을 할 것.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인 대중교통을 타며 그들의 면면을 관찰할 것.

▲ 터키 쿰카피 시내의 번잡한 모습

혹은 단순한 습관의 축척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토록 위대한 대자연으로의 여행 경험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으며, 타오르는 젊음이 연료가 되어 한적한 평온함과 시끌벅적한 활기 사이에서 후자가 더 끌렸을 수 있겠다.


그러던 내가 선택하게 된 이번 여행지는 터키였다. 도시와 자연을 넘나드는 일정. 기존의 내 여행과는 색다른, 또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하고 싶던 마음과 터키라는 여행지는 딱 들어맞았다. ‘터키를 가려거든, 모든 여행의 마지막에 가라’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의 주요 요소인 도시, 문화, 자연, 음식을 모두 품고 있는 곳,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혼재하는 곳. 터키를 반 바퀴 도는 이 여행을 완료함으로써 스스로가 좀 더 숙련된 여행자가 되기를 바랐다. 혹여 이를 통해 나는 새로이 자연 여행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겠으며, 반대로 도시 여행자임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도시와 자연을 넘나드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데칼코마니


카파도키아(Cappadocia) 괴레메(Göreme)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소금호수 투어를 신청했다. 숙소에서 편도 약 2시간 반의 꽤 기나긴 일정. 왕복 이동 시간만 거의 5시간, 거의 반나절 이상을 쏟아붓는 일정이었다. 그 이유는 정말 새로운 자연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보던 여느 바다와, 호수와, 강과는 전혀 다른 풍광.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괴레메에 머무는 이틀이라는 시간 중 반나절을 투자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투즈괼(TuzGölü)  호수. 이미 SNS상에서 유명한 볼리비아 소금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금호수다.


평야를 지나고 지나, 연속된 풍경의 지루함이 몸의 찌뿌듯함으로 승화될 무렵, 목적지에 다다랐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싶었다. 국도와 고속도로의 중간쯤 되는 어느 길에서 우리를 태운 차량은 샛길로 핸들을 꺾었다. 그 길과 뜬금없이 이어진 논두렁 같은 길을 한 50m가량 지나 갯벌 초입 비슷한 곳에서 우리는 내렸다. 하얀 소금이 콕콕 박힌 진흙. 그것의 촉감을 느끼듯 조심스럽게 밟으며 우린 본능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그 시야 너머에는 물과 빛이 반반 섞인, 아니 서로 뒤엉킨, 난생처음 보는 어떤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 투즈괼 소금호수. (왼)물이 마른 가장자리는 소금 결정이 드러난다. (오)핑크빛으로 반사된 소금호수 안쪽의 바닥 사진.

수학에서 8자를 눕힌 모양의 무한대를 풍경으로 시각화한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의 시야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오로지 태초에 나와, 물, 소금, 그리고 하늘. 이 단 네 가지 것만으로 온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됐던 것 같다. 거울을 마주 보고 세워 끝없이 펼쳐진 무한의 반사를 옮겨 놓은 듯한 연속된 빛의 향연.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상대를 만난 듯,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던 것은 결코 허튼 과장이 아니다.


소금을 밟는 사각사각거리는 소리. 그것이 그려낸 물의 파동은 호수의 물결로 이어졌다. 한 발짝 마다 여러 겹의 물결이 저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경계가 허물어질 무렵, 걸음을 멈췄다. 호수 한가운데 우뚝 서서 360도를 돌며 곳곳을 눈에 담았다. 특정 각도에서 각기 다른 색을 반사하는 소금물은 분홍에서 흰색으로 그리고 하늘의 색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색감과 거리감. 그곳에서 나는 하늘과 땅의 중간 어딘가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느꼈던 것 같다. 작열하는 태양이 위에서 그리고 소금에 난반사된 빛이 아래에서 온몸을 태우고 있었지만, 그것은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이 경이로움에 취해 그런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 이 거대한 아름다움을 한낱 초라한 기계들에 최대한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 몽환의 경계. 자연이 만들어낸 데칼코마니

친구와 나는 이 황홀함에 젖어 서로의 사진을 무수히 찍었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반사된 모습은 상대방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자연이 만들어낸 데칼코마니. 특유의 독특함으로 무장된, 실로 이 신비한 경험을 무척이나 자랑하고 싶었던 사진들. 사진들이 디바이스의 메모리를 가득 채울 무렵, 그리고 해의 위치가 처음과는 조금 달라졌을 무렵, 우린 각자 무언가를 담은 채로 그 호수에서 나왔다.




