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조종사 생활

EP.01 운송용 조종사

by DANTE


슬기로운 조종사 생활


전역을 하고 흔히 군에서는 '민항' 이라고 불리우는 에어라인 생활에 발을 들인지 꽤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비행, 계절이 바뀌는 하늘을 지나며 이제는 나도 아직은 '만렙'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덧 누군가에겐 ‘선배’라 불리는 위치가 되었다. 문득 돌아보게 된다.(FCOM 읽으려고 노트북만 열면 이런 잡생각이 나면서 자꾸 뭘 돌아보게 됨..ㅎㅎ)


오늘은 무엇이 가장 도움이 되었을까에 대해서 한번..


아마 많은 것들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중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운송용조종사'자격 (ATP/ATPL/ATR이라고도 부르는..) 쉽게는 '기장 면허' 조기 취득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해볼까 정도였지만, 준비할때도 그랬고 시간이 지나서는 더욱더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현실 속 기장면허 준비

한국에서 대부분의 에어라인 조종사들은 '사업용 조종사' 자격을 가지고 라인 비행을 시작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도항공관련 지식이 없는 분들께는 '사업용 조종사' = '부기장 면허' 정도로 소개를 드리곤 했었다.


**참고**

해외 특히 미국의 항공운송회사(CFR PART.121으로 한국으로 치자면 정기항공운송업 정도..)는 ATP(비행시간 1500시간)를 기본으로 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 항공산업이 미국정도 사이즈가 되지 않으므로 사업용(200시간)을 입사조건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회사는 조금 특이하게 1,000시간으로 좀 높은 편이다. 외국 조종사들 특히 미국조종사들은 사업용 200시간대의 갓 입사한 부기장이 보잉/에어버스를 주기종으로 하면 매우 놀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들.. 한국에서 갓 입사한 부기장들이 어떻게 스파르타 식으로 보잉/에어버스를 배우는 지를 알면 아마 더 놀라겠지? ㅎㅎ.

**참고 끝**


그리고 나처럼 대부분의 경우 군경력 조종사들은 10년~15년차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고 대략 1,500 ~ 2,500시간 정도의 군비행경력을 가지고 입사하게 되는데.. (요샌 아마도 조종사 전역으로 인한 전력공백등의 이슈로 정책이 바뀌어서 10년차 전역은 없고 13년부터 일 것이다.)


**참고**

한국에서 운송용 조종사는(=기장면허) 1500시간이상의 비행경력을 가진 조종사부터 취득할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보통은 부기장 짬이 좀 찼을 때 기장고사 준비와 함께 ATR 자격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나의 시작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여유 시간 + 금전적 쪼들림(ㅎㅎ)이 생기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고민하던 차에 운송용 자격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씩 보다보니 지금 하면 적기일 것 같아서 선배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그게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때 주변에서는 자료를 구하고 운송용 공부를 하는 나에게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왜 지금 ATR을 준비하냐?”, “기장고사 준비할 때 해야지, 공부 두번할래? 할 때 한번에 해야지", "지금은 너무 이른 거 아니냐? 구술심사관이 라인경험 더하고 오라고 떨어트릴꺼다”등의 말들을 들었다. 심지어는 “자격이 안 될 텐데 무슨 고생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반응을 듣고 나니, 나도 잠시 고민이 들었지만, 일단 내가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내 경험 – 자료를 정리하며 얻은 것들

자료 정리보다 제일 처음 한 것은 내가 자격을 취득할 자격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분명히 항공안전법 문구만 보면 내가 결격사유가 없는데 주변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민항 시간만 쳐준다 그래서 아직 자격이 안된다등 온갖 카더라와 뇌피셜들이 난무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내가 맞는지도 궁금해서 교통안전공단에 비행경력 증명서를 첨부해서 문의를 넣으니 바로 시험 자격이 된다는 답변이 왔다. 주변 말만 듣고 그런가 보다 했으면 내가 시험자격이 되는지도 몰랐을 텐데 어찌보면 저때 official 내용을 확인하려는 행동 하나가 많은 것을 가져다 준 것 같다.


자격이 된다고 확인을 받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문제는 자료였다. 당시에도 나보다 기수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선배들은 ATR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료라고 했던 것들이 내용이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누구 한 명이 발 벗고 나서서 최신화 하고나면 또 그 자료가 부실해질 때까지 공유되어 사골이 될때까지 우려지는(?) 것이 거의 노말 프로시저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처음 시작할 때에는 그 사골이 된 자료에 기대어 최소한의 노력으로 쉽게 ATR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아... 이건 정말 우려질대로 우려지기도 했고, 그사이에 규정도 몇번이나 개정되었지만.. 심한 자료는 10년이 넘은 것도 자료라고 족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정말 이 너덜너덜한 자료를 매번 바로잡고 고쳐서 쓰는 것보단 새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뭐나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중간중간 발 벗고 나섰던 선배님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공감이 갔다. 그렇게 코로나로 감금시절을 선배 한명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원문과 근본적인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자료를 새로 준비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하면서도 아 이걸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내가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족보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내손으로 새로 만든 자료로 합격에 이르긴 했다. 처음엔 괜히 한 것 같기도 했고, 무난하게 넘기지 못하고 사서 고생한 것 같았다. 그냥 애매한 문제 한 문제 틀리고 그 시간에 답이 확실한 다른 문제 보면 될 것을.. 나는 답이 애매한 그 한 문제에 아주 신경이 거슬려서 답을 찾지 않으면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단순히 ATR 합격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애매함을 내 스스로의 방법으로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식이 쌓이고 그 개념들이 분명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분명한 개념들이 모여서 비행에 적용이 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그 덕분인지 비행 중에도 훨씬 여유가 생겼다.


