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복과 유니폼: 군, 민항 두 개의 하늘
"왜~ 선배가 잘하는 거 있잖아 Ai처럼 군비행이랑 민항 한마디로 요약해 줘"
"무료버전? 유료버전?"
"당연히 유료버전!!"
"유료버전이라.. 그럼... 자 군비행부터..!! 군비행.. 군비행은 말이지 진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베스트 컨디션이 되도록 준비할 시간도 주고 언제든 너를 도와주려는 멤버들도 쫙 준비가 되어있어. 이 상태에서 진짜 완전 X 어려운 공업수학 미적분 문제를 푸는 건데~~ "
"일단은 대부분은 연습이야~ 연습~ 연습이고 100점~은 뭐 맞으면 좋긴 한데.. 90점만 맞아도 다들 뭐 이 정도면 나쁘진 않다고 해줘, 그런데 삐끗해서 어쩌다 60점 맞잖아? 그러면 진짜 완전 막 때려서라도 왜 못했는지 분석해 주고 겁나 연습을 시켜줘~ 그러다 보면 이제 다들 언젠가는 80점 이상은 항상 무난하게 넘을 수 있지~. 그런데!! 실전 시험은 아직 해본 적이 없어!! 해본 적이 없는 데~ 그땐 100점 맞아야 돼. 100점 못 맞으면 그냥 die야"
"근데 민항은? 너한테 진짜 누구도 아무것도 시키거나 강요하는 건 1도 없거든? 진짜 더하기 빼기만 시키는데.. 그걸 어떨 때 시키냐면 당장이라도 눈이 막 감겨서 쓰러질 것 같이 졸리고 몸 컨디션도 식은땀 줄줄 나고 최악인데~ 게다가~ 주변 환경이 더하기 빼기 문제 푸는 걸 도와주진 않고 틀리나 안 틀리나 매의 눈으로 보고 있어!! 심지어 어떤 놈은 그걸 틀리라고 방해도 하고 있어. 근데 너는 이제 그 걸 다 이겨내고 매번 단 하나의 실수 없이 100점을 맞아야 되는 거 거든.. 근데 문제는 그 더하기 빼기를 하나라도 틀리잖아? 그러면 그냥 out이야 끝 the end."
----------- 얼마 전 후배와 통화하면서 있었던 일에서 발췌 ---------
오랫동안 써야지 써야지 하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군 비행과 지금 몸담고 있는 에어라인(속칭 '민항')에 대한 생각을 오늘, 의식의 흐름에 맡겨 풀어내보려고 한다.
가끔 후배들이 전역의 기로에서 혹은 민항 생활에 대해 궁금증을 안고 전화나 카톡을 해올 때가 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역시 군과 민항의 차이에 대한 것들이다. 연봉, 월급, 실제 수령액 같은 현실적인 질문들이 오가고 나면, 그다음은 으레 민항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한 달에 얼마나 쉬는지, 가족과 얼마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직원 할인 항공권은 정말 얼마나 저렴한지, 만석일 때 정말 비행기에서 쫓겨나야(?) 하는지 등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정작 앞으로 수십 년을 더 몸담아야 할 '비행' 그 자체에 대해 묻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그 시절을 겪었기에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지는 이해한다. 전역을 고민하는 경력의 조종사에게 '비행'은 더 이상 고민의 대상이 아닌 것인 게 된다. 비유하자면, 10년 차 이상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이직할 로펌의 연봉이나 워라밸보다 "당신네 로펌은 법을 어떻게 다룹니까?"라고 묻는 격이랄까. 10년 차 이상(요즘은 13년 차 이상)의 군경력을 가진 그들에게 비행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선,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민항과 군비행의 차이에 대한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후배들이 있다. 흥미 위주로 쓰긴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앞서 언급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 준다. 군 경력 조종사로서 느끼는 민항 비행과 군 비행에 대한 내 생각은, 군후배가 전역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질문할 때나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이 질문할 때나, 혹은 "군 생활 마치고 항공사 오니 편하시죠?" 또는 "그래도 군대보다 항공사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나요?"와 같이 주변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에도 늘 언제나 앞서 언급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질문들에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실제 내가 양쪽에서 했던 경험들은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군 비행이 어렵다, 민항 비행이 쉽다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비행은 많은 부분에서 같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또 다르다. 모두 '비행'이라는 공통의 이름 아래 있지만,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가끔은 이 차이점들이 서로 간의 오해를 낳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이 매번 안타까웠다.
