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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를 걷어낸 진실의 향기, 논픽션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화려한 수식어와 마주한다. '가장 완벽한',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같은 단어들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아우성친다. 하지만 2019년 런칭한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논픽션(Nonfiction)'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들은 화려한 허구(Fiction)를 걷어내고,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솔직한 순간인 '논픽션(Nonfiction)'의 시간에 집중했다. 런칭 수년 만에 한국 프래그런스 시장의 지형도를 바꾼 이들의 성공은 스몰 브랜드가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사례다.


브랜드의 철학: 나를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시간


논픽션이라는 이름에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 즉 어느 정도의 허구가 섞인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간다. 그러나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향을 바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논픽션은 바로 이 '가장 사적인 시간'을 점유하기로 했다.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이들의 슬로건은 현대인들에게 단순한 화장품 이상의 의미로 다가갔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제품을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접근은 브랜드에 인격과 깊이를 부여했고, 소비자들은 논픽션을 단순히 '향 좋은 핸드크림'이 아닌 '나를 돌보는 의식(Ritual)'의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케팅의 신의 한 수: '모바일 선물하기' 시장의 점유


논픽션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한 결정적 요인은 브랜딩의 감도를 유지하면서도 유통의 접점을 영리하게 공략했다는 점이다. 특히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중심으로 한 모바일 기프트 시장의 선점은 신의 한 수였다.


과거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백화점 1층의 해외 명품 브랜드를 떠올렸다면, 논픽션은 그 자리를 세련되게 대체했다. 3~5만 원대라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생색내기 좋은' 가격대와, 누가 받아도 기분 좋을 만큼 감각적인 패키징은 모바일 선물하기 환경에 최적화된 조건이었다.


짙은 녹색과 흰색의 대비, 독특한 타이포그래피가 어우러진 논픽션의 상자는 받는 이에게 "당신은 감각적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비주얼 전략은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수많은 자발적 홍보대사를 만들어냈다.


제품의 본질: 서사가 담긴 향과 시각적 언어


스몰 브랜드가 초기 반짝 인기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려면 결국 제품의 본질, 즉 '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논픽션은 런칭 초기부터 글로벌 톱 티어 조향사들과 협업하며 니치 향수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를 구현했다.


그들이 향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 또한 매우 서사적이다. '상탈 크림(Santal Cream)', '젠틀 나잇(Gentle Night)', '가이악 플라워(Gaiac Flower)' 등은 직관적이면서도 한 편의 단편 소설 제목 같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각각의 향은 고유의 분위기와 기억을 환기하며,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의 서사'를 선택하게 만든다. 특히 텍스처와 보습력 등 화장품 본연의 기능성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줌으로써, '예쁘기만 한 브랜드'라는 편견을 실력으로 잠재웠다.


경험의 확장: 오프라인 쇼룸이 주는 영감의 깊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거둔 성공을 공고히 한 것은 전국 주요 거점에 위치한 '쇼룸'이다. 한남동, 성수동, 부산 해운대 등에 위치한 논픽션의 매장은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가 지향하는 예술적 안목을 전시하는 갤러리 역할을 한다.


차분하고 정제된 인테리어, 정성스럽게 큐레이션된 식물과 오브제들,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논픽션만의 향기는 방문객에게 일상의 소음을 잊게 만드는 몰입 경험을 선사한다. 고객들은 쇼룸을 방문하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외출'로 받아들인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얻은 이 강력한 시각적·후각적 경험은 다시 온라인에서의 재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논픽션은 오프라인 공간을 수익의 원천이 아닌 '브랜드 신념의 실체'를 보여주는 장으로 활용함으로써 브랜드의 급을 높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취향이 되다


논픽션의 성공은 스몰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명확한 시사점을 준다. 그것은 바로 '라이프스타일의 틈새를 정교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들은 거대한 뷰티 제국들과 정면 대결하는 대신, 현대인의 지극히 사적인 휴식 시간과 모바일을 통한 관계 맺기라는 새로운 문화적 토양 위에 자신의 깃발을 꽂았다.


이제 논픽션은 한국을 넘어 파리, 홍콩, 일본 등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한국의 작은 브랜드가 만든 '진실한 향기'가 전 세계인의 욕실과 화장대에 놓이고 있는 것이다. 허구를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했을 때, 브랜드는 비로소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나를 마주하는 그 짧은 찰나의 시간을 가장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로서, 논픽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우리 곁에서 가장 솔직하고 감각적인 '논픽션'으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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