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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Jun 14. 2022

안녕하세요? 행성 L이에요.

(여관 장기방 생활) 1. 여관 장기방 생활의 시작

  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법을 몰라요. 왜냐하면 다 먹어버리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은 국물이 남기면 버리기도 해요. 집이란 공간에 살면서 사치를 부리게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여관에서 살 때는 남은 라면 국물도 소중한 한 끼의 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했죠. 딱 계란 한알 풀어서 다시 끓이면 훌륭한 계란국이 되거든요. 비슷한 생활 수준의 사람들이 군락을 모여 살아가는 세상 같아요.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죠. 부자동네도 있고, 가난한 동네도 있고 또 주거형태에 따라서도 제각각 이죠. 여관도, 쪽방도, 고시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 안에서도 빈부격차도 존재하고, 생활수준도 많이 다르겠죠. 전 그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여관과 여인숙이 즐비한 곳에 살았어요.  


 고시원에 살면서 야간 경비원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그 고시원의 아래층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학원 때문에 야간에 일하고 낮에 자야 하는 입장에서 쿵쾅대는 음악소리와 집단군무 소리에 낮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비슷한 가격에 보증금이 적은 원룸을 알아보러 다녔어요. 그때 원룸 사장님과 전화 통화가 안되어 주변을 배회하다 한 여관 앞에서 사장님으로 보이는 노인 한분이 쓰레기 분리 작업을 하고 계시는 걸 보게 되었어요. 여관 입구에 붙어 있는 '장기방 환영'이란 문구를 보고 그분께 장기방은 얼마인지 여쭈어보니 글쎄 고시원 한 달 방세랑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방을 한번 구경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바로 따라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지내고 있던 고시원은 공용화장실에 옆방의 티브이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방음이 잘 안 되던 곳이었는데요. 여관방은 널찍한 데다 욕실에 화장실도 따로 갖춰져 있고, 몸만 들어오면 될 정도로 옷장이며 신발장, 케이블 티브이, 소형 냉장고가 다 있던 거였어요. 단지 고시원처럼 김치를 제공한다던가 공용 조리시설이 없어서 밥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단점은 있었어요. 하지만 편안한 낮시간의 숙면과 가격을 중요시하던 저에겐 여관이 딱 안성맞춤이었죠.


 사장님의 영업 스킬이셨는지 방 금세 나간다는 말에 몇만 원의 계약금을 걸어놓고 고시원으로 돌아가 이사 준비를 급하게 했어요. 저녁엔 또 출근을 해야 됐거든요. 보따리 짐을 챙겨 여러 차례 왕복했지만 방이 마음에 들어서 피로도 안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가지게 된 사람이 느끼는 것과 비슷했을 거예요. 왜냐면 저로서는 보증금과 관리비 부담으로 많은 지출이 앞으로 예상되었다가, 제가 가진 능력에서는 최고의 방을 구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짐을 제대로 정리할 새도 없이 일단 우당탕 가져다 놓기 바빴었어요. 고시원에 있던 짐을 다 빼가지고 와서 방을 보니 방문에 주로 의류에 있는 사이즈 라벨 스티커가 붙여져 있더라고요. 영문자 'L'이었는데 제가 오기 이전에 살던 사람이 옷을 사고 스티커를 떼면서 이곳에 붙여놓은 모양이었어요. 전 그게 참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Lucky'를 의미하는 것 같았거든요.


 여관에서 돈을 절약하며 살다가 나중에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려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시작했는데, 제가 그 여관에서 6년 가까이 살 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리고 그곳에 살 던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약자로 치부되는 분들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들을 옆에서 보며, 저도 그렇게 살아갔었죠.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알 수 없는 행성의 이름 같이 전 여관을 '행성 L'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제가 여관 장기방에서 먹고살았던 이야기, 실제로 목격한 고독사의 현장, 가족으로 부터 외면받아 마지막으로 여관에 오게 된 아저씨,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종교단체에서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던 과일, 복지단체의 도시락 배달 등 기억에 남은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영화에서 본 전쟁이랑 실제 전쟁이 다르듯이 대부분 빈곤하게 살아가는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의 삶은, 제가 이전에 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게 다가 아니었어요. 실전은 원래 더 험난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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