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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예술가다, 아트에이블

1.


직장 생활 17년 차, 그러나 여전히 회사를 가기 싫어하는 어느 웹디자이너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가는 일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까, 늘 이런 고민을 하던 그는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바로 어릴 때부터 그렇게 그리고 싶어했던 '그림'이었다. 그녀는 그 다음 날부터 회사에 2,3시간 일찍 출근해 그림을 그렸다. 출근 시간이 되면 화구를 접어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다. 점심 시간에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도 미리 정해두었다. 무료하고 우울한 일상에 한 줄기 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소풍 전날의 초등학생처럼 기대와 설렘이 한 마리 파랑새처럼 찾아왔다.


2.


그녀의 그림은 일취월장했다. 심지어 점심을 대충 때우고 붓을 잡을 정도로 그림에 빠져들었다. 직장 동료들도 하나둘씩 그 대열에 참여했다. 옆에서 켈리그라피를 배우는 동료를 보며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용역을 받아 파견되어온 디자이너들이 즐비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오픈마켓에 팔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들에 매일 노출되었고,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녀들에게 쇼핑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선물했다. 아침마다 회사 앞에 택배 상자들이 가득 쌓였다. 그러나 그 택배 상자를 일일이 열어보는 직원들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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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 한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오는 만족감은 엄청난 경험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수채화 기업을 더욱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수정이 어렵고, 난이도가 높고, 감각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선입견들이 판판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쉬운 기법들이 존재하는데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팔리는 작품을 만들거나, 그에 준하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이 달랐다. 그림 그리기에 빠져드는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는 행복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결국 회사를 뛰어나와 '아트 에이블'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4.


우선 수채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그림 그리는 비법을 알려준다는 타겟 광고를 했다. 컬러링북을 만들어 PDF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금새 600여 명의 사람들이 단톡방에 모여 들었다. 그 중에서 수업을 신청한 사람은 100여 명, 실제로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5,60명 정도다.그녀는 이들을 상대로 10주 째 수채화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텀블벅에 펀딩도 했다. 4,000%가 넘는 호응을 3차에 걸쳐 끌어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된 사살이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이 수업에 많이 참가한다는 사실이었다. 2,30대 여성이 아닌 4,5,60대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을 자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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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nwritten Book,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


그 유명한 몰스킨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 아트 에이블의 대표를 컨설팅을 통해 만났다. 그녀는 고객들이 무엇에 목말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간절한 첫 번째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욕망이 모두의 욕망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SNS 광고를 통해 숨어 있던 고객을 찾아냈다. 그리고 모으고 가르치는데도 성공했다. 이 브랜드의 슬로건은 'We can all do Art'이다. 어떤 예술도 가능하다는 'Art able'이란 네이밍도 신선하다. 다만 이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축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컨셉은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아트 에이블의 가치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컨셉을 찾아보기로 했다.


6.


브랜딩은 크고 거대한 그 무엇이 아니다. 대기업이나 돈 있는 회사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BI와 CI를 바꾸고 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이 아니다. 로고송을 만들고 방송이나 신문 광고를 만드는 것만도 아니다. 브랜드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서 세상에 '가치'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가치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을 의미한다. 그녀는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거짓말을 이겨내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울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그림을 통해 멋지게 극복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나는 감히 이 브랜드가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하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디테일한 전문가의 손길, 그리고 응원이다. 이 브랜드를 통해 출근을 두려워하는 그 누군가에게 '기대'와 '설렘'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트 에이블이 그토록 전하고자 하는 '가치'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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