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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카페 '앱스트랙',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이상하다. 브랜딩이란게 이렇게 쉬웠나. 동네 카페 앱스트랙 사장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카페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좋아하는 뮤지션 앨범 이름이에요. 카페 메인 컬러는? 그 앨범 색깔이 오렌지였어요. 인테리어는 어떻게...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넣었어요. 이상하다. 그런데도 이 카페처럼 일관된 컨셉을 가진 동네 카페를 만나본 적이 없다. 젊은 카페 사장님이 한 마디 덧붙인다. 동네 카페는 왜 싸야 하죠? 왜 의자가 편해야 하나요. 그렇다. 얘기를 하다보니 동네 카페를 재정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이 사람... 고수다.


2.


이 카페를 알게 된 건 우리 동네 카페였기 때문이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오렌지 컬러가 선명한 조그만 2층 카페 하나가 분당 정자동 하이마트 근처에 들어섰다. 처음엔 2층의 통유리에 끌렸다. 오후 무렵 이 카페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햇살이 2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으로 은은히 쏟아져 들어왔다.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나쁘지 않았다. 많이 보아도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은 무척 쌰이한 분이었다. 하지만 카페는 조용했고 또 깨끗했다. 20년 동안 이 동네에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카페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앉기 편한 의자 대신 나무 박스로 의자와 테이블을 대신한 이 카페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려' 살아남아 있다.


3.


오늘만 해도 그랬다. 모처럼 외부 일정이 없는 나는 굳이 택시를 타고 옛 동네의 이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서너 시간을 일하다가 용기를 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런데 수줍은 줄로만 알았던 사장님은 어마어마한 달변가였다. 질문에 답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장님에게 나는 물었다. 걔중 가장 아끼는 장비나 소품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 공간엔 이유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뱅엔올룹슨의 90년 제품을 가리키며 이 앰프를 만든 디자이너의 이름을 말한다. 놀랍다. 이 카페가 그토록 일관성 있는 컨셉을 유지한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나는 지금까지 만난 어떤 카페에서도 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가슴이 웅장해졌다.


4.


오버일 수도 있다. 동네 카페 하나에 너무 매달리는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나는 이미 수차례 이 카페를 소개해왔다. 그러나 막상 주인장의 스토리를 알고 나니 내 직감이 정확했다는 사실에 내심 흥분했다. 6년 이상 문을 닫지 않고 운영해온 노하우를 물었다. 그냥 망하지 않을 만큼 번다고 했다. 그러면서 10년이고 20년이고 운영할 카페인데 조바심 내지 않는다고 했다. 이 카페는 그 흔한 SNS도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을 살펴 보니 마지막 업데이트 날짜가 지난 1월이었다. 그런데도 이 카페는 망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동네 헤어샵 원장님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변 가게들이 다 망하는데 이상하게 저 카페는 손님이 많다고 했었다. 오늘 사장님을 직접 만나니 그 의문들이 하나둘씩 거짓말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5.


이 카페의 브랜딩이 쉬우면서도 일관된 건 이유가 있다. 그건 이 사장님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네이밍과 컨셉을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신혼집 꾸미듯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좋아하는 이유가 없는 그 어떤 소품도 들이지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는 그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카페 전체에 아주 촘촘히 꼼꼼하게 묻어 있다. 문득 르라보 향수가 선반 위에 놓여 있다. 여지없이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말한다. 거의 모든 카페 구성품에 네이밍 스페링과 오렌지 컬러가 묻어 있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나다움'으로 가득한 카페를 본 적이 없다.


6.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한 번으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히 들러서 추가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한 권의 책으로 내보자는 약속도 했다. 내가 운영 중인 '스몰 브랜드 연대'의 첫 번째 투어 장소로 즉석해서 정했다. 평일 저녁 통으로 전세를 내고 사장님이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준비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어차피 다들 스몰 브랜드들 아닌가. 게다가 이곳은 1,2층을 막론하고 예사롭지 않은 스피커와 앰프들로 가득하다. 카페 주인장은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게를 가득 채운 음악 속에서 수다를 떨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껏 들뜬 기분이 된다. 언제고 이런 시간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7.


한두 해 알아온 카페가 아니다. 6년 전 카페가 이 동네에 들어섰을 때부터 나는 마치 페로몬 향을 맡은 개미처럼 줄기차게 이 카페를 드나들었다. 이사를 온 후에도 굳이 이 먼 카페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마치 처음 본 이성에 끌리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만나게 되면서 그 이유를 하나 둘씩 알게되는 것처럼 이 카페를 알아가고 있다. 카페의 젊은 사장은 말한다. 서울 시내의 80살 된 바의 할아버지 사장님을 안다고. 자신도 그렇게 오래도록 이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6년 간의 발자취를 살펴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다. 이 카페의 이름은 '앱스트랙'이다. 오늘 끄적이는 이 글은 아주 긴 이야기의 첫 장이 될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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