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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Jan 13. 2020

육해공 하드코어 이탈리아 신혼여행

 Eat, Play, Love

우리 커플은 여행 스타일이 비슷하다. 여행지에 가면, 여유 있게 쉴 만도 한데 참 가만히를 못 있는다. 계속 걷고, 또 걷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계속 움직인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를 좋아한다. 비슷한 여행 스타일 덕분인지 우리는 커플에서 부부가 되었고, 부부가 된 후의 우리의 첫 여행지는 이탈리아 남부였다.




미운 오리 나폴리를 사랑하는 방법


여행 3일 차에 와이프는 나에게 말했다. “나 나중에 늙으면 여기 와서 나폴리 할머니로 살래!"


우리 신혼여행의 첫 도시는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였다. 이탈리아에 오는 많은 관광객들은 주로 로마에 머물면서 당일로 혹은 짧게 남부 투어를 다녀오곤 한다. 흔히 말하는 남부 투어란 버스를 타고 하루 만에 포지타노(Positano), 아말피(Amalfi) 등을 둘러보고 오는 투어이다. 남부에 머무는 관광객들도 주로 포지타노나 아말피에 머물고, 정작 남부로 향하는 거점도시인 나폴리에는 많이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찾아봐도 나폴리는 그 규모에 비해 여행정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편이고, 치안이 안 좋다던가, 여행하기 위험하다는 등의 안 좋은 이야기도 꽤 많다.

▲ 우리를 사로잡은 나폴리의 풍경

미운 오리와 같은 나폴리,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나폴리는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 준 도시였다. 우리 부부가 나폴리를 사랑하게 된 세 가지 키워드는 피자, 젊음, 여유였다.




나폴리 하면 역시 ‘나폴리 피자’


나폴리에는 3대 피자집이 있다. 소르빌로(Sorbillo), 디 마테오(Di Matteo), 다 미켈레(Da Michele). 워낙 맛있다 보니, 당연하게도 사람이 너무 많다. 피자집에 앉아서 피자를 먹으려면 기본 1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테이크아웃을 선택했다. 실제로 피자집을 찾아가 보면, 젊은 이탈리아 친구들은 테이크아웃으로 피자를 사들고, 주변에 있는 계단, 벤치 등에 걸터앉아서 자유롭게 피자를 먹곤 했다. 그 힙한 바이브에 우리 부부도 질 수 없었다. 피자와 맥주를 테이크아웃으로 사들고 나와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 나폴리피자를 마주한 세상에서 제일 흐뭇한 표정의 나, 나폴리 거리의 노상 피맥

기본적으로 나폴리 피자는 1인 1 피자가 원칙이다. 화덕에서 금방 구워져 나오는 나폴리 피자는 한국에서 먹던 두툼한 피자와 비교하면 얇다. 두툼한 한국식 피자를 좋아하던 나는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직접 먹어보니 엄청 맛있었다. 나폴리에서 ‘나폴리’ 피자를 먹으니,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별로 특별한 것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아주 맛있었다.


나폴리에 가면 꼭 3대 피자집을 모두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3대 피자집 모두 스타일이 다르고, 사람이 많지만 모두 다 맛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으로 밖에 있는 벤치나 돌계단에 앉아서 맥주와 함께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나의 추천은 디 마테오 피자, 와이프의 추천은 소르빌로 피자다.

▲ 낮이든, 밤이든, 피자집 앞은 기본적으로 이 정도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우리 부부가 느껴본 나폴리는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훨씬 젊고 활기찬 도시였다. 굳이 피자를 밖에서 먹는 젊은 친구들 때문만은 아니었고, 실제 인구 비중에서 젊은 청년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보였다. 로마, 파리 같은 유럽 대도시에 가면 여행을 온 젊은 여행객들이 많지만, 이곳 나폴리에선 여기 나폴리에 살거나 혹은 주변에 살지만 나폴리로 놀러 오는 젊은 이탈리아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 덕분에 도시 전체가 젊고 활기찬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신기하게도 해가 지고 나면, 거리는 젊은 친구들로 가득 차곤 했다.


