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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만난 뜻밖의 독립서점, Twoday Books

이 서점은 일주일 중 이틀만 문을 연다. 평일에는 일반 펍으로 영업을 한다. 그러다 주말이 오면 술잔이 있던 테이블이 책으로 채워진다. 모두 일반 서점에는 만날 수 없는 독립출판물들이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 아래서 이채로운 책들을 만난다. 누가 가장 억울하게 죽었을까, 이명옥 회고록, 경찰관 속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책들이다. 종류도 많지 않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좁다. 책들은 하나같이 판형과 페이지가 독특하면서도 만만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들이 꽤 된다. 책의 종류도 많아봐야 수십여 종. 너무나 많은 책 때문에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는 일반 서점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 편하다. 한 잔의 술을 마시듯 책을 읽는다. 술술 넘어간다. 이곳은 신사역 8번 출구에서 5분여 거리에 있다. 이 묘한 조합이 의외로 어울린다. 강남의 한복판, 가로수길 초입에서 만나는 독립서점이라니. 우리는 그 서점을 '투데이북스(Twoday Books)'라 부른다.


주말 이틀만 영업을 한다. 독립출판물을 판다. 그래서 주말독립책방이다.


운 좋게도 주인장들을 만났다. 그제서야 주말에만 영업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광고업계에 종사 중인 현업 카피라이터들이었다. 그 광고 회사의 이름은 '머쓰마쓰', 세상을 놀라게 머리를 쓰고, 세상을 움직이게 마음을 쓰자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전시된 책들 중 '머쓰마쓰'에서 나온 책들이 적지 않았다. 이야기가 계속 되던 중에 혹 어떤 광고를 만드셨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뜻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TTL' 광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공간이 또 한 번 새로워졌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광고의 카피라이터가 만든 독립서점이라니.


서점의 컨셉을 물어보았다. '강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독립 서점'이라고 했다. 실제로 보통의 독립서점들은 강북이나 시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마음 먹고 시간을 내지 않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곳들이다. 하지만 '투데이북스'는 강남 한복판에서 유니크한 독립출판물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책만 팔지 않는다. 글쓰기 교실도 열린다. 현업 카피라이터들의 조언과 첨삭을 직접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출판까지 가능하다.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꿈의 시작'이 될 곳이었다.


평일에는 일반 펍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주말엔 서점으로 변신한다.


최근에 5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외국계 통신 회사를 다니다 최근에 퇴사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책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책쓰기의 노하우를 넌지시 물어왔다. 아는대로 경험한 것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책을 쓰고 싶어할까. 세상에 돈 안되는 일 중 하나가 책 내는 일일텐데. 세상에 둘도 없이 힘든 일이 책 쓰는 일일텐데. 사람들은 왜 이토록 끊임없이 자신의 책을 쓰고 싶어하는 것일까. 운 좋게도 덜컥 출판사의 출간 의뢰를 받아 손쉽게? 책을 낸 나로썬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기어이 자신의 책을 만들고만 사람들의 책들을 둘러보다 보니 그 의문을 조금은 풀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본능과도 같은 것이리라.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를 해결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표현'의 욕구를 맞딱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옷을 사고 헤어스타일을 바꾼다. 차를 바꾸고 때로는 집을 꾸민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타인과 구별짓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 욕구의 정점에 바로 글쓰기, 책쓰기가 있다. 돈만 있으면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직접 써내려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TTL광고를 기억하는가? 그 광고의 카피라이터가 이 서점의 창업자 중 한 분이다.


하지만 이런 책들이 가진 한계도 선명하다. '팔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최소한 1쇄는 찍을 책들을 내고 싶어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선 당연한 논리인지도 모른다. 팔리지 않는, 자기 만족을 위한 책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 큰 간극이 생겨난다. 책을 내고 싶어하는 개인과, 팔아야만 하는 출판사 사이의 괴리, 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이 바로 '독립출판물'이다. '투데이북스'에서 만난 어느 책은 인터뷰집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인터뷰해 아버지의 인생을 한 권의 책(이명옥 회고록)으로 정리했다. 일반 출판사라면 쉽게 출간할 수 없는 컨텐츠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책은 특별해졌다. 일반 서점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내용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이 '투데이북스'에 즐비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이런 독립서점들이 혹 서점의 미래이자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파리바게뜨 대신 동네 빵집을 찾는다. 골목 깊숙한 곳의 간판 없는 카페가 인스타그램 하나만으로도 핫해질 수 있는 시대다. 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독립서점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해 결국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언어의 온도'도 개인 출판사의 작품이다. 빵집이 그렇듯, 카페가 그랬듯, 대형 출판사를 거치지 않은 일반인의 책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곧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유니크한 책들의 향연.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다. 메이저 광고회사에서 TV CF를 찍던 분들이 독립 서점을 한다. 나는 이 모습이 상징하는 바를 투데이북스에서 읽었다. 오직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빵에 열광하는 시대다. 한 개인의 작은 경험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수요는 공급을 만들어낸다. 독립 서점은 그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작지만 소중한 통로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온 앞서의 그 퇴직자와 같은 분들이다. 글쓰기는 한 인간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한 권의 책쓰기는 다름아닌 '자기발견'의 과정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탐색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뚜렷해진다. 내가 잘하는 것들을 냉정히 돌아본다. 내게 힘을 주는 것들, 반대로 내게서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이 명확해진다. 내가 바라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책은 한 인간을 '브랜딩'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은 기회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책을 낸 이후 내 인생은 달라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비로소 알 수 있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래서 감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책쓰기를 제안한다. 그것이 달라진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다. 스스로 차별화되는 과정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존재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주말이면 투데이북스에 가보라. 브랜딩된 타인들을 만나보라.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책들을 읽어보라. 그 책의 저자가 자신이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라. 어쩌면 그 날이 당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첫 번째 날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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