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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Jan 17. 2020

아이 손 잡고 처음 떠난 아비뇽 여행

마침내 셋이 떠난 여행, 그 설렘을 함께 나누다

시작은 그랬다. 아이가 24개월까지는 무료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두 살 생일이 되기 전에 장거리 여행을 가야겠다는 욕망을 스멀스멀 피우게 된 것이다. 남편과 함께 755일간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는 자신감 하나로 어린아이와 장거리 비행을 한다는 것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마냥 단순한 논리였다. 우리 아이는 공짜 티켓이구나!


"시안이 생각은 안 해? 그냥 가까운 동남아나 휴양지로 가자."

"비행기 티켓이 무료일 때 장거리로 가고 싶어. 동남아는 24개월 지나서 가면 되지!"


사실 이전에 우리 딸이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은 돌잔치 대신 떠난 제주도 비행 한 번이 다였다. 하지만 명절에 카시트에 앉아서, 서울에서 할머니 댁인 김해까지 9시간을 거뜬히 차를 타는 아이라 긴 비행시간이 두렵지는 않았기에 24개월 전 무료 비행기의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던 여행 후보지 중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아비뇽(Avignon)을 목적지로 선택했다. 아이와 함께 마음껏 산책하기에 여유로운 작은 도시가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한가로운 아비뇽 풍경

20대에 3개월간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했을 때 너무 좋아서 신혼여행으로 또 갔던 곳. 신혼여행 갔을 때도 너무 좋아 세계일주를 할 때 유럽에 머물던 3달 동안 4월, 6월, 7월 초까지 달마다 남부 프랑스를 갔었다. 혼자 했던 여행, 남편과 함께 했던 여행, 그리고 이번엔 아이와 함께 셋이 되어 가는 것이라 애써 의미도 부여해 보았다.




아이와 해외여행은 처음이라서


여행지를 정했으니, 비행기 티켓 예약은 검색의 왕 아빠의 몫이다. 2월만 해도 국적기 직항이 90만 원대에 있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3월이 되고 나니 100만 원이 훌쩍 넘어 버렸는데, 비행기라면 무릇 최저가를 사야 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경유를 하게 하면 50만 원대에 티켓을 살 수 있는 걸 알고는 은근슬쩍 계속 나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23개월 아기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살짝 망각한 채, 의식에 흐름에 따라 경유 티켓을 스르륵 결제하고 말았다.


[서울-대만] 2시간 30분 비행 [대만 공항 환승]3시간 대기 [대만-파리] 14시간 30분 비행. 샤를 드 공항(Paris-Charles de Gaulle Airport)에서 파리(Paris)로 들어가서 숙박을 한 뒤, 다음 날 기차역을 다시 가서 아비뇽을 가는 것은 동선상 비효율 적이므로 파리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바로 아비뇽 가는 기차 또한 효율성만 생각하고 결제해 버렸다.

▲ 에바항공(EvaAir)의 베시넷

사실 이때만 해도,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잘 몰랐다. 둘이 여행할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결제를 끝낸 뒤, 여행 준비를 하며 그제야 알게 되었다. 비행기 티켓이 무료인 아이는 좌석이 없다는 것! 비행기당 1~2개 설치 가능한 아기 침대인 배시넷(Bassinet) 좌석은 온라인 체크인이 안되기 때문에 무조건 공항에서 체크인해야 한다는 것! 배시넷을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도 복불복이라는 것! 게다가 배시넷에 관해서는 항공사마다 규정이 달라서 23개월이면 배시넷 규정에 맞지 않아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2kg 아이를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왕복 4번, 무려 36시간의 비행을 운에 맡겨야 한다니.


우리 가족은 이 여행을 무사히 할 수 있을까? 