절차와 메뉴얼에 대해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절차의 문구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알게 되니 회사에서 정해준 절차라는 것이 정말 많은 안전팩터를 두고 만들어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매뉴얼을 읽고 그 원리와 원문이 되는 것도 찾아보면 볼수록 안정감도 느끼게 되었다.


그 무렵 초짜 737부기장이 ATR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주변에서 ATR 자료를 찾는 연락이 많이 왔다. 처음에야 나도 내 자료가 인정을 받는 것 같아서 만나서 USB로도 옮겨주고 에어드랍으로도 주고 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요청하는 통에 물리적으로 이런 방식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ATR 자료 요청으로 오는 연락으로 하게되는 근황토크(?)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매번 자료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해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니 그건 또 좀 시간낭비 같기도해서 당시 유행하던 네이버 BAND로 ATR 준비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다. 시작은 그냥 같은말 하는 것보단 올려놓고 링크로 자료주려고 만든 BAND였지만 지금은 1,800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있다. 아마 국내 항공사에 있는 부기장이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커질줄은 몰랐다. ㅎㅎ


밴드의 시작은 그냥.. 이 블로그 글이었음 ㅎㅎ

https://blog.naver.com/airdante/221575187892



기장고사와 ATR – 병행이 아닌 순서

과거에는 기장고사와 ATR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통념이 강했다. 그럴만 했던 것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기장고사는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이 때만해도 사람들이 '기장고사'(정식명칭은 사내 기장선발시험)를 '기장고시'로 불렀으니 그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긴 규정을 암기하고 빈칸을 채워 넣는 정말 말도 안되는 난이도의 문제들이 출제되었고, 시험도 월 1회에 정해진 날에 본사에서만 볼 수 있어서 별도로 휴가를 내서 시험(!! 휴간데 시험이라니!!)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합격자가 월 1~2명이면 고시도 이런 고시가 없었다. 상황이 이런 상황이니 미리 ATR을 기장고사와 별도로 따로 공부한다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엄청난 난이도로 출제되는 경향이 많이 줄었고, 그에 따라서 ATR준비를 병행하는 것에도 방향성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ATR을 먼저하고 기장고사를 나중에 본다고해서 굳이 두 번 공부하는 것 같이 손해 본다는 생각은 갖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기장고사 성격이 많이 바뀐 덕분에 ATR을 먼저 취득하고, 기장고사는 나중에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는 ATR을 먼저 취득했고 기장고시 시절에 기장고사에 합격 했지만, 지금은 이제는 ATR을 먼저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절대로 중복되는 공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입사 초반의 태도 – 나중을 위한 준비

특히 나는 군에서 전역 후 입사 초반에 많은 선배들이 “이제 좀 쉬면서 해~”,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이제는 적당히 하며 놀면서 해야지~”는 말을 꽤 많이 해주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게 마련이고 선배들의 후배를 배려하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특히 지금의 나는 절대로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열심히 하라고 얘기를 해준다. 왜냐하면 내가 겪어보니 그때(=나름 군인정신이 살아있을 전역직후 입사초반) 민항의 안락함을 모를 때(ㅋㅋ) 정말 조금 더 공부해두면, 나중에 정말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도 그렇고 주변을 봐도, 입사 초반에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지금도 비행을 즐기고, 밝은 얼굴로 일하고 있다. 그때 조금 더 노력한 덕분에 지금의 안정적인 비행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때 뭐 모를 때 노는 거보다 라인생활하면서 알거 다 안상태에서 노는 게 훨씬 더 재밌다. 진심으로..


마무리 – 더 나은 비행 생활을 위한 선택

결국, 당시에는 몰랐지만 ATR을 나름 조기에 취득하는 것이 내 비행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입사 초반에 준비하는 ATR 공부는 그 어떤 기종 교육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군 비행에서 민항으로 전환되는 초기 단계에서 에어라인 오퍼레이션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기도 좋다. 능력만 된다면 기종 교육보다 먼저 ATR을 준비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ATR은 필기시험은 기종 RATING이 없더라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상황만 허락한다면 미리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준비는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져도 좋다.


어느 전문가 집단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가 있는 이 항공 바닥에서는 특히 더 주변 카더라가 아닌 정확한 근거와 논리가 가진 힘은 정말 어마어마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힘은 운동에서 기초체력 처럼 더 여유롭고 안정적인 비행 생활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항공사에 들어온다. 하지만 본인이 원했던 어떤 그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이 가기위해서는 이런 기초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후배들 특히 라인 초반 단계에 있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점은 이제까지 과정과 결과가 어찌되었는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ATR 자격이 되었는데 아직 ATR 자격이 없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결코 손해가 없을 것임을 얘기해 주고 싶다.


그리고 선배들이 BAND에 많은 후기들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수있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여러분도 선배가 되어 후배들에게 본인의 후기 한마디 정도 남겨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https://band.us/@a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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