다른 시간, 다른 높이에서의 풍경


여행지에서의 오후 7시는 나에게 늘 중요한 시간이었다. 매직 아워라고도 불리는, 바로 일몰을 볼 수 있는 시간.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항상 6시부터 8시는 무조건 야경을 보는 시간으로 남겨두었다. 도시의 매연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일정 높이의 곳. 혹은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 도시의 빽빽한 야경들. 어둠에 도전장을 내밀듯 솟아오른 빌딩들의 빛. 그 빛과 어둠이 상충 혹은 공존하여 만들어낸 몇 장의 검은 점묘화. 그것을 좋아하던, 그것을 보기 위해 여행을 하던 나는 2019년 10월 14일, 완전히 새로운 충격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일몰의 시각이 아닌 일출의 시각, 오전 7시. 새벽 6시부터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우리를 광활한 평지로 데려갔다. 흙바람이 이는 그곳,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의 시간. 비행 준비에 여념 없는 수십, 수백 개의 열기구는 어둠을 밝히는 커다란 무드 등이 되어 있다. 간간이 들리는 치이익 거리는 점화 소리.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 그것과 함께 부풀어 오르는 열기구의 풍선만큼이나 마음도 역시 팽창하고 있다. 그리고 이내 두둥실, 열기구는 떠올랐다.

▲ 비행을 준비하는 열기구들은 마치 어둠 속의 무드등 같다.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우리는 하늘에 닿고 있었다. 열기구는 꽤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하늘에 어떤 축을 고정하여 도르래를 이용해 천천히 끌어올리듯. 불안함을 느낄 어떤 작은 흔들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떤 높이에 이르자, 터키에 온 이유이자 그토록 꿈꾸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 카파도키아 벌룬 투어. 1시간 여의 비행. 12년 여행 인생 중 최고의 경험을 하다.

시야 뒤편의 산에 빼꼼 걸려있는 태양. 주황색과 밝은 하늘색이 적절히 섞인 톤을 배경으로 카파도키아의 독특하고 아찔한 협곡. 그리고 공중에 촘촘히 점 찍힌 색색의 열기구들. 이는 다른 세계, 혹은 다른 행성으로 불시착하는 도중 바라볼법한 풍경과 같았다. 이렇게 자연과 인류의 노력이 하나가 된 풍경의 조화는 탄식 섞인 감탄만을 자아내게 한다. 바람만큼이나 고요한 16명의 정적.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불쑥 솟는 이상한 마음. 너무 좋다는 생각보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는 마음.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딴에는 수많은 나라, 수많은 곳에서 꽤 다양하고 멋진 경험들을 해왔다고 우쭐함을 갖고 살았었는데, 그 마음이 한순간에 쪼그라들었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아직 한참 멀었구나. 그리고 아직 많이 남았구나.’ 여러 감정이 뒤섞인 상태의 나를 달래기 위해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내 상기된 목덜미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 열기구는 주택가의 지붕 위로도 비행했다.

그렇게 열기구는 1시간 동안 비행했다. 위로 아래로. 협곡 사이사이로. 주택가의 지붕 위로 비행했다. 모두가 다양한 방향을 볼 수 있도록 뱅글뱅글 돌기도 했으며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번에 걸쳐 좀 더 오래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카파도키아 대자연의 모든 면면을 보았다. 위대한 하늘과 평야, 그리고 협곡. 자연이 가진 압도적인 크기에서 나오는 경외감. 그 한 시간 동안의 공중 비행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새로운 다짐을 품게 했다.




