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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역 '내 인생 치과' 스토리북 중에서...

1.


가수 이승철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3이던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글쎄 이 가수가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콘서트를 한다는 겁니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었어요. 너무나 가고 싶은 나머지 아빠에게 부탁을 했어요. 그때는 좌석이 지정석이 아니라 선착순이었거든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콘서트 시간에 맞춰서 갈 테니 제발 줄 좀 서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허락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길로 새벽같이 콘서트 장에 나가 10~20대 아이들 틈에서 기꺼이 줄을 서셨죠. 그리고는 하루 종일 햇볕이 내리쬐는 맨 땅에서 신문지를 깔고 하염없이 딸을 기다려셨던 겁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저는 콘서트 장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저 멀리서 아빠가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세상 기쁜 얼굴로 환하게 웃고 계신 아빠를 보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밤 미친 듯이 놀았습니다. 아빠가 만들어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무대에 뛰어오르려다 경호원에게 잡혀가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저는 세상 누구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아빠의 딸이었으니까요.


2.


결혼 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병원이 잘 되어 굉장히 바쁜 어느 날이었어요. 전화를 거신 아빠가 조금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집 앞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셔서 저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정말 몸이 안좋으셔서 병원 앞 횡단 보도를 건너지 못하셨다고 하더군요. 집 앞에서 택시를 타시고 U턴을 해서 병원을 가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종합병원으로 옮긴지 사흘 만에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돌아가셨습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인 제가, 정작 사랑하는 아빠의 아픔에는 그토록 무심했던 셈이니까요. 더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어 그 해 병원을 접었습니다. 오래도록 살았던 정든 잠실을 떠나 청계산 아래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병원을 시작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3.


이 일을 시작한지 12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의 어떤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은 우리 부부 모두 가난한 집에서 그저 공부 좀 열심히 해서 치과의사가 된 케이스였어요. 그래서 부득불 양쪽 부모님을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었죠. 이를테면 그 무엇보다 ‘생계’ 그 자체를 위해서 치과를 계속 운영해오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와 남편 모두 대학 생활의 낭만 따위는 티끌 만큼도 경험을 못했어요. 그저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빚도 갚아야 하고 부모님도 호강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생활비는 드려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해온 12년이었어요. 그런데 빚을 다 갚고 나니 이제는 짐을 좀 내려놓는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3개월 만에 모든 결정을 마무리하고, 병원이랑 학교까지 결정을 한 후 독일로 떠났습니다. 누가 보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5.


병원을 인수하면서 환자들까지 모두 인수했습니다. 그 모든 환자들을 다 치료하느라 주 6일을 쉴새 없이 일했어요. 하지만 정성을 다하니 환자들의 치료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그래서 기존 환자들의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가격을 합리적으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저항없이 기존의 환자분들이 납득을 해주셨어요. 아마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병원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지금도 저희 병원은 인위적인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아요. 블로그나 유튜브를 하고는 있지만 강남권에서는 거의 이런 병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케팅을 하지 않죠. 그래서인지 소개로 오시는 환자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데스크에서는 매일 어떤 분 소개로 오셨는지 여쭤보는게 일상이 되었어요.


4.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내인생치과를 개원하게 됩니다. 보통 치과를 하려면 몇 년 동안 입지를 보고, 상권 분석을 하는 등의 준비를 하게 마련이에요. 그런데도 저는 무턱대고 지금의 병원에서 다시 해보자고 남편을 설득했어요. 제가 평소에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스타일지만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냥 밀어붙이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남편과의 연애와 결혼도 그랬듯이 지금의 치과도 밀어붙였어요. 그런데 막상 어렵게 인수를 하고 보니 문제가 많은 치과더군요. 이를테면 덤핑 치과였어요.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환자를 모아 매출을 올리고 있었던 거에요.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매출이 이 정도면 인수할 만하다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막상 인수하고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


이렇게 모은 20여 개의 이야기로 이 치과의 브랜드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포맷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판에 박힌 브랜드북이 아니라 에세이집처럼 만들고 싶어요. 굳이 이 병원의 시설과 실력을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거든요. 이 병원을 운영하는 두 부부 원장님의 이야기만 전달해도 충분할 것 같은건 왜일까요? 이 병원의 핵심가치는 '진정성'과 '만족'입니다. 때로는 에세이처럼, 때로는 동화처럼, 때로는 마음을 연 소소한 대화처럼, 사람의 마음 문을 여는 그런 브랜드 에세이북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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