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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브랜더’s 다이어리 #06.

일 년에 다이소에 갈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안방 전등 스위치가 고장 났거나, 사무실 바닥을 가로지르는 흉한 전선이 갑자기 눈에 거슬리거나, 느닷없이 무언가를 키워보겠다고 조르는 아이들의 다그침이 없다면 다이소에 갈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이유없이 다이소를 가고 싶었던 날이 하루 있었다. 필요한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를 필요까지는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발걸음은 다이소로 향했고, 그래서 애초에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몇 가지 자잘한 소품들을 몇 가지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곳에 온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포만감, 자유함, 행복감..


그렇다. 이 곳에서 내가 사지 못할 것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것이든 사고 고를 수 있다. 구매와 결정을 채근하는 점원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충동 구매로 인한 후회를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바구니 가득 채운들 몇푼이나 하겠는가. 그런 자유함이 포만감으로 바뀌고, 그 포만감이 행복감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곳에 가면 곧장 마음이 가라 앉죠. 그 적막감과 당당한 광경… 거기서는 나쁜 일이 일어 날 수가 없어요.”

영화로 더 유명해진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이 구절을 읽은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아마도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의 뒷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동경, 혹은 공감과 더불어서 말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필요와 욕구에 의해 소비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제품이 주는 유용함만은 아니다. 체력만 된다면 대여섯 시간의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아내의 고백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공간을 소비하고, 경험을 소비하고, 공감을 소비하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해진다. 똑똑한 기업과 브랜드들은 이런 생각을 기초로 그들의 매장을 다시 설계했고, 애플의 스토어는 그래서 그렇게 유명해졌다.


지금 다이소에 가면 그 때의 만족감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모를 일이다.
나는 지독히도 변덕스러운 현대인 중 한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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