바다를 품은 한적한 소도시 카쉬(Kaş)


이번 여행에서 숙소는 매우 특수한 위치인 카파도키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기로 했다. 8일 동안 7개의 도시를 이동하는 일정. 그 빡빡한 일정 동안 나는 터키 국내선 비행기를 3번 타야 했고, 차량 렌트를 3일이나 해야 했다. 그래서 숙소에는 주차장이 필요했고, 촉박한 시간 탓에 번화가와 접근성이 좋아야 했다. 그리고 집에 대한 단순한 로망으로서 야외 발코니나 테라스가 갖춰진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서 이런 조건들을 갖춘 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에어비앤비와 함께 한 터키 여행. 모든 숙소에는 바다가 바로 내다 보이는 루프탑이나 창문이 있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Antalya)까지 비행기로 1시간 반. 그리고 안탈리아에서 서남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바다 마을 ‘카쉬.’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점에 우린 이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온전히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은 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 숙소. 수많은 에어비앤비 사이에서도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발코니였다. 거실의 창문을 열면 바로 바다를 향해 내어져 있는 공간. 네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크기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눈앞의 풍경을 가리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높이의 난간. 검색하다 우연히 보게 된 발코니 사진 하나만으로도 “유레카”를 외칠 뻔했던 그곳. 우리는 어느덧 그곳에서 일몰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쉬에서 묵은 에어비앤비(PANORAMA KAŞ APART OTEL)

일몰 촬영을 위해 타임랩스를 설치하고 준비해 온 맥주 한 모금을 삼켰다. 작은 마을이 한눈에 담기는 위치. 내리막 비탈에 살짝 붓 터치를 한 듯 한적히 놓인 빨간 지붕의 주택들. 그리고 한쪽엔 모스크의 첨탑이 삐죽삐죽 이국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하나의 섬을 사이로 두 개의 바다가 있다. 왼쪽은 관광객을 기다리는 보트들이 정박해 있는 너른 해안가. 오른쪽은 한적한 요트들이 둥둥 떠다니는 작은 해안가.


어떤 고민이라도 풀어놓을 수 있는 하늘. 그리고 너른 바다. 굳이 맥주 한잔에 의지하지 않아도 털어놓게 되는 이야기들. 이것이 자연의 힘이었을까. 멍한 눈으로 계속해서 풍경을 좇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 눈에 쏠려 있던 집중은 어느덧 머릿속으로 향한다. 그렇게 붉게 물든 하늘에 한국에서 털어내지 못하고 가져온 잡념을 풀어 녹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잡념의 농도는 옅어지고 하늘의 색은 짙어진다.

▲ 나의 색이 하늘로 전해지는 순간들

이런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캐치프레이즈에 확 쏠렸던 마음 한편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런 이벤트가 생긴다면, 혹여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꿈꾸던 집은 이런 집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매일 빽빽한 빌딩 숲을 지나고, 숨 막히는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버스 손잡이에 위태롭게 매달리고. 그렇게 치열하고 바쁘게 달려 마지막에서야 멈추는 곳은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 앞. 뒤를 돌아보면 사방의 풍광을 막아선 아파트에 지쳐 이런 곳에 대한 로망이 슬며시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카쉬에서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 소소하게 과자를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에 맥주 한잔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저 멀리를 내다보았다. 화려한 불빛이나 조명 없이, 수많은 별빛이 내리쬐고, 바다의 파도 소리가 미세하게 귀에 닿는 곳에서. 결이 다른 한적함이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편안함. 우린 그렇게 잠시나마 꿈속의 집에서 살아보았다.




그들의 삶. 그 언저리에 살포시.


▲숙소 앞의 무지개 색 계단. 파스텔 톤의 색감은 늘 그 존재 자체로 평온함을 선사했다.

관광지보다는 근처의 주택가. 깔끔한 도로보다는 좁은 골목길. 마지막으로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 여행에서 에어비앤비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곳에 사는 누군가의 집. 그 집을 매개체로, 그 위치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맞닿아보는 것. 누구나 볼 수 있는 훤히 드러난 표면이 아닌 그 속의 면면을 볼 수 있는 것. 이것은 여행을 좀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 이스탄불의 첫 번째 숙소였던 쿰카피(Kumkapı) 지역 근처의 주택가.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계단이 있던 오르막길 중간에 위치한 숙소. 그 덕에 이 계단을 관찰할 일이 많았다. 밝은 날엔 동네 아이들이 뛰놀기도 했고, 해가 저물면 어떤 가족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일상의 모습. 어릴 적 까마득히 더듬을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의 모습. 색이 칠해져 있다는 것 외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계단이었지만, 그들의 말소리가 배경음악이 되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장면으로 겹쳐지며, 어떤 푸근한 영상미로 머릿속에 잔상이 되어 남게 되었다.