우리가 묵은 에어비앤비 덕분에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나폴리에서 예약한 스테파니아(Stefania)와 레이몬도(Raimondo)의 에어비앤비는 대학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주변에 젊은 친구들이 참 많았고, 그들은 늦은 밤까지 밖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소리를 지르는 고성방가가 아니라 딱 맥주 한 병씩만 들고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 활기차고 젊은 기운이 기분 좋게 전해졌다. 우리 부부도 밤에 그들과 함께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 활기찬 늦은 밤, 젊은 나폴리의 모습

나폴리는 도시 가운데에선 이렇게 젊고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가도, 조금만 걸어 나가면 느긋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나폴리가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에 꼽히는 나폴리는 지중해를 끼고 있어 바쁜 가운데에서도 넓은 바다를 보며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실제로도 많은 나폴리 사람들이 낮에는 바닷가에 걸터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 지중해 바다와 바로 앞에 보이는 베수비오산, 바다 바로 앞의 두 사람은 수영을 즐기는 나폴리 할아버지 두 분



돈 주고 살 수 있는 경험, 에어비엔비 체험


커플이나, 부부, 혹은 그냥 단순히 여행을 같이 하는 여행메이트끼리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 스타일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은 휴양지 바이브로 푹 쉬는 여행을 원하는 반면,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면 그 둘은 함께 여행하기 참 힘들 것이다. 글 초반에 말했듯 우리 부부는 찰떡같이 여행 스타일이 비슷했는데, 그 비슷한 점 중 한 가지는 바로 ‘새로운 경험’에 대한 중요성이었다.


돈을 많이 쓰면 좋은 숙소, 비싼 식당에는 갈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많이 써도 ‘경험’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돈을 조금만 쓰면 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에어비앤비 체험’이다. 에어비앤비에는 예쁘고 멋진 숙소들도 많지만, 현지인이 호스팅 하는 특별한 ‘체험'이라는 상품도 있다. 현지 호스트들이 직접 가이드가 되어 본인들만 아는 장소를 소개해주거나, 현지 문화에 어울리는 것들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게 자신만의 투어를 진행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부부는 나폴리에 있으면서 두 번의 새로운 경험을 했는데, 두 번 모두 대성공이었다.

▲ 다비데 아저씨의 동네 시장 투어

첫 번째는 다비데(Davide) 아저씨와 함께하는 나폴리 동네 시장 투어였다. 우리 부부가 여행지에 가면 꼭 가보는 곳이 각 도시의 시장인데, 시장에 가봐야 비로소 로컬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는지 느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폴리의 단테 광장(Piazza Dante)에서 처음 만난 다비데 아저씨는 푸근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아저씨는 미소 지으며 자신의 뱃살을 만지면서 자신을 먹을 것을 너무 좋아하는 푸디(Foodie)라고 소개했고, 나폴리에만 계속 살면서 로컬 문화를 여행객들에게 소개해주는 에어비앤비 체험 프로그램을 호스팅하고 계셨다.


우리는 아저씨로부터 간단히 나폴리의 역사에 대해 들으면서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피나세카 시장(PIGNASECCA Market)과 몬테산토 시장(MONTESANTO Markets)에 갔는데, 두 시장 모두 로컬 시장이라 그냥 여행 와서는 찾아갈 일이 거의 없는 시장들이었다.


가장 먼저 시장의 과일 가게에 갔다. 길쭉한 모양의 ‘로마 토마토'를 함께 먹으며, 나폴리의 식문화가 어떻게 발달해왔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이 나폴리 도시의 식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등에 대해 배웠다. 푸근한 다비데 아저씨가 유머를 섞어가며 알려주시는 해박한 나폴리의 역사에는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깨알 재미가 있었다.