*베시넷(Bassinet) 좌석은 (바구니같이 생긴) 아기 침대를 비행기 중앙 맨 앞줄에 조금 넓은 자리 가벽에 배시넷을 설치해 주는 것을 말한다. 24개월 미만의 아기의 경우 항공권이 무료다. (유류할증료나 세금은 노선별, 항공사별 다름) 비행기 기종에 따라, 배시넷 수가 다르기 때문에 미리 항공사에 신청해두시면 좋다. 어린이 승객이 많은 노선은 경쟁이 치열한데, 미리 신청해도 체크인 때 선착순으로 주는 항공사도 있어서 자신이 예약한 항공사 규정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각 항공사별 , 비행기 기종별로 세세한 항목이 다르니 티켓 예약 전 체크는 필수다. 베시넷 규정이 엄격한 항공사의 경우에는 이용할 수 있는 몸무게와 키도 굉장히 제한적이어서 24개월 미만의 아기라 무료로 비행기를 예약해도 베시넷을 제공받지 못할 수도 있다.



32시간의 이동, 너의 모든 순간이 여행


2시간 30분의 첫 번째 대만행 비행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베시넷 때문에 조마조마했던 14시간 30분의 파리행 비행기 역시 아이 승객이 별로 없어서 베시넷 좌석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긴 비행시간 동안 아이는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

▲ 23개월 아기와 함께한 첫 해외여행

인천공항은 7세 미만의 아이와 여행할 경우 ‘패스트 트랙’이 주어 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만 공항에서도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의 경우 기다리지 않고 먼저 이동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고, 파리의 입국심사장의 긴 줄을 보고, 조금 겁이 났는데, 관계자 분이 오시더니 빠른 수속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문제는 파리 입국 심사를 끝내고 나와 아비뇽행 기차를 타려고 할 때 생겼다. 프랑스 열차 파업으로 우리가 예매한 티켓이 취소되어 있었던 것이다. 열차 사무실에 가서 상담을 해보니, 결국은 공항에서 아비뇽을 가는 기차는 탈 수 없게 되어 파리 시내로 이동해서 기차를 타고 가는 티켓으로 교환해주었다. 파리 시내로 가는 전철 역시 노선별로 파업 구간이 많아, 돌아 돌아 몇 번이나 환승해서 겨우 리옹 역(Gare de Lyon)에 도착 해 아비뇽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아비뇽에 도착해 에어비앤비 체크인을 하니 한국에서부터 딱 32시간이 지나 있었다.

▲ 마침내 도착한 아비뇽 기차역

어른도 지칠 법한 그 여정에 놀랍게도 아이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떼쓰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처음 보는 것에 반응하고, 처음 경험하는 것에 "우와~ 신난다"를 외쳤다. 비행기 타는 것도, 기내식 먹는 것도, 공항에서 이동하는 것도, 기차 타는 것도, 모든 여행의 과정을 즐기는 모습에 나는 고마웠고, 뿌듯했다.


에비앙 물을 주니, 바로 뱉으며 ‘물이 아니야!’라고 말할 만큼 예민한 입맛의 소유자이지만 "이건 프랑스 물이야." 하니, "음. 프랑스 물이야?" 하고 또 금세 수긍했고, 뭔가 향과 맛이 다른 프랑스의 샐러드와 샌드위치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먹어보며 프랑스의 맛을 경험했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 프랑스 할머니께 "봉쥬르(Bonjour)!" 하고 인사 한 뒤, 한국어로 "까까 주세요."라고 이야기해서 머랭 쿠키 얻어먹는가 하면 '메르시(Merci)' '어부아(Au revoir)' 같은 말도 금방 따라 말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와 감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편견 없이 모든 걸 금방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한국에서 보내는 , 평범한 휴일 같은 여행


이십 대에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왔을 때는 최대한 오래 여행하고 싶어서, 돈을 아끼는 게 중요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저렴한 호스텔에 머물렀고, 도미토리에서 지냈다. 남편과 신혼여행을 왔을때는 꽤 비싼 호텔에서 지냈고, 세 번째로 세계일주 중에 왔을 때는 아비뇽 연극 축제 기간이라 숙소 구하기가 힘들어, 겨우 구한 잠자리가 론강(River Rhone) 옆 캠핑장이었다. 아비뇽이라는 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여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숙박을 다 경험해 본 셈이다.

