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고장 났다. 큰맘 먹고 더 좋은 성능의 부품들로 싹 바꿨는데, 어째 상황은 더 나빠졌다. 벌써 수리 기사님 두 분을 만났고, 두 번의 대대적인 수리를 거쳤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조차 "확률이 너무 많아서 확실한 건 없다"라며 조심스러운 추측만 내놓을 뿐이다. 비싼 부품들이 박힌 본체를 앞에 두고 느끼는 이 막막함이란.
답답한 마음에 챗GPT에게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해 봤다. 흥미로운 건, 현장을 직접 본 기사님들과 화면 너머의 AI가 내놓은 진단이 정반대였다는 점이다.
1. 파워(Power)의 문제인가?
• 기사님들: "이미 파워를 새것으로 교체했으니, 파워 문제는 절대 아닐 겁니다."
• AI: "새 제품이라도 초기 불량이거나, 바뀐 고성능 부품들의 전력 소모량을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파워를 다시 점검해 보세요."
2. 기괴한 노이즈의 정체는?
윈도를 켜거나 캡처를 할 때마다 스피커에서 펑펑,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노이즈가 났다.
• 기사님들: "이건 하드웨어 문제네요. 메인보드 슬롯 불량인 것 같습니다."
• AI: "하드웨어 이전에 드라이버 충돌이나 오디오 샘플링 레이트 설정 문제입니다. 드라이버부터 다시 잡아보세요."
결국 우리는 누구를 신뢰하게 될까?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본체는 여전히 입원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묘한 기분이 든다. 수십 년 경력의 기사님이 "아마도..."라며 머리를 긁적일 때보다, AI가 수조 개의 데이터를 근거로 "이럴 가능성이 높다"라고 조목조목 짚어줄 때 더 큰 신뢰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문제의 최종 해결자가 AI가 된다면? 나는 앞으로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기사님을 부르기보다 모니터 속 AI에게 먼저 말을 걸게 될 것이다.
기술은 평등해지고, 신뢰의 축이 이동한다.
이건 단순히 컴퓨터 수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법률, 상담까지. 인간 전문가가 가진 '경험의 한계'를 AI의 '압도적인 데이터'가 넘어서는 순간, 우리가 수천 년간 쌓아온 전문성에 대한 신념은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모른다.
물론 기사님의 따뜻한 위로와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은 AI가 해줄 수 없다. 하지만 당장 내 컴퓨터를 살려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닌 '정답'이다.
내 컴퓨터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그 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아직은 누가 맞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AI가 수리 기사를 대체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