토마토를 하나씩 깨물면서 점점 더 골목길 안의 시장으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그다음으로 들른 곳은 동네 치즈 가게. 관광객이 절대 찾아올 수 없을 만한 곳에 위치한 완전한 로컬 치즈가게인 이 곳에서 가이드 다비데 아저씨는 치즈의 종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갓 만든 이탈리아산 버팔로 모차렐라 치즈와 프로볼라 치즈(Provola Cheese)를 맛볼 수 있었다.

▲ 치즈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모차렐라 치즈

평소에 치즈를 왜 따로 먹는지 이해 못했던 나는 이때 비로소 따로 먹는 치즈도 맛있다고 느꼈다. 그다음으로도 계속 시장과 동네 구경을 이어갔다. 동네 빵집에 가서는 여태 먹어본 적 없는 신기한 맛의 갓 튀긴 스콘을 먹어봤고, 이름 모를 와인도 얻어 마셨다. 그러곤 또 시장 구경을 한참 하다가 사과도 먹고, 럼이 들어간 바바(baba)라는 이름의 빵도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비데 아저씨와 2시간 반 정도를 함께 나폴리의 시장과 동네 구석구석을 함께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배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투어를 끝마쳤다.

 

다비데 아저씨와 함께한 에어비앤비 체험은 단순히 유명한 식당에 우리를 데려가 주는 것이 아니었다. 유적지를 찍고 찍는 그런 투어도 아니었고, ‘진짜 나폴리에 살아보는 경험’을 해줄 수 있게 도와주는 체험이었다. 여행사에서 하는 투어라기보다는 오지랖 넓은 친절한 동네 아저씨와 마을 구경을 하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는 덕분에 더욱 ‘나폴리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 베수비오산 와이너리 포도밭의 모습, 저 앞의 봉우리가 베수비오 화산의 봉우리다.

우리의 두 번째 에어비앤비 체험은 베수비오산 산자락의 와이너리 칸티나 델 베수비오 와이너리(Cantina del Vesuvio Winery) 투어였다. 나폴리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면, 바다 건너에 있는 웅장한 산이 보인다. 그 산 정상 쪽을 보면 움푹 패어있는데, 이 산이 그 유명한 폼페이 유적지를 만든, 베수비오산(Mount Vesuvius)이다. 아직도 화산이 터질 수 있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활화산인 이 베수비오산은 나폴리에서 바라보면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동시에 뭔가 경외로운 느낌도 주는 곳이었다.

▲ 장소와 분위기가 최고의 와인 안주다.

우리 부부는 와인을 특출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특별한 날에는 꼭 와인을 함께 즐기곤 하는데, 이탈리아 와인 산지에서 직접 와인을 마셔보고 싶었고, 또 유명한 베수비오산에 직접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에 고민 없이 이 체험을 선택했다. 물론, 맥주를 엄청 좋아해서 여행지에 가면 꼭 맥주 양조장, 브루어리를 찾아가는 나의 여행 스타일도 한몫했다.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 힘든 위치의 베수비오산의 포도밭. 렌터카를 타고 한참을 달려 베수비오산 자락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베수비오산은 더욱 무섭고 웅장했다. 베수비오산 자락에 우리가 체험을 한 와이너리의 포도밭이 넓게 있었다. 우리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제공되는 식사와 함께 와인 테이스팅을 시작했는데, 각각 다른 종류의 와인으로 6종류나 마셔볼 수 있었다.

▲ 베수비오산 와이너리 투어의 식사

식전 샴페인부터 진한 레드와인까지, 와인 자체가 맛있기도 했지만, 장소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와인을 훨씬 더 맛있게 해줬다. 살면서 언제, 활화산 산자락에서 와인을 마셔보겠는가. 살면서 언제 그 유명한 폼페이를 만든 화산의 토양에서 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셔보겠는가. 살면서 해보기 어려운 이런 경험을, 우리는 에어비앤비 체험을 통해 할 수 있었다.


