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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와 요리 사이에서, 쉐이크쉑버거와 엘더버거

'라면도 요리다'라는 슬로건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가게가 있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라면을 비치하고 야채, 햄, 콩나물 등 원하는 토핑을 다양하게 추가할 수 있다는게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단 한 번 가본게 전부였고 가게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마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라면은 한 끼 때우는 패스트푸드지 요리는 아니라는 '생각의 벽'이 견고했던 거죠. 저는 쉐이크쉑버거와 엘더버거를 연달아 방문하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습니다.


"쉐이크쉑버거는, 엘더버거는 정말 패스트푸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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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의 AK 플라자에 있는 쉑쉐이크버거 매장은 화려합니다. 원래 구찌 매장이었으니까 입지로는 더 이상 화려한 곳을 찾기도 어려웠을 거에요. 그런데 크라이치버거 이사님의 전언에 의하면 쉐이크쉑버거는 가게의 2면이 행인들의 동선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하더군요. 분당점이 딱 그랬습니다. 백화점 입구와 연결된 이 매장은 서현역을 찾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예상 가능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가격입니다.


혼자서 찾은 이 매장에서 햄버거(더블 패티가 아닌) 하나와 감자튀김,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더니 14,000원이 찍힌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사실 고기향과 육즙 가득한 맛있는 버거였어요. 하지만 먹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 가격이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후보군이 함께 떠올랐으니까요. 금요일 밤에 찾은 엘더버거도 그랬습니다. 두 사람이 햄버거에 어니언링, 맥주 두 병을 곁들이니 40,000원이 넘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쯤 되면 두 버거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요리라도 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문제는 그만한 가치의 식사를 한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느냐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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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이크쉑버거의 핵심은 미국 본토의 맛을 경험한다는게 그 차별화 요소가 있습니다.(참고로 쉐이크쉑은 스스로를 '뉴욕에서 온 파인 캐쥬얼 레스토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본토의 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국내의 쉐이크쉑버거와 그 맛이 다르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국내 버거쉐이크쉑의 빵은 미국에서 공수해온 것이 아닌 SPC(파리바게뜨를 만드는)의 빵으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미국 본사에서 최종적으로 검증을 마친 빵이라고 하지만 오리지널 쉐이크쉑버거를 기대한 분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이면 미국 본토와 같은 원료로 만들어진 버거를 기대한 분들이 많았을 테니까요.


엘더버거의 매장은 패티를 굽는 직원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기발랄한 분주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매장 바깥에는 패티를 굽는 장작들이 한 켠에 가득 쌓여있기도 했습니다. 불맛 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반 패스트푸드점의 풍경보다는 식당이라는 컨셉에 더 적합해 보였어요. 크기만큼이나 맛도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 가격으로 이곳에서 '식사'를 할 것인지를 물어온다면 고개를 저을 것 같았어요. 제 의식의 영역에서는 쉐이크쉑이든 엘더든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라는 인식이 너무 굳건하고 자리잡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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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와 다른 생각으로 이 두 버거 매장을 찾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라면과 라멘의 차이처럼 기존 패스트푸드점의 버거와 이 두 매장의 버거를 완벽하게 구분하고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아무리 수제버거라 해도 아직은 '요리'의 단계까지 올라선 것처럼 보이진 않으니까요. 한 때 시장을 풍미했던 크라제버거가 왜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버거는 버거다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진짜 요리 대접을 받으려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두 버거 매장이 그 답이라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네요. 여러분은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햄버거도 하나의 요리로 대접받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저도 모르게 이미 도래한 그런 버거가 있을까요?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시장을 둘러보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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