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료한 여름날의 주말 오후, 소파 근처에서 빈둥거리던 나는 문득 하나의 브랜드가 궁금하다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바로 에이스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로비가 지역 주민은 물론 단순 방문객에도 공개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 쪽 벽을 그래피티로 그려넣은 객실은 더 놀라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호텔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밤이면 호텔의 로비는 클럽으로 바뀐다고 했다. 객실에 누워 있던 손님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문득 이 희한한 호텔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한참을 검색한 후에야 열정적으로 젊음을 불태운 후 사라진 알렉스 콜더우드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동성애자였고 약물 중독으로 자신의 호텔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가 만든 호텔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이 호텔을 꼭 한 번 방문해보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발뮤다는 내가 마음 속으로 가장 사랑한 브랜드 중 하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집엔 발뮤다 제품이 하나도 없다. 사실 내가 사랑한 건 그들이 만든 제품이 아니라 스토리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발뮤다를 신나게 자랑하던 내 모습을 보던 어느 대표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본에서는 그 정도의 브랜드는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였다. 머쓱해진 나는 '아, 그렇군요' 하고 말을 아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회사의 대표 테라오 겐 사장이 사고를 쳤다. 뜬금없이 스마트폰을 개발한 것이다. IT 기계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에게도 의뭉스럽기 그지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생태계를 전혀 이해하지못한 긱스런 제품이 놀라운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제품은 나오자마자 신랄한 비판에 직면했고 제품은 몇 달 만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발뮤다는 지금 주가 폭락으로 예전의 명성을 한순간에 날린 후 추락을 거듭하는 중이다.
브랜드는 재미있다. 적어도 내게는 어떤 스포츠나 게임이나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대상이 된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어마어마한 브랜드들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작업은 1000개의 스몰 브랜드를 발굴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도 공주의 원도심 어느 골목에 숨은 '곡물집'이라는 브랜드를 잘 모를 것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수많은 콩과 같은 곡식을 빻아 커피와 같은 마실거리로 가공해 내어놓는다. 사실 커피도 알고 보면 콩으로 불리는 식물이지 않은가. 그냥 선비콩을 갈아 내놓으면 미숫가루를 물에 탄 음료가 된다. 하지만 거게 스토리와 디자인과 멋을 더하면 에티오피아 커피와 같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이곳은 전국은 물론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브랜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요즘도 데이비드 아커와 케빈 케인 캘러와 장 노엘 카페레 교수의 책을 한 쪽에 끼고 산다. 알면 알수록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소위 브랜드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 중에는 조금 까칠한 분들이 많다. 이 분들은 페이스북에서 수시로 이렇게 야단을 치곤 한다. "니가 브랜드를 알아?" 그러면서 아무나 브랜드를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혀를 찬다. 15년 이상의 경력자인 나도 그때마다 움찔움찔 한다. 마치 나한테 하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지방 국립대학의 사회학과 출신이다. 나이 서른 다섯에 브랜드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 대학원이라도 진학할 예정이지만 지금은 바빠서 엄두도 못내고 있다. 브랜드 전문지에서 일하는 동안 입에 거품이 나도록 책을 읽었지만 그래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마치 정파가 아닌 사파의 무술을 익힌 무협지 속 인물처럼 주눅들어 살아간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MBA는 커녕 소위 브랜드의 'B'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목도했기 때문이다.
충주에 있는 조그만 우동 가게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15년 단골은 기본이고 25년 된 단골들이 우글대는 유명한 가게다. 새벽 무렵 2,3차를 달린 취객들이 속을 달래는 평범한 식당이다. 하지만 이곳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벽과 천정을 가득 채운 4,000여 장의 사연이 적힌 종이다. 이 곳 사장님은 지난 30여 년 동안 실연과 사업 실패로 자신의 가게를 찾은 사람들의 얘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앞으로 삶에 대한 각오를 쓰게 했다. 이렇게 이 가게와 인연을 만든 사람들이 단골 손님, 그러니까 팬덤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 한 사람은 그 다음 날로 충주에 내려가 이 가게를 찾기도 했다. 김밥을 썰면 옆구리가 터지고, 간을 맞추지 못해 염도 체크를 하는 이 가게가 사랑받는 브랜드, 즉 러브 마크(Love Mark)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들이 진정성 넘치는 브랜드로 거듭났기 때문이 아닐까?
