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누군가 내게 물었다. “여행이 왜 좋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나에게 있어 일상은 벗어나고 싶은 존재였다. 당시 나는 1년의 휴학 후 복학한 학교에서 조별 과제 6개와 자격증 공부에 치이며 하루하루를 마지못해 살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서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밤새워 발표 자료를 만들고 있던 어느 날, 항공사 특가 판매 이벤트를 통해 태국 방콕(Bangkok) 행 비행기를 덜컥 결제해 버렸다. 티켓 값이 가장 싼 날짜를 선택하니 10일이라는 꽤 긴 일정이 잡혔다. ‘방콕에만 머무르기에는 너무 길지 않을까? 어디를 더 가 볼까?’ 서점 여행 서적 코너에 서서 서성이다 무심코 치앙마이(Chiang Mai) 여행 가이드북을 집어 들었다. 여유로움. 치앙마이를 소개하는 많은 미사여구 중 가장 깊게 여운을 남긴 단어였다. 그래, 나에게는 여유가 필요해. 치앙마이는 그렇게 내게 처음 다가왔다.
치앙마이의 첫인상은 외국인에게도 따뜻한 도시라는 것이었다. 치앙마이 공항에 내려 출구 표지판을 따라가니 택시 승차장이 나온다. 도심까지 가는 택시는 정찰제로 무조건 가격이 동일하다. 처음 오는 외국인이라도 바가지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택시를 탈 수 있는 도시. 예약해 둔 호스텔로 향하는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택시 기사는 치앙마이에는 경치가 예쁘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많다며 몇몇 장소를 추천해 주었다. “잘 가. 치앙마이에서 좋은 시간 보내.” 친절한 그의 인사에 치앙마이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카페만 이용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덕분에 그곳에 머문 일주일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학생, 일을 그만둔 후 홀로 동남아 일주를 하던 일본인, 친구끼리 배낭여행을 온 일행, 항상 웃는 얼굴로 맛있는 커피를 내려 주던 바리스타. 내가 생각했던 치앙마이는 혼자서도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와서 직접 느껴 본 치앙마이는 단순히 여유로운 곳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여유를 함께 해 줄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고, 호스텔 라운지의 빈백에 기대어서 책을 읽고, 밤이면 맥주 한 병씩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앙마이에는 여유로움,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 또다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졌을 때 생각난 것은 치앙마이의 사람들이었다. 다녀와 봤으니 익숙하기도 할 터. 이번에는 한 달 동안 살아 볼까. 난생처음 장기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충동적이었다. 치앙마이 가이드북을 처음 집어 들었던 그 날의 느낌처럼, 이번에도 그저 치앙마이에 가기만 한다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광고 문구처럼, 에어비앤비는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해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 호텔에서 한 달 동안 머물기에는 너무 비싸고, 반면 호스텔에는 나만의 공간이 없으니 불편할 테고. 적당한 가격에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에어비앤비는 한 달 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이번 에어비앤비 숙소는 산티탐(Santitham) 지역에 있는 한 레지던스였다. 슈퍼호스트 라벨과 멋진 수영장 사진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후기였다. 후기 페이지는 호스트 엑스(X) 덕분에 치앙마이 여행이 더 즐거웠다며 그를 향한 칭찬 일색의 글로 가득 차 있었다. 빨리 치앙마이에 가서 그를 만나보고 싶어 졌다.
자정을 넘은 시각,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만난 엑스는 후기 그대로 매우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호스트였다. 늦은 밤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가 내게 건넨 첫마디는 서투른 억양의 “안녕하세요.” 치앙마이에 와서 들은 첫마디가 한국어라니. 반가운 마음에 “한국어 할 줄 아세요?”라고 물으니, “아니요, 이번에 한국인 게스트가 온다고 해서 외워 두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경유를 위해 마카오(Macau) 공항에서 노숙한 탓에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유창한 영어로 열심히 숙소 이용 방법을 소개해 주던 그는 가기 전 비닐봉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혹시 팟타이 먹어본 적 있어요? 밥 못 먹었을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엑스의 따뜻함 덕분인지 아니면 팟타이 덕분인지, 한 달 살기 첫날밤부터 아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치앙마이행 비행기 안에서 딱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매일 한 군데씩 새로운 장소에 가 보거나, 혹은 하나씩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기. 한 달 동안 유일한 내 고정 일과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다음 날의 새로운 행위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카페, 새로운 식당,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액티비티. 그 덕분에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일상 속에서 찾은 작은 행복을 타인과 나누며 두 배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사람은 산캄팽(San Kamphaeng) 지역에서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다(Da) 아저씨였다. 할 수 있는 요리란 라면과 간단한 달걀 요리밖에 없었지만 치앙마이에 온 이상 쿠킹 클래스 정도는 참여해 봐야지. 치앙마이 도심 안에도 많은 쿠킹 클래스가 있었는데, 그중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다 아저씨의 부엌 사진이었다. 클래스에 포함된 것은 왕복 교통편과 요리에 필요한 모든 재료, 그리고 환한 미소.
