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베르테 Nov 12. 2024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부드러운 바람 부는 날

저녁 약속이 있었다. 여러 가족이 모이는 자리가 내키지 않았던 남편은 "혼자 가서 즐겁게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며 앞으로는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을 말인데, 오늘따라 그 말이 유독 거슬렸다. 나도 모르게 "혼자 갈 생각이었다"라며 뾰족하게 대꾸해 버렸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나는 아이들의 어린이집부터 학교까지 부모협동조합형으로 만들어 보냈다. 모든 것을 부모가 직접 만들고 참여해야 했다. 처음에 남편은 반대했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도, 대안학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그 어디에도 없이 생소한 길이었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우리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더군다나 학벌 인정이 되지 않는 비인가 학교라니 남편은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과 부딪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다른 부모들과 함께 어린이집을 만들어 개원했는데도 남편의 뜻을 존중해 아이를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공동육아 활동을 이어갔다. 갈등하는 대신 어린이집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 아이들을 위해 오늘은 어떤 회의를 했고, 무슨 노력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남편도 내 진심과 노력을 알아봤는지 "교육만큼은 더 고민한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게 맞겠다"라며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어린이집과 학교를 보내게 되었지만, 공동육아부터 학교까지의 긴 여정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부모협동조합형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운영 주체가 바로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서 이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를 남편과 공유하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다. 그 마음이 서운함과 원망으로 쌓여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이를 키워도 될 텐데, 왜 저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을 들여가며 극성스럽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말을 아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조심하며 말을 아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담담히 지내왔는데, 오늘은 왜 참지 못하고 감정이 불쑥 터져 나왔을까. 그 깊은 마음속에는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나누지 못했다는 공허함, 서운함, 아쉬움과 같은 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오늘 가슴 한편에 싸늘한 바람이 일었다. 내 마음에 다시 따스한 바람 불어올 때까지 내버려두어 볼 생각이다. 왠지 바람이 다가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글을 마치는 순간, 둘째 승기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Cory Henry의 2017년 재즈 페스티벌 실황 공연 영상과 함께. 

 

“엄마, 음악이 너무 좋아서 보내드려요. 가을과 정말 잘 어울리네요. 울컥했어요”

 

아이가 가을을 타나 보다. 나도 음악을 들으며 울컥해졌다. 

“엄마도 그러네. 우리 둘 다 가을 타나 봐” 

 

곧 승기의 답이 왔다.

“엄마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아이의 그 말은 들어도 들어도 가슴 따뜻해지는 마법의 말이다.

 

나도 다시 답했다.

“엄마도 우리 승기 하늘만큼 땅만큼, 아니 이 세상 온 우주만큼 사랑해”

차가웠던 마음에 아이가 따스한 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