참고로 데이비드 아커는 마케터의 시각으로 브랜드를 이해하는 학자이다. 그는 미국 유수의 브랜드를 만나면서 그들의 브랜드가 곧 자산(Equity)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 학자이다. 반대로 캘러 교수는 인간의 인지의 대상으로 브랜드를 바라본다. 콜라를 맛이 아닌 브랜드로 소비한다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반면 유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캐퍼러 교수는 사회 문화적인 관점에서 브랜드를 연구해왔다. 특히 명품 브랜드에 대한 그의 이해는 브랜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었다. 하지만 과연 동네에서 과일 가게를 하고, 카페를 하는 사람들이 데이비드 아커를 완전히 이해하면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아커 교수가 만난 사람들은 주식 시장과 M&A 시장에서 만난 글로벌한 브랜드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책에 나온 '미국'의 '올드'한 사례를 보고 있자면 과연 이 내용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에 대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았다.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그들의 이론은 정교하고 끝없이 배울 지식의 정수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론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작은 브랜드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정작 그 자신도 직접 브랜드를 만들 때면 인플루언서들에 매달리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렵고 복잡한 브랜드 지식을 보통의 사람들에게 돌려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국내의 첫 브랜드 전문지에서 일할 때는 관련된 책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아무나'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쉬운 우리 말로 바꾼 '나다움'이란 말은 자기계발 서적에서 가장 인기 있는 키워드가 되었다. 나 역시 동일한 내용으로 '스몰 스텝'이라는 책을 써서 10쇄를 팔았다. 요즘은 작은 식당이나 고깃집 하나를 하더라도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난 주만 하더라도 나는 지방의 두 곳 식당으로부터 브랜드북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조그만 동네 병원과 학원들을 컨설팅한 것도 여러 번이다. 지난 7년 간 5,60 곳의 스몰 브랜드를 컨설팅했다. 이름도 지어주고, 마케팅도 대행해주고, 때로는 책도 만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이 시장은 진짜 브랜드를 모른다. 함부로 브랜딩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브랜드를 가르치는 학계와 시장은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 심지어 브랜드를 연구하는 학자들 조차도 서로 갈라져 있다. 생산성 넘치는 토론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들은 그룹 단위로, 그들만의 리그로 나뉘어 끼리 끼리 움직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민주화를 이뤄낸 대단한 민족이다. 촛불을 들고 나라의 리더를 바꿀 정도로 역동적인 나라다. 이렇게 만들어낸 굳건한 시스템이 소수의 위정자가 어찌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제 브랜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학자들이, 소수의 브랜딩 에이전시가, 대기업 브랜드의 몇몇 인하우스 브랜더가, 인플루언서에 가까운 창업자들에만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비민주적인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고 믿는다. 동네 어귀의 과일 가게도 브랜딩이 필요하고, 이제 막 간판을 단 식당도 브랜딩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브랜딩은 이제 우리의 '일상'과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스타그램 맛집이 브랜드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몇몇 유명한 로컬 브랜드가 완벽한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가능성이다. 이제 누구도 브랜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누구라도 진짜 브랜드를 만나고 이해하고 공부하고 토론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때는 철학과 수학과 천문학과 예술이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런 학문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이제 브랜드도 '민주화'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확신한다.
브랜드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가치'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가치란 쓸모 이상의, 진선미와 같은 인간의 욕구를 의미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는 제자들에 의해 7단계로 확장되기도 했다. 매슬로우 그 자신은 이 피라미드를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말은 먹고 자는 생물학적 욕구가 아닌, 자아 실현과 자기 표현의 대상으로 브랜드를 소비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정확히 대변해준다. 우리는 더 이상 배고프다는 이유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저 달리는 것에 만족해 차를 사지 않는다. 물건을 담는 용도로만 명품백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브랜드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브랜드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나는 브랜드 이야기를 그토록 재미있게 들어주던 중, 고등학생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브랜드는 중졸, 고졸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기성 세대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반항아 기질을 더욱 사랑한다. 마치 에이스 호텔을 만들었던, 살아 있는 내내 클럽을 전전하고, 뜬금없이 '어메리칸 클래식' 컨셉의 바버샵을 만들었던 알렉스 콜더우드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제 브랜드를 대중에게 돌려주자. 아무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브랜드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게 진짜를 가르쳐주자. 브랜드를 입고 소비하는 것이 왜 나답게 살아가는 한 방법인지를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 나는 이른바 지식의 가오를 벗어던지고 대학의 교수와 동네 식당 주인이 브랜드를 주제로 언성을 높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이미 핫한 가게는 서울을 벗어나 지방의 곳곳에서 성업 중인게 현실이다. 부산 전포동에 있는 전리단 길엔 성수동의 핫함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지 컨셉의 가게들이 즐비하다. 나는 이곳 카페의 한 모퉁이에 앉아 내일의 브랜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길 꿈꾸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브랜드는 재미있다. 그리고 유용하가까지 하다. 작지만 멋진 브랜드가 많아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꼭 명품이 아니라도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스몰 브랜드가 많아진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수십 년 된 일이다. 이제 우리는 고기를 몽탄과 금돼지와 설로인과 청기와 가든으로 소비한다. 그러니 이제 브랜드를 대중에게 돌려 주자.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해보자. 촛불을 들어 나라를 국민의 것으로 되돌린 것처럼, 브랜드를 들어 시장의 소비자들을 널리 이롭게 하자. 나는 그것이 사장님도 소비자도 행복해지는 최고의 선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요철, '브랜드워커 파트너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