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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화.


세상에 다시 없을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음악의 신이 나를 편애했는지 스물 네 살이 되는 해에 꿈을 이루었다. 크게 어렵지 않았다. 


착각이었다. 신은 공평했다. 


인생의 전성기가 막 시작될 때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췌장암이란다.


의사는 대충 3달 정도 남았다고 했다. 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병실에서 환자복 입고 링거를 맞으며 보내고 싶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일상을 살고 음악을 하며 여생을 정리하고 싶다는 게 내 작은 바람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에겐 음악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공연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사람들이 나를 오래도록 기억해줬으면 하는 짖궂은 마음에 마지막 무대 서기 전에 나 암 걸렸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연주 듣고 울면서 환호하더라. 이제 나는 전설이 되겠지. 


거동이 힘들어졌을 때부턴 집과 작업실만 오가며 음악을 만들었다. 


혹평 일색일까봐 쌓아두기만 했던 작업물도 어차피 죽고 나면 뭐라는지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 전부 조금씩 다듬어서 공개해버렸다. 


요절한 젊은 천재의 유작이니까 아무도 뭐라 못할 거다. 


내가 뭐 치기만 하면 욕부터 하던 그놈들도 이번엔 잠잠하겠지. 말 한번 잘못 했다 집중포화 당할까봐 입만 삐죽이며 묵언수행들 할 거 상상하니 속이 시원해졌다. 


나는 내 음악을 기억하는 모두에 의해 불멸이 될 텐데, 너희들은 내 발자취 반의 반이라도 따라잡으려면 안간힘을 써야겠지. 남아서 고생 좀 해라 이놈들아. 


아무튼 그런 마음가짐으로 새로 쓴 곡 몇개와 쌓아뒀던 곡들을 뭉쳐서 앨범을 냈다.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아직 경력이 짧아 특별 공로상을 받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는 못했지만, 제일 중요한 제너럴 필드 4개를 한번에 받았다. 


제너럴 필드 4개를 전부 석권한 아티스트는 나를 포함해 4명뿐이다. 한 해에 몰아서 받은건 3명이고. 


나 죽는다니까 화제성 때문인지 이제야 주는 게 좀 얄미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 용서해주기로 했다. 


이로서 나는 대중음악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거인이 되었다. 


무덤에 상 들고 들어갈 것도 아니니 별 의미는 없지만 보고 있으면 뿌듯한 건 어쩔 수 없다. 


상태가 더 악화돼서 더 이상 작업도 할 수 없게 됐을 때부터는 잘 보이는 곳에 받은 상들 놔두고 누워있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그나마 깨어있을 때도 통증이 심해 차라리 자는 게 낫겠다 싶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의식이 갑자기 맑아져서 마지막으로 기타 한번 치고 드러누웠다. 이게 회광반조인가? 지금 기분대로면 갑자기 암세포도 깨끗하게 없어지고 이대로 백 년은 더 살 것 같은데. 


혹시 기적이 일어나서 병석에서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미련은 다 버린 줄 알았는데 그냥 묻어둔 것 뿐이었나 보다. 


잠깐 멀쩡해지니까 괜한 바램이 든다. 이래서 노인네들이 몸에 좋다는 걸 그렇게 찾아 먹는구나. 나이 스물 넷에 다 늙은 양반들을 이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자 다시 몸이 차가워지고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기적은 없었다. 


신체의 기능이 하나 둘 정지해간다. 감각이 희미해지고 수마가 밀려오며 꿈결같은 주마등이 흘러간다. 


잠시나마 몸의 시곗바늘이 영원에 걸린 건지 처음 기타를 잡았을 때 손에 물집이 잡혀서 고생한 기억, 재미삼아 유튜브에 올리던 연주 영상이 대박이 났던 기억, 유명 악기 박람회에 나가서 우상이었던 기타리스트와 즉흥연주를 했던 기억, 내 이름으로 연 첫 무대에 서기 전 터질 것 같던 심장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주마등이 끝나면 나도 죽는 건가? 죽기 싫다. 난 아직 더 살고 싶은데.. 


아직 스물 넷인데 이렇게 죽어야 하나? 차라리 이 주마등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으니 내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에게 더 이상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 머리 속에서 재생되던 기억들이 사그라들고 다시금 잠이 몰려왔다. 


너무 졸리다. 이제 잠에 들 때구나.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간다. 내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한 번만..




서서히…




서서히…




뭔가가 이상했다. 


‘이제 생각마저 사라지면서 흙으로 돌아갈 타이밍 아닌가?’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발가락 촉감도 느껴지는 것 같은데.. 한번 움직여 볼까?’


꿈틀!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엄지 발가락이 움직였다.


나는 눈을 떴다. 분명 죽기 직전에 시각이 사라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도 눈이 떠졌다. 


“여긴.. 집인가?” 


솔직히 사후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좀 놀랐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신께서 네 음악을 원하셔서 조금 일찍 데려왔다! 이제 넌 아버지 곁에서 영원토록 음악을 연주하며 즐겁게 살아가면 된다! 참고로 저기서 피아노 치고 있는 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이다! 


뭐 그런 풍경일 줄 알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건 그냥 단칸방이었다.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구석에 오래 되어 보이는 통기타 한 대가 쳐박혀 있는 그런 단칸방. 


나는 홀린 듯이 기타를 향해 다가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또 있었다. 


‘왜 이렇게 못 치지..? 이럴 리가 없는데.’


머릿속에 이상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다가가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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