밥과 와인을 다 먹고 나서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포도밭을 구경하고, 와인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함께 구경했다. 베수비오산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토지를 기름지게 만들었고 다양한 과일을 키우는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직원에게서 베수비오산의 와인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을 들어 그대로 적어본다.


“신을 배신한 악의 천사, 루시퍼가 천국에서 쫓겨나면서 천국 일부를 떼어서 땅으로 던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나폴리를 만들었다. 땅으로 쫓겨난 루시퍼는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결국 하느님은 그 타락을 참지 못하고 베수비오 화산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인간과 도시가 불타는 것을 보고 슬퍼하시며 눈물을 흘렸는데, 이 눈물 한 방울이 베수비오 산기슭에 떨어졌고 그곳에서 포도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이 포도나무에서 난 와인이 나폴리 지역의 유명 와인 ‘그리스도의 눈물 (Lacryma Christi del Vesuvio)’이다."


에어비앤비 체험을 통해 우리는 한 번은 지극히 로컬스러운 현지인의 일상을 살아 보기도 했고, 또 한 번은 정반대로 일상에서는 절대 못해볼 경험을 해 볼 수도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소중한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에어비앤비 체험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탈 건 다 타본 여행


이번 여행기의 제목은 ‘육해공’ 하드코어 신혼여행이다. 육지와 바다, 공중을 뜻하는 육해공.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부는, 육해공에서 타볼 건 다 타보고 왔다. 우리 부부는 먼저 비행기(공)를 타고 나폴리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나폴리에서 렌터카(육)를 빌려 탔다. 그리고 카프리 섬으로 향하는 배(해)도 탔다. 이렇게만 말하면, 남들 타는 것 다 탄 걸로 무슨 유난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외에도 즉흥적으로 탈 것 두 개를 더 탔다.


먼저, 소렌토에 머물면서 너무 이쁜 이탈리아 남부를 더 자세히, 그리고 더 느낌 있게 보고 싶어서 스쿠터를 빌려 탔다. 그것도 그냥 스쿠터가 아니라 이탈리안 감성이 뿜어져 나오는 이탈리아제 스쿠터 베스파(Vespa)를 빌려 탔다. 구글 맵에서 몇 군데의 스쿠터 업체를 살펴보다가 리뷰가 좋은 곳으로 무작정 아침에 가봤다. 제발 예쁜 베스파가 있었으면, 이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갔는데, 정말로 가게 앞에 딱 예쁜 에메랄드 색의 베스파가 있었다.

▲ 우리가 빌린 예쁜 에메랄드빛 베스파

떨림 반, 설렘 반으로 우리 부부는 스쿠터를 타고 출발했다. 운전도 많이 했고, 스쿠터도 몰아보기는 했지만, 초행길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다치면 안 되는 신혼여행이기에 나는 긴장을 바싹 하고 운전을 했다. 소렌토의 울퉁불퉁한 도로도 살펴봐야 하고, 앞에 있는 차들도 보느라고 초반에는 바로 앞의 도로만 쳐다보며 달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금세 베스파 운전에도 적응이 됐고, 그제야 바로 앞의 도로가 아니라 진짜 이탈리아 남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예뻐 보이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베스파를 타고 달렸고, 막다른 길이 나오면 다시 돌아서 갔다. 베스파를 타고 직접 돌아보는 이탈리아 남부의 모습은, 투어상품을 통해서도, 렌터카에 타고서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장인어른께 보내드렸더니, 마치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같다고 말씀하셨다.

▲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도 실제 베스파를 탔었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직접 바람을 맞으며 베스파를 타며 나는 와이프에게 말했다. “이탈리아 해안도로에서 베스파 타보기가 분명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아닐까?, 우리는 그 정도로 황홀한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아.” 이 말처럼 이때의 기억은 평생 자랑거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만 같다. 대신 후유증은 있다. 한국에 돌아온 지 한참 지난 지금도 와이프에게 베스파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베스파를 탄 우리는 배도 탔다. 유람선이 아니고, 섬에 가는 큰 여객선도 아닌, 내가 직접 운전하는 보트를 빌려 탔다. 나폴리 3일 차, 페리를 타고 카프리 섬에 놀러 갔다. 나폴리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무척 이뻤지만, 사방이 바다로 둘러 쌓인 카프리섬의 바다는 더 예뻤다.

