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공공근로와 길고양이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관해

by 오문원

"너에게 닿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코너에 몰린 고양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살짝 떨고 있었다.

난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내 소중한 공공근로 휴게시간을 갈아 넣어 CCTV를 확인했다.

해당 길고양이의 동선과 출현 시간대 그리고 습관까지....

이미 녀석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벽을 보며 앉아 있었다.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분노, 좌절, 절망, 비관 등 모든 어둠의 에너지를 압축해 이 길고양이에게

되갚아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어둠의 기를 모으고 있던 중, 녀석이 갑자기 나를 향해 뒤돌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제 날 어찌해도 좋으니, 내 이야기 한 번만 들어줄래요?"

이미 녀석은 내가 자신을 어떻게 처분할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우선 공공근로 근무를 하는 이곳이 현재 내 영역임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고, 다음은 중성화 수술....

하지만 난 인간, 인류를 대표해 보다 진화된 생명체의 체면을 살릴 필요가 있었다.

이 하찮은 생명체 앞에서 인간의 가오가 떨어뜨려서는 안 됐다.

그래서 잠시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그래, 마음껏 후회 없이 지껄여 봐라."

녀석은 눈을 감고 인사를 하듯 고개를 살짝 낮추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인간처럼 내 관대함에 감사의 예를 표한 것이었다.

"뒤편 빌라 2층에 누가 사는지 아시나요?"

내가 일하는 공공근로 근무지 건물 내 카페에는 거의 매일 오는 단골분이 계셨다.

"당연히 알지. 카페 단골 할머니잖아. 거의 매일 오셔서 캐모마일 드시는 분."

"네, 그 할머니 댁에 그녀가 있거든요."

"그녀? 딸이 있었어? 혼자 사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요. 흰색 암컷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요."

"그래? 고양이를 키우셨구나. 난 한 번도 못 봤는데."

"당연하죠. 데리고 나온 적도 없고, 창가에 잠깐씩만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내가 거기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못 보는 거야 당연하겠지. 그런데 그 암고양이가 뭐?"

"이곳을 지나다 그녀를 처음 본 날이 기억나네요. 하얀 털에, 에메랄드 빛 눈깔, 미끈하게 뻗은 척추선과 꼬리.... 그때 그녀는 창가에 있는 스크래처를 향해 손톱을 긁고 있었어요. 그 손짓은 정말 우아하고 귀품이 있었죠. 마치 너울거리듯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그녀의 손톱은 제가 본 어떠한 것보다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전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간 듯 그녀를 보고만 있게 되었죠."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데?"

"내가 계속 바라보자 그녀도 절 보며 밝게 미소를 짓더라고요. 그때 사랑에 빠져버렸죠."

"그건 그저 번식욕망이 아니었을까? 넌 짐승일 뿐이잖아."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어요. 쓰레기와 먼지에 뒤덮인 건 제 외적인 환경만이 아니었어요. 마음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 무언가가 캐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뜨거우면서 반짝이는 무언가요. 전 이걸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런데 무슨 손톱 가지고 아름답다는 둥 난리야. 인간 남자들은 인간 여자의 손톱이 별로 눈에 안 들어오는데, 너도 수컷이니 마찬가지 아닌가?"

"고양이에겐 손톱이 바로 곧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해요. 강인함과 아름다움 또는 생활환경까지 고양이의 모든 것이 손톱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죠. 멀리서 봐도 그녀의 손톱은 좋은 주인을 만나 매일 네일아트 하는 수준이었죠."

"어쨌든 그 고양이의 육신이 마음에 들었던 것뿐이네."

"조금은 다른 차원이에요. 당신은 좋아하는 연인이 있나요?"

"아니, 그런 거 없어. 예전에 포기했거든. 지금은 나이도 너무 들었고."

"꼭 같이 살거나, 사귄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심지어 떠올리고만 있어도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이성이요."

"그런 대상이야 누구나 있겠지."

"당신의 그분은 어디에 있나요?"

"그냥 연예인이야."

"그분을 떠올리면 무얼 하고 싶나요?"

"하긴 뭘 해. 연예인은 실제로 보기도 힘든데."

"그렇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누가 사랑한데! 그냥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니까."

"맞아요. 그럼 한 가지 가정을 해볼게요. 좋아하던 연예인이 더 좋아져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 뭐 사진을 더 보던가. SNS을 보던가 하겠지. 사인회나 팬미팅이 생기면 가보거나 할지도 모르지."

