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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Jun 15. 2022

안녕하세요? 행성 L이에요.

(여관 장기방 생활) 2. 고독사 아저씨

 (실제 경험을 기록한 내용)

 여관에 살던 시기 낮에 복도에서 대화 소리가 낡은 방문을 넘어 들려왔다. 보통 여관 복도에서 대화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아주 짧은 대화만 오가곤 했는데 그날은 여러 명의 긴 대화 소리였다.


"어후 냄새...."

"바닥부터 찍어 바닥부터!"

"바닥을 먼저 찍으면서 밟고 들어가라고!"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또 어딘가 문제가 생겨 공사나 보수를 하려니 생각했다. 누수공사든지 부분 미장공사든지 벽지를 교체한다든지 보수가 잦은 여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장기방 투숙객을 주로 받는 여관에서는 공용 세탁기, 정수기, 전자레인지 등이 갖춰져 있었다. 난 물을 담으려 빈 물병을 가지고 내방 문을 나가는 순간 앞방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순간 얼어버렸다.

 앞방 아저씨의 시신을 새하얀 방진복 입은 두 명의 사람이 바쁘게 수습하던 중이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연신 커다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방안을 구석구석 찍고 있었다. 문 옆에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서 있던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동상같이 서있던 나에게 한걸음 성큼 다가와 물었다.


"안녕하세요. 형사인데요. 앞방에 사시던 분이 고독사 하신 것 같은데, 혹시 평소에 교류가 있으셨나요?"

"아, 아뇨... 웁...."


 난 이미 놀란 상태에서 자신을 형사라고 소개한 사람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려 했으나 순식간에 코와 입으로 침입하는 역한 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왔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볼 일 보세요."


 형사도 이미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형식적으로 물어보고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난 어떠한 형태로든 앞방 아저씨의 죽음과 연관되어선 안 되겠다 생각하면서 플라스틱 물병을 가슴에 얼싸안고 정수기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여관 전체에 아저씨가 남긴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실제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냄새... 그리고 한번 맡아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냄새....




 전 앞방에 살던 분과는 서로 얼굴은 알았지만 대화를 따로 한 적은 없었어요. 여관에서 서로 아는 척하는 사람은 몇 안되었거든요. 전 가장 젊었던 장기방 사람이었고, 컴퓨터와 티브이를 조금 다룰 줄 알아서 종종 여관 사장님의 도움을 요청하셔서 다른 사람들의 방에 들어가 티브이의 케이블을 교체해 준다던지, 와이파이를 잡아준다던지, 케이블 티브이 사용이 미숙한 분들에게 원하는 채널을 저장해 주곤 했어요. 딱 한 분만 성인방송 채널을 알려달라고 하신 적은 있지만, 놀랍게도 90% 이상이 항상 빠르게 찾길 원하는 채널은 종교방송이었어요. 나중에야 그 사정을 알 것도 같았죠.


 앞방에는 딱 한 번 케이블 티브이의 선을 꽂아주러 들어가 본 적이 있었어요. 그분은 여관 티브이가 작아서 그런지 개인 티브이를 따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사장님과 대화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공사판의 일거리를 찾아다닌다고 하시더라고요. 여관 건물 내 수도 배관에 대해 사장님께 조언해주시는 것을 보니 배관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듯했어요. 그래서 종종 일주일 이상 인기척이 욕실에서 안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여관의 건물 구조상 그 아저씨의 욕실이 제 방 옆에 붙어있어서 씻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굉장히 금방 씻고 자주 욕실을 사용하는 분이 아니라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어요.


 여관에는 대부분 장기방 투숙객이 살고 있었죠. 워낙 노후된 건물에다 여행객이나 연인들이 들를 만한 곳은 아니라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소리가 드물게 나던 곳이었는데, 추석날 저녁 웬일로 앞방 아저씨가 배달 음식을 시켜서 배달원분이 복도에서 노크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추석날 가족과 같이 맛있는 음식 대신 떡볶이로 명절 저녁을 보내려고 하셨던 거였죠. 여관에 혼자 살면서 맞이하는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엔 뭔가 특별한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뒤로 2주 정도 앞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어느 날 야간 일을 마친 뒤 자고 점심이 지나 일어나니 형사와 과학수사대가 와서 아저씨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더라고요. 나중에 여관 사장님께 들으니 심장질환으로 자다가 돌아가셨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전기장판을 뜨끈하게 틀어놓은 상태로 돌아가셔서 시신도 빨리 부패되었고, 그에 따라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온 오염물로 인해 악취가 방안에 깊게 배여 버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여관 사장님이 직접 그 방안의 물건을 모두 빼서 장판부터 벽지까지 모두 긴 시간에 걸쳐 뜯어내셨지만 냄새가 빠지지 않아 나중엔 쑥을 태우기도 하셨어요. 쑥향이 효과가 있었는지 나중에 쑥향이 한번 더 여관에서 났었죠. 저에게 그 아저씨가 살던 방의 철거를 도와달라고 하실까 봐 굉장히 속으로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고독사 현장을 특수 청소업체에서 하기도 한다는데, 전 그 시신이 남긴 냄새를 직접 맡아봐서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어요.


 몇 년 전의 일인데도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게, 떡볶이를 보면 가끔 그 아저씨가 떠오른다는 것이에요. 서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처지에 혹시 제가 아주 작은 인간적인 관심이라도 그 아저씨에게 있었다면, 며칠 정도는 빨리 발견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남아있었거든요.


 여관에는 교회를 다니시는 연세 드신 분들이 꽤 있었는데, 교회는 특이하게 그분들이 안 나오면 직접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교회 안 나오셔서 와봤다며 찾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종교적이든 이해관계든 그 무엇이든 간에, 혼자 사는 사람에게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경우, 외부에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복지단체나 종교단체가 있다면 조금은 더 빨리 발견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어요.     


 전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된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종교단체는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같은 소속의 종교인들로부터 옷가지나 간식을 얻거나,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기대거나, 자신의 시신을 좀 더 빨리 발견해주거나요.


 행성 L은 각 방마다 외로운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가 있으면서, 외로움을 서로 나누진 않는 신기한 곳이었어요. 저 역시 그랬었죠. 서로 돈이 없고, 언제든 사라질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많이 살고 있었지만 모두가 알 수 없는 외계행성에 떨어진 조난자와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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