 

“바다가 너무 예쁘다?” -> “그럼 바다에서 놀아야지" -> “그래, 그럼 배를 빌려 타자!”

나의 기적의 논리에 이끌려 우리는 카프리 항구에 있는 보트샵에 갔고, 다행히 보트 면허가 없어도 몰 수 있는 딱 한 종류의 배가 있었다.

▲ 저 멀리 떠있는 작은 배 중 하나가 우리가 빌린 나름 초호화 보트다.

자동차, 스쿠터 운전보다 배 운전은 훨씬 더 어려웠다. 작동방법 자체는 쉬웠다, 엑셀, 브레이크, 끝. 그런데 바다의 파도가 세다 보니 운전이 내 맘대로 잘 안되었다. 더군다나 배가 작다 보니 파도에 휘청휘청 흔들리고, 저 멀리 큰 페리가 지나가면 그 배가 만드는 파도가 우리 배에는 해일처럼 다가왔다. 무서웠지만 재미있었던, 로맨스와 재난영화를 오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직접 배를 몰아서 지중해 한가운데에서 운전, 아니 항해를 하고 있다니? 베스파를 몰 때도 잘 믿기지 않았는데, 지중해에서 배를 몰 때는 더 설레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걷거나, 차를 타고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카프리의 절벽, 베수비오산의 모습, 저 멀리 보이는 나폴리의 모습들을 우리는 배 위에서 감상했다. 이 순간만큼은 초호화 요트가 부럽지 않았다.

▲  로맨스와 재난영화를 오가는 경험이었지만, 아름다운 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2시간 반 정도 배를 빌려 타고 카프리 섬을 빙 돌아서 한 바퀴 돌았다. 중간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닻을 내리고 쉬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긴 바닷가의 동굴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탈 것들을 다 타보자!’라고 계획하고 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것저것 다 타보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비행기 창문 너머 저 밑에 내가 사는 마을, 내가 사는 집이 보이나 쳐다보곤 한다. 내가 매일 살던 곳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신기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같은 곳이더라도 다른 시점에서, 다른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그곳의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여행지에서도 똑같다. 같은 여행지라도,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곳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새로운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는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육해공 가리지 않고 많이 타기로 했다.




Eat, Play, Love


“우리 이번 여행에서는 무리하지 말고, 에어비앤비로 나폴리 동네에서 이탈리아 신혼부부처럼 살아보자.” 결혼식 전, 신혼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 에어비앤비에서 차려먹은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솔직히 말하자면, 나폴리에는 대단한 유적지나, 관광명소라고 부를만한 곳은 특별히 많지 않다. 로마와 같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느낌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더욱 나폴리라는 동네에 살아볼 수 있었다. 관광지 입장을 위해 줄 서려고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인증샷에 혈안이 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나폴리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가까이에서 보며 활기찬 기운과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보면 위에서 소개한 나폴리의 피자집 다 미켈레에서 피자를 먹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여기서 가운데 'Pray'만 'Play'로 바꾸면, 딱 우리 부부의 여행이다. 여행지에 가서 맛있는 것들을 잘 먹고, 함께 사이좋게 다니며 잘 사랑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잘 놀고.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계속, 여행지에서도, 일상에서도 Eat, Play, Love,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랑하기로 했다.

▲ Eat, Play, Love




에어비앤비 작가, 허윤석

혼자 ‘잘’ 놀러 다니는 여행을 하다가, 여행 스타일 '잘' 맞는 여자와 결혼하고 같이 ‘잘'다니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mrcreativeh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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