▲ 에어비앤비의 작은 방

이번 여행은 23개월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숙소를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최대한 집같이 지내야 할 것. 우리는 에어비앤비에서 집 전체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아이와 밥을 해 먹고, 소파에서 뒹굴 수 있는 곳, 그리고 작은 마당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아비뇽에 우리 집이 생긴다니. 유럽에서 에어비앤비를 구할 때 집 전체를 온전히 써 본적은 처음이라 너무 신이 났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난 뒤, 아이는 어제 지쳐서 쓰러져 자느라 둘러보지 못한 집안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 집주인도 아이가 있나 보다. 책장이 아닌 소파 옆 바구니에 그림책이 담겨 있었다. 장난감 바구니에서 장난감을 꺼내듯 아이는 스스럼없이 프랑스어로 된 그림책을 꺼내 넘겨 보았다. 나도 집에 가면 책장이 아닌 이런 바구니에 작은 그림책들을 두면 좋겠다 싶었다. 소파에 뒹굴 거리며 그림책을 보다가 거실과 연결된 작은 안뜰에 나가 사진도 찍고 차도 마셨다.

▲ 우리가 머무른 에어비앤비의 거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본 사진에는 이 집이 낡아 보였는데, 구석구석 손 때가 묻은 집이었지만, 주인이 애정으로 잘 관리하는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되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따뜻하고 편안했다. 또 하나 깜짝 선물처럼 느껴졌던 것은 예약할 때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이와 여행하는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 둔 것 인지 옷장 안에 간이용 아기 침대가 있었다는 것. 더블 침대에 아이와 부부가 모두 자기엔 조금 좁다고 생각했는데, 간이용 아기 침대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욕심 내지 않고 천천히, 느릿느릿 지구 산책 


짧은 여행 기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이의 시차 적응이었는데, 사실 그건 어른의 문제였나 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던 아이라, 프랑스 도착했을 때 낮 시간이니, 졸려도 버티면서 깨어서 놀다가 프랑스의 저녁 시간에 잠들어 시차 적응까지 하루 만에 끝냈다. "엄마 아빠, 해님이 떴어요." 하며 일찍 일어난 아이와 함께 아침으로 먹을 빵과 과일을 살 겸 동네를 산책하러 나섰다.

▲ 매일 아침 산책했던 아비뇽의 골목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성곽 쪽 돌길에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는데, 그 아래도 조각이 된 돌 벤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돌 벤치에는 악어, 말, 가문의 문장 같은 것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아이랑 돌 벤치에 앉아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바닥에 어른 거리는 것이라든가, 작은 돌과 개미를 보기도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작은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빵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 아비뇽 교황청

사람들이 마르쉐 백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곳으로 우리도 따라 걸어갔다. 이곳이 맛집인지 아닌지 인터넷을 열어 검증할 필요도 없다. 갓 구워낸 크로와상이지 않은가. 게다가 현지인들이 쉴 새 없이 딸랑딸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먹고 싶은 빵을 종류대로 주문하고 작은 냉장고에서 마실 것도 샀다. 마치 이 곳에서 몇 년째 살고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오후엔 시청 앞 회전목마로 갔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놀이공원도 아닌데 덩그러니 회전목마 하나만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성인 혼자 타기엔 어쩐지 쑥스러워서 낭만적인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며, 나도 아이가 생기면 꼭 같이 회전목마를 타야지 했었다. 24개월 미만의 아이는 티켓을 끊으면 보호자가 함께 회전목마에 올라가서 아이를 봐줄 수 있다. 같이 회전목마에 올라 아빠를 향해 무한반복으로 손을 흔들며 까르르 웃는다. 광장을 뛰어다니고, 돌을 줍고. 비둘기를 쫓아다닌다.

▲ 아비뇽 시청 앞 회전목마

한국에서 이렇게 마음껏 아이를 풀어놓은 적이 있던가 싶다. “안돼 , 이쪽으로 와.” “여기서는 조용히 하는 거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껏 놀지 못하고 나는 나대로 피곤했다. 신나게 뛰어도 되는 광장이 도시 한가운데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광장에서 만난 또래 다른 아이들과도 금세 어울리고, 아무것도 없어서 잘 놀았다. 그리고 낮잠 시간이 되자 투정도 없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우리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저녁장을 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저녁 먹을 준비를 하며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웰컴 드링크로 선물해준 이 지역의 와인을 마셨다. “아, 정말 행복해”라는 말이 입술에서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공간이 주는 감동, 빛의 채석장 