오늘 쓰는 이 글을 통해 단순히 '어디가 더 좋다/나쁘다'가 아닌, 각각의 실제 경험들을 나열해서 읽으시는 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두 가지 환경에 대해 내가 경험한 바를 공유하며 각자의 기준을 세우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군에서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일단 매! 일! 출근이다. 비행이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지만 출근은 비행 유무와는 상관이 없다.(전역한 입장에서는 이게 제일 다른 것 같다.) 그나마 계급이 낮고 자격이 낮을 때는 비행이 없는 날이 꽤 되지만 계급과 자격이 올라갈수록 거의 매일 비행 스케줄이 잡힌다. 대대에서는 선임인 소령급 교관 조종사 정도되면 일부 대대에서는 12121, 12221 같은 살인적인 비행스케줄을 소화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 출근하고 주말과 휴일은 따박따박 쉬느냐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각종 대비태세나 비행준비 (때로는 회식)으로 주말이나 휴일이 보장되는 삶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장점을 꼽으라면 그나마 생각나는 것들은 복도에서 걷는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익숙한 동료들과 익숙한 환경에서 함께 비행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있겠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매우 큰 장점). 비행단과 전투대대의 모든 환경은 조종사와 비행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조종사를 둘러싼 지원 시스템 역시 임무 성공을 돕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마인드가 강하다 (그런데 이것 역시 현역 시절에는 잘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문제...).
15년 차 이전까지 대부분의 조종사는 전투대대에서 생활한다. 전투대대는 군대이긴 하지만 소수의 조종사가 대대급의 자원을 할당받고 조종사가 대부분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때문에 일반적인 직장이나 군대의 상하관계보다는 '대대원'이라는 소속감 아래 선후배 관계가 더 두드러지는 독특한 커뮤니티다. 군대 문화와 군출신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이들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2010년 이후의 군작전 환경은 일방적인 상하관계가 통용되기 어려웠다.
과거의 경직된 군 문화와는 달리, 내가 경험한 전투대대는 사회 어디에 내놓더라도 타의 모범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비난받거나 평가절하될 문화가 아니었다. 특히 2010년 이후 전투대대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군 출신', '군대 문화'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에 대해서는 크게 동의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항상 예외는 있다.. 미친놈은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이러한 군 생활 속에서 기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비행들은 단순한 '군생활'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군 비행에서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꼽자면 CLFE(연합대규모공격편대군) 훈련에서 52대의 전투기를 공중에서 지휘했던 MC(Mission Commander)의 중압감과 성취감, 실제 대북 상황에서 비상출격해서 미사일 버튼 누르기 직전까지 고민했던 순간의 긴장감은 지금도 1초 단위로 기술을 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잊히지 않는 장면은 하나 더 있는데 야간 비행하고 돌아오면서 NVG 벗는 중에 비행착각으로 잠시 요단강 언저리에 다녀왔던 기억은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장면 중에 하나다. 대대생활 끝물에 평가관으로서 처음 후배의 계기비행 평가를 하던 날도 떠오른다. 나는 편하게 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긴장을 많이 했는지 기량이 잘 안 나온 친구였는데, 숙제를 이만큼 내주는 것으로 끝내긴 했지만 문득 그 친구 비행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ㅎㅎ
이처럼 매 순간이 긴장과 도전의 연속이었던 군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유독 비행하면서 든 대대 생활을 하면서 든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도 동기/선후배들에게도..) 매뉴얼과 구전되어 오는 절차 사이에서 "저 선배는 왜 저렇게 할까?", "매뉴얼은 A라고 하는데, 왜 관행적으로 B를 따를까?" 하는 의문들이 많았었다. 때로는 몇몇 대대원들이 잘 받아줘서 더 깊이 얘기하면서 오해를 푸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나 혼자만의 의문으로 남았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혼자만의 문제의식은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매번 얻지 못했을지라도 그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단순히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것을 넘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비행을 추구하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 군비행은 돌이켜보면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임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귀결되었던 것 같다. 내가 맡은 임무가 잘못되거나, 아주 작은 내 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나라에 충성하고 조국을 수호한다"는 교과서적인 구호보다는, 나는 이 일을 잘하진 못하더라도 실패는 하지 말자. 최소한 나로 인해 시작되는 문제는 없어야 한다"는 뭔가 '소인배적 책임감'(?)으로 나를 움직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절박함에 가까운 소인배적 책임감이 수많은 구전과 관행 속에서도 스스로 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나와 동료들과 함께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고, 그렇게 군 생활을 무사히 그리고 감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런 '소인배적 책임감'이 나를 지켜준 셈이기도 하다.
