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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Jan 29. 2020

대만 러버의 타이동 방문기

작은 도시에서의 작지 않은 특별함

한국에서 대만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타이동(台東)을 다녀왔다 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타이동을 왜? 거기 엄청 시골인데?”    



대만 일주의 꿈


2년 전, 친구가 퇴사 후 대만 여행을 간다고 했다. 한국 여행자들이 주로 택하는 타이베이(台北)에서의 2박 3일 예스진지(‘예류-스펀-진과스-지우펀’을 줄여 부르는 한국인들이 즐겨가는 택시투어 코스) 대신 대만 치고는 조금은 긴 8박 9일 일정이었다. 당시 나의 대만에 대한 흥미도는 ‘0’이었고, 일본과 중국을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라는 어디서 주워들은 얄팍한 정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대만의 유일한 정보였다. “대만을 8박 9일 간다고? 그 긴 일정 동안 뭐하게?”라며 친구를 놀리던 나는 어쩌다 보니 친구와 비행기 옆좌석에 나란히 앉아 대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 처음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 자연과 도시의 어우러짐, 맛있는 음식의 매력에 빠졌다.

내가 경험한 대만은 ‘일본과 중국을 섞어놓은 분위기’라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11월임에도 반팔 옷을 입을 정도로 따듯한 날씨, 예측 불가한 스콜과도 같은 소나기, 숨이 턱턱 막히는 습한 공기, 옛것을 쉬이 해치지 않는 문화, 자연과 도시와의 어우러짐, 타지 사람에게도 한없이 친절한 현지인들, 끝없이 과식하게 만들었던 맛있는 음식, 과일까지... 단 한 번의 대만 여행으로 대만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 대만에서 만난 고양이

8박 9일의 여행 중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타이베이나 가오슝 같은 대도시가 아니었다. 일정 중에 발목을 다친 친구를 타이베이에 두고 급 기차표를 예매해 나 홀로 ‘화련(花蓮)’에 있는 ‘태로각협곡(太魯閣峽谷)’을 갔었다. 도시와는 달리 낯섦이 가득한 이곳에 어떤 우여곡절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른 채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나마 성실히 쌓아온 영어실력과 중국어를 공부하시는 부모님께 얻어들은 단어 몇 개로 대만에서 조금이나마 소통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둘 중 어느 것도 안 통했다.


그저 열정을 담은 바디랭귀지만이 소통의 수단이었다. 게다가 정보도 없이 충동적으로 온 턱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협곡 길을 혼자 걷기도 하고, 버스 통제 시간에 걸려 버스 안에서 꼼짝없이 30분 동안 갇혀있기도 하고,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기차는 매진이라 역무원의 도움으로 겨우 입석을 구매하고, 와중에 스마트폰 배터리도 나가버렸다.

▲ 버스 통제 시간에 버스에 갇혀 창밖으로 찍은 태로각협곡의 모습

이런 피곤한 일들을 하루 만에 다 겪었으니 대만은 꼴도 보기 싫어질 거 같지만, 의외로 긍정적이었던 당시의 나는 버라이어티 한 하루를 겪고 나니 오히려 도전 의식이 급 상승했다. 정시에 맞춰 딱딱 맞춰 오는 대중교통, 관광객을 위해 준비된 4개 국어를 하는 점원들보다 조금은 불편한, 그에 따라오는 성취감을 주는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변두리로, 타이베이를 벗어나 대만을 더 알고 싶었다. 언젠간 대만 일주를 해야지. 그렇게 첫 대만 여행을 마친 딱 1년 후, 나는 대만 일주를 떠났다.



타이동의 에어비앤비


대만 지도를 보면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여행 계획을 세웠다. 타이베이로 입국해서 주요 도시를 거쳐서 어디로 가지... 하던 중, 고구마 모양 섬의 동쪽 아래 자리 잡은 ‘타이동’이라는 지명을 보게 되었다. 블로그 검색이나 대만 여행 카페 ‘즐대(즐거운 대만 여행)’에 찾아봐도 타이동에 대한 정보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래서 타이동을 가기로 했다. 타이동이 너무 궁금해서 직접 눈으로 봐야 했다.

▲ 타이동 역을 나서면 보이는 풍경

타이동은 대만 일주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작고 정보도 별로 없는 지라 ‘2박 3일이면 충분하겠지’라며 일정을 확정했는데, 타이동 기차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탁 트인 맑은 하늘과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온 에어비앤비 호스트 부부를 보며 짧은 일정을 계획한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호스트 부부는 전직 군인이었다. 제대한 뒤, 딸과 함께 세 가족이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다. 중학생인 딸은 ‘별에서 온 그대’를 좋아하는 한류팬이었고, 딸 덕분에(?) 세 가족은 한국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오는 게스트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에어비앤비를 찾아온 두 번째 한국인이었다.

