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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Jun 17. 2022

안녕하세요? 행성 L이에요.

(여관 장기방 생활) 3. 여관방 식사 - 라면

 원칙적으로 방 안에서 가스버너는 사용하지 말라고 여관 사장님께서 이야기하셨어요. 그런데 여관의 쓰레기를 모으는 곳을 보면 대부분 라면은 먹는 것 같더라고요. 가스버너를 사용 안 한다면 컵라면 용기가 더 많았을 텐데 일반 라면 봉지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방안에 화재감지기가 신경 쓰였지만 창문을 열어놓고 라면을 몰래 끓여먹곤 했어요.


 여관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식당에서 혼자 자리 차지하고 밥 먹긴 눈치가 보여 편하게 먹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돈을 아끼려면 방 안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었죠. 라면이 정말 많은 사람을 구한 식량이란 걸 여관에서 살면서 느꼈어요. 적은 비용으로 배도, 영양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날 야간 일을 마치고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자고 있는데 여관 내 화재경보기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오작동이겠거니 하고 누워서 경보기가 꺼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방의 아저씨가 급하게 제 방 문을 두드리시더라고요.

 

"사람 있어요? 나와요! 나와!"

 

 정말 '쿵쾅! 쿵쾅!'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니 누워있던 자리에서 바로 1초 만에 일어나 지더라고요. 문을 살짝 열어 보니 여관에 오래 거주 중인 아저씨가 각방에 문을 두드리며 사람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복도엔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었어요. 안 좋은 상황임을 알아채고, 바로 지갑과 휴대폰, 이 두 가지만 챙겨서 여관을 빠져나왔죠. 이미 여관에 있던 장기방 사람들은 다 나와계시더라고요.


 곧 소방차가 도착해서 다행히 큰 불로 번지지는 않고 방안을 그을린 정도로 진화가 된 것 같았어요. 어떤 50대 중반 정도의 아저씨분이 사장님께 연신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시더라고요. 사장님은 당연히 화가 나 상태였고요. 그 아저씨께서 술안주로 라면을 먹으려고 라면을 끓이다 잠깐 잠이 드셨던 거예요. 경찰도 출동했는데 고의 방화는 아닌 걸로 보인다고, 사장님께 방안에 도배비 정도 받는 걸로 합의하시라고 하더라고요.


 그 아저씨께서는 방안에 수리비 자신이 물겠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그냥 방을 빼서 나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사장님이 갈 곳 없는 사람에게 야박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관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이미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중이었고, 그 아저씨가 당연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 수리비를 안 받고 방 빼라고 하신 게 더 인도적이셨던 거 같아요.


 저는 그 뒤에 가스버너는 버리고, 다른 방법으로 방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었죠. 분명 다른 사람들 중 가스버너를 몰래 사용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라면포트를 따로 사용하실 것도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라면포트를 따로 장만해서 좀 더 식생활의 질을 높이기 시작했어요.


 불이 나서 다른 방 문들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치고 다닌 아저씨도, 수리비는 안 받을 테니 규칙을 어긴 거라 방은 빼라고 하셨던 사장님도 좋은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안 하던 사람들이, 몇 호 할아버지 아직 방에 있는 것 아니냐며 이야기하면서 걱정하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 후엔 또다시 복도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을 서로 안 했었죠. 몰래 쓰는 가스버너 같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는 게, 행성 L에서의 서로를 위한 삶의 방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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