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브런치북 대상 작품 중에 유독 마음을 끈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20년 간 연락이 끊긴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에세이 글에는 하나의 반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라는 글을 남깁니다. 아마도 자신의 빚이 아들에게 전가되는걸 원치 않은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빚을 떠안게 된 아들 부부의 이야기가 이상하리만큼 덤덤하게 이어집니다. 그래서인지 홀로 남은 어머니를 향한 시선, 아이 넷의 아버지이자 공황장애를 앓는 소방관으로서의 자신이 이야기가 묵직하게 아린 여운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기교 없이 주먹을 날리는 무명 복서의 힘겨운 싸움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18개의 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많지 않습니다. 몸의 곳곳에서 노화의 신호를 알리는 증상들이 이어집니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와 지인, 심지어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소원해지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이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납니다. 마음 둘 데가 많지 않아 더 외롭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나마 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수년 째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이렇게 털어내기에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나만 이런가 싶어 물어보고 싶지만 조심스럽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털어놓으면 친구가 내 어깨를 치며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야,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 다 그렇게 사는거야. 술이나 한 잔 해."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직업의 특성상 각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제 삶의 유일한 낙 중 하나가 이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얻는 인사이트들입니다. 정답은 아닐지언정 그들은 나름의 '자신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행복에 다다르기 위한 4개의 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과 재정, 건강과 관계라는 네 개의 키워드입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가 모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부족하거나 삐끗해도 우리 삶은 큰 어려움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 반대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 중 어느 한 가지에서만 해답을 찾아도 나머지의 축을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글에서 글쓴이의 아버지는 당뇨를 심하고 앓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큰 빚을 지고 있어서 노숙인처럼 숨어 사는 삶을 20년 간 이어온 것도 같습니다. 당연히 아들은 물론 가족 친구와의 관계도 모두 끊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일을 하기 힘들었겠지요. 즉 앞서 말한 네 개의 축이 서로 맞물리며 불행한 생의 종말로 이어진 셈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착한 아들과의 관계만이라도 회복했다면 어땠을까요?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도 탈출했다면, 건강을 회복해 기본적인 삶이라도 영유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네 개의 축과 관련한 스몰 스텝을 다시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재정과 관련된 스몰 스텝입니다.
최근에 저는 대기업 출신의 어느 저자를 만나 책 한 권을 펴냈습니다. 나이 마흔, 이혼의 아픔을 이겨내고 자신의 재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데 성공한 이 저자는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튼튼한 재정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를 위해 이 저자(부부)가 한 일은 100세 까지의 엑셀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60여 개의 셀에 '재정'에 관한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수입과 지출, 투자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정리해 불과 5년 만에 돈에 관한한 '불안'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들 부부는 당장 퇴직하더라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튼튼한 재정 구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돈이 주는 불안으로부터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 부부가 추구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돈이 그들의 행복을 흔들지 못하는 튼튼한 '재정의 구조'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또 일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적어도 돈이 없어 건강을 잃거나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한 이직에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글을 책으로 엮어내면서 저는 '돈'에 관한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돈이 아닌, 내 삶의 행복에 꼭 필요한 '적정 소득'의 개념에 따라 소비와 지출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게 남은 50여 개의 셀(엑셀의 표)을 채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작은 투자와 지출이 50년 후의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툴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사피엔스',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같은 오래된 고전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순간의 쾌감과 만족을 주는 유튜브 대신 꼭꼭 씹어 읽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텍스트들을 읽으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 드넓은 우주에, 찰나의 삶을 스치듯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일과 재정, 건강과 관계에 대한 '나다운' 기준과 가치를 고민하게 됩니다. 적어도 저는 이 짧은 생의 여행을 '무연고'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래도 삶은 행복하고 보람있었노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은 50개, 40개, 혹은 30여 개의 셀을 채우기 위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고민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행복한 설 연휴의 마지막날, 이 글이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행복한 자극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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