▲ 그날의 일기

호스트인 스테파니는 영어 실력이 매우 유창했다. 에어비앤비에 도착하자 깎아온 구아바를 내오며 갑자기 스테파니의 타이동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타이동 시내부터 타이동의 명소인 삼림공원, 싼시엔타이, 옆동네 츠샹, 동네 사람들만 가는 맛집 등등... 영화배우 금성무가 츠샹에서 찍은 항공사 광고 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30분 동안 진행된 스테파니의 열정적인 가이드가 끝났다. 


내가 비건 채식을 지향한다고 말하자 스테파니는 종이에 메모를 하나 적어서 쥐여주었고, 종이에는 중국어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채식을 해요. 계란을 먹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您好. 我吃素, 不吃蛋. 謝謝!)”

▲ 스테파니의 메모

타이동에서 지내는 동안 내 하루의 마무리는 스테파니와 오늘 다녀온 곳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였다. 도시에서의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의 직원들도 너무 친절하고 서비스가 좋았지만, 마주 앉아 시시콜콜한 나의 일과를 들어주는 호스트의 마음은 너무 소중하고 특별했다.



타이동의 이모저모


스테파니가 어떤 이동수단으로 돌아다닐 거냐고 물어봤다. 별생각이 없었던 나는 “버스?”라고 대답했는데, 타이동은 대중교통 이용이 매우 불편하다며 자전거를 하나 끌고 나왔다. 앞서 다녀온 타이베이나 가오슝은 대중교통이 아주 편리하게 잘 되어있었고, 지하철이 없는 타이중에서도 별 탈 없이 버스를 잘 타고 다녔기에 타이동에서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외국인의 입장으로는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도 잘 못 찾겠고, 구글맵은 엉뚱한 시간표와 정류장을 알려주지, 한국 사이트에서 정보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과적으로 타이동에서는 대중교통을 한 번도 이용하지 못했다. 종일 자전거만 타고 다니느라 다리와 바퀴가 불타는 것 같았지만, 느긋하게 때로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타이동 구석구석을 돌아보기엔 자전거만 한 이동수단도 없다. 


스테파니가 준 메모를 들고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는 ‘총유빙’이라는 걸 먹으러 갔다. 밀가루 반죽에 파를 넣고 호떡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튀긴 별거 없는 음식이지만, 밀가루를 기름에 튀겼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메뉴판에 적힌 ‘NO EGG’를 가리키며 스테파니가 적어준 메모를 건네줬다. 그런데 이럴 수가, 스테파니가 적어준 ‘채식’을 ‘불교 채식’으로 이해한 사장님이 자꾸만 내가 파를 못 먹는다며 파를 빼준다는 게 아닌가! (불교 채식은 오신채 - 수양을 쌓는 데 방해가 되는 마늘, 파 등의 냄새가 강한 채소 - 를 먹지 않는다) 파를 뺀 총유빙이라니, 나는 파를 먹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바디랭귀지를 펼쳤지만, 줄을 선 다른 손님들도 합세해 만류하는 바람에 나는 파를 못 먹는 수행자가 되어 결국 파 없는 총유빙을 먹게 되었다. 내가 시무룩한 걸 눈치챈 걸까. 떠나려는 나에게 사장님은 갑자기 초록색 바나나를 건넸다. 그리고 그 바나나는 내가 먹어본 바나나 중에 제일 맛있었다.

▲ 파 없는 총유빙과 초록바나나

자전거를 타고 녹음 사이를 씽씽 달리고 싶은 마음에 타이동 삼림공원을 갔다. 지도상으로만 봐도 공원은 엄청 넓었는데, 들어와 보니 정말 끝이 보이지 않게 드넓고 복잡했다. 자전거가 다닐 수 있게 잘 닦인 길 양옆으로 마구잡이로 자라 있는 다양한 식물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에 새삼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 아니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제 슬슬 공원을 나가고 싶었는데, 공원 정 가운데까지 와버린 걸까 이정표도 없고 지도를 봐도 나갈 길을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라곤 총유빙과 바나나뿐, 허기도 지고 즐거움과 평온함이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 삼림공원에서 길을 잃기 전 즐거웠던 한때