다음 날 에어비앤비 앞까지 픽업을 와 준 다 아저씨의 남동생은 홈페이지에 있던 설명 그대로 미소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클래스를 예약한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의도치 않게 조수석에 앉는 특혜를 누리게 되었고 클래스 장소까지 가는 30여 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와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원래 다 아저씨는 가족들과 함께 도시에 살았는데, 정신없이 흘러가는 도시 생활에 공허함을 느끼고 치앙마이에 돌아와서 유기농으로 농장과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치앙마이에 여행 온 이유랑 똑같잖아? 아직 다 아저씨를 만나지도 못했지만,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사실 하나로 벌써 친근함을 느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푸른 하늘은 내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농장에 들어서는 순간, 녹음으로 뒤덮인 한갓진 풍경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야외 주방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재료를 볶고 있자니 마치 셰프가 된 느낌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이끌어 준 다 아저씨 덕분에 제대로 된 칼질을 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요리 초보인 나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린 카레, 치킨 수프, 팟타이, 디저트까지 네 가지 요리를 연달아서 만드는 동안 어느새 나와 다 아저씨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치앙마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자연을 즐기고, 자신이 사랑하는 태국 요리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현재의 소박한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 다 아저씨의 쿠킹 클래스 홈페이지 : http://dafarmthaicookingschools.com/
나는 카페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페라는 공간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발견해 나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커피까지 입맛에 맞는다면 금상첨화. 카페 스틸 커피 앤 라이프(Still Coffee & Life)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었다.
와로롯 시장(Warorot Market) 근처 오래된 쇼핑몰 건물 4층에 위치한 카페.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눈앞에는 건물이 주는 다소 허름한 느낌과 대비되는 세련되고 환한 공간이 펼쳐졌다. 한쪽 벽을 허물어서 만든 통유리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옛 공간과 새 공간의 간격을 더욱더 극대화시킨다. 오늘은 어떤 커피를 마셔 볼까. 이 공간의 주인인 낫(Nat)은 내게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며 카페 라테가 제일 맛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트북 속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책을 읽었다. 한껏 집중하고 있는 나를 두드린 건 낫.
“퇴근하고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으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좋아.”
커피라는 공통점이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힌 것일까.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데려가 준 곳은 치앙마이 현지인 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30년 된 야외 식당. 핑강(Ping River) 근처에 있어서 예쁜 노을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낫은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며 이런 로컬 식당에 현지인과 함께 왔으니 지금까지 안 먹어봤던 태국 음식들 다 먹어보라며 사람 수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했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 건축을 전공한 친구, 카페를 운영하는 낫, 그리고 관광을 전공한 나. 우리 네 명의 전공이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색다른 조합이다.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히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다. 낫에게 물었다. “왜 카페를 차렸어?”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유학 시절 커피에 빠져서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고향 치앙마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과연 나는 내가 가진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과 함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치앙마이에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치앙마이에 처음 왔을 때 머물렀던 호스텔의 매니저 에이(A)로부터 보육원에 봉사를 하러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태국어를 못 하는’ ‘여행자’라는 내 입장이 선뜻 긍정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게 했다. 일회성 방문이 되어 버릴 텐데 오히려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이 벽을 허물어 준 것은 아이들의 미소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태국어란 ‘사왓디 카(안녕하세요)’뿐. 일단 인사는 하긴 했는데 이제 뭘 하면 되는 걸까. 쭈뼛거리며 앉아있던 내게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앉더니, 환한 미소를 짓는다. 같이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었다. 언어의 장벽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갔던 아이는 유난히도 수줍음이 많았던 단발머리의 여자아이였다. 나와 그 크고 맑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워하더니, 가기 전에 나에게 포옹을 하며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비록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출발했지만, 돌아올 때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왔다. 에이도 봉사를 하러 가는 날에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며 나와 똑같은 말을 한다. 에이의 행복은 나에게로 와서 두 배가 되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엑스는 세심함 그 자체였다. 애플리케이션의 메시지를 통해 불편한 점은 없는지 꼬박꼬박 체크해주었다. 그런 그가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마지막 날을 책임져 주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치앙마이 현지 대학생처럼 지내보자는 말과 함께 그가 날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치앙마이 대학교(Chiang Mai University).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자 산책하기 좋은 커다란 호수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잘 알려진 장소이다. 관광객이 혼자 학교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정문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엑스와 함께한다면 문제없다.