에어라인 에서의 하루는 루틴하고 어떨 때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정말 가끔씩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그런 하루들의 연속인 것 같다. 일단 생활은 9 to 6 근무와는 거리가 멀다. 비행은 군대 비행처럼 비행 한 번이 이륙해서 비행을 나갔다가 임무 하고 돌아와서 랜딩 하는 형태가 아닌, 어딘가로 멀리 이동하고 그곳에서 체류하다 다시 돌아오는 일련의 '여정' 자체가 일이 된다. 그래서 "한 달에 비행을 몇 번 하냐"는 질문보다는 "비행을 몇 번 나가냐?"는 질문이 더 자연스럽다.
군비행은 이륙해서 임무를 하고 돌아와서 랜딩 하는 단계 중 '임무'에 주요 포커스가 있는 반면 에어라인 생활은 '이륙 전', '이륙', '착륙', '착륙 후' 단계에 주요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항공사에 입사를 하고 나면 생각보다 '이륙 전', '착륙 후' 단계 즉 비행기가 땅에 붙어있을 때인 GROUND OPERATION에서 지켜야 할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또 그만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음에 놀라게 된다.
또 다른 특징은 매번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비행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에는 입사 이후로 4회 이상 같이 비행한 동료는 아직 한 명도 없고, 세 번 만난 사람은 손에 꼽는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이 정도이고 객실 승무원 분이나 정비사 분들은 기억이 나는 얼굴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 정도라면 매 비행마다 얼마나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환경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항공사에서 이루어지는 비행의 목표는 수많은 승객의 안전과 쾌적함, 정시 운항, 마지막으로 경제성이다. (줄여서 '안쾌정경'이라고 맨날 부름) 이를 위해 철저한 규정과 절차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승무원들과의 원활한 협업, 즉 CRM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적이다. CRM? 군대에서도 하는 그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업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보니 훨씬도 고도화되어있다. 군대에서는 전혀 없었던 기본적인 서비스 마인드가 요구된다는 점도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다. 뭐랄까 전역하기 전에 전역하고 민항에 있는 선배들의 SNS에 보던 모습은 입사하고 보니 물 위에 떠있는 백조 같은 삶이었다고 하면 비슷하려나. 겉보기에는 편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책임감과 군과는 또 다른 영역에서의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였다.
