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네 안에 숨은 '호미'를 찾아라

아마존에서 우리나라 '호미'가 팔린다. 그냥 팔리는 정도가 아니다. 성능 좋은 원예 용품으로 각광받는다. 한때 '가드닝(gardening·원예)' 부문 톱10에 오르며 2천개 이상 팔리기도 했다. ㄱ자로 꺾어진 호미는 손삽만 쓰던 외국인들에게는 혁명적 원예용품이었다.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 호미 쓰기 전에는 정원을 어찌 가꿨는지 의문이다, 덤불 베는데 최고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여기서 팔리는 호미 가격은 대략 17달러, 우리 돈으로 1만 9,000원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4,000원 정도에 팔리니 네다섯 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이 호미들은 모두 경북 영주에 있는 '영주 대장간'에서 만들어진다.


이곳 호미가 대량 생산되는 호미보다 튼튼한 비결은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좋은 호미 재료를 사용하는데다 오래 써도 날과 손잡이가 분리되지 않는다. 풍파를 버텨 생존한 영주대장간 농기구는 오래전부터 이미 '명품'으로 알려져 왔다. 강원도 산골부터 부산 해운대까지 전국 곳곳에서 이곳 제품만을 찾는 철물점이 수두룩하다. 2019년부터는 짝퉁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졌다. 영주 대장간만의 각인이 호미에 찍힌다. 손잡이에는 '최고장인 석노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다. 손잡이에 있는 세 개의 선명한 줄도 영주대장간 호미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명성을 얻기까지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석노기 장인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매형이 하는 대장간에 들어가 의식주를 해결했다. 1973년, 공주의 어느 대장간에서 3년간 호미와 조선낫 등을 배우는 기술을 연마했다. 이후 경북 영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80년 대 들어 먹고 살만해지자마자 비슷한 대장간들이 줄을 이어 생겨났다. 같은 동네에만 대장간 5개가 생겼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남들이 못 만드는 작두나 약초 캐는 거름지 창 등을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남아 한 숨 돌리니 이번엔 중국산 농기구가 발목을 잡았다.


"영주 호미를 2000원에 팔 때 중국산이 600원에 들어오니 될 게임이 아니었제. 버티기가 힘들어 죽으려고 몇 번을 시도했어. 답은 품질 뿐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만드는 농기구에 영주대장간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 거여. 결국 중국산을 써본 농민들이 다시 돌아오더라고."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2013년 부터는 미국을 비롯한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석노기 장인의 호미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미를 만드는 과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 호미의 주재료는 차량용 스프링이다. 이 스프링을 호미 크기에 맞춰 사각형으로 자른다. 가마 불에 넣었다가 빼내어 두드리기를 수 천번 이상 반복한다. 형태가 잡히면 겉면을 가공해 매끈하게 만든 뒤 나무 손잡이를 끼운다. 이렇게 100% 수작업으로 하루에 60자루 정도를 만든다. 70대 동네 어르신 한두 명이 도와주는 날에도 약 120자루의 호미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인건비가 한국보다 비싸 손작업이 필수인 대장간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0도, 90도 등 정교하게 휜 농기구가 드물다. 영주대장간의 호미가 사랑받는 이유이다. 우리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호미 한 자루가 새로운 한류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첨단 IT  제품도 아니고 새로운 개념의 놀라운 서비스도 아니다. 그저 50년 동안 하나의 업에 매진해온 결과다. 하지만 그 인내와 고집, 끈질긴 생존이 세계에서 통하는 명품을 만들어냈다. 이 제품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정원에서 잡초를 베던 노랑 머리의 외국인들이었다. 영주대장간의 성공은 차별화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판판히 깨어놓는다. 거대하고 화려하고 대단한 스토리가 아니다. 그저 노인 한 분이 '하던 대로' 만들어오던 호미 한 자루가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 안의 잊혀졌던 그 무엇이 세계인의 사랑을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명품은, 브랜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견되는 것이다. 호미가 그렇다면 이 땅에는 그렇게 수 십년을 이어온 장인들의 보석같은 명품의 스토리들이 숨어있진 않을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수백 년된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수백 년간 젓가락을 만들고, 수백년 간 부채만 만든다. 이들 제품은 그 역사만으로 차별화가 된다. 카피 불가능한 브랜드가 된다. 그런데 이런 일본 브랜드들 중에 '곤고구미'라는 사찰 전문 수리 기업이 있다. 무려 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존하는 기업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기업의 창업자는 다름 아닌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건축 장인이었다. 창업자 곤고 시게미쓰의 본명이 바로 류중이다.


우리 안의 숨은 명품을 찾아야 한다. 우리 안에 숨은 호미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브랜딩은 평범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다. 그 가치란 짧게는 '필요'일 수도 있지만, 넓게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발에 채이는 호미도 전세계에 통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 우리에겐 그런 가능성을 가진 자산과 유산이 또 존재하지 않을까. 이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석노기 장인의 '호미' 역시 한 때의 유행, 반짝하는 트렌드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견되는 것이다. 눈을 부릅 뜨고 제 2의 영주 대장간 호미, 제 2의 석노기 장인을 찾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E-mail: hiclean@gmail.com

* Mobile: 010-2252-9506

* Site: www.beavern.com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작은 것들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