그는 치앙마이 대학교 졸업생답게 완벽한 가이드가 되어주었고, 나는 누구보다 더 구석구석 학교를 탐험할 수 있었다. 여기는 커피가 싸고 맛있는 카페, 여기는 산책 코스로 좋은 곳, 여기는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곳. 우리는 저녁 식사까지 학교 앞 야시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내가 치앙마이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카오소이(태국 북부 음식, 카레와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인 국수)를 한 그릇씩 앞에 두었다. 그는 나에게 한 달간의 치앙마이 생활이 어땠냐며 소감을 묻는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탓에 순간적으로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모든 말을 함축해서 “치앙마이에 꼭 다시 올 거예요.”라고 하니, 그는 씩 웃으며 자신의 고향 치앙마이를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대답한다.
나는 대학에서 관광이벤트학을 전공했다. 전공 공부를 하며 관광의 여러 특성 중 하나인 ‘비일상’이라는 용어와 수도 없이 마주쳤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아님. 나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동경해왔다. 지금까지의 내 일상은 항상 무언가를 향한 마라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대학생 때는 취업. 목표를 이룰 때까지 반복되는 하루. 나는 케이지 안에서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였다.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한 행복은 목표를 성취해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일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금 힘들더라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고, 나는 여기서 오는 공허함을 해외여행에서 느끼는 비일상을 통해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이것을 너무 동경한 탓에 한때는 해외로 나가서 새로운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해 해외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도 했었다. 지금의 비일상이 그곳에서는 다시 일상이 될 텐데. 나를 쳇바퀴에서 꺼내 준 것은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일상을 타인과 나누는 행위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행복은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시미 이치로는 여행을 떠날 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경치를 즐기듯, 오늘 하루를 만족하며 지내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의 책 제목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을 줄인다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 다섯 번째로 다녀온 치앙마이 여행에서는 마치 출석 도장을 찍는 것처럼 저녁마다 재즈바 노스게이트(North Gate)에 가서 맥주와 음악을 즐겼다. 그곳에서 나처럼 혼자 온 여행객들과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다들 내게 왜 다섯 번이나 여기에 왔냐고 묻는다. 한 달 살기까지 해 놓고 뭐가 그렇게 좋아서 또 왔냐며. 그때마다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한다. 치앙마이는 나에게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곳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해서 현지 사람들처럼 살아 본다면, 분명 그 기억이 일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내게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맞은편에서 다가오며 환하게 인사를 건네준 아주머니,
빨래 더미를 들고 찾아가면 “이제는 말 안 해도 내일 오후 6시 이후에 찾으러 오는 것 알지?”라며 호탕하게 웃던 에어비앤비 정문 앞 세탁소의 주인아저씨. 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내가 읽던 책을 보고 한국인이냐며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수줍게 웃던 바리스타, 러스틱 마켓(Rustic Market)에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의 유창한 3개 국어로 손님을 맞이하며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기 일이 즐겁다며 웃던 주인아저씨. 모두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찾아 나눠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나의 일상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이 다짐이 흐려질 수도 있겠지만, 뭐 어때. 또다시 치앙마이에 다녀오면 되니까.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관광 마케터. 내 세상을 넓히는 모든 일을 사랑해서 글을 쓰고, 번역하고, 명상하고, 공부하고, 모임에 나가고, 여행합니다. 여행 에세이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에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인스타그램 : @dasx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