에어라인에서 기억에 남는 비행들은 대부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험과 소중한 인연으로 채워져 있다. 존경하는 기장님들과 함께 밤낮없이 대륙과 대양을 건너 다녔던 비행은 그 자체로 값진 교류와 배움의 시간이었다. 특히 최장 비행시간으로 악명 높은 애틀랜타 비행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기장님과 비행 관련 지식부터 온갖 주제의 '알쓸신잡' 이야기까지 8시간 동안 이야기꽃을 피우며 태평양을 건넜던 즐거운 추억은 아직도 생각할 때마다 미소가 떠오르는 비행이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다 우연히 마주한 첫 번째 오로라 라던지, 알래스카 앵커리지부터 시애틀, 샌프란, 엘에이, 달라스, 시카고, 애틀랜타, 뉴욕까지 머나먼 이역만리 미국 땅 곳곳에 내 손으로 100톤이 넘는 화물과 4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을 태우고 항공기를 안착시켰을 때의 뿌듯함은 군조종사로 랜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에어라인 조종사로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은 없다고 이렇듯 새로운 환경과 경험 속에서 즐거움도 컸지만, 때로는 군대와는 정말 다르다고 피부로 느끼며 생각을 완전히 전환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한 번은 컨디션이 그리 썩 좋지 않은 상태로 비행에 나선 적이 있다. 군 시절의 습관대로 '내가 빠지면 누군가 이 자리를 메워야 하니, 컨디션이 조금 안 좋더라도 동료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서로 잘 모니터링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비행을 나간 적이 있다. 비행 전 브리핑에서 오늘 뭐 특별한 내용이 없냐고 하길래 솔직하게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서로 잘 챙겨주며 비행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예상과 전혀 다른 싸늘한 반응이었다. "왜 그런 컨디션으로 비행을 나왔습니까?", "누가 억지로 나오라고 했나요?", "왜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나와서 파트너인 저까지 위험하게 만듭니까?"라는 질책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순간 당황스럽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의 무게를 생각하면 그 동료의 지적은 옳았다. 회사의 누구도 나에게 그런 컨디션으로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안 좋은 컨디션으로 동료의 호의를 기대하며 비행에 나선 것은 전적으로 나의 판단이었다. 그 사건은 나에게 큰 충격과 함께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바라야 하거나 안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컨디션이라면, 비행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 '참고 나가는 것'과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안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군과는 다른 에어라인에서의 자기 관리와 책임의 무게를 절감했고, 그 이후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BEST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의 그 동료가 나쁘다거나 매정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건은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고, 에어라인 조종사로서 가져야 할 또 다른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만든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겪어보면 군 비행과 에어라인 비행은 추구하는 목표와 운영 방식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군의 모든 비행은 '임무 완수'가 최우선 목표다. 조종사는 이 목표 달성의 최일선에 있으며, 주변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은 조종사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집중된다. 일종의 잘 조직화된 임무 완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에어라인은 각각의 기능(조종, 객실, 정비, 운항관리 등)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여 '안전 운항'과 '이윤 추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위해 일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협동을 통해 비행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여기서는 개개인의 전문성과 판단,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이 더욱 강조되는 문화다.
앞서 언급했던 안 좋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비행에 나섰던 경험은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다. 군에서는 전우애나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지만 (물론 비행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전제는 같지만..), 에어라인에서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며, 시스템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컨디션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는 문화가 더 강한 것이다.
언뜻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개의 하늘에 근무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비행자체라는 것의 기본은 같지만, 우리의 일터요 싸움터인 하늘에 대한 마음, 그리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식 등 조종사로서 가져야 할 근본적인 자세는 군과 에어라인 모두 동일하다. 단순히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쪽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민항에서 비행을 하다 보면 개인 소개를 할 일이 많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매번 새로운 동료들과 비행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듣는 말이 있다. "XX 씨, 군 출신이에요?", "사관학교 나왔어?", 혹은 "어? 사관이라고?? 몇 기??" 같은 질문들이다. 왜 그런 말을 듣는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나만 모르는 걸까? ㅎㅎ),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뭔가 독특한 점이 있긴 한가보다.
