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출판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포르체

포르체 출판사의 박영미 대표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어제 밤을 샜다고 하신다. 문득 4년 만에 첫 휴가를 간다던 언론사의 한 이사님 생각이 났다. 워라밸의 시대가 무색한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실적과 성과의 노예로 사는 분들이 한 부류다. 대기업의 임원쯤 되면 이런 삶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 차이가 뭐냐고? 만나서 얘기해보면 알 수가 있다.


박영미 대표는 쌤앤파커스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 독립했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출판사 이름은 알 것이다. 출판 마케팅에서 있어서는 독보적인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대형 출판사를 나와 독립한다고 하니 주변에선 말들도 많았다. 이럴 때는 첫 책의 성공이 무엇보다도 절실해진다. 하지만 박 대표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명인이 아닌 아주 평범한 무명의 작가를 택했다. 독립의 이유가 '나다운' 책에 대한 목마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이 대박을 쳤다. 이유를 물어보니 '운'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운을 만드는 것도 결국 실력인 것임을.


대형 출판사를 고집하는 저자들이 있다. 하지만 출판가를 아는 사람들은 이것의 허망함을 누구보다 잘 알것이다. 이런 출판사는 그 명성 때문에라도 소위 S등급의 라인업이 연초에 픽스되어 버린다. 회사의 마케팅 역량을 쏟아붇는 책들이다. 나머지 책들은 소위 양을 채우기 위한 책들이 된다. 당연히 마케팅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르체는 직원이 4명인데 그 중 2명이 마케터다. 1년에 내는 책의 수도 타 출판사보다 훨씬 적다. 그러다보니 한 권 한 권에 쏟는 정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2쇄를 찍지 못한 책들도 마케팅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잘 되는 책들은 말할 것도 없다. 포르체에서 책을 낸 어느 의사는 페이 닥터에서 부원장을 여럿 두고 빌딩 2개 층을 쓰는 대형 병원의 원장이 됐다.


하지만 내가 포르체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다른 포인트다. 이 출판사는 '성장'이 목표가 아니다. 콘트롤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고자 한다. 의도적으로 성장을 '지양'한다. 이건 작지만 경쟁력 있는 스몰 자이언츠들의 특징이다. 어느 기업이든 매출이 늘면 규모의 성장을 원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품질은 뒷전이 되고 만다. 모든 제품에 생산 과정에 신경을 쏟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지면 인력도 충원해야 하지만 그들의 역량까지 조율하긴 힘들다. 그런 점에서 포르체는 '내실'을 선택했다. 내심 이 출판사의 내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박 대표는 마케팅을 안다. 편집자가 마케팅까지 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2시간 이상 함께 수다 아닌 수다를 떨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포르체는 무명의 작가라도 컨셉만 분명하다면 책을 낸다. 첫 책의 저자는 예스24와 같은 온라인 서점도 모르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고도 베스트셀러를 만든 이유는 박 대표의 안목 때문이다. 이렇게 정해진 책은 핵심 키워드를 도출한 후 100여 개의 채널 중에서 엄선된 곳들에 바이럴 된다. 이런 노하우가 출판사에만 국한될리 없다. 무엇보다 포르체가 작지만 강한 스몰 브랜드라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다. 이런 브랜드 10곳만 꼽아서 '오늘의 브랜드'로 소개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브랜딩의 최전선을 목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포르체와 책 한 권을 내기로 했다. 10년 차 이상의 경력을 가진, 5명의 마케터가 함께 쓰는 책이다. 몇 달 전 결성된 이 모임은 현재도 격주로 줌 미팅을 이어가고 있다. 5명이 돌아가며 한 가지 주제로 발제를 한다. 나는 그 내용들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누는 대화들이 정말로 기가 막히다. 마케팅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 해법들, 그리고 실제로 경험한 에피소드들이 넘친다. 원석이 빛나니 잘만 다듬으면 멋진 책으로 엮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포르체를 만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또 한 번 내가 택한 일이 얼마나 멋지고 보람된 일인지를 확신하게 된 오늘이었다.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이 멋진 출판사와 멋진 결과를 만들기 위해 또 한 번 달려야겠다. 새벽 4시의 공기가 기분 좋게 차다. 또 한 번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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