구글맵을 보며 출구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무작정 질주를 하는데 저 멀리 정자에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가. 출구를 바디랭귀지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며 다가가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모국의 언어가 들려왔다. 타이동에서 그것도 마침 길 잃은 삼림공원 한복판에서 한국 사람을 만날 줄이야! 기쁜 마음에 다가가 “죄송한데, 출구가 어디예요?” 하자, 상대방도 화들짝 놀라며 “아이코, 한국분이셨네.” 했다. 익숙한 등산복 패션에 현지인 같은 느긋함을 겸비한 그분들은 능숙하게 출구를 알려주시곤 혼자 여행하는 나에게 용감하다며 독려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우연한 만남 덕에 무사히 삼림공원을 빠져나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타이동을 떠날 때까지 또 다른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 츠샹 가는 기차에서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

타이동은 정보가 부족한 탓에 거의 무계획으로 왔기 때문에 타이동에서의 일정은 스테파니의 열정적인 가이드의 영향이 컸다. 특히 영화배우 금성무의 항공사 광고. 곡식이 익어 빼곡히 노오란 들판 사이에 난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 모습에 저곳은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츠샹’은 타이동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시골 마을이다. 츠샹에 도착해 역 밖으로 나오면 ‘아, 타이동은 도시였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역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츠샹에서 유명하다는 두붓집을 찾아갔다. 관광지보다는 농업이 주인 시골 마을이기에 번듯하고 깔끔한 느낌의 음식점이나 카페 대신, 낮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내가 찾아간 두붓집도 초등학교와 작은 집들 사이 다 허물어져 가는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 츠샹의 두붓집

두부 튀김 ‘짜또우푸’를 시키자 내부 자리로 안내해줬고 곧이어 음식이 나왔다. 마치 가정집에서 가져온 듯한 꽃무늬 접시에 재료들이 투박하게 얹어져 있었다. 바삭하고 매콤 달콤한 맛에 정신없이 먹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온 인근 주민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나중에 들으니 타이동은 두부로 유명하다고 한다. 타이동에서 매일 취두부를 먹었는데, 냄새가 독하지 않고 적당히 쿰쿰하며 바삭한 게 아주 중독성 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마을을 들러보기 위해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다니기엔 넓은 도로에 양옆으로는 노란 물결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길에는 차 한 대, 아니 사람 한 명도 없는 게 마치 이 세상에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외롭진 않았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포근하게 마을을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이번 여행은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해보고자 혼자 떠나온 첫 여행이었다. 드넓은 벌판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산, 그리고 이 모든 걸 덮고 있는 하늘까지. 도시에서는 이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혼잣말을 해도,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그냥 그 어떤 무언가를 해도 아무도 나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이 사실에 난생처음으로 진짜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에라도 이곳에 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타이동을 떠나며

▲ 타이동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이른 아침 기차로 타이동을 떠나게 되어 스테파니가 콜택시를 예약해주었다. 비록 이틀뿐이었지만 매일 담소를 나누다 정이 들었는데, 내일 아침에 마지막으로 못 보고 헤어진다니 조금 아쉬웠다. 아침에 짐을 가지고 내려오니 자고 있을 줄 알았던 스테파니 부부가 일 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웅을 해주려나 보다 했는데, 그들도 아쉬운 마음에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에어비앤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기차역으로 가는 동안 평소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테파니 부부는 제대 후 고향인 타이동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공기가 맑은 타이동이 그리웠다고. 하지만 자기 딸과 같은 젊은이들은 타이동이 지루하다며 자꾸만 떠나고 싶어 한다며 웃었다. 내가 “그들도 나중에 그리워서 돌아올 거야.”라고 말하자, “맞아, 나처럼!”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말하며 언젠가 타이동으로 다시 돌아올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기차역으로 가던 도중 갑자기 스테파니는 길에 주차를 하더니 잠시 자리를 비웠다. 볼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차 안에서 잠시 기다리자, 만두와 또우장이 담긴 봉투와 함께 스테파니가 돌아왔다. 나를 위한 채식 만두와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또우장을 기억하고 사다 준 것이다. 이러니 타이동에 대한 좋은 기억의 8할은 스테파니일 수밖에.

▲ 그날의 일기

솔직히 언어도 안 통하고,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정보 부족, 예고 없이 문을 닫는 가게 때문에 식사를 거르는 등 불편한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타이동을 왜? 거기 엄청 시골인데?”라고 말한다면, 이 작은 도시에서의 작지 않은 특별한 경험을 줄줄이 말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타이동에 간다면 분명 아직 발견 못 한 또 다른 특별함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에어비앤비 작가, 강미경

인스타툰 '유럽 여행 가는 만화(유가만)'과 '나에게 집중하는 대만 여행(나집대)'를 그렸다. 요즘은 여행에서 잠시 멀어져 지속 가능한 삶과 비건으로서의 삶에 집중하며 일상툰을 그린다. 

인스타그램 : @gang_co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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