"눈요기로만 그칠 건가요? 사랑하는 마음까지 생긴 마당에요."

"어쩌라고. 그 이상 내가 뭘 해야 되는데?"

"혹여나 언젠가 그분을 직접 만나게 될 그날을 꿈꾸며 자신을 가꿔야죠. 머릿결이나 모양을 신경 쓴다든가, 옷을 좀 더 깔끔하게 입는다든가 아니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상과 인성을 가지려 노력해야죠."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데, 그런 번거로운 활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을 가꾸고 보살펴요. 제가 당신의 외적 모습을 봤을 땐, 아직 좋아하는 연인도 없고 또 그만큼 동경하는 대상도 없어요."

"하~, 그래서 그게 뭐?"

"그게 저의 이유였어요. 당신을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던 이유요. 저는 집도, 주인도 없는 길고양이니까요. 그리고 당신도 인간 기준에서는 저와 비슷한 처지이고요."

"뭐? 내가 왜 너랑 비슷해. 나 우리 집에 살아."

"혼자이고 돈이 없잖아요. 당신의 정돈되지 않은 머릿결과 깎지 않은 수염 그리고 입고 있는 해진 옷과 밑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운동화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게다가 보통의 인간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잖아요. 또 저를 보면 많은 인간들은 캔사료나 츄르를 주려고 기를 쓰는데, 당신은 저를 적대시하잖아요. 마치 해충을 보듯 하면서요. 마음에 길고양이 하나 들일 여유가 없는 거죠. 사랑이 없으니까요."

"팩폭이군. 이게 이제 슬슬 신경을 긁네."

길고양이가 이제 위기에 처하니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나에게 도발이자 자극을 시도하다니.... 난 인상을 마구 구겼다. 하지만 녀석은 내 반응에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저와 당신의 차이점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동경하는가에 문제예요. 전 비록 창문을 통해 그녀를 보더라도 최선을 다했어요."

"뭔 최선을 다했다는 건데? 나 일하기 힘들게만 했잖아."

"그건 알아요. 정말 매일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그녀 또는 다른 집고양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손톱을 다듬고 싶었어요. 하지만 길고양이에겐 손톱을 다듬을 만한 마땅한 장소와 대상이 없었죠.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이곳에서 손톱을 다듬었어요. 오로지 그녀를 생각하면서요. 그 외롭고 괴로운 고난의 시간을 당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이란 존재는 이해를 통해 공존하는 생명체이니까요. 전... 정말 처절하게 손톱을 다듬었어요."

난 고양이의 사연을 듣고... 조금 감동했다.

'난 누군가를 동경하며 그에 맞추려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역시 팔자에 없어서 사랑을 못한 게 아니라, 내가 그에 맞는 노력과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순간 고양이의 처분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저건 내 청소도구함 박스야. 너가 자꾸 긁어서 종이도 날리지만 이러다간 청소도구 놓을 곳이 없어지게 돼. 좀 힘들겠지만 뭐 고목나무라도 찾아서 해. 이번엔... 넘어가 줄게."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저도 그렇게 할게요. 매일 죄책감이 심했어요."

길고양이의 진심을 느낀 난 조용히 막고 있던 길목을 비켜 주었다.

"가라...."

그러자 한동안 날 그렁그렁한 눈길로 쳐다보던 녀석은 천천히 다가온 뒤, 내 운동화에 얼굴을 살짝 비빈 후 어디론가 달려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사진을 프린터로 출력해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쇼핑몰을 검색해 새 셔츠도 몇 벌 질렀다.

언젠가 나도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를 그녀를 위해 동경하는 자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 고양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녀석의 이야기로 마음이 많이 풀렸다.


다음날 출근길에 난 빌라 2층에 사시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난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응, 이제 출근하나벼."

"네."

"그래 어여 가봐. 이따가 카페 들를테니깽."

"아참! 댁에 흰색 고양이 키우신다면서요?"

"뭐? 우리 고양이 안 키우는데."

그때 난 녀석에게 1차로 당했음을 알았다.

직감적으로 느낌이 안 좋아, 난 황급히 출근할 건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박스는 이미 갈가리 찢겨 분해되다 시피한 상태였고, 건물 현관 앞에는 진한 응가가 두 덩이 싸질러져 있었다.

'다... 당했다!'

이래서...

스토리텔링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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