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가 공저한 책 '포지셔닝'은 마케팅에 관한 한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고객들의 인식 속에 먼저 자리 잡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맨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쳤다면 어떻게 할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이야기한다. 그는 콜럼버스보다 5년 늦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지만 두 가지 현명한 일을 했다. 그 첫 번째는 이 신세계를 아시아와는 다른 별개의 대륙으로 포지셔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에 걸친 탐험을 낱낱이 기록한 다섯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래서 이 대륙은 이후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나는 브랜드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엔 대단한 전문가들이 너무도 많다. 적어도 대기업의 브랜딩 시장은 포화 상태다. 내노라 하는 전문 컨설팅 회사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상대했던 아주 작은 기업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실상 돈이 되지 않는 시장으로 치부되던 이 시장에 '포지셔닝'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구글과 네이버에 스몰 브랜드라고 검색하면 내가 쓴 브런치북과 단행본이 첫 페이지에 나온다. 사실 시장엔 같은 이름의 회사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같은 주제의 글을 1500개 이상 브런치에 연재해왔다. 나는 콜럼버스는 아닐지언정 아메리고 베스푸치 만큼의 노력은 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더 반가운 일은 '스몰 브랜드'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작은 브랜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대기업 입사나 공무원 시험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있어도 작은 기업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중소기업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중소기업이라는 단어를 '스몰 브랜드'로 바꾸면 인식이 달라진다. 구글에 스몰 브랜드란 단어를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검색 결과가 맨 위에 뜬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몰브랜드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소수 고객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브랜드를 말하는데요. 최근에 유명한 브랜드의 무난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색을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의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 형태가 나타나면서 주목받고 있는 용어입니다!"
규모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고객의 취향, 자신만의 색이라는 표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MZ 다음의 세대, 알파 세대는 특히나 소비의 기준을 '나'에게 둔다. 타인의 소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소비를 한다. 그리고 이 세대는 새로운 브랜드의 '발견'을 즐긴다. 스몰 브랜드에게는 최고의 고객들인 셈이다. 자신만의 색과 추구하는 취향이 분명하다면 이 세대는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기꺼이 찾아간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게다고 요즘 이 친구들은 서울을 지루해하고 있다. 그래서 로컬, 즉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이 로컬 브랜드는 다름아닌 스몰 브랜드들이다.
내가 운영하는 '스몰 브랜드 연대'라는 모임에는 아주 다양한 작은 브랜드들이 함께 하고 있다. 동네 과일가게에서 200호점의 체인점을 가진 외식업 브랜드까지 사업의 내용도 다양하다. 디자인, 온라인 마케팅, 홍보 등을 맡는 전문가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이 모여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이분들의 필요를 서로 연결하는 일이다. 그래서 딸기 농장의 딸기를 공동구매하고, 릴스를 활용한 마케팅과 작은 회사의 조직 관리에 관한 강의를 개설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그 내용을 페이스북과 브런치 등의 채널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3권의 관련 단행본을 동시에 쓰고 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포지셔닝은 일종의 땅따먹기 싸움이다. 그 무대가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의 영역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는 제한이 많다. 인간의 뇌는 아주 필요한 내용들만 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리는데 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접하는 정보들은 일종의 루틴으로 습관화시켜 버린다. 애플을 사는 사람은 애플만 산다. 스벅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타벅스만 찾는다. 이 치열한 인식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차별화' 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차별화의 방법 역시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1950년대는 ‘경쟁 상품보다 약간 더 나은 상품’, 그리고 판촉을 위한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렸던 좋은 시대였다. 소수의 대기업에게는 최고의 시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오늘날에는 상품 경쟁에서든 정치 경쟁에서든 포지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경쟁 상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포지셔닝'은 오늘날과 같은 경쟁 환경에서 승리하려면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들고, 시장에 구체적인 자리를 새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잃는 게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있어보이는 화려한 브랜드들을 잠재적인 고객의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 대신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치열한 '스몰 브랜드'를 타겟으로 정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여주는데는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