755일의 세계일주 기간 동안 가장 좋았던 전시가 뭐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던 것이 레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의 빛의 채석장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행을 하다 만났던 최고의 순간은 언제나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아비뇽 축제를 향해 달려가던 남프랑스의 시골길에서 발견한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여기 어딘가에서 클림트 전시가 열리는 것인가?’ 단순한 궁금증으로 관광안내소를 들렀는데, 그들이 안내한 곳은 뜻밖에도 채석장이었다.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무심한 듯 회색 간판이 있다. 화려한 건물도 아니고, 요란한 치장도 없다. 그냥 바위틈에 있는 작은 출입구에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바위 사이로 난 작은 입구 사이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나게 큰 공간이 내 앞에 놓인다.

▲ 빛의 채석장 (2018. 피카소 전시)

밖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데, 채석장 안은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휑하고 텅 빈 6,000평의 넓은 공간에 빛과 음악이 가득 차 있었다. 장엄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음악과 영상은 서 있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게 만들었다.  PD라는 직업의 특성상, 미디어의 활용에는 늘 관심이 많았다. 건물 외벽에 각색된 영상을 입히는 작업인 ‘비디오 파사드’는 정해진 시간에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데, 쓸모 없어진 채석장을 활용하여 멀티미디어 쇼 전용 공간으로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마치 성전처럼 장엄한 느낌이 드는 압도적인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그리고 5,000여 개의 빔 프로젝터로 벽면과 바닥 전체에 비치는 아름다운 그림. 외부와 다른 세계인 듯 느껴지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쇼는 환상적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것을 경험할 수 있지만, 굳이 빛의 채석장을 찾아가고 싶었던 것은 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간을 느껴봤으면 했던 것이다.


 ‘아! 이 곳에 내가 아이와 같이 오다니!’ 감격스러운 내 마음과는 다르게, 어두 컴컴하고 좀 서늘한 기운에 아이는 조금 겁을 먹었는지 안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이라 전시장 안에 유모차를 가지고 들어 갈 수 있어서 부러 챙겨 갔는데 아이는 낯선 광경에 엄마 품이 필요했나 보다. 나와 남편 품에 번갈아 가며 안기며 전시장을 둘러보며 공간과 어둠에 좀 적응하고 나서야 아이는 바닥에 펼쳐지는 화려한 색채를 보기 시작했다. 계속 바뀌는 그림을 쫓아다니며 폴짝폴짝 뛰고, 벽과 바닥도 만져보았다.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뀌고 호기심이 즐거움으로 바뀔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기꺼이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연으로 이루어진 시간들


23개월 아이와 여행을 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의 첫 경험을 함께 겪는 것. 그 감정을 고스란히 같이 느껴 보는 것. 아이의 속도에 맞춰 작은 것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것.


남편과 나는 70개국 이상을 여행했지만, 마치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작은 것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의 시간을 보냈다. 원래도 게을렀던 우리 부부의 느린 여행은 아이와 함께 하며 더 느려졌다. 천천히 걸으며 조금 더 여유 있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 보고, 함께 오래 웃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에게 선물 같았다.

기억을 하지도 못할 건데 너무 어린 아이랑 프랑스까지 여행을 떠나냐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안다. 아이가 이 여행을 기억할 것이라는 기대나, 이 시간이 마음 한편에 쌓일 것이라는 생각도 크게 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에 마침내 아이와 왔다는 단순한 기쁨.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편안하게 흐르는 공기 속에서 세 식구가 온전히 함께 누린 시간과 추억이 마음에 깊이 남아 살아 가는데 두고두고 힘이 될 것이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문숙

홈쇼핑 PD이자, 팟캐스트 [여행 본색] 진행자. 혼자서 90일간 유럽을 여행했고, 남편과 755일간 세계여행을 했다. 그래서 여행 중수쯤 되는 줄 알고 있었으나, 2016년생 아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며 여행 초보임을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느릿느릿 6개 나라를 여행했으며, 곧 태어날 둘째와 함께 네 가족이 떠날 여행을 꿈꾸고 있다.

인스타그램 : @deer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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