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시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맨날 바닥만 보고 다니던 애가 결혼을 다한다고. 새삼스런 일은 아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먼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나는 숨기 바빴다.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낯설어서, 쑥스러워서, 그리고 항상 주먹 하나만큼 작았던 키 때문에 주눅들어서. 그래서 나는 연신 구석으로만 구석으로만 숨어들곤 했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 바다가 보이는 어느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세상과 섞이지 못했던 것은. 텃세가 심한 마을에서 나는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마도 이지메이고 따돌림이었으리라. 울면서 집으로 향하는 날이 정말 많았다. 어느 날인가는 학교 선배들이 후배와 권투 시합을 붙였다. 결과는 뻔했다. 억울해서, 분해서, 쪽팔려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엉엉 울며 세수를 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상처가 쌓여갔다. 그리고 어느 샌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세상과 친해질 수 없었다. 나는 자꾸만 바닥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회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나는 아싸였다. 회색 인간이었다. 존재감이 없었다. 금요일 밤이 좋았다. 혼자 보는 영화가 좋았다. 그러나 월요일은 빠르게 찾아왔다. 차라리 일을 할 때가 좋았다. 점심 시간이 싫었다. 무리 속에 있으면 나는 더 외로워졌다. 팀원일 때는 팀장과 불화했고, 팀장이 되어선 팀원이 부담스러웠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칭찬은 받지 못했다. 승진과 성과는 먼 나라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일이었다. 나는 그게 나인 줄 알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폭포수처럼 찾아왔다. 나는 루저였고, 아싸였고, 인생의 패배자였다. 나는 정말로 그게 내 모습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강연을 했다. 타인에 의해서였다. 우연한 시작이었다. 식은 땀이 흘렀다. 망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한 번의 경험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낯선 나를 만났다.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를 의심했다. 무리 속에 섞인 나를 보았다. 작은 걸음을 시작했다. 하루 세 줄의 일기를 쓰고, 다섯 개의 영어 단어를 외웠다. 매일 산책을 하고 낯선 버스 기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경험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수백 명의 사람에 둘러 싸여 주말없는 일정을 보낸다.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상의 반연예인이니 살 좀 빼시라고. 그제서야 알았다. 좋든 싫든 이제 나도 인싸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나는 혼자가 좋지만, 함께도 좋다. 금요일 밤의 미드도 좋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주말도 좋다. 글을 쓰는 토요일 오전을 기다린다. 이유의 8할은 사람이다. 무리 속에 섞여 행복한 나를 만난다. 어떨 때는 나와 같아서 좋고, 어느 때는 나와 달라서 좋다. 그러나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했던 것일 뿐. 이제 이 이야기를 나를 닮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 인싸가 된 어느 아싸의 이야기를. 혼자도 행복하지만 함께 할 때 더 행복해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이제 나는 더 이상 바닥을 보고 걷지 않는다. 그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 사진을 찍는다. 어디선가 그 할머니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야가 인자는 하늘을 보고 걷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