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잘 활용하려면, 거창한 프로젝트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 업무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을 하나 골라, 그 과정을 줄여보는 것이 출발점에 가깝다. 나에게 그 일은 ‘메일 작성’이었다.
메일을 쓰는 데 짧게 걸릴 때도 오래 걸릴 때도 있다. 오래 걸릴 때는 대부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흐름으로 전개해야 할지, 마무리는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야 할지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 특히 상대가 교수인지, 외부 협업 파트너인지, 처음 연락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톤의 변화가 필요한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을 구조로 분리해 보기로 했다.
메일 초안 작성기는 상대의 직위, 메일의 목적(문의·감사·거절 등), 언어, 긴급도, 이전 대화 여부, 첨부파일 언급 여부 등을 필터로 선택하면, AI API가 해당 조건에 맞춰 메일 초안을 생성하도록 설계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메일을 대신 써주는 기능'이 아니다. 내가 매번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던 판단을 구조로 꺼내 놓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판단을 분리하는 순간, 업무는 감각이 아니라 설계가 된다.
작성된 초안은 곧바로 구글 메일 임시보관함에 저장된다. 나는 그 초안을 열어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거나, 맥락을 덧붙이고, 표현을 다듬고 나서 첨부 파일이 있는 경우 파일을 첨부한다. 즉, AI가 완성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검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초안’을 만들어주는 구조다. 이 작은 변화 덕분에 메일 작성은 즉흥적 사고가 아니라, 설계된 흐름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되었다.
지금은 간단한 초안을 생성하는 수준이지만, 필터 기반 설계를 해두었기 때문에, 확장은 비교적 명확하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단체 메일 템플릿으로 자동 전환
수신자 유형에 따라 기본 톤이 자동 설정
프로젝트별 서명·첨부 문구 자동 삽입
이전 대화 이력 기반 맥락 자동 반영
일정 연동 후 리마인드 메일 자동 생성
지금은 내가 필터를 직접 선택하지만, 데이터가 축적되면 선택 과정 자체를 자동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수신자의 직함과 과거 메일 패턴을 기반으로 기본 톤과 길이를 자동 제안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언젠가 AI의 자율성이 더 높아진다면, 내가 설정해 둔 커뮤니케이션 원칙과 승인 조건 안에서 AI가 초안 작성뿐 아니라 발송 준비까지 수행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중요한 건 ‘완전 자동 발송’이 아니라 내가 정의한 규칙 안에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