▲ 쿰카피(Kumkapı) 지역. 전 세계에서 한밤중임에도 이 정도 열기를 지닌 곳은 아마 몇 없을 것이다.

그 수수함을 뒤로하고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오면, 한창 달아오른 동네 술집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생생하고 날 선, 푸근함과는 또 다른 풍경. 그곳에는 우리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늘 마을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근방을 지나칠 때마다, 그는 항상 상기된 얼굴로 반가움 가득한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한 꺼풀 한 꺼풀을 지나 심지까지 깊숙하게 들어온 곳. 골목을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차들. 술 마시고 투닥거리는 아저씨들. 곳곳의 쓰레기들이 내뿜는 퀴퀴한 냄새까지. 가공되지 않은 투박함과 까슬거림이 그대로 피부에 전해지는 곳.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이런 곳에선 그런 마음이 된다. 정말 솔직한 상대를 만나 구구절절 수다를 떨고 싶어 지는 마음이랄까. 어쩌면 이곳에선 그리 무게를 잡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 낯선 이방인과 현지인들. 서로를 경계하지만 호기심 역시 혼재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의 상태.

시내의 유명 호텔이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그들만의 모습. 내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라 느끼는 것. 그 느낌을 본인 스스로 체감하는 것이 정말 한국을 떠나 멀리 여행을 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여행의 정체기에 있는 그대들에게

▲카푸타스 해변은 내 생애 최고의 바다였다.

그간 늘 새로움을 찾아 떠났던 여행이었다. 동북아의 깔끔한 건물들을 보며 감탄을. 동남아의 치열한 삶과 활기를 보며 흥분을. 유럽의 고풍스럽고 세련된 도시 분위기에 낭만을. 미주의 치열한 속도감과 선진국의 위엄을. 그리고 그다음은 과연 무엇이 채울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이제야 답을 좀 찾은 기분이다.


이번 터키 여행의 최대 수확은 자연의 무한한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량으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행지가 너무 많다. 클레오파트라가 일몰을 바라보며 목욕을 했다던 ‘시데(Side)' 렌터카 여행의 이유였던 ‘카푸타스 해변(Kaputas Beach)’ 새하얀 석회층이 비현실적인 자태를 뽐내는 ‘파묵칼레(Pamukkale)’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스탄불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지금 당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지방 소도시의 특색 있는 자연경관이다.

▲ 시데의 아폴론 신전(Apollo's Temple) 두 시간 남짓의 일몰을 보려 왕복 세 시간을 운전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많은 것이 허락되어야 하는 자연. 날씨나 계절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명확히 갈리는 자연. 대자연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고, 심지어 멀기까지 하다. 그래서 도시 여행보다 좀 더 어렵고 힘든 여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줄곧 도시를 선택했던 것은 그런 위험부담이 싫어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모든 위험부담이 해소되는 순간, 역경을 돌파한 후 맞이하는 대자연의 희열은 몇 배의 감동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아직도 그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 중이다.

▲ 파묵칼레(Pamukkale). 이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대자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번 여행 이후 나는 자연 여행에 발을 살짝 디뎠다. 완전한 전향까지는 아니지만, 도시와 자연의 교집합 중간 어디쯤까지는 다다랐다. 벌써부터 다음 여행지로 스위스를 알아보고 있으니 말이다. 똑같은 여행에 지쳤다면. 혹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다른 하늘이 그리워진다면. 다른 공기를 맡고 싶다면. 바닥이 훤히 비치는 바다를 보고 싶다면. 도시에 지쳤다면. 삶이 너무 급박하고 팍팍하다면.


크게 한번 마음먹자 그리고 떠나보자. 저 멀리 거대한 자연으로.




에어비앤비 작가 김용태

‘안녕 그리고 안녕’의 저자. 2011년, 음악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김동률, 이적, 윤종신 등 싱어송라이터를 좋아한다. 이병률, 강세형, 이석원 등 에세이 작가를 좋아한다. 2010년부터 26회, 12개국을 여행했다. 현재 모 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mindmoon21

브런치: @mindmoon21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