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의 마케팅이 가장 크게 길을 잃는 지점 중 하나가 “제품을 팔아야 한다”라는 강박이라고 생각한다. 팔아야 하니까 메시지가 빨라지고,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말한다. “우리 제품 좋아요.” 그런데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쇼핑몰이나 매장을 찾는게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 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접속하고 방문한다.
내가 생각하는 순서는 그 반대다. 팔기 전에 공감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공감이 쌓이면 사람들이 스스로 브랜드에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바이럴이 시작된다. 이때의 바이럴은 광고비가 아니라 관계맺기의 결과인 셈이다.
나는 이걸 우리 둘째 딸을 보면서 더 확신하게 됐다. 둘째는 10년째 좀비고와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한다. 하지만 그 게임이 재미있어서가 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게임은 별로”라고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게임 안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딸에게 게임은 목적이 아니라 대화가 열리는 공간이다. 콘텐츠보다 커뮤니티가 먼저다. 기능보다 관계가 먼저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보다 ‘함께할 수 있는 것’에 더 오래 머문다.
여기서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마케팅은 구매를 설계한다. “어떻게 클릭하게 만들까, 어떻게 결제하게 만들까, 어떤 혜택을 붙이면 움직일까”를 고민한다. 즉, 단기 행동을 만드는 기술이다. 문제는 마케팅이 과해지면 상대를 ‘전환율’로만 보게 된다는 데 있다. 그러면 말이 공감이 아니라 설득이 된다. 설득이 많아질수록 사람의 마음은 닫히게 마련이다.
브랜딩은 관계를 설계한다. “이 브랜드는 어떤 태도로 세상을 보나, 어떤 사람을 이해하나, 어떤 감정을 대변하나”를 고민한다. 즉, 장기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브랜딩이 잘 된 브랜드는 제품을 팔기 전에 먼저 한마디를 건넨다. “나도 그 마음 알아.” 그 한마디가 사람을 멈추게 한다. 멈추면 읽고, 읽으면 저장하고, 저장하면 언젠가 선택한다. 구매는 가장 마지막에 온다.
스몰 브랜드는 이 구분이 더 중요하다. 대형 브랜드는 광고비로 ‘인지도’를 살 수 있지만, 스몰 브랜드는 그럴 수 없다. 이때 스몰 브랜드가 살아남는 방식은 “잘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스몰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출발점은 제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브랜딩의 출발점은 로고가 아니라 맥락이다.
그래서 나는 “천 개의 스몰 브랜드를 모아 서로 돕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꿈꾸고 기획하는 중이다. 이건 단순히 모임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은 브랜드들이 혼자서는 만들기 어려운 ‘관계의 인프라’를 공동으로 갖추는 전략이다.
스몰 브랜드가 가장 자주 겪는 문제는 제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고립이다. 혼자서 콘텐츠를 만들고, 혼자서 고객을 설득하고, 혼자서 실패를 감당한다. 그러다 보면 브랜드의 언어가 점점 ‘판매용 문장’으로 변한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뮤니티는 그 조급함을 줄여준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안심이 생기면, 다시 소비자를 향해 말을 걸 수 있다.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때 커뮤니티는 바이럴의 구조를 만든다. 바이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유할 이유가 있을 때만 일어난다. 공유할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다.
1. 내가 공감했기 때문에 (나의 감정이 설명됐다)
2. 내가 속하고 싶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이 환영받았다)
우리 딸이 하는 좀비고/마인크래프트에서 아이들이 하는 건 2번이다. “여기 있으면 친구가 있다”는 소속감이다. 브랜드 커뮤니티도 똑같다. 스몰 브랜드들이 서로 돕는 커뮤니티는 고객에게도 ‘소속감’을 준다. “여긴 나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야.” 이때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그 브랜드만의 세계관이 생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천 개의 스몰 브랜드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 각 브랜드가 자기 철학을 ‘비즈니스 언어’로 번역한다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돕는가)
- 서로의 브랜드를 서로의 무대에 올려준다 (교차 추천, 공동 기획, 콜라보, 번들, 팝업)
- 단골을 ‘고객’으로 두지 않고 회원/동료/팬으로 전환한다 (참여할 역할을 준다)
- '구매'가 아니라 참여를 중심으로 설계한다 (후기, 기록, 모임, 챌린지, 큐레이션)
이렇게 되면 마케팅은 달라진다. “사세요”가 아니라 “같이 하자”가 된다.
브랜딩도 달라진다. “우리는 이런 제품”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삶의 태도”가 된다.
스몰 브랜드의 경쟁자는 다른 스몰 브랜드가 아니다. 고립이다.
마케팅의 적은 제품이 아니다. 공감의 부재다.
바이럴의 조건은 화제성이 아니다. 관계다.
둘째가 게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친구가 있어서’ 하는 것처럼, 사람은 브랜드도 제품 때문에만 남지 않는다. 내가 이해받는 느낌, 내가 속할 자리,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천 개의 스몰 브랜드'를 모으는 일이 단지 규모를 키우는 사업이 아니라, 스몰 브랜드가 스스로를 지키고 확장하는 생존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팔지 않고 공감을 얻는 곳,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무대로 세워주는 곳, 거기서부터 브랜드는 팔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