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질문에 답할 때까지

by 리베르테

여행은 늘 묻는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그 질문을 피해 다니다 결국 다시 길 위에 섰다. 낯선 곳을 향한 발걸음, 그 시작에는 늘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다. 일 년 중 한 분기, 나는 집을 떠나 있었다. 다시 떠난 그 여정은 '멈춤'이 아니라, '전진'이었다.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멈춤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스스로 '나아감'이라고 이름 지었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는 다르다. 한 방에 낯선 이 셋과 머문 시간은 절대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각자의 리듬, 식습관, 잠드는 시간, 말의 방식까지 달랐다. 어지간히 무던하고 좋은 사람들임에도 사소한 것도 마음을 써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의 감정을 건드릴지도 모르고, 그러면 함께하는 시간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함께 지내는 하루하루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훈련이자 내 성격의 모서리를 다듬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불편함 속에서 나를 봤다. 때로는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이 불쑥 올라오기도 하고, 조용히 내려앉은 무력감에 마음이 휘청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에 진짜 내 얼굴이 드러났다. 불편한 상황은 내면의 거울이었다. 마주하기 두려웠던 내 감정의 결들이 하나하나 또렷해졌다.


처음엔 막연히 자유롭고 가벼운 시간이 되기를 바랐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럴수록 생각하게 되었고, 생각은 방향을 잡는 나침반이 되어주었으니까.

그동안 몸에 밴 불안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 불안도 낯섦과 맞닿아 있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무엇을 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매번 새로 정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그 불안은 결국 불안 그 자체였고, 내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마주 보는 시간이었고, 익숙함이 주지 못하는 질문을 던졌으며, 나는 그 답을 내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다시금 '떠남'을 갈망하고 있다. 그 갈망의 이유는 분명하다. 낯선 곳에 있을 때 나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익숙함 속에선 보이지 않던 나의 모습, 놓치고 있던 감정, 그동안 소외되었던 내 마음이 낯선 공간에서 보였다.

혼자여도 좋고, 마음 맞는 이와 함께여도 좋다.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여행하느냐니까. 여행을 통해 지도 위의 좌표보다 내 감정의 좌표가 중요해졌다.

낯섦은 늘 어색하고 때로는 고단하다. 하지만 낯섦은 삶의 진동을 느끼게 해 준다. 뿌연 감정이 선명해지고, 무뎌졌던 감각이 다시 예민해진다. 낯섦은 나를 흔들고 깨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낯섦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성장할 기회라는 것을.


이제 이 나이에 안주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불안과 낯섦 속에 몰아넣고 싶다. 그리하여 위축되지 않고 단단한 나의 모습을 가지고 싶다. 그런 기대를, 여행을 통해 가지게 되었다.


일 년의 한 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달이라도 낯선 곳에서 살고 싶다. 불편함과 맞서고, 모호함을 견디고, 감정의 진폭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떠나는 이유이자, 다시 돌아오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예술과 일상이 숨 쉬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