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버스 바로 뒷자리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의 무례함?을 잘 참지 못한다. 카페에서 유튜브를 이어폰 없이 스피커로 듣는 사람이 있으면 어르신이라도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꼰 사람이나 쩍벌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불편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특히 청각이나 촉각에 예민한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까탈스러움이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문제다. 크고 작은 불편함으로 인해 손절을 하거나 연락을 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도 이런 관계 단절의 경험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토록 까탈스러운 편의점 고객
한 번은 자주 가던 동네 편의점에서 맥주와 몇몇 안주 거리를 사가던 참이었다. 그 날은 아마도 가게 주인의 와이프로 짐작되는 어느 아주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계셨다. 나는 습관처럼 캔맥주와 먹거리들을 계산대에 놓으며 비닐 봉투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순간에 일어났다. 주인 아주머니가 봉투를 맥주 더미 옆에 슬쩍 놓으며 직접 담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서운함과 불쾌함이 몰려들었다. 나는 참지 않고 원래 봉투에 물건을 담아주지 않느냐고 눈을 내리깔고 항의를 했다. 원래 그렇게 했다는 아주머니의 변명, 설명을 뒤로 하고 씩씩대며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좀 멀더라도 갈 만한 편의점이 어디가 좋은지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닐 봉투에 물건을 담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니 손님더러 담아달라고 미루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년간 이런 서비스에 길든 나는 그런 무례함?에 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어느 날은 원주로 출강 갈 일이 있어서 시외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그렇게 출발을 몇 분 앞두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였다. 20대로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갑자기 내 옆으로 손짓을 했다. 자기 자리니 옆으로 가라는 신호 같았다. 그런데 왜 손가락짓일까? 옆으로 자리를 옮기니 이번엔 다소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다시 손가락질을 한다. 자신의 자리가 창쪽이니 비켜달라는 말과 신호였다. 나는 이번에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큰 소리로 한 마디 하고 말았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지 못할 때
나는 한 동안 씩씩거렸다. 시간이 지나도 화가 잦아들지 않아 결국 다른 빈 자리로 옮겨 앉았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야 하니 좀 비켜달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애가(너무 꼰대인가) 감히 내게 손가락질을 한단 말인가, 시건방진 목소리로 따지듯 말했어야 했는가, 그런 질문에 답하지 못한채 나는 여전히 불편한 기운을 안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여학생이 얼음장처럼 굳은 얼굴로 먼 속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곧바로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소한 일들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렇게 멀어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장 난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 주인이 나더러 문을 닫으라고 하는게 그렇게 크게 화를 낼 일이었던가. 대출을 받기 위해 찾은 은행에서 '주거래 은행이니 봐달라'던 말을 곱씹어 비웃던 은행 직원의 얼굴도 떠올랐다. 왜 나는 그런 사람들에 웃으며 대처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심코 던진, 그러나 살짝 비꼬는 듯한 친구의 농담어린 문자를 받고 화가 난 끝에 항의를 한 경험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지금도 나의 사과를 받지 않는다. 아마도 카카오톡을 차단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수십 년 된 친구를 잃고 나머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은 후다. 순간의 욱함을 참지 못해 성급한 판단으로 잃어버린 관계들이 꽤 된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렇게 쌓아올린 깨어진 관계들의 탑이 내 어깨를 짓누를 때가 있다. 스몰 스텝으로 쌓아올린 좋은 습관들 만큼이나 나의 예민함으로 인해 가랑비에 옷 젓든 잃어버린 소중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다. 더 이상 대화가 멈춘 오래된 카카오톡 채팅 창을 그렇게 슬어올리며 헛헛할 때가 있다.
마음을 다루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내 마음도 다루기 그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실수로 오랜 신뢰의 둑을 무너뜨릴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한 번이 어쩌면 한 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예민함이 누군가에게 가시가 되어 위태롭던 그 관계를 한 번에 무너뜨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스몰 스텝은 이렇게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소중한 관계를 허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