나는 굳이 그 이유를 묻지는 않는다. 좋은 의미라면 굳이 내 귀로 확인하여 그 의미를 퇴색시킬 필요가 없고, 나쁜 의미라면 더더욱 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분들의 머릿속에는 군출신에 대한 어떤 특정한 고정관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랬으니 내가 저런 질문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끔 '군 출신 조종사의 경직성'이나 '권위적인 모습' 등에 대한 우려, 비난 같은 것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글쎄... 내가 보기에는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에는 다소 맞지 않는 시각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실제 군 문화, 특히 조종사 커뮤니티는 오히려 선후배 간의 존중과 끈끈한 유대감이 살아있는 공동체였다. 군 생활, 특히 10년 이상 조종사로 복무했다면 좋든 싫든 일정한 규율과 절제가 몸에 배게 된다. 그래서 군 출신들은 대체로 편차가 적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한마디로 '튀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인 그런 상황. 10년을 그렇게 생활했는데 튀라고 해도 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10년만 근무해도 그런데 15년 이상 복무한 동기나 선후배들을 보면 마치 자로 잰 듯 거의 규격품과 같은 아웃풋을 보여준다.(물론 항상 예외는 있지만..ㅎㅎ)
이러한 배경 덕분에 대부분의 상황에서 굳이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지켜야 할 선을 안다는 장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공통의 경험에서 오는 일종의 이해와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군에서 체득한 강력한 상황 판단 능력(이건 정말 병적으로 군에서 강조하고 훈련하는 것들이다), 위기 대처 능력, 절제와 규율 준수, 체계적인 사고방식 등은 에어라인의 안전 운항에 핵심적인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군 조종사의 DNA가 에어라인 비행에서 결코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한다고 주변의 시선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시선을 받는 이유가 되는 과오들은 과거에 분명히 있었고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뭐랄까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군경력 가진 사람 스스로부터 군출신을 폄훼하고 군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각만 조금 바꿔서 군에서의 강점을 민항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고,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한다면 군에서의 경험으로 에어라인에서도 훨씬 더 돋보이는 조종사가 될 것이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군출신' '군대문화'는 '같이하고 싶은 사람', '지향해야 할 문화'를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 (뭐 물론 아주 조금 거리가 있는 미래가 될 것 같긴 하지만..ㅎㅎ)
군과 에어라인, 두 세계를 경험하며 조종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가치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군에서의 책임감이 '임무 완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민항에서의 책임감은 '수많은 승객의 안전과 편안한 여정'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표현과 실행 방식은 다를지라도, 그 무게와 중요성은 결코 다르지 않다.
내가 군에서 그래 내가 조종사였지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는데 언제였냐면, 한겨울 방수복을 입고 나선 야간 비행임무를 마치고 기지에 내려서 시동을 끄고 캐노피 열어서 헬멧을 벗었을 때, 머리에서 마치 초사이어인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대구의 싸늘한 밤공기가 얼굴에 와닿으며 시원함을 느꼈던 바로 그 순간이다. 무슨 비행이었는지 까지는 생각 안 나지만 오늘도 큰 과오 없이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했다는 성취감과 살아있음을 느끼는 뭔가 매우 시원한 기분이 뒤섞인 특별한 느낌이었다.
어떤 환경이든 완벽하게 좋거나 나쁜 곳은 없다. 중요한 것은 각 환경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자세라고 믿는다. 이 글이 읽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우리는 두 개의 하늘을 날고 있지만 군 비행복을 입었든, 회사 유니폼을 입었든, '조종사'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하늘에서 각자가 어깨에 짊어진 계급장과 견장처럼 책임의 '모양'과 '색깔'이 조금 다를 뿐이다.
군은 어려운 공업수학 미적분 문제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었다면, 에어라인은 사칙연산이긴 하지만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 사칙연산을 틀리지 않고 매번 100점을 받아내야 하는, 또 다른 형태의 극한을 추구하는 곳이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각자의 가치와 무게를 지닌 세계다.
나의 두 하늘에서의 경험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던 내가 건강한 몸 하나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이 경험과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다.
그런데 매번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건 뭔가를 쓸 때마다 나한테 제일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일단 읽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음대로 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글 하나 쓸 때마다 뭔가 조금은 어제보다 더 배우고 나아졌다는 느낌은 든다. 앞으로도 글은 띄엄띄엄 쓸 생각이다. 두 개의 하늘 아래에서 나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혹시 지금 군에서 전역을 고민하고 있거나, 군조종사, 에어라인 조종사를 꿈꾸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또는 단순히 두 세계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이 계셨다면, 이 글이 작은